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나이 들어가면서 노래(老來)에 우표에 집착하여 노는 시간이 많아졌다. 혼자 노년의 소꿉장난이라고 생각하면서 즐긴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감이 있다. 소꿉장난이라고 표현해서 우취인들에게 죄송한 마음이 있지만 나에겐 적어도 그런 느낌이 있다는 말이다. 내 일생을 통해 우표와의 인연을 보면 세 번의 변곡점이 있다.
첫 번째 변곡점은 아주 어릴 때다. 학교에도 들어가기 이전이니까 정말 어릴 때의 기억이다. 우체부 아저씨가 편지를 배달하면 내가 받아 부모님께 드렸다. 우편물을 받아 보신 부모님은 언제나 흐뭇해하시면서 편지 글을 읽으셨다. 편지의 내용이 어떤 것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흐뭇해하시는 부모님을 보는 즐거움이 컸었다. 부모님의 말씀은 편지에 우표를 붙여 우체통에 넣으면 아무리 먼 곳이라도 배달이 된다고 하셨다. 우표(郵票). 우표가 그런 큰 힘을 가졌단 말인가. 엄지손가락의 손톱만한 크기의 그림 딱지가 무슨 힘이 있어서 이렇게도 먼 거리를 날아 온단 말인가. 신기했다. 그래서 나는 이런 공상을 자주 해 보았다. 내 이마에 엄지손가락 손톱만한 우표를 붙이고 우체통에 들어 앉아 있으면 내가 원하는 곳으로 실어다 줄 것이란 상상을 했다. 이런 터무니없는 상상은 초등학교 때까지 계속되었다. 특히 부모님이나 학교 선생님으로부터 꾸중을 듣고 벌을 서는 때면 영락없이 이런 상상을 즐겨 했다. 아마도 벌 서는 고통을 피해 갈 수 있는 먼 곳으로 가고 싶어서 그랬었는지 모르겠다. 중학교로 진학하면서 우편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얻고부터 그런 상상을 했던 사실이 꼭 사오정 같아 부끄러웠다. 나의 즐거운 상상이 비현실적이란 통찰을 하고부터 여간 허전하지 않았다. 이마에 우표 딱지 한 장을 붙이고 상상의 나라로 먼 여행을 할 수 없다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그래서 내심 숨기면서 친구들에게도 이런 말을 하지 못하고 지냈다.
두 번째 변곡점은 내가 전문의가 되고 교수로 재직하면서 정신장애자에 대한 학생 교육과 환자 치료에 열중하던 때다. 만성적인 망상을 가진 환자들은 사회성이 떨어진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비웃거나 해롭게 한다는 망상 때문에 바깥출입을 극도로 자제한다. 혼자 허구 헌 날 자기 방에 스스로를 가두고 살아가니 사회성이 있을 수가 없다. 어떻게 하면 사회성을 좀 높일까 궁리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우표다. 젊은 학생 하나는 나에게 약을 받으러 오는 경우를 제외하곤 자기 방에서 나오는 법이 없었다. 자주 보기 위해 2주일에 한번 외래에 오라고 했다. 이 학생은 나를 신뢰하기 때문에 내 말을 잘 들었다. 이 학생에게 1만원을 주면서 명동에 있는 중앙우체국에 가 기념우표를 사 오라고 부탁했다. 동대문에 있는 내 외래에서 명동의 중앙우체국까지 도보로 걸어가라고 일렀다. 이유는 먼 거리를 걸어가면서 많은 사람들과 시선을 마주쳐 보라는 뜻이었다. 시선이 마주치는 많은 불특정 다수가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들이 아니란 경험을 체험시키기 위해서였다. 다른 하나는 기념우표의 주문이다. 기념우표를 사자면 어떤 기념우표를 몇 장 달라는 등 창구의 직원과 최소한의 대화를 주고받아야 하기 때문에 이런 주문을 했다. 이 학생은 몇 년 동안 매 2주마다 중앙우체국을 찾아 기념우표를 사다 주었다. 딱히 기념우표가 필요해서가 아니라 그의 사회성을 높이는 매개로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다행히내 치료적인 생각이 적중하여 많은 호전을 보았다. 덕분에 기념우표도 많이 모였다.
세 번째 변곡점은 지금이다. 내 생애에서 가장 즐거운 변곡점이다. 지인 우취인의 추천으로 대한우표회에 발을 딛고 인터넷 검색을 통해 우표 카페 동호회에 가입한지 4년이 가까워 온다. 나는 이 두 모임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 비록 4년차 초보이긴 하지만 대한우표회의 매월 정기모임과 카페 우사사(우표를 사랑하는 사람들)에 매일 들러 하루에 한 꼭지씩 네팔우표 소개 글을 올렸다. 하루하루가 쌓여 게시글이 1500회에 근접했다. 이 두 모임에 들러 활동하는 사이 많은 우취 선배들의 가르침도 받고 동호인과 함께 즐겼다. 옛날 우리 속담에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란 말이 있다. 생각하면 나는 두 가지 구슬을 갖고 있다. 하나는 환자를 치료하면서 활용했던 우리나라 기념우표와 네팔 의료봉사를 다니면서 수집한 네팔우표다. 네팔우표는 1년에 10여종 발행되는데 내가 네팔로 의료봉사를 가는 2월에 우체국에 들러 전년에 발행한 우표 전지, 블록, FDC를 모두 사온다. 목적은 네팔 문화를 소개하는 매개로 활용하기 위해서다. 이렇게 매년 모은 네팔우표가 완집에 가깝다. 우취인 모임에서 활동하면서 ‘구슬이 서 말이라도…’ 이 속담이 내 마음을 움직였다.
‘그래 꿰어보자’ 용기를 내어 꿰기 시작했다. 노년의 이 구슬 꿰기는 하루하루의 즐거움은 물론 정말 ‘보물’을 만들어 내었다. 나는 네팔우표 테마별 수필집을 꾸미면서 구슬 꿰기를 하기로 했다. 그래서 탄생시킨 보물이 2016년 『yeti, 네팔 하늘 위를 걷다(산 우표)』, 2017년 『yeti, 네팔-한국 꽃 우표를 가꾸다(꽃 우표)』, 2018년 『yeti, 네팔 국왕을 알현하다(왕 우표)』 출간한 도서 세 권이었다. 매년 우취문헌부문에 출품하여 국내외에서 상도 탔다. 우취인 선배들을 보면 나름 구슬 꿰는 방법만 다를 뿐 많은 보배들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이렇게 보배로 꿰는 방법은 전시회 작품 만들기를 비롯해 다양했다.
이쯤에서 어릴 때의 허황한 공상을 떠올렸다. 우표 딱지를 이마에 붙이고 우체통에 들어 앉아 있으면 내가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을 것이란 비현실적 공상. 지금 노년이 되어 어릴 때의 공상이 새삼 떠오른 데는 최근 4년 동안의 우취 활동과 무관하지 않다. 금년에 <2018 방콕 세계우표전시회>와 <2018 프라하 세계우표전시회>가 열린다. 이 두 전시회에 『yeti, 네팔-한국 꽃 우표를 가꾸다』를 출품했는데, 참가 허락이 났다. 그래서 떠올린 어릴 때의 공상이다. 방콕은 가까우니깐 우표 딱지 한 장만 가슴에 이름표처럼 붙이고(이마 대신), 프라하는 좀 머니깐 우표 딱지 두 장을 가슴에 붙이고 비행기를 타면 ㅋㅋㅋ. 공상이 즐겁다. 모든 우취인들이 나름의 창의적 방법으로 구슬을 꿰어 많은 보배를 만들어 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가즈아 방콕. 가즈아 프라하. 즐거움을 안고 하루를 산다.
첫댓글요즘은 편지도 이메일, 청구서도 컴으로 다 내고. 도데체 우표 쓸일이 거의 없으니까 우표에 관심이 없습니다. 년말에 카드도 잘 안 써서 그해 어떤 특별한, 예쁜 우표가 나왔는지도 모르고. 그런데 이런 모임이 있고, 잡지까지 나오다니... 놀랐습니다. 우표에 연관된 이런 글, 한 시대의 역사와 문화 연구, 취미 club 같은 모임이 참 좋아 보이네요.
첫댓글 요즘은 편지도 이메일, 청구서도 컴으로 다 내고. 도데체 우표 쓸일이 거의 없으니까 우표에 관심이 없습니다.
년말에 카드도 잘 안 써서 그해 어떤 특별한, 예쁜 우표가 나왔는지도 모르고.
그런데 이런 모임이 있고, 잡지까지 나오다니... 놀랐습니다.
우표에 연관된 이런 글, 한 시대의 역사와 문화 연구, 취미 club 같은 모임이 참 좋아 보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