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쎄 이번 산행을 몇마디로 요약하면 어떻게 될까.
시루떡, 북녘을 향한 시산제,욕쟁이 할머니집 철판 등이 되지 않을까.
오전 7시29분 재로가 전화를 걸어온다.벌써 도봉산역에 도착했다고.조금 있으려니 컴불 형님이 또 전화를 걸어온다.게시판에 큰글자로 새긴 게 이렇게 효과가 있구나.
7시에 집을 나와 떡집 들러 엄청 뜨거운 시루떡을 5분의 2 정도 집사람에게 넘기고 5분의 3이 담긴 떡상자를 앞에 든 채로 청담역에 걸어나와 전철을 탔던 터.신문을 다 보고 도봉산역에 들어올 즈음 옆자리에 놓인 떡을 살폈더니 하나도 온기를 빼앗기지 않았다.다행이다.이런 조짐으로만 가면...
8시5분을 넘겨 도봉산역에 도착,1호선 쪽으로 이동하다보니 오솔길과 그린랜드,컴불 형님 모습이 보인다.맨 앞쪽을 쳐다보니 재로와 아브를 형이 손짓을 보낸다.반갑게 짤막하게 수인사를 한 뒤 플랫폼에 들어서는 8시11분 동두천행 열차,예상대로 회장 마마는 맨 앞쪽 칸에 앉아서 우리를 맞았다.이렇게 7명이 출발했다
도중에 가상이가 직접 차를 몰고 신탄리역으로 온다는 얘기를 들었다.
8시47분 동두천역에 예정대로 내리면 경원선 열차로 갈아타기 위해 3분밖에 주어지지 않는다고 해 일행 중에 다리가 가장 긴 내가 떡상자를 재로에 맡긴 채 헐레벌떡 계단을 뛰어올랐다.
성급한 결론인지 모르겠지만 동두천역에서는 절대 뛸 일 없다.1호선은 예정보다 1~2분 정도 늦게 동두천역 플랫폼에 들어왔고 계단 위의 매표소 역무원은 목을 길게 뻗은 채 우리같은 산행객들이 혹시라도 열차를 놓칠 일이 생길까 기다리고 있었다.경원선 열차 기관사는 출발 시간을 무려 6분 이상 늦추는 센스로 산행객을 배려했다.
운길산 갈 때 중앙선을 이용했던 적이 있지만 모두들 열차 여행의 추억에 빠져든 듯했다.
9시45분쯤 신탄리역에 도착하니 가상이가 해나 아빠 연구소에서 만들었다는 막걸리 네 통을 들고 우리를 반겼다.간만이다 어쩌구 인사를 나누고 10분 정도 지체한 뒤 산행을 시작했다.
오늘의 산행은 칼바위가 있는 제2등산로를 이용해 올랐다가 동쪽 포범폭포쪽으로 내려오는 제3등산로를 이용하는 것으로 결정했다.오르막을 위험한 쪽으로 잡고 내리막은 조금 더 평탄한 코스로 잡자는 것이었는데 현명한 선택이었다.반대로 했다면 상당히 위험한 산행이 될 뻔했다.
들머리에 들어서자마자 가파른 오르막에 빙판이 질펀하다.5분쯤 편안한 숲길을 S자 아래 부분으로 우회했더니 가파른 오르막이 또다시 나온다.20분 정도 가파른 숨을 몰아쉬며 오른 길이다.수은주가 올라가는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다.그리고 잠시 뒤 다시 평탄한 길이 나온다.잠시 숨을 돌리자 이번에는 정말 까마득해 보이는 오르막이 나타난다.아브를 형의 엄청나게 가쁜 호흡이 자꾸 뒤를 돌아보게 했다.오솔길도 영 힘든지 속도가 붙지 않는다.이러다 둘 낙오하면 어쩌지? 멍게도 없는데 재로랑 나밖에 없는데? 그런 허튼 걱정을 했었다.
하지만 그 길이 끝나자 이내 살 것 같다.이대로 조금만 더 가면 고대봉 정상일 것 같았는데 아뿔사, 착각이었다.칼바위란 데가 곧 시작됐다.150m 앞서가던 회장님,컴불,그린랜드 형,가상이가 멈춰서 있다.회장님이 칼바위 얼음장에서 미끄러지면서 가슴팍을 다쳤던 것.이후 회장님이 계속해서 가슴을 치고 있었던 건 그런 연유였다.
그린랜드 형도 잠깐 넘어졌던 것 같고.
여하튼 느릿하게 걸어오던 후미가 정상을 얼마 앞두지 않은 지점에서 따라붙은 것은 어느 정도 몸에 열기가 붙고 다리가 풀려서였다.네팔 고산에서 느낀 거지만 빠르고 늦고 차이 별 거아니다.곧 숨 넘어갈 것 같던 70 넘은 할머니가 남편의 이끌림에 힘입어 어김없이 롯지에 해질녘이면 당도하는 것을 보면 30cm 안쪽의 한 걸음이 얼마나 위대한지 체감할 수 있다.
칼바위를 지나자 고대산 주위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멀리 북녘 땅은 자욱한 개스에 잠겨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동쪽의 철원 평야(신탄리역에서 왜 열차가 멈춰 서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춸원 평야는 지척에 넓게 포진해 있었음)를 길끗하게 조망하는 맛이 색달랐다.그리고 이어 고대봉과 어느 정도 높이를 나란히 하는 봉우리에 올랐더니 이내 고대산 남쪽 산들의 자태가 한눈에 들어온다.
인터넷 산행기를 보면 세 개의 산을 묶으면 13.5km 정도 종주 코스가 나온다고 하는데 한 번 도전해볼 만한 종주라고 보였다.11시간 정도 걸린다고 했는데 여름에 한 번 해볼까나.
고대봉에 다다르니 12시가 가까워졌다.예전에 군 벙커였던 것으로 보이는 곳에서 시산제 준비를 했다.시루떡(아내는 한사코 7명이-그때만 해도 그런 줄 알았으니-먹기에 엄청난 양이라고,웬 생고생을 하느냐고 지청구를 해댔다)을 놓고 사과와 북어,여기에 비상식량으로 챙겨온 육포,가상이가 들고온 막걸리통을 나열하니 돼지머리를 빠뜨리긴 했지만 여튼 근사한 고사상이 마련됐다.
회장님이 축문을 읽어내려갔다.‘산과 하나되어’ ‘산을 배우고 우리를 배우고’ 안전하게 지난 1년 보살펴준 산신령께 감사드리고 올 한해도 많은 부탁 드린다는 내용을 당당하게 읽어내려가셨다.그리고 모두가 그 자갈밭에 맨무릎을 대고 머리를 조아렸다.오솔길 말마따나 올 시산제는 처음 음력으로 지내는 데다 북녘을 응시하고 행했는데 축문에 ‘통일’이란 낱말 하나 밀어넣지 않았다.개탄할 일이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그 많던 시루떡과 막걸리를 다 먹어치우고 북어포마저 야금야금(그렇게 맛있는줄 예전에 미처 몰랐다는 이가 많았다) 뜯어먹고 일어나 하산을 서둘렀다.
아이젠 차느니 마느니 옥신각신하면서 내려오는데 얼음밭도 조금만 지나면 햇빛 찬란한 온달로 바뀌어 그럴 만했다.그린랜드 형이 넘어지는 모습을 보았다.아이젠 날이 무뎌져 오히려 얾음판에 서면 미끄러움이 배가된 듯했다.형한테 아이젠 선물하면 사랑 받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찌하다보니 표범폭포까지 맨먼저 내려왔다.표범폭포 내려가는 길은 흐릿해 깜빡 지나치기 십상이었다.오른쪽 커다란 바위가 무너져 내리고 있었는데 돌아서 아래쪽으로 다가가니 표범이 낸 발자국마냥,또는 그네들의 가죽무늬먀냥 선명하다.
표범폭포는 정말 볼만했다.이 산에 올라 그걸 지나쳤다면 정말 후회 막심이었을 것이다.아무도 손대지 않은 빙폭이 일행을 반겼다.여름에도 수량이 많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 이곳 폭포에 높이 30m 가까이 빙폭이 형성된 것을 보면 얼마나 많은 눈과 얼음이 겹겹이 쌓여 저런 장관을 연출했을까 짐작이 갔다.
개인사진,단체사진을 신나게 누르고 하산길을 재촉해 큰길가,3등산로 들머리에 내려서니 2시45분쯤이었다.
설왕설래가 있었다.그냥 서울 가서 뒤풀이하자는 얘기도 있었지만 4시에 출발하는 열차를 타도 충분하고 가상이와 오랜만에 (우리끼리만,가상이는 운전해야 하니) 술 한 잔 나누고 이곳에 돈 좀 풀고 가는 것도 좋겠다 생각만 하고 입밖으로 내지 않았는데 앞서가던 이들이 다시 오던 길을 되밟아 욕쟁이 할머니 집으로 들어간다.며칠 전 인터넷에서 이 집에 대해 예전만 못하다는 평을 봤던 터라 꺼림칙하긴 했는데 웬걸 그게 아니었다.여기 안 들렀으면 크게 후회할 뻔했다.
무슨 광 같은 널찍한 공간에 엄청난 크기의 나무 화로가 있고 그 위에 대형 철판이 깔려있었다.화로에서는 장작들이 활활 몸을 사르고 있었고 주위에는 엄청난 열기가 팽배했다.
시루떡으로 배 부른 탓에 많이 시키지 않았더니 더벅머리 총각 뒤에 욕쟁이 할머니가 나타나 욕을 한 사라로 퍼붓는다.‘엠병하고 사람 수가 몇인디 요것밖에 안 시키냐.’ 어쩌구 했던 것 같다.나중에 가상이가 뭐라고 대꾸하자 또 한사발 퍼붓었는데 여기 옮기지 못하겠다.상당히 상업적인 뉘앙스의,계산되고 후유증을 최소화하기 위해 눈치를 주면서 하는 욕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모두들 이 분위기가 좋다고 한다.서울에 이런 장사가 있으면 대박인데,뭐 서울에서 이렇게 장사하기 쉽겠나 어쩌구하는 얘기들이 질펀했다.재로 말마따나 별로 양념도 많이 하지 않고 두루치기용으로 만든 신김치를 두껍게 썬 생돼지고기와 곁들여 마시니 별미였다.도심에선 보기 어려운 두께의 생돼지고기가 꽤 경쟁력 있게 보였지만 역시 우리들의 해석은 남달랐다.
며칠 전 좋지 않게 나왔던 한 산행객의 리뷰가 상당 부분 반영된 결과라는 것.
어찌됐건 5시로 출발 시간을 한번 더 연장하자는 얘기도 있었지만 일축하고 귀경 길에 예정대로 올랐다.가상이와 아쉬운 작별을 했다.
한 시간여 뒤 일요일 다른 약속이 아침에 있어 일찍 집에 가기 위해 꾸벅꾸벅 졸던 일행이 계속해서 잠에 빠지길 기대했던 내 속뜻과 달리 부지런한 재로가 일어나 일행을 깨우고 있다.아이고 틀렸구나.
도봉산역에서 약속이 있다는 그린랜드 형님은 7호선으로 옮겨타고 우리는 역 밖으로 나와 ‘산꾼’이란 근사한 제목의 식당으로 몰려갔다.컴불 형님이 팍팍 썼다.잔치국수를 두 그릇 시켰는데 ‘저 혼자 다 먹을 기세’란 지청구를 들으며 꿋꿋이 먹었다.
한시간 정도 술이 깼다 다시 들이미니 잘 들어갈 리 없다.‘산꾼’이란 로맨틱한 상호와 달리 가게 안에는 재미와 맛이 부족한 안주만 넘쳐났다.후배들에게 비싼 술을 사준 컴불 형에게 미안한 얘기지만 그저 고대산 아래 욕쟁이 할머니집의 추억으로 마침표했더라면 좋았을 뻔했다.
하지만 경기도 연천에 그리 훌륭한 산과 철원평야의 널찍함을 알게 된 것은 모두의 덕분이다.올 한 해 정말 열심히 산에 다니며 열심히 길을 배울 일이다.
첫댓글 넘 길게 썼네요.산행보다 앞뒤 얘기가 더 장황하고요.암튼 그날 칼바위 바로 아래 전망대에서 나온 영화 '127시간'을 오늘 아침 가족과 함께 봤습니다.아내는 엄지를 땅으로 향했고 딸은 그저그랬다고,전 약간 실망.애런 랄스턴이 사흘 간의 고투가 헛수고란 점을 깨닫고 마침내 무딘 칼로 팔뚝을 잘라내는 난공사를 벌이는데 피가 낭자해야 하는데 그런 장면을 빠른 헤비메탈로 엄벙덤벙 넘어가더군요.여튼 그날 산행 중의 화제는 호스 달린 물통이었죠.아래 글이 도움 되겠네요.혹시 미국 출장이나 여행 갈 일이 있는 분은 대량 구매해서 회원들에게 나눠줬으면 한다는. http://jirungee.blog.me/130100694986
이번 고대산행은 산에 들기 전, 곧추 선 대로에서 진을 다 뺀 거 같아요. 초반 30여 분 얼마나 힘이 들던지.... 그래도 글치 '중견 산악인'인 오 모 씨의 '낙오'를 걱정하셨다니요.... 별 걱정을 다아~....ㅎㅎ .... 전 이번에 두 번 넘어졌네요. 크게 데미지는 입지 않았지만....표범폭포 내려설 때는 낭떠러지로 굴러떨어질 뻔도. ㅠㅠ...참, 시루떡 해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떡 무쟈게 맛있었어요.
시산제 모시는 산행에는 꼭 참석하고 싶었고, 참석해야 했는데 그러하지 못해 여간 서운하다. 뭐 없는 무덤 없다고 편하게 생각하고 다음 산행을 기약해 본다. 한 이태 시루떡은 내가 준비했는데, 올핸 알대장이 애써 준비했구나. 그 뜨끈 뜨끈한 시루떡의 맛도, 이름도 범상치 않은 표범폭포의 모습도 같이 하지는 못했어도 눈에 선하다. 시산제 산행을 무사히 잘들 다녀와 올 한해 산행도 무탈하리라 믿어본다.
산행앨범에 사진 올려놨습니다.동영상은 조금 더 시간 걸릴 듯.
시산제 올리고 온기가 남아있는 맛있는 시루떡을 주변에 있는 등산객들과 즐겁게 나누어 먹었으니 올해도 우리 산악회는 무탈하리라 믿는다.부디 모두들 건강하고 별탈없이 산행 함께 할 수 있길 바란다.즐거운 산행이었고 다음달엔 매화 꽃을 볼 수 있을려나 모르겠다.
처음 따라나선 시산제 였습니다. 모두다 1년동안 행복한 산행이었으면 합니다
준비한 알대장도 고생했지만 떡상자 메고 올라간 재로, 뒤처진 나와 오솔길까지 챙기느라 고생 많았네요
기차타고 가장 멀리가본 산행이었습니다. 전철, 버스타고 북한산, 관악산 가본 것이 다였던 것 같은데...
산행도 좋았지만 기차 타고 떠들고 졸며 오간 것도 즐거움이었습니다
이제보니 우리 알대장 산행기에 댓글을 안달았네 그려, 겁대가리 없이...바람이 스산하듯 모든 게 스산하다. 열심히 사는 후배들 기운뺄라고 하는 건 아니고...이렇게 꽃샘 추위를 논할 때 우린 얼마나 그 누구에겐가 따뜻했던가를, 연탄재처럼..한번은 생각해보자는 취지에서리...자꾸 감상에 젖어들면 늙는다더라... 난 세시봉 컨서트 재방송 보면서 윤형주 백코러스의 결정판 '비의 나그네' 너무 좋아했거든...주룩주룩 내려라..정말 압권이었는데...어제는 비가 내렸지...이 노랜 제목이 뭐지?
댓글이 뭐 이렇죠.산행기를 잘 썼다 못 썼다 어쩌구가 나와야 하는 거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