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을 엔
조 태 일
나름대로의 길
가을엔 나름대로 돌아가게 하라.
곱게 물든 단풍잎 사이로
가을바람 물들며 지나가듯
지상의 모든 것들 돌아가게 하라.
지난 여름엔 유난히도 슬펐어라
폭우와 태풍이 우리들에게 시련을 안겼어도
저 높푸른 하늘을 우러러보라.
누가 저처럼 영롱한 구슬을 뿌렸는가.
누가 마음들을 모조리 쏟아 펼쳤는가.
가을엔 헤어지지 말고 포옹하라.
열매들이 낙엽들이 나뭇가지를 떠남은
이별이 아니라 대지와의 만남이어라.
겨울과의 만남이어라.
봄을 잉태하기 위한 만남이어라.
나름대로의 길
가을엔 나름대로 떠나게 하라.
단풍물 온몸에 들이며
목소리까지도 마음까지도 물들이며
떠나게 하라.
다시 돌아오게, 돌아와 만나는 기쁨을 위해
우리 모두 돌아가고 떠나가고
다시 돌아오고 만나는 날까지
책장을 넘기거나, 그리운 이들에게
편지를 띄우거나
아예 눈을 감고 침묵을 하라.
자연이여, 인간이여, 우리 모두여.
민학지도(民學地圖)를 만들자
김희태(본회 기획위원/전라남도문화재전문위원)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리학자인 고산자 김정호가 1861년 제작한 목판본 지도첩인 <대동여지도>를 보면, 산과 산줄기, 하천, 바다, 섬, 마을을 비롯하여 역참, 창고, 관청건물, 봉수, 중요 무덤, 방리, 진보, 읍치(邑治), 성터, 옛날의 산성과 고을(古縣), 온천과 도로 등 지도에 표기된 지명의 총수가 1만 2천 여개이다. 조선시대의 지도 가운데 가장 정밀한 세밀도로서 현재의 지도와 근사할 정도로 정확하다. 오늘날로 치자면 지형도에다 도로지도, 하천지도, 군사지도, 산업지도, 관광지도, 문화재지도까지 겸한 셈이다.
<디지탈> <인터넷> 시대에 무슨 뚱딴지 같은 고지도 타령인가 의아해 할 터이지만, 민학회의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서 민학 지도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조상의 손때 향기론 풍류>을 찾고 가꾸고 익히고자 힘과 지혜를 모아 왔던 지난 16년 여의 민학인들의 노력들. 지역별로, 시기별로, 계층별로, 유형별로 그 어느 것에도 민학인들의 발길과 손길, 숨결과 땀방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었다. 월출산에서 백두산까지, 진도의 바닷길에서 강화도까지, 선사시대에서 현대사 현장까지, 그리고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모습이라 할 "욕"을 무대에 올린 욕대회 등등
이젠 이들을 종합화하고 정보화해야 하고 그 방법 가운데 하나로 민학지도를 만들어 보자는 것이다. 그토록 곳곳의 산하를 다녔던 경험과 자료들을 재정리하여 지도화를 한다면 <한국의 민학>을 이해 할 수 있는 길이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 가지 예를 민속풍물로 살펴보자. 전남지역에서는 어디서나 정초에 줄다리기를 한다. 풍년농사의 기원과 마을 안녕을 비는 세시의례이다. 동네 사람 모두모여 뒷풀이로 한마당 축제를 펼친다. 수려한 산천과 넉넉한 물산이 그대로 주민의 품성에까지 스며들어 신명과 여유가 넘친다.
그런데 줄다리기 뒤에 그 줄을 당산나무에 감는 풍습이 있다. 신성시하면서도 그것이 그대로 거름이 되게 하는 것이다. 어쩌면 자연과 인간의 합일을 희구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유독 함평이나 고창 영광 무안 등 전라도 서남부만 줄을 감는다고 한다. 만경강과 영산강을 배경으로 하는 농경문화 요소로 보이기는 하지만, 정밀한 지도화를 통하여 유적(옹관묘, 백제계 석탑 등)의 분포, 들노래, 장례풍습, 풍물(농악)가락 등과 비교한다면 분명 지역 특징적인 요소가 나타날 것이다.
이들 지역에 민학인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이처럼 서로 다른 유형의 비교를 통해서도 지역문화의 특징을 알 수 있기 때문에 종합정보자료화와 지도화를 서둘러야 할 때이다.
나아가 섬진강권이나 금강권, 한강권, 통일이 된다면 대동강권이나 청천강권까지도 답사하고 이를 지도화해 보자. 분명 민학인들에 의한 민학 지도는 필요한 일이고 광주민학회는 민학지도화의 중심에 설 수 있을 것이리라 본다.
69호 민학회지에 김희태 기획위원의 글을 싣습니다. 전라남도 문화재 전문위원으로 고창,화순 고인돌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일을 하셨으며, 유네스코 지정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판소리를 등록하려고 애쓰고 있답니다.김희태 기획위원은 뛰어난 직관으로 문화를 해석하는 예민한 내면을 간직하고 있어 인상적이지요.
미리 가본 답사
굿 숲 절터 낙조- 서해안이 부른다
올 여름은 수십 채나 되는 집을 흔적없이 날려 버린 태풍은 참 지독했습니다. 자갈밭으로 변한 논과 토사에 묻힌 벼를 보면서 가슴이 타는 듯했지요.
절망적인 삶에서 다리가 하루 빨리 놓아지길 바라며, 학교가 복구되어 친구들을 만나고 싶다던 희망을 볼 때면 그토록 무서운 자연도 작고 소박한 인간들에게 위로가 되는 줄 알았습니다.
계절을 어김없이 다가옵니다. 서해안고속도로를 가는 동안 풋풋했던 벼들은 이제 연노랑으로 변하기 시작하고 푸른 하늘에는 흰구름까지 두둥실 떠 있었지요. 서해안고속도로 개통(인천∼서울∼군산 구간)과 더불어 '서해안 관광시대'가 열리고 있습니다. 교통체증과 이동거리가 멀어 마음먹고 나서기가 어려웠던 서해안이 이제 개통되어 나들잇길 숨통을 터주는 구실을 하고 있지요.
이맘 때쯤이면 기력이 소진하고 세월은 구겨진 휴지처럼 어지럽게 주변을 메워가고 있어, 잠시 쉬었다가 어김없이 다가오는 계절 앞에서 다시 길을 타고 달리고 싶었습니다.
곡진한 마음을 한 줄기 향으로 피워 올려 간곡하게 보내면 삶에서 일어난 초췌한 아픔이 하나둘씩 사라질 것만 같았지요.
經廳에 位目이 만들어지고 맺힌 맘, 감친 맘, 음친 맘 풀어 정성으로 빌면 근심걱정 걷고, 청천하늘 구름걷듯, 눈에 가시 빼듯이 시원스레 몽땅 걷어 만사형통 나리시고 안녕백년 이루어지리니. 태안읍에 다다르면 종교에 대한 구별과 배타심을 버린 민학회원 여러분의 전통문화사랑의 순수한 마음이 設位說經에서 온전히 은은하게 펴져 올라 우리가 서로를 잘 알지 못하지만 무언가 경건하고 참된 것을 갈망하는 일, 그가 노력하고 있는 일, 그가 애쓰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변함없는 인간관계를 하나 더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1박 2일 여정에서 밥을 함께 먹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同志(companion)란 뜻의 영어 낱말은 "빵(panion)을 함께(com)하는" 사이가 어원인데서 알 수 있듯이 민학회원 여러분은 저녁밥 먹고 오솔길 타박타박 걸으며 민학의 동지임을 확인하면서 민학의 즐거움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답니다.
"잘 주무셨지요!"
"함께 걸을 수 있다면 영광입니다."
안면도로 가면서 승언리 읍내에서 방포해수욕장 쪽으로 가면 모감주나무군락이 있지요. 모감주나무는 본래 중국에서 자생하는 식물인데 500 여 그루가 군락을 이루고 있으며 천연기념물 제138호로 지정되었습니다. 경복궁에도 마치 왕관을 장식하는 깃털처럼 줄줄이 노랗게 피어 있는 모감주나무가 있지요. 동화 속의 황금궁전을 연상하게 하는 고고한 금빛에 가까운 꽃은 6월말이나 7월초에 피고 지면서 열매는 염주를 몇 꾸러미라고 만들 수 있을 만큼 풍성하게 열린답니다.
안면도 자연휴양림(야영장/산림전시관/수목원)은 세계원예생산자협회(AIPH)가 공인한 2002년 안면도 국제 꽃 박람회가 열리는 지역으로 천연 소목과 함께 다양한 꽃을 즐길 수 있지요. 숲에 들어가면 피스톤치라는 방향성 물질이 많아 몸과 마음의 긴장을 풀어 주면서 긴 여행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 주지요. 두시간 쯤 걷다가 쉬다가 앉았다가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웃다가하는 동안 두시간도 모자라 더 머무르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으니까요. 안면도에서 우리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어디를 가나 여러 군데 서 있는 죽죽 뻗은 홍송들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뻗어 있어「애국가」에도 나오는 우리의 소나무가 나무의 으뜸임을 비로소 알게 되지요.
나무와 꽃과 길에 마음을 홀딱 빼앗기면서 나무에도 사람처럼 영혼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길 위에서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으면서 나무가 만들어내는 정서를 통해 조급함보다는 느긋함을, 결과보다는 과정을 살아내는 것이 인생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오게 될 것입니다.
충남 부여에 위치한 만수산 골짜기 터에 잡고 있는 無量寺.
백제 때 창건했다고 하지만 현재의 극락전은 조선왕조 때의 귀중한 건축물로 유명합니다. 일직선상의 가람배치로 극락전 앞에는 고려 초에 세운 5층석탑이 기품있게 서 있고, 조선왕조 때의 생육신 중 매월당 김시습의 자화상을 모신 산신각과 부도가 남아 있습니다. 無量寺! 無量이란 셀 수 없다는 말의 한 표현으로서 목숨을 셀 수 없고, 지혜를 셀 수 없다는 것으로 그곳이 바로 극락이니 극락정토를 지향하는 곳이 바로 무량사라면 우리가 잠시 머물 동안 근심과 울화를 버리고 극락에 머물렀다고 생각하니
발을 떼기 쉽지 않으리라.
최치원의 四山碑銘이 남아있는 성주사터(사적 제307호)는 여느 폐사지처럼 유한의 시점에서 무한이 주는 정취가 묻어납니다.
깊어가는 가을! 낭혜화상(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의 깨달음을 바람결에 느낄 수 있다면 세상사 서두를 것도, 바쁠 것도 없이, 걸어가도 될 것 같습니다.
이번 답사의 굿과 나무와 오솔길과 폐사지의 정경은 "지성공양 빌어내면 소원자에 손을 빌고 하는자에 한을 풀고 원한자에 원을 풀고 죽는 자를 살리기로 하셨기로 이 정성을 비나이다"로 축원하겠습니다.
2002년 10월 답사 안내
-토종문화를 찾아서⑥
굿 숲 절터 낙조 -서해안이 부른다
·언제 : 10월 19일(토) 오후 2시 (약속한 시간에 출발)
·어디서 : 민학회 사무실 앞 (계림동)
·찾아가는 곳 : 태안의 설위설경, 안면도 모감주군락지, 안면도 자연휴양림,
부여 무량사, 보령 성주사지, 보령 석탄박물관
·인원 : 45명
·참가 방법 : 먼저 전화 신청 후 온라인 입금
·답사비 : 80,000원
·온라인 : 광주은행 --조청일
·준비물
※ 잠잘 때 갈아입을 옷과 상비약.
※ 옷은 따뜻하게 입고 오시길.
※ 편한 신발 신고 오세요.
민학사람들
8월 나주답사는
장마비가 그쳐 훨씬 부드럽고 담담한 연출로 삶에 대한 믿음이 익어가는 계절에 딱 맞았지요. 세상엔 상상보다 더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세상의 아름다움을 쪽빛에서 찾는 쪽물장이, 살갑고 푸근한 무명베 짜는 무명장이, 통신기기를 수집하면서 삶의 여백을 만들고 진짜로 사는 법을 터득한 문평의 서삼균 사장님. 우리는 마치 큰 발견이나 한 듯 경외감에 사로잡혀 발길을 차마 떼지 못했습니다. 이분들에게서 사람의 수만큼 진실이 있다고 믿게 되었지요.
복암리 고분, 봉황 철천리 미륵사, 남평 동사리 당산터에서 찍은 사진을 보고 있으면 글로 쓰이지 않은 답사의 일상이 더 소중하게 잡힙니다.
윤여정 회원 나주문화홍보대사
나주시청 문화공보과에서 일하고 있지요. 8월 답사후기의 대서사시가 가슴 뭉클하게 합니다.
윤여정 회원과 마주 앉아 있으면 계산과 분석하는 이성을 완전히 떨쳐버리고 편안한 마음으로 모든 것이 느껴집니다.
나주의 많은 문화상품 중 선별해서 감상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시고, 예기치 못한 감동으로 우리를 풍요롭게 해 주신 답사 안내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내내 행복하시길요.
『한자에 빼앗긴 토박이 땅이름, 윤여정, 향지사출판사』( 016-682-6200 )
不一不二를 품은 이계표 기획위원이
8월 나주답사에서 회원들에게 맛있는 곰탕을 사 주셨습니다. 불교미술을 공부하시고 광주시 문화재전문위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열매와 씨는 모양이 다르기 때문에 하나가 아니지만, 열매가 이어져서 씨가 생기기 때문에 둘이 아닌. 나도 아니고 너도 아닌 그러나 또한 나이기도 하고 너이기도 한 자리에서 미세한 떨림으로 소통할 수 있게 해 주신 이계표 기획위원의 寂滅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청현산방
예술의 거리에서 가장 표나는 집입니다. 장식을 거부하고 조금의 군더더기도 허용하지 않은 공간이면서 창문 너머 담장이 마음을 풀어 놓게 만듭니다. 숟가락 젓가락은 물론 종지 하나에까지 자리와 순서가 있었던 우리 고유의 상차림에서 돋보인 방짜가 반짝이고, 사람의 오감과 정서 등을 고려한 다기류, 화려하면서도 은은한 색채에 한국적인 문양을 담은 장신구류. 청현산방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자연스럽게 엮어주는 꿈의 공간입니다. 민학회에 보내주신 선물 잘 받았습니다. 고맙습니다. (청현산방 / 류혜숙 회원 224-0236)
옥과 권동오 회원의 화려한(?) 외출
전남과학대학 관광학과에서 자신만의 세계에 집중된 정열을 보인 권동오 회원은 민학회의 아름다운 인간관계에 대한 풍경 하나를 수채화처럼 그려내면서 8월 답사에 오셨지요. 쪼매 먼 길에서 오면서도 회원들의 간식(기정떡)꺼정 마련해 주셔서 고맙구만요. 내내 잘 지내시길요.
연회비 내주신 회원
강현구 (연회비)
임애숙 김백란 임희자 김홍림 홍성아(연회비, 가입비)
⇒연회비(3만원)와 가입비(1만원)는 민학회를 위해 소중하게 쓰겠습니다.
금강 민학회 /서울 민학회
구중회 회장님이 쓰신 『忠淸道 設位說經』을 보내 주셨습니다. 충청동 일대에서 널리 設行 되어온 무술행위의 하나인 '설위설경'의 자리를 확고하게 밝혀 담고 있습니다. 회장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서울 민학회는 지난 발자취를 더듬어 민학회보 합본호(전 4권)를 출판했습니다. 길 위에서 피워낸 결정이 한껏 소중하게 보였지요. 축하드립니다.
단기 4335년 10월 3일 개천제 행사 예고
민학회에서 주관한 개천제를 무등산 천제단에서 올립니다.
외세의 패권에 당당히 맞서 민족의 정기를 살리는 의례행사입니다.
많이 참여해 주시길 바랍니다.
10월 답사 안내
탄탄하게 짜인 10월 답사는 19, 20일 1박 2일 여정으로 떠납니다. 회원 여러분께서 감성과 사색의 주파수만 놓치지 않는다면 특별한 즐거움을 발견할 것입니다. 높지 않은 수굿한 목소리로 다문다문 읊는 設位說經(앉은 굿)은 우리 가슴에 퇴적된 울화를 녹여내고, 안면도는 환상이 살짝 스며들면서 우리에게 희망을 나눠 준답니다. 계절만큼이나 정신을 아울러 깊게 할만한 10월 답사는 기대해도 좋겠지요?! 뵈올 때까지 내내 행복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