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도 많을수록 불편해 지는 인생의 짐을 벗어 던지듯이
물한병 토마토 두알..카메라를 배낭에 담아서
집중폭우에 뒤따라 온 폭염을 피하기위해 아침일찍 금호강 자전거길을 달린다.
▲ 한강 정구(鄭逑 : 1543~1620)선생을 기념하는 한강공원(寒岡公園)이 있는
북구 사수동의 금호지구로 가기위해 와룡대교를 건너 간다.
▲ 한강근린공원 입구에 세워진 사수동 유래비.
성주 출신인 한강을 기념하는 공원이 이곳에 조성된 이유는 선생의 생애 마지막 6년을
이곳에서 보내며 지역에 많은 선비들을 양성하여 대구의 문풍을 진작시키는데
큰 공헌을 했기 때문이다.
마을 이름 사빈(泗濱)을 사수(泗水)로 바꾸고
사양정사(泗陽精舍)를 지어 후학을 양성했다.
사수가 공자의 고향에 있는 강 이름인 것을 보면 이 마을을
유교의 본향으로 만들고자 했던 것 같다.
▲ 사양정사.
아호는 한강(寒岡), 시호는 문목(文穆)이며 본관은 청주로 부친 사중(思中)이
한훤당 김굉필선생의 외손으로 현풍에서 성주 유촌에 옮겨 살면서 선생을 낳았다.
도동서원 앞의 은행나무를 한강 정구 선생 도동서원 중건기념으로
식수한 것이라고 전해진다.
21세 때에 안동으로 퇴계 이황을,
24세 때에 진주로 남명 조식을 찾아가 제자의 예를 닦았다.
당시 퇴계와 남명은 영남 좌, 우도에서 각기 크게 학사를 열고, 인재들을 모아
가르쳤는데 학풍은 서로 달라 퇴계는 인(仁)을, 남명은 의(義)를 강조했다.
따라서 양문의 제자들의 추구하는 바도 달라 임란을 맞아
퇴계의 제자인 서애 류성룡이나 학봉 김성일이 관료로서,
남명의 제자인 내암 정인홍과 망우당 곽재우는 의병으로 국난극복에 앞장선 것도
이런 학풍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한강은 이 두 사람의 학풍을 흡수·소화하여 자기를 대성한 분이다.
▲ 금호택지개발지구는 이름과 달리 대상면적의 90%가 사수동(泗水洞)이다.
그런데도 굳이 금호지구로 이름을 붙인 까닭은 사수의 사(泗)자가 발음 상 죽을 사(死)와
같아서 택지나 아파트 분양에 차질이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 대구에서 특정인의 이름이나 아호를 붙인 공원으로...
곽재우 장군을 기리는 망우당공원과 우배선 장군을 기리는
월곡역사공원과 더불어 세 번째 공원이다.
다시 와룡대교를 건너 달성군 다사읍 서재리의
용호서당으로 간다.
▲ 달성군 다사읍 서재리의 뒷동산 자락에 자리한 <용호서당>.
재현문 앞에 노거수인 팽나무가 푸름을 잃지 않고 있는데...
서있는 위치가 대문과 너무 가까워 입구를 막고 있는 느낌이다.
1704년(숙종 30)에 세덕사(世德祠)로 건립되었다가 1707년(숙종 33)에
용호서원(龍湖書院)으로 승격되어 성주도씨 도성유(都聖兪, 1571∼1649),
도여유(都汝兪, 1574∼1640), 도신수(都愼修, 1598∼1651) 등 3현을 제향한 서원이다.
서원으로 승격되던 해에 묘우를 중수하였다.
1868년(고종 5)에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된 이후
용호서당(龍湖書堂)으로 개칭되었다.
▲ 개방되어 있는 용호서당 재현문.
▲ 치경당.
▲ 치경당의 사숙재와 돈목재.
▲ 용호서당.
▲ 도성유는 조선 중기의 학자로 자는 정언(廷彦), 호는 양직(養直)이다.
한강 정구(鄭逑)와 서사원(徐思遠)의 문인이며, 임진왜란 때 서사원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군량을 조달하였다. 저서로 양직집(養直集)이 있다.
도여유는 자가 해중(諧仲), 호는 서재(鋤齋)이다.
한강 정구, 서낙재(徐樂齋)의 문인이다. 이괄의 난 때 손처눌(孫處訥)과 함께
향병(鄕兵)을 모집하여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웠다.
도신수는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자는 영숙(永叔), 호는 지암(止巖)이며,
도여유의 아들이다. 1627년 문과에 급제하여 함흥판관, 울산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서사원에게 역학(易學)을 배우고, 한강 정구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 정렬각(旌烈閣) 성주 도씨 용호문중 유물 2호.
용호서당을 나와 뒷동산(58.3m)으로 가는 길목에 있다.
조선 정조, 순조, 헌종때 내려진 정려를 위한 정열각으로 당초에는 3각이 별개로
있었지만 오래되어 훼손되거나 도로확장으로 훼손되어 이곳에 세개를 합쳐
하나의 건축물로 조성해두었다고 한다.
1. 아주신씨 : 서재공의 6대손 필상(必祥)의 아내는 부군이 별세하고 후사마저 없어
자진하니 여종이 극진히 제사를 지냈다..
이에 정조가 정려(旌閭)하고 여종은 면천 되었다.
2. 월성최씨 : 양직당공 6대손 필해(必海)의 아내는 임신중에 부군이 20세에 별세하니
분만을하여 대를 잇고 순절하였다.
이에 순조의 특명으로 정려(旌閭)가 내려졌다.
3. 순천이씨 : 양직당공 8대손 진극(鎭極)의 아내는 26세에 부군을 사별하고
후사를 잇지못해 애통하여 상례를 마친후 유서를 남기고 순절하였다.
이에 헌종의 명으로 정려(旌閭)가 내려졌다.
▲ 뒷동산 정상.
▲ 뒷동산(58.3m) 정상석..
조형석에 누군가... 표기해 놓은듯...
▲ 용호서당 입덕문...
대원군의 서원철폐령 이전의 용호서원 터라고 한다.
이곳 서재(鋤齋)라는 마을은
금호강을 끼고 달성군과 달서구로 갈라지는 접경지역이다.
또한 마을 이름은 도여유(都汝兪, 1574∼1640)공의 호가 서재(鋤齋)다.
서재(鋤齋)라는 이름은 " 호미질하는 사람의 집"..또는
"김매는 사람의 집"이라는 의미가 있다.
농사짓듯이 부지런히 학문을 닦는 선비의 정신이 엿볼수가 있다.
유례없는 집중호우로 전국의 농심이 허탈한 상태다..
거기에 폭염이 기승을 부리며 더욱 힘들게 한다..
일상(日常)이라는 단어가 금년처럼 귀하게 들린적이 없다..
코로나도,,폭우피해도...언젠간 지나가고 정리 되겠지만..
지켜보는 마음도 힘든다...
첫댓글 산줄기님!께서는 목표를 세우고,결심을 하고,행동을 하는 모습~참 배울점이 많습니다!덕분에 저도 많은것을 배우고 있습니다.고맙고 감사합니다.추석명절 준비 잘하시고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과찬이십니다..
늘~ 긍정의 댓글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어느해 보다 힘든 명절이지만
그래도 마음만은 풍성한 한가위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공부 잘합니다
금방 잊어뿌이 우야지요
ㅎㅎㅎ
감사합니다
고마버유
그게 정상입니다..ㅎㅎㅎ
이런곳이 있구나..... 하시면 됩니다..
마음만은 넉넉한 한가위 되세요..
여전 하신님~~
덕분에 풍광 잘 보았어요
언제나 젊은 청춘를 응원 합니다~~
ㅎㅎㅎ
양희님 안녕하세요?
젊은 청춘...ㅎㅎ복받으실겁니다..
어느해보다 힘든 명절이지만 마음만은 넉넉한 한가위 되세요
댓글 감사합니다.
저희 사는곳 가까이 오셨다가셨네요. 자전거로 오셨다니 대단하십니다.ㅎ
진작 알았으면 커피라도 한잔 얻어 먹을걸 그랬습니다...ㅎㅎㅎ
성서까지 자전거타고 일주일에 한번은 갑니다..
마음은 힘들지만 그래도 풍성한 한가위 되시기 바랍니다.
산줄기님 라이딩길은 문화탐방이군요
옛부터 영남은' 문호가 많았고
호남은 부호가 많았다고 하더군요
대구 가까이에 이런 사양정사와 용호 서당을 알지 못했으니 역사를 쪼매 좋아 하는 전 부끄럽습니다
시간되면 가보겠습니다
자세한 글 감사합니다 ^^
문화재를 찾아가는 라이딩..
나름으로 제법 재미가 쏠쏠 합니다..ㅎㅎ
어제는 동촌을지나 남천을 지나 시지지구까지 갔다 왔습니다..
어딜가나 자전거길이 좋아서 운동하기 좋습니다
대한민국 좋은나라 입니다..ㅎㅎ
넉넉한 한가위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