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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품 또는 본성 있는가?
정론직필님과 새날님의 댓글에 대한 답글.
1. 눈을 비롯한 신체 그리고 마음이 보는 것이 아니고 (새날님)
답 : 꿈을 꾸어도 소리도 듣고 형상도 많이 나타납니다.
즉 감각의 대문이 닫혀 있어도 형상을 담은 이미지는 나타납니다.
그 이미지는 12입처 내의 식이 색외입처와 촉하면서 이미지, 언어, 범주화, 생각들을 형성시키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은 상당히 복잡한 구조를 지니고 있으면서 이를 구차제정(아홉단계의 사마디와 정견과 결부) 시키면서 각각의 우주 즉 욕계, 색계, 무색계가 현현하게 됩니다.
만물을 단지 마음이라고 사용하기에 편하고 효용이 높기는 하지만 이는 매우 제한적으로,
아니면 비불자들에게 부처님 가르침을 인용하거나 안내하는데 사용하는 수준에서 그쳐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래 마음이 움직이는 일체법을 포함한 인식과정의 그림이 있으니 참조 하시기 바랍니다.
2. 성품이 본다고 하는 내용을 본적이 있는데,
답 : 모든 존재는 외부를 볼 수 없습니다.
단지 색경이라는 형상의 질료, 성경이라는 소리의 질료, 향경이라는 냄새의 질료, 미경이는 맛의 질료, 촉경이라는 감촉의 질료들이 안근, 이근, 비근, 설근, 신근을 통하여
추상적인 공간인 의식이 활동하는 인식공간인 12입처에 전달되면
12입처와 식이 접촉하면서 이미지가 만들어 지는 것입니다.
70억 존재인 인류가 소나무를 볼 때 똑같이 보는 사람은 있을 수 없습니다.
왜냐면 12입처에 저장된 정보(밖에 무엇이 잇는 것이 아닌 단지 정보들)들이 다르기 때문이면서, 이 존재 또한 그림의 사식에서 보여주듯이 순간적으로 변화해가는 사식의 활동들로 매순간 변화합니다.
3."성품" 또는 "성"이란 도대체 무엇이며
4. 우주 등 어디에 존재하는 것이며, 그리고
5. "성품" 또는 "성"의 주체, 즉, 그 "성품"의 소유자는 (정론직필 님)
답 : 먼저 세계를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들이 고대 인도에서 활발하게 펼쳐졌습니다.
인도를 침략하여 지배한 백인 계통의 아리아인들은 ‘창조의 신’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이고 있었고, 원래 토착민들은 물질이 원소로서 구성되어 있었다는 인식아래 인간과 우주를 이해하고자 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두 견해 모두 사견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왜 사견이냐면 나라는 존재를 외부 대상과 분류하여 외부에 물질로서 있는 대상들을
1). 실체나 실재가 있다. 2). 일체가 물질로서 존재한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일체란
성주괴공하는 우주 이합집산하는 물질 생노병사의 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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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체)
그런데 인식의 구조를 살펴보면 일체라는 의식구조에서 가장주요한 12입처에서 모든 인식활동이 일어나는 것으로서,
성주괴공하는 우주, 이합집산하는 물질, 생노병사의 생명들이 기실 인식활동에서 그 이해를
찾을 수 밖에 없음을 알게 됩니다.(처음 접하는 분들은 이해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고대 인도에서 신을 주창하는 중앙아시아에서 내려온 브라만들의 존우론(일체는 신의 뜻이다.)은 토착민들의 원소설(운명론, 숙명론)을 차용하면서 힌두교로 변화발전하게 됩니다.
그래서 브라만들이 도착종교로터 물질적 요소, 정신적 요소를 도입하면서, 힌두교는 각각
요소설을 신성, 본성 등 각각의 명칭으로 정리하여 나아갑니다.
지금의 인도 서북부의 캐시미르, 아프카니스탄 등 지역의 박트리아(그리스 계열 왕족)에서
힌두교로 발전한 브라만들이 브라만 입장에서 대승불교라는 힌두교의 한 종파를 만들어 냅니다.
이 때 이들이 불경을 소설이 가미되어 편집하는데 대승불전이 됩니다.
이제 이 불전은 중국을 경유하여 우리나라에 전파됩니다.
그러다 보니 현재의 절에 가보면 삼신당이라는 부처님 가르침을 배우는 이들이 납득할 수 없는 건물들이 있습니다.
불교에서 정신적 여러 요소들이 이렇게 자리잡게 됩니다.
그래서 불성, 자성, 법성, 자아, 진아, 대아 등의 성품들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참으로 듣기는 편리합니다.
왜냐면 이러한 성품들을 깨닫고 받아들이면 부처가 된다하니 얼마나 좋습니까?
어떤 종교에서 ‘신의 아들’이라는 것을 믿기만 하면 천국간다는! 주장보다는 조금 어렵지만
현혹하기에 딱 좋은 구실들입니다.
참고 자료 : 힌두교 신들
남신[편집]
트리무르티(Trimūrti · 삼주신) 브라흐마(Brahmā): 창조자, 불경의 범천(梵天) 비슈누(Viṣṇu): 유지자, 비슈누파의 최고신 시바(Śiva): 파괴자 또는 변형자, 시바파의 최고신, 불경의 대자재천(大自在天 · Maheśvara) 가네샤(Gaṇeśa): 인간의 몸과 코끼리의 머리를 지닌 모습, 지혜와 재산의 신, 불경의 대환희자재천(大歡喜自在天) 데바(Deva) 또는 수라(Sura): 남신의 뜻 라마(Rāma): 인도 서사시 《라마야나》의 주인공으로 비슈누의 일곱 번째 아바타 무루간(Murugan): 전쟁과 승리의 신 수리야(Sūrya): 태양신 아그니(Agni): 불의 신 아이야나르(Ayyanar): 마을 신, 시골 마을을 수호하는 수호신 인드라(Indra): 신들의 왕, 날씨와 전쟁의 신, 불경의 제석천(帝釋天), 음역하여 인다라(因陀羅) 크리슈나(Kṛṣṇa): 인도 서사시 《마하바라타》의 영웅으로 비슈누의 여덟 번째 아바타 하누만(Hanumān): 원숭이 모습의 신으로 라마의 제자이자 헌신적인 숭배자
여신[편집]
트리데비(Tridevi) 사라스바티(Sarasvatī) 또는 사라스와티(Saraswati): 브라흐마의 배우자, 불경에서는 변재천(辯才天) 락슈미(Lakṣmī): 비슈누의 배우자, 불경에서는 길상천(吉祥天, 음역하여 낙걸사명(洛乞史茗)) 파르바티(Pārvatī): 시바의 두 번째 배우자로 첫 번째 배우자인 닥샤야니의 재화신이며, 설산의 처녀(히말라야의 딸)라고도 불린다
가야트리(Gāyatrī): 학문과 지식의 여신, 브라흐마의 배우자들 중 하나 닥샤야니(Dākshāyani) 또는 사티(Satī): 결혼 생활의 행복과 지속을 관장하는 여신, 시바의 첫 번째 배우자 데비(Devi): 여신의 뜻, 최고신의 여성적 측면, 힌두교의 모든 여신들의 핵심 두르가(Durgā): 전쟁의 여신으로 아수라를 제압한다 라다(Rādhā): 크리슈나의 어린 시절의 친구이자 훗날의 연인, 여신 락슈미의 아바타(화신)들 중 하나 마리암만(Mariamman): 질병 · 비 · 보호의 여신 마하비드야(Mahavidya): 지식과 지혜의 여신 샥티(Śakti): 우주의 여성적 창조력이 의인화 · 인격화된 여신 시타(Sītā): 라마의 배우자, 모든 힌두 여성의 부인과 여성으로서의 미덕의 표준으로 존중된다 칼리(Kālī): 파괴 · 시간 · 변화 · 죽음의 여신
악신[편집]
힌두교에서 악신(惡神)은 총칭하여 아수라(Asura)라고 하는데, 아수라는 선신(善神)인 데바와 데비에 대응된다. 아수라에는 다음 신들이 있다. 이들은 중요도에 관계 없이 가나다순으로 나열되어 있다. 마히쉬아수라(Mahishasura): 물소 모습의 악신(Buffalo-de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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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힌두신들)
이들을 주장하는 분들의 의도가 바르지 못하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전오근/전오경)
그림을 보시면 우리가 몸이라 부르는 전오근을 닫고 조금 멀리하면
12입처만 활동하는데, 이 때 여러 가지들을 체험하게 됩니다.
(명상초기나 기공에서 나타나는 현상들)
이때 체험에서 특징은 체험되는 성질, 성품만 있게 됩니다.
몸이 뜨겁다, 단전이 달궈진다, 기가 돈다, 보는 것만 있다, 듣는 것 만 있다 등등에서
파생, 변화, 확장, 추상화 되면서
이제 정신구성의 본질적 요소가 있다고 믿게 됩니다.
그래서 불성, 자성, 법성, 진아, 대아 등등의 이름을 제각기 붙이기 시작합니다.
이는 일체란 인식공간 내의 정신적 활동의 이해라는 바른 견해가 없기 때문에
나타나는 오해들입니다.
주체 또는 성품의 소유자를 언급하셨습니다.
[인식이 일어나고 자아가 형성되는 과정들]
위 그림에서 안내입처,이내입처,비내입처,설내입처,신내입처 그리고 의내입처 기능과 역할이
판단, 결정, 의지 등입니다.
그러다 보니 의지나 의도대로 현상들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우리는 주체 또는 소유자가 있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생각합니다.
소유자가 있다거나 내가 있다거나 등은 12입처 내의 인식이나 의식의 활동 들이지
실체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주는 어떻게 이해하고 알아야 하는가?
먼저 부처님께서 설명하신 우주를 받아들이기 참으로 어려우며,
이는 윤회와 의식수준과의 관련성 속에서 이해되어 지는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각자의 의식에 따라 태어나고 죽는 세계의 특성으로 우주를 나누었다는 것입니다.
‘지옥과 천상을 아는 자는 현자이다!’라고 하셨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우주를 설명과 받아들임은 개인적 관심과 조사에 한정될 수밖에 없습니다.
물리적 우주란 우리 감각기관으로 매우 극히 일부만 관찰되기 때문에,
이 시점에서는 자료를 통한 이해를 할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
참고자료
불교의 세계관에 의해면 생사(生死)의 세계와 열반(涅槃)의 세계가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태어나서 죽어 가는 세계는 생사의 세계입니다. 다시 말하면 코끼리에 쫓기어 피해 들어간 고통과 죽음의 우물 속의 세계입니다. 열반의 세계는 이 세계를 벗어난 해탈과 즐거움의 세계입니다.
생사의 세계는 다음과 같이 삼계로 나뉩니다.
삼계 -----------------구중생거 ---------------이십오유
욕계 인간, 육욕천 사악취: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사주: 동 승신주 서 담부주
남 우화주 북 구로주
육욕천; 사왕천, 도리천, 야마천,
도솔천, 화락천, 타화자재천
색계 색계 초선천 칠색계 :초선천, 범왕천
색계 이선천 제2선천
색계 삼선천 제3선천
색계 사선천 제4선천, 무상천, 오나함천
무색계 공무변처천 사무색계: 공무변처천
식무변처천 식무변처천
무소유처천 무소유처천
비유상비무상처천 비유상비무상처천
삼계(三界)란 욕계(欲界)·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를 말합니다. 이 삼계를 보다 자세히 분류하면 구중생거(九衆生居~아홉 가지 중생들이 사는 곳)가 되고, 이를 더 자세히 분류하면 이십오유(二十五有~스물 다섯 가지 중생의 존재 형태)가 됩니다.
이와 같은 삼계를 통틀어 일세계(一世界)라고 하는데 일세계가 일천 개 모인 것을 소천세계(小千世界), 소천세계가 일천 개 모인 것을 중천세계(中千世界), 중천세계가 일천 개 모인 것을 대천세계(大千世界)라고 하며, 대천세계를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라고 부릅니다. 법계(法界)에는 이러한 삼천 대천 세계가 셀 수 없이 많이 존재한다고 합니다.
이 모든 세계가 생사의 세계, 즉 중생들의 세계입니다. 불교는 이러한 생사 윤회하는 중생의 세계를 벗어나 생멸이 없는 열반의 세계에 가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렇다면 생사와 열반의 세계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불교에서 말하는 삼천대천세계는 천문학에서 말하는 무수한 별들의 세계를 의미하는 것일까요? 열반의 세계는 우주를 벗어난 다른 곳에 존재하고 있는 세계일까요? 불교에서는 이 모든 세계가 우리의 마음에서 벌어진다고 가르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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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3."성품" 또는 "성"이란 도대체 무엇이며
(그것은 "마음", "의식", "인식", "영혼"인가요? 아니면, 우주의 본질 또는 "창조자"를 의미하는가요?)
4. 각 개별 인간이나 생물들의 ("마음") 안에 존재하는 것인지?
아니면, 우주 등에 보편적으로 편재하여 존재하는 것인지, 그리고
5. "성품" 또는 "성"의 주체, 즉, 그 "성품"의 소유자는 인간 등 각 개별 생명체들인지?
아니면, 우주나 조물주의 본질로서 우주 전체에 편재하는 것인지? (정론직필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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性이란 글을 풀어쓰면,
마음 心부에 날生 자의 조합이니,
마음이 일어나는 곳이란 뜻인데,
마음이 일어나는 곳이 어디일까요?
이걸 수행해서 깨달아 보는 것이 見性이 된다는 뜻인 것 같은데.
문제는 수행을 통해서 마음이 일어나는 자리를 봐야 할 것 같읍니다.
깊이 있는 바보이반님의 글 감사합니다...
바보이반님 제가 윗 글을 읽다가 번잡하다고 느껴져 중단하고 질문을 드립니다.
ㅡ 님께서는 왜 위와 같은 일을 하고 계십니까?
이해하면 이익이 크게 있을 것이고 질문이 있어 답을 나름 성의 껏 한것입니다.
호호탕탕님은 왜 사시고 왜 이러한 질문을 하셨습니까?
@바보이반 님/*
이해하면 이익이 크게 있을 것이고 질문이 있어 답을 나름 성의 껏 한것입니다. 호호탕탕님은 왜 사시고 왜 이러한 질문을 하셨습니까?
ㅡㅡㅡ
저/#
1. 제가 왜 사냐구요?
답> 목숨이 붙어 있으니 ㅡ 다시 말하면 살아 있으니 살고 있습니다.
2. 왜 질문했냐구요?
답> 님께서 왜 이런 모습을 보이는지 궁금해서 질문 했습니다! 부디 궁금증을 풀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3. 이해하면 이익이 크게 있을 것이라구요?
답> 저는 이해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해를 못하고 있으니 이익이 있을지 없을지도 모릅니다. 이해하면 어떤 이익 어떤 현상이 벌어지는지도 궁금합니다.
@바보이반 부디 궁금함을 풀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호호탕탕 20년이 이상 구법과 전법을 하였왔습니다.
이해하시려면 바보이반의 가장 아래글에 링크된 짧은 동영상이 있으니
모두 보시면 이해력이 생길 것 입니다.
그 이후에 질문 하시면 답 하겠습니다.
@바보이반 님께/*
2. 왜 질문했냐구요?
답> 님께서 왜 이런 모습을 보이는지 궁금해서 질문 했습니다! 부디 궁금증을 풀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ㅡㅡㅡㅡ
저/*
님께서는 왜 이런 모습을 보이고 있으신지 궁금해서 다시 질문 올립니다.
왜 지금과 같은 일을 하는 모습을 보이고 계신가요?
대화의 즐거움을 제가 좀 누려도 좋을까요? 관련되는 내용에 관해서 제가 기억하는 바를 말하고 싶군요.
저기 소나무가 있고 그것을 바라보는 상황인데. 보통사람들은 눈으로 보여지는 소나무를 순식간에 과거의 기억과 경험과 결부시켜 소나무를 해석해 버리기 때문에 소나무의 아름다움과 깊이를 이해 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소나무라는 단어를 즉시 떠올린다는것 부터가 과거의 기억을 참조한다는 증거죠. 그래서 종교가들은 언어를 멀리하는 훈련을 하기도 하더군요.
생각이나 사고가 개입하지 않는 상황을 무아지경이라고 표현하는것 같은데요, 이런 상태를 지속할 수 있다면 그것을 일컬어 무위라고 하는것 같더군요. 저만의 해석인데
양해 바랍니다. 그리고 이렇게 사고가 개입하지 않는 순간을 공 즉 "비어있다"라고 말하는데 이때에 두뇌는 기존의 방식이 아닌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때에 두뇌는 새로운 것들을 받아 들이고 문제의 핵심을 꿰뚤어 보고 해결책을 제시하는데 이러한 현상의 주체를 영어로는 마음이나 지성이라는 단어를 쓰더군요. 이러한 마음이나 지성은 누구의 것도 아니고 두뇌에 내재되어 있는것도 아닌것 같다고 합니다. 그 이상의 자세한 말은 안하는것 안하는것 같더군요. 위의 게시글에 나오는 품성이란 단어가 아마도 여기서 말하는 마음이나 지성을 가르키는것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올빼미 이러한 마음이나 지성을 통해서 외부를 인식한는 상황을 견성이라고 하는것은 아닐까요?
인간의 사고는 사고 자신의 적당한 자리가 있다고 합니다. 사고에게 적합한 자리 , 적절한 역할을 찾아 주는 것이 깨달음이라고 제 멋대로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훈련하는것을 명상이라고 하고 참선이라고 한다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이것은 저의 기억속에 저장되어 있는 내용이고 이것이 옳다 그르다 말 할 수가 없군요. 서로 대화를 나누자는 것이고 그러한 대화속에서 저 자신의 배움의 기회를 찾을수 있다면 좋겠네요.
마음이 현재에 머무를 때 진짜 자신이 될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다고 보는데요 소나무 이야기에서 그 점을 다시 한번 느끼고 갑니다 본질에 가닿기 위해서는 과거 미래가 아닌 현재에 머물러야 되겠습니다
hyperactivity disorder 라는 영어는 사고가 너무 과속한다는 이야기 이고 무아의 경지를 경험하는 것이 약이 되겠네요^^
disorder 하니까 생각나는 것이 있는데요,
우주는 질서인데 인간의 두뇌는 질서가 없는 상황인데 인간의 두뇌가, 사고가 질서를 회복하면 우주의 질서를 이해할 수가 있다고 합니다.
조계종 총무자리를 두고
싸움박질 하는 모습이
경허선사 선시
盡日尋春不見春(진일심춘불견춘)
해가 다하도록 봄을 찾았으나 봄을 보지를 못해
芒鞋偏踏壟頭雲(망혜편답롱두운)
신발이 닳도록 산능선위 구름따라 두루 다녔건만
歸來遇過梅花下(귀래우과매화하)
돌아와서 우연히 매화나무 아래를 지나다보니
春在枝頭已十分(춘재지두이십분)
봄은 이미 매화 가지 끝에 와 있더라.
본인은 속물이라 차라리 송학사가 와 닿지
산모퉁이 바로돌아 송학사 있거늘
무얼그리 갈래 갈래 깊은 산속헤매냐
풀벌레의 울음계곡 달빛 고요히 내려 앉나니
그리운 맘 님에게로 어서 달려 가고파
바릿대 담긴 고기덩이를 보고
날아드는 파리 때가
작금의진리
혼자 느끼는대로 말씀드리자면 성품을 분석적으로 나눠 봐야합니다. 성품을 사람에 한정하고 사람의 본질을 고려해보면 역시 천인지 3재를 고려해야 합니다. 성은 본성이요 품은 성을 품은 그릇입니다. 성에 상관 없이 맛은 각양각색입니다. 그릇의 크기와 질이 다르기 때문이죠... 성은 3이요 품은 4입니다. 성은 1석3극에서 비롯됐고 4는 음양 2에서 비롯 됐습니다. 성부령자 법보화신 양중전자가 그러하듯이 1로부터 3이 나왔고 땅에 떨어지니 4요 합하니 5라 5행의 율로 땅에서 4귀를 차지해 동서남북 4 흙을 받치니 하늘의 3이 점지해 사람 7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품성은 하늘과 땅의 이치를 살펴야 비로소 바로 볼 수 있으므로
3과 4의 뜻을 헤아려 품성을 살펴야 할 것입니다. 3은 확산이고 4는 수렴입니다. 어느쪽으로 치우쳤냐는 3은 이타적이고 4는 이기적입니다. 왜냐하면 타고난 자질이 자기의 존속을 가늠하기에 진보와 보수의 모습과도 흡사하며 이는 음양의 모습이요 시공 또는 입자파동 관념유물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1석3이나 2분4나 본성은 1이므로 천간지지의 구분처럼 하늘에서는 중간단계를 고려해 3태극 동적인 모습이요 땅에서는 정적인 4귀를 틀어 쥔 동서남북의 모습입니다. 3과4의 결합은 잠재적인 포텐샬에너지가 분리 즉 죽음으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고자 합니다. 4로 보다 땅으로 보수로 갈 것인가 3으로 보다 하늘로 진보로 갈 것인가는 현재의
@cibies 우주진화의 과정을 살펴야 합니다. 불교에서는 현세가 주겁의 단계라하니 다가올 괴겁을 준비해야하는 우주적 숙명이 남아 있으므로 당연 현시대인으로써 상생 상승 순리 회3귀1의 의미를 상기해야합니다. 모든 인간류의 본성은 성에 잠재돼 하늘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니 유물과 관념조차도 태생은 같습니다. 1석3이나 2분4나 태생은 1이요 나아가 0입니다. 정동이 춤사래요 해탈의 희롱입니다. 유물에 깃든 정령이나 관념에 점철된 신의가 원래는 한 모습입니다. 알면 행하게 돼있고 바이어스가 3이요 영이라 적어도 가책은 느낍니다. 그래서 말세에는 아는게 힘이요 길이며 도입니다.
@cibies 그래서 성품은 성이 드러나는 모습으로 희노애락의 정인 몸 품으로 보는것이 아니라 쌓아온 성 영으로 본질을 찾아가는 여정이 아닌가 합니다.
5행과 8괘 모두 빅뱅을 묘사하며 각 단계들을 재료삼아 상호작용을 천지운행을 동적으로 묘사한 것으로 8괘 리 5행의 화가 플라즈마이며 유대 금권이 금입니다. 화극금은 순리이며 이치입니다. 단지 불로 쇠를 지질 때 튀는 불꽃이 많은 민초들을 상하게 할 까 우려됩니다.
@cibies 역에 대해 참 해박한 분이시군요...
새날님 의견이 와 닿는거 같습니다.
마음의 작동법칙을 확연히 아는것 ,
그것을 견성이라고 할것 같습니다.
도표가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바쁘신 와중에도 공을 들여
도표까지 그려 대중의 궁금증을
풀어주려하신 큰 보살심에 감사드립니다.
무위의 금강심으로
마도를 강복시키고 용맹정진 하시어
불도를 성취하시길 기원합니다.
그 것이 그러하다는 것을 어찌 증명 할 것인가? 남의말 을 듣고 안 것인가? 듣고 행해보니 그러 하던가?
무엇에 이름을 붙인 자 알고 붙였을 것이긴 허나, 안다구 붙인 이름이 그러하다면 경계일까 근심하지
않을수 없소이다.
성품이라는 말은 본성이라는 말입니다.
철학용어에서는 현상에 대비되는 본질이라는 말이지요.
일체 현상의 본질이라는 말입니다.
그 본질의 근본을 성품이라 하는거지요.
본래는 대비해서 성과 상으로 나누고
관점을 달리해서 공과 색으로 나누고
체와 용 등으로 관점에 따르는 용어인거지요.
절대와 상대성등으로 나눌수도 있는거지요.
문제는 지금 눈앞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상이라는 데에 있는 것이지요.
상이란 상대적인 메트릭스 환이라는 마야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마음의 메트릭스란
꿈을 꿀때는 사건의 전개가 치밀하지만 깨고나면 꿈과 같은 것이지요.
눈앞에 그림자가 없으면 성품을 본다고
생각해봅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