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도선 曺道先, (1879 ~ 미상)】 「우덕순과 기차에 올라 이토 히로부미 포살계획」
함경남도 홍원군(洪原郡) 경포면(景浦面) 출신이다. 1909년 일제 보고문서에 당시 나이가 31세로 기록되어 있어 1879년생으로 추정된다. 이명은 조진승(曺晋承)이고, 한자를 달리한 조도선(曺道善)을 쓰기도 하였다. 1895년 러사아 연해주를 거쳐 이르크츠크 등지에 거주하였고, 1905년 무렵 러시아인과 결혼해 세탁업을 하였다. 러시아어가 능숙하였으며, 1909년 8월 블라디보스토크를 거쳐 유동하(劉東夏)의 부친인 한의사 유경집(劉敬緝)의 집에 머무르던 중 하얼빈에 왔다가 10월 23일경 안중근(安重根)과 만났다.
1909년 10월 21일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처단을 위해 우덕순(禹德淳)과 블라디보스토크역을 출발해 하얼빈으로 가던 도중, 포그라니치나야역에서 내려 러시아 통역으로 친지인 한의사 유경집의 아들 유동하와 함께 하얼빈으로 갔다. 『대동공보』 하얼빈 지국 김형재의 소개로 안중근 일행과 합류하였다. 이들과 함께 10월 23일 김형재의 소개로 김성백(金聖白 또는 成白)의 집에서 이토 처단 계획을 논의하였다. 이들은 동청철도(東淸鐵道)의 출발지인 남장춘(南長春)·관성자(寬城子)와 도착지인 하얼빈·채가구(蔡家溝) 등 네 곳을 의거 후보지로 구상하였으나, 경비·인원 부족으로 하얼빈과 채가구 두 곳으로 결정하였다.
하얼빈은 안중근이 맡기로 하고, 우덕순과 함께 기차가 잠시 정차하는 채가구에 배치되었다. 유동하는 통역과 두 지역 사이의 연락을 담당하기로 하였다. 만약 이토 히로부미가 탑승한 특별열차가 채가구에서 정차하면 우덕순과 함께 기차에 뛰어 올라 이토 히로부미를 포살키로 하고, 실패하면 종착지인 하얼빈에서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공격하기로 계획하였다. 당초 10월 25일 채가구를 통과할 것이란 정보를 입수하고 준비를 마쳤으나, 일정이 하루 늦어져 10월 26일로 계획이 변경되었다.
그러나 채가구에서의 의거 계획은 불발되었다. 10월 24일 채가구에서 하얼빈으로 돌아가는 안중근을 배웅할 때 포옹하며 우는 것을 목격한 러시아 경비병이 이를 수상히 여긴 후에, 이토를 태운 특별열차가 지나가던 10월 26일 새벽 우덕순과 함께 머물고 있던 여인숙을 바깥에서 잠가버려 계획을 실행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안중근의거 직후 숙소에서 러시아 병사들에게 붙잡혔다.
이 일로 1910년 2월 14일 징역 1년 6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