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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자녀, 참 부모
요한일서 5:1-6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말씀을 듣는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시길 빈다.
오늘은 부활절 일곱 번째 주일이다. 다음 주일은 성령강림주일이다.
특히 어버이주일을 맞았다. 예전에는 주일예배에 참석한 모든 어른이 카네이션을 달았다. 종이로 만들기도 했고, 진화하여 플라스틱으로도 만든 것을 구입하기도 했다. 카네이션 풍속도는 달라져도 어버이 사랑과 그리움은 변할 리 없을 것이다. 모든 어버이에게 축하드린다. 늘 은혜를 나누고, 누리기를 바란다.
정교회 서점에서 <아토스 성산의 수도사들>이란 책을 구입하였다. 이름 없는 남자 수도사들에 대한 전설 같은 일화를 담은 이야기책이다. 거기에 그들이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네”라고 말하기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사례가 담겨있었다.
아토스 섬 쿠트루무시 수도원에서 수도생활을 하며 평생 영적인 삶을 살던 하랄람보스 수도사가 독감에 걸려 몸져누웠다. 그는 나이가 들었지만 점점 일손이 부족해진 수도원에서 무리하게 일하였다. 수도원 도서관 담당, 나무를 심고 관리하는 일, 성가대원을 맡았다. 그를 진찰한 의사는 곁을 지키던 수도사들에게 몇 시간 후면 그가 세상을 떠날 것이니, 그를 떠나지 말라고 당부하였다.
그러자 침대에 누워있던 하랄람보스 수도사가 말하였다.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저는 이번 부활절에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네’를 말하기 전까지 결코 이 세상을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두 달이 다 되도록 더 살았고 마침내 부활절을 맞았을 때 그는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네”라고 말하였고, 성찬을 받은 다음 다른 세상을 향해 떠났다.
오늘은 부활절 마지막주일이다. 세계교회의 전통에 따라 부활절 인사를 나누자. 우리도 마지막 날까지 주님의 부활과 영원히 나와 함께 하심을 고백하며 주님을 찬양하는 인생이 되길 바란다.
“주님은 부활하셨습니다!”
“주님은 정말 부활하셨습니다!”
1)
올해 어버이날을 어떻게 보냈는가? 누구나 자식 노릇과 부모노릇을 겸하고 산다. 더 이상 자식 노릇을 못할 때도 온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단어를 손꼽으면 거의 모든 나라 사람들이 공통적이다. 무엇일까? 어떤 사람은 사랑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어머니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가정이라고 한다. 사실 사랑, 어머니, 가정은 동의어처럼 들린다. 모두 맞는 말이다.
오늘 성서일과의 본문은 어버이주일과 전혀 상관없는 내용 같지만, 본문 속에는 가족관계를 나타내는 단어들이 빈번히 등장한다.
본문에서 ‘낳으신 이, 사랑하고, 하나님의 자녀, 아들’과 같은 낱말들을 듣고 연상되는 이미지가 있다. 무엇인가? 아마 이 단어들로 연상 퀴즈를 낸다면 그 정답은 어머니가 아닐까 싶다.
나는 성공하는 인생을 위해 세 가지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내 인생을 관리해줄 세 가지이다. ‘코치, 멘토, 소속사’이다. 내 삶을 코칭해주고, 적절히 상담하고 이끌어 주는 좋은 멘토를 만나는 일은 중요하다. 유명한 연예인일수록 좋은 소속사와 함께 한다.
사실 사람들은 태어나기 전부터 가장 적절한 ‘코치와 멘토와 소속사’를 만났다. 바로 어머니의 존재이다. 비록 너무 젊어서 방법은 서툴고, 전문성은 떨어지지만 가장 중요한 사랑의 코치요, 사랑의 멘토이다. 평생 이해관계 없이 나를 보살펴주는 영원한 소속사이다. 이보다 더 소중한 존재가 있는가? 물론 불행한 예외도 있다.
어린 시절 나는 강원도 산골 소년이었다. 어느 날 엄마가 집을 나가셨다. 서울로 떠난 이유는 한복 기술을 배우러 가셨다. 한복점을 차리겠다는 마음으로 집중적으로 배우기 위해 서울 동대문에서 기숙생활을 한다고 했다.
졸지에 엄마를 잃은 나는 자주 꿈을 꾸었다. 그런데 그 무렵 간첩이 자주 나타났다. 울진삼척지구에 무장공비가 나타나고, 근처에서 이승복 어린이가 희생되었다. 나는 꿈에서 자주 간첩에게 쫓겨다녔다. 깨어나서는 이러다가 엄마도 못만나는 것 아닌가 두려움도 있었다. 나는 그 때 고아의 마음을 배웠다.
여러분은 종종 등이 배기는 때가 있는가? 그 이유가 나이가 드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늘을 잃었기 때문이란다. 그러니 등이 배길 때면 부모의 은혜를 잊지 말고, 더 많이 사랑하며 살라는 부모님의 교훈으로 알아들어야 한다. 예전에 어머니는 내 등짝을 살짝 치시면서 훈계하셨다. ‘그러면 안 된다!’고.
성경에는 하나님은 마치 어머니처럼 나를 낳으신 분이라고 한다.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니 또한 낳으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1).
어머니처럼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내 인생에서 가장 따듯한 코치이고, 가장 소중한 멘토이며, 평생 보장하는 소속사이다.
어떻게 가능할까? 성경에서 사랑의 사도, 요한은 이렇게 고백한다.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 4:8).
2)
요한은 하나님과 사랑의 인과관계에 대해 담대히 말한다.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요일 4:16).
하나님의 사랑의 원리는 이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셔서 화목 제물로 그 아들 예수를 보내주셨다. 이제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우리는 이러한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하나님의 사랑이 그대로 담겨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 곧 예수가 나의 구세주이심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 자녀이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에게서 난 모든 것을 사랑한다.
“또한 낳으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1).
하나님은 우리가 사랑하며 살 수 있게 하는 모든 사랑의 원천이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당연히 하나님이 만드신 첫 공동체인 가정을 사랑한다. 더 나아가 믿음의 가족이 모인 신앙공동체를 비롯한 모든 사랑으로 연결된 이웃을 사랑하는 일은 당연하다. 그것은 한 마디로, 하나님의 자녀 곧 하나님 안에서 형제와 자매를 사랑하는 일이다.
초대 교회에서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1) 것은 신앙과 불신앙을 구분하는 핵심적인 메시지였다.
그러나 이러한 믿음 체계를 반대하는 내부의 훼방꾼이 있었다. 영지주의(그노시스)가 대표적이다. 요한일서는 그것을 경계하면서 사랑의 복음을 거듭 강조한다.
영지주의는 무엇인가? 그들은 사랑이 아닌 ‘영적인 지식’을 강조하였다. 그들은 ‘다른 믿음’을 전하였다. 이를테면 하나님이 여러 단계의 지식과 믿음을 창조하셨는데, 이것을 성경 외에도 제자들에게 비밀 구전으로 주셨고, 자신들이야말로 이 비밀 구전을 소유한 이들이라고 주장하였다.
영지주의의 특징은 영과 육이 분리되었다는 이원론적 사고이다. 그들은 주장하기를, 이 세상은 ‘영과 육’, ‘빛과 어둠’의 세계로 양분되어 있는데, 영은 선하고 육은 악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은 결코 육적, 물질적인 데 존재할 수 없고, 오직 영적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원론은 당시 그리스도교 복음과 신앙생활의 원리를 거스르는 일이었다. 그들은 모든 육(물질)의 세계는 본래 악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으로 올 수 없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사람으로 오셨다는 성육신 신앙을 부정하였고, 몸이 다시 살아났다는 부활 신앙도 부정하였다.
영지주의의 주장에 따르면 애초에 예수님은 인간이 되지 않으셨기에 십자가도 없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 현존하였던 예수님은 영적인 모습이었고, 그리스도의 환영이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가현설이 나왔다.
예수님도, 그분의 사랑도, 그분의 죽음도 허깨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들은 잘못된 지식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오해하였다.
요한서신에서 사도 요한은 이에 맞서서 주장한다. 아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생생하게 드러났다. 겸손히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가난하고 연약한 사람들의 친구가 되셨고, 십자가에 달리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다! 하나님의 사랑이 이를 통해 드러났다.
요한은 이렇게 주장한다. 그러므로 사랑하라, 행동하라!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를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2).
그 계명 중 하나가 우리가 잘 아는 부모 사랑에 대한 계명이다.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 6:1-3).
부모에 대한 사랑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구체적인 사랑의 계명을 실천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계명은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 자녀들이 행복한 삶을 살도록 도우려는 선한 의도를 갖고 있다.
부모와 자녀는 결코 남도 아니고, 둘도 아니다. 포도나무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어 연결되듯이, 서로 분리할 수가 없다. 만약 누군가 형제자매 사랑을 거부하거나, 무시한다면 그것은 현대판 영지주의이다. 부모님에 대한 사랑의 계명을 소홀히 한다면 그것은 영지주의적 불신앙이다.
부모와 자녀의 사랑은 계명 이전에 가장 인간적인 것이다. 아무런 조건도 없고, 의무사항도 아니다.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다.
그런데 성경은 말하기를, 지극히 당연한 부모사랑, 형제사랑조차 하나님께 속하였다. 그 사랑은 하나님이 자신을 드러내는 일반계시의 증거이다.
“낳으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1).
사랑은 말에 머물지 않는다. 사랑은 가장 구체적인 행동의 언어이다. 사랑한다면, 사랑을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3)
요한은 더 구체적인 사랑을 제시한다. 그 사랑의 가장 구체적인 모습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예수님은 사랑 그 자체이다. 요한은 성령의 증거를 들어 설명한다.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6).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하나님은 세상에 자기의 사랑을 보여주셨다. 이러한 믿음을 지닌 사람은, 그 믿음으로 세상을 이길 수 있다.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4).
이렇듯 사랑과 믿음, 믿음과 사랑은 서로 뗄 수 없는 관계이다. 내가 예수님이 그리스도란 믿음을 갖는다면, 나는 하나님 안에서 형제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이렇듯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의 자녀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큰 능력은 사랑하는 힘이다.
영지주의가 횡행하는 당시 사회 속에서 요한서신은 예수가 참 그리스도이심을 증거 한다. 그 증거는 자신의 몸을 내어 주신 하나님의 참 사랑에 있다.
예수님은 고난, 희생, 나눔, 섬김, 지극한 사랑으로 우리에게 마지막 물과 피를 나누셨고, 그 십자가의 죽음과 마침내 부활을 통해 위대하신 사랑을 완성하셨다. 이 사랑을 믿는 것이 참 믿음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서로 사랑할 수 있다.
유대인의 격언에 이런 말이 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골고루 갈 수 없어 어머니를 만들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어머니를 통해서 왔다. 어머니의 존재는 하나님의 사랑을 실례로 보여주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다. 어머니의 사랑은 이 세상 그 누구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제외될 수 없음을 증명한다.
세상 어떤 피조물도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를 끊지 못하듯, 세상의 어떤 상황도 우리와 부모님의 사랑을 끊을 수 없다. 세상의 풍조가, 환경이, 문화가 가족 간 사랑의 의무에 장애가 되지 못한다. 하나님은 더 나아가 어머니의 사랑보다 지극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말씀하신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사 49:15).
헬무트 틸리케는 주기도문 설교집 <세상을 부둥켜안은 기도>에서 하나님 사랑에 대한 예를 들었다. 하나님은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분으로, 날마다 우리의 일용할 삶에 관심을 주신다.
그는 만약 하나님이 평일의 삶과 전혀 관련이 없는 분이라면 우리는 모두 고아와 같을 것이라고 말한다. 행여 ‘하나님은 단지 주일에만 잠깐 방문하는 의붓아버지 같은 분이 아닐까?’라고 묻고, 또 ‘아니다!’라고 대답한다.
틸리케는 이렇게 고백한다. ‘아버지이신 하나님은 인자하시고 긍휼이 많은 분이어서 우리 삶의 현실을 속속들이 알고 계신다. 또한 우리의 원대한 꿈과 함께 일상의 소소한 부분도 똑같이 받아주신다. 그리고 인간을 짓누르는 염려와 고통, 사소한 고민을 이해하시고, 인간이 은밀히 누리는 자잘한 기쁨도 알고 계신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버지와 같이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의 한복판인 여기에 마중 나오신다는 것이다. 그런 참 자녀와 참 부모의 살아가길 바란다.
하나님은 내 삶의 처음과 끝, 인생 전체의 코치요, 멘토이며, 소속사가 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속한 자녀로 살아라. 그 자녀 되었음을 기뻐하라, 그 사랑을 증거하라.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을 가족의 사랑으로 묶어 주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하나 되게 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