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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왕건 <제 162회>
<줄거리>
공산에서 구사일생한 왕건은 배현경과 홍유장군의 지원군을 만나고 공산으로 돌아가 장수들의 시신을 수습하라 명하는데... 발에 있는 무운점을 통해 찾아낸 아우 숭겸의 목없는 시신앞에서 왕건은 오열한다. 한편, 신라의 경순왕은 백제에 부역한 관료들을 처형하고 다시금 친 고려정책을 펴고 황도로 돌아온 왕건은 신숭겸일행의 넋을 기리는 한편, 전군을 재정비하여 전장에 나아갈 것임을 천명하는데....
씬 공산 근처
왕건이 힘겹게 주변을 살피며 숲을 헤쳐 나오고 있다. 아직도 그는 불안과 두려움에 잔뜩 긴장하고 있다. 숲길을 나와 얼마만큼 가고 있을 때, 뭔가 돌 구르는 소리와 사람 인기척이 난다. 왕건은 놀라서 돌아본다. 누군가 숲 속에서 모습을 보인다. 박수경인 것이다.
왕건 (한참을 보다가) 아니.. 자네는?
박수경 폐하... 여기 계셨사옵니까? 신들이 얼마나 애타게 찾았는지 모르옵니다. (큰 소리로) 장군, 폐하께서 여기 계시옵니다. 폐하께서 여기 계시옵니다.
왕건 ............?
복지겸 (소리) 폐하께서 계신다고..? 폐하께서 거기 계신다고...?
박수경 예, 장군. 이리 오시오소서.
왕건은 그렇게 긴장이 풀어지며 소리나는 쪽을 본다. 상처투성이의 복지겸이 박수문이 함께 숲속에서 곧 몸을 드러낸다. 그들은 또 그렇게 서로를 한참 본다. 너무도 참담한 것이다. 그예 복지겸이 울며 무릎을 꿇는다.
복지겸 폐하... 살아계셨사옵니까?
왕건 복장군... 박수문 장군도 무사했구려.
박수문 폐하, 신들이 지금까지 찾아해맸사옵니다. 끝까지 잘 보필하지 못한 죄가 너무 크옵니다.
왕건 아닐세. 황제로서 이 모습이 너무도 부끄럽네 그려.
복지겸 폐하, 백제군은 물러갔사옵니다.
왕건 이야기는 들었소.
복지겸 이제 곧 우리 지원군을 만날 수 있을 것이옵니다. 지금 우리가 가고 있는 길로 지원군이 오고 있사옵니다. 어서 가시오소서.
왕건 그렇게 합시다.
복지겸 이보시오, 박장군?
박수경 예, 장군.
복지겸 박장군이 앞서 가보시게. 우리가 폐하를 뫼시고 있다고 지원군에게 전하시게. 어서..
박수경 예, 장군
박수경이 대답하고 앞서 달려가기 시작한다. 복지겸이 애처롭게 왕건을 본다. 그리고 다시 눈물을 흘린다.
복지겸 그래도 그 철통같은 백제군의 수비를 뚫었사옵니다. 사직을 보전하실 수 있게 되었사옵니다, 폐하.
왕건 그런 말 마오. 이 한 목숨 구한 것이 오늘처럼 부끄러울 수가 없소이다. 내 아우가 죽었소이다. 숭겸아우가 죽었어요. 김락장군도 죽고, 전이갑 장군들도 죽고 다 죽었소이다. 이 황제 하나의 잘못으로 하여 일만 장졸이 다 죽었소이다. 오호...
박수문 자중하시오소서, 폐하. 그래도 폐하께서 살아계심으로 훗날을 기약할 수 있사옵니다. 고려를 위해 이만한 다행이 없사옵니다.
왕건 아니오. 아우들의 목숨을 대신하여 이렇게 살아있다니 너무도 비통하오. 너무도 비통하오.
울음같은 왕건의 그 절규에서...
씬 공산 근처 길
배현경, 홍유들의 지원군이 오고 있다. 그들은 멀리 공산이 보여오는 길목으로 들어서고 있다.
배현경 (손으로 햇볕을 가려 멀리 보며) 공산에 다 온 것 같소이다.
홍유 (끄덕인다) 그런 것 같소이다. 사방이 조용한 것을 보니 이미 전투가 끝나도 오래 전에 끝난 것 같소이다.
배현경 제발 별 일이 없어야 할 터인데...
그렇게 가다가 그들은 흠칫하며 앞을 본다. 그들의 앞에서는 세 필의 말이 질풍처럼 달려오고 있다. 그렇게 가까이 이르면... 그들은 두 명의 첨병과 박수경이다.
배현경 아니, 공은 박수경 장군이 아니오?
박수경 그러하옵니다. 장군들을 찾아오는 길에 앞서 나온 첨병을 만나 함께 왔사옵니다.
홍유 어찌 되시었소. 폐하는 어찌 되시었소..? 다른 장군들은...?
박수경 참으로 말하기 참담하옵니다. 일만 장졸은 모두 전멸하였사옵니다.
배현경들 전멸.......? 그럼 폐하께서는...?
박수경 다행히 신숭겸, 김락 장군들의 기지로 폐하께서는 목숨을 구하셨사옵니다. 폐하를 뫼신 복지겸, 박수문 장군과 함께 저기 공산 입구 길로 나오고 계시옵니다. 소장이 장군들을 인도하고자 왔사옵니다.
배현경 이런, 이런... 전멸이라니...? 일만의 군대가 다 죽다니..? 이보시오, 홍장군? 앞서 가 보시구려. 먼저 가서 폐하를 뫼시시오.
홍유 알았소이다. 부장들은 나를 따르라. 폐하를 뫼셔야 된다.
부장들 예, 장군
홍유 가자. 박장군, 가십시다.
박수경 예, 장군
일단의 부장들이 박수경을 앞세우며 홍유와 함께 앞으로 달려나간다. 배현경이 계속해 혀를 찬다.
배현경 전멸이라니...? 세상에.. 전멸이라니.... 일만의 장졸이 전멸..?
씬 공산 입구 길
길가에 왕건 일행이 서 있다. 복지겸이 거듭 위로한다.
복지겸 폐하, 지원군이 다 왔을 것이옵니다. 힘을 내시오소서.
왕건 지난밤이 마치 꿈만 같구려. 현실 같지가 않아. 여기가 공산 동수라 하였던가요?
복지겸 예, 폐하.
왕건 너무 많이 죽었어. 내 장수들, 내 병사들.. 너무 많이 죽었어.
아무도 말이 없다. 그들 그렇게 계속 침통하다. 한동안의 침묵을 깨고 박수문이 갑자기 힘이 솟아 소리친다.
박수문 폐하, 저기 일단의 군사들이 오고 있사옵니다.
모두들 ............?
복지겸 (한참 보다가) 폐하, 우리 지원군이옵니다. 앞에 오는 장수가 홍유장군 같사옵니다.
왕건 ...........?
그렇게 군사들은 가까이 이른다. 박수경과 홍유가 앞서 오다가 이들을 발견한다. 그리고 가까이 이르러 말에서 내려 부복한다.
홍유 폐하, 신 홍유이옵니다. 얼마나 상심이 크시옵니까? 이제 안심하시오소서. 신과 배현경 장군이 폐하를 뫼시러 왔사옵니다.
왕건 .........
홍유 안심하시오소서, 폐하.
왕건 고맙구려. 하지만 다 끝났소이다. 모두 다 끝났소이다.
왕건은 다시 목이 메이며 허공을 본다. 복지겸이 눈치를 살피다가 말한다.
복지겸 폐하의 의관이 말씀이 아니오이다. 속히 다시 뫼셔야 할 것이오. 서둘러 주시구려, 홍장군.
홍유 알겠소이다. 부장들은 무얼 하는가? 폐하의 의장을 찾아 뫼시어라.
부장들 예, 장군.
홍유 곧 배현경 장군이 뒤따라 올 것이옵니다. 일단 편안한 곳으로 옮기시오소서.
왕건 편안한 곳이라니...? 이 공산에 그런 곳이 어디 있겠소? 나는 이 곳을 떠날 수 없소이다. 내 아우의 시신을 찾아야 하오. 숭겸 아우 말이오.
모두들 ...............
왕건 그리고 김락 장군과 더불어 전이갑, 의갑 장군들의 시신도 찾아야 하오. 이대로는 갈 수 없소. 공산의 전투지로 다시 가보십시다.
홍유 알겠사옵니다. 전령을 보내 배장군들도 그리로 오도록 하겠사옵니다. 먼저 의관을 정제하시오소서. 부장들이 폐하의 의장을 찾아서 뫼실 것이옵니다.
왕건은 댓구가 없다. 그저 그렇게 망연자실 공산만 보고 있다. 그의 참담한 그 표정에서 길게 디졸브...
씬 부감의 그 전투지
시체는 여전히 들판과 계곡을 가득히 매꾸며 펼쳐져 있다. 까마귀 떼가 가득히 하늘을 덮으며 울고 있다. 참담과 참혹, 그 자체이다. 아직도 곳곳에 피어오르는 연기와 부러진 깃발들, 냇가에 쌓여있는 화살들, 그리고 곳곳에 창과 방패와 무기들이 널려 있다. 그 한쪽 길로 이미 불타버린 고려의 군영 쪽을 의장을 바꿔 입은 왕건이 배현경, 홍유 장군들과 보고 있다. 오랫동안 말이 없다. 왕건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하다.
왕건 저렇게 다 죽었습니다. 저렇게 다... 내 아우는 어디에 있을꼬? 내 아우는....
그렇게 중얼거리는 왕건의 시야로 마지막 미소를 남기며 떠나던 신숭겸의 이미지가 스쳐 간다. 왕건이 다시 도리질한다.
왕건 시체들을 수습하도록 하시오. 그리고 찾으시오. 내 아우와 나를 대신해 죽은 장수들을 모두 찾으시오.
배현경 예, 폐하. 이미 그렇게 영을 내렸사옵니다. 자, 일단 저쪽 임시 군막으로 드시오소서.
복지겸 그렇게 하시오소서.
그러나 왕건은 대답이 없다. 그저 그렇게 보고만 있다.
씬 그 벌판
장수들이 군사들과 함께 시체들을 뒤지고 있다. 끝도 없는 시체들 속에는 목이 없는 시신들이 부지기수다. 그 시체들을 이리저리 뒤적이며 찾는 장졸들... 박수문이 부장과 병사들을 재촉하고 있다.
박수문 신숭겸 장군은 폐하의 의장을 하고 계신다.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찾아라. 꼭 찾아야 한다.
씬 그 한쪽
이곳에서도 박수경이 부장들과 함께 시체를 찾는 병사들 사이를 오가고 있다. 한쪽에서 소리가 들려온다.
소리 장군... 여기 김락 장군의 시신이 있사옵니다.
그렇게 소리가 난 쪽으로 박수경이 달려간다. 김락이 온통 화살이 박힌 채 쓰러져 있다. 박수경이 가까이 와 침통하게 본다.
박수경 시신을 뫼시어라.
다시 또 한쪽에서 소리가 들려온다.
소리 장군... 여기 전이갑 장군의 시신이 있사옵니다.
그 쪽으로 박수문, 박수경 형제들이 한꺼번에 달려온다. 사이를 두고 전이갑과 의갑 형제가 시체로 뒹굴고 있다. 그 모습을 박수문 형제가 눈물을 흘리며 보고 있다.
씬 그곳 임시 군막
씬 동 군막 안
왕건을 중심으로 장수들이 말없이 둘러앉아 있다. 배현경, 홍유, 복지겸이 부장들과 함께 그렇게 침통해 있다.
왕건 조물성의 치욕을 갚고자 달려온 길이 하나의 치욕을 더하게 되었소이다. 아마도 하늘이 나를 버린 모양이오.
배현경 그럴 리가 있사옵니까? 잠시 운을 못 만나신 탓이옵니다.
왕건 내 잘못이오. 원한에 눈이 가려 욕심만 앞세우다가 이렇게 되었소이다.
홍유 그러나 폐하께서는 이렇게 살아 계시어 이곳에 계시옵니다. 훗날 반드시 빚을 갚을 날이 올 것이옵니다. 너무 낙심하지 마오소서.
배현경 군사들이 아군의 시신들을 수습하고 있사옵니다. 이 일이 끝나면 황도로 돌아가시어 군을 재정비하시고 다시 백제를 치시오소서. 틀림없이 오늘의 한을 갚으실 수 있을 것이옵니다.
그때, 박수문이 부장들과 함께 들어선다.
박수문 페하, 김락 장군과 전이갑 장군 형제분을 찾았사옵니다. 하오나 아무리 찾아도 신숭겸 장군의 모습은 보이지 않사옵니다.
왕건 그럴 리가 있는가? 짐의 의장을 하고 나갔어. 짐의 말을 타고 짐의 갑옷을 입고 갔어. 그런대도 찾지 못하다니 그럴 리가 있는가? 찾게, 꼭 찾아야 하네. 꼭...
복지겸 폐하, 신숭겸 장군이 폐하의 의관을 하고 나갔기 때문에 찾기가 어려운 것 같사옵니다. 저들은 신장군을 폐하로 알고 있기 때문에 그 목을 취했을 것이고 또한 의관을 모두 벗겨갔을 것이 틀림없사옵니다.
배현경 일이 그렇게 되었다면 보다 빠른 방법이 있사옵니다.
왕건 빠른 방법이 있어?
배현경 예, 폐하. 신장군이 이리로 떠날 때, 신들에게 한 말이 있사옵니다. 신장군은 왼쪽 발에 북두칠성과 같은 점이 있다 하였사옵니다. 이를 확인해 간다면 보다 빨리 찾지 않겠사옵니까?
홍유 오, 그렇소이다. 분명 그런 말을 했소이다.
왕건 허면 무얼 더 망설이겠소. 그리하시오. 왼발의 점을 찾으라 하시오. 그 점만 찾는다면 비록 얼굴이 없다 하여도 나는 알아볼 수 있소이다. 찾으라 하시오. 어서 찾으라 하시오.
모두들 예, 폐하.
왕건 ......... 찾아야 하오. 꼭 찾아야 하오.
씬 다시 그 벌판
이번에는 배현경, 홍유, 복지겸, 박수문 형제들이 모두 나섰다. 부장들이 온 벌판을 뒤지고 있다.
홍유 왼발의 점을 찾아라. 왼발의 북두칠성 점이 있느니라. 갑옷이 벗겨진 시신을 찾아라.
배현경 왼발이니라. 왼발의 점을 살펴보거라.
그렇게 벌판의 시체를 확인하며 찾는 모습들로 부산스럽다.
씬 서라벌 황궁 외경
씬 동 안
경순왕이 조회를 보고 있다. 모두들 역시 침통하다.
경순왕 우리를 구하러 오던 고려군이 전멸을 했다고 하오이다.
유염 약한 나라가 강한 나라에게 당한 것은 당연한 이치이옵니다. 고려는 백제의 적이 아니옵니다.
마의태자 그러나 고려가 우리 신라를 구하러 오다가 저리된 것은 사실이옵니다.
경순왕 그렇고 말고... 역시 고려는 우리 신라의 맹방이올시다. 저들은 의리를 다하였고 동맹국으로서의 의무를 다 하였소이다.
신료1 폐하, 극히 지당하신 말씀이시옵니다. 백제는 이 서라벌에 들어와 온갖 만행을 저지르고 우리의 모든 것들을 거두어 가 버렸사옵니다. 역시 고려만이 우리의 맹방임이 다시 한번 드러났사옵니다.
김웅겸 그러나 고려는 뜻을 이루지 못했고 전멸을 했소이다. 그나마 백제의 왕이 우리 신라의 황실을 보전하게 해 주었소이다.
마의태자 보전이라니요? 저들이 없어도 우리는 사직을 이을 수 있소이다. 저들은 우리가 합법적으로 뫼신 폐하를 시해하였소이다. 또한 황후마마를 자진케 하셨소이다. 박씨든 김씨든 저들이 간섭할 일이 아니었소이다.
유염 이제 와서 그게 무슨 망발이시오이까, 태자마마? 백제가 없었으면 어찌 지금의 폐하께서 계실 수 있겠사옵니까?
경순왕 이보시오, 유염공?
유염 예, 폐하.
경순왕 내 비록 부끄럽게 백제왕에 의해 황제에 올랐으나 이 자리가 그렇게 탐이 났던 사람은 아니외다. 지금은 김씨나 박씨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천년 신라의 사직이 중요한 것이었소이다.
유염 폐하, 그 무슨.....
경순왕 그러나 우리의 천년 사직은 백제군에 이 서라벌이 짓밟힘으로써 더욱 비틀거리게 되었소이다. 그나마 남아있던 마지막 자존심과 존립의 명분마저 무너졌어요. 그래서 짐은 결심을 했소이다.
모두들 .............?
경순왕 역시 백제는 우리의 우방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해야겠다는 것을 말이오. 밖에 근위군사들 있는가? 대령하라.
대답소리와 함께 근위병들이 도열해 들어선다. 유염이 긴장한다. 김응겸도 긴장한다. 모두들 긴장한다.
경순왕 사직에 먹칠을 하고 황통을 부정한 자는 용서할 수 없도다. 내 비록 더러운 도움으로 왕위에 올랐으나 남은 체면은 지키기로 하였노라. 저 유염과 김응겸을 하옥하라.
유염 폐하, 이럴 수가 있사옵니까? 신에게 이럴 수가 있사옵니까?
김웅겸 폐하...
경순왕 무엇들 하는가? 이 역적들을 당장 하옥하고 날이 밝는 대로 도성 밖으로 끌어내 목을 배라.
마의태자 어서 끌어내지 않고 무얼 하는가?
유염 폐하, 폐하... 이럴 수는 없사옵니다, 폐하...
그렇게 두 신료가 끌려나간다. 한동안 장내는 긴장스럽다.
경순왕 경들은 들으시오.
모두들 예.
경순왕 그렇소이다. 가뜩이나 기울어지던 이 사직이 백제의 군대에 짓밟힘으로써 그 명분조차 땅에 떨어졌습니다. 그나마 고려는 저들과 다릅니다. 우리는 마지막까지 고려에 의지하지 않으면 아니 됩니다. 이 점들을 명심하시오.
모두들 예, 폐하.
경순왕 그리고 승하하신 경애대왕의 장례를 성대히 치를 것이오. 이 또한 모두들 부족함이 없기를 바라오. 또한, 치명적인 타격을 입은 고려에 위로의 사신을 보낼 것이오. 그 점을 속히 시행토록 하오.
모두들 예, 폐하...
경순왕의 그런 복잡하면서도 단호한 표정에서...
씬 다시 그 공산 전투장
군막 앞에 왕건이 서성거리고 있다. 수많은 시체들이 계속해 치워지고 있다. 한참 보고 있는데, 저 한쪽에서 박수문 형제가 달려오고 있다.
박수문 폐하.. 폐하..
왕건 ............?
박수문 찾았사옵니다. 신숭겸 장군의 시신을 찾았사옵니다. 지금 저기 뫼셔오고 있사옵니다.
왕건 찾았는가...? 찾았는가...?
왕건이 보고 있는 쪽으로 군사들 사이를 가르며 신숭겸의 시신이 들것에 옮겨오고 있다. 덮여있는 비단보를 왕건이 눈물을 흘리며 떨리는 손으로 들추어보다가 눈을 감는다. 목이 없는 것이다. 다시 덮어 버린다. 장수들은 모두 말이 없다.
왕건 틀림이 없다. 내 아우가 틀림이 없다. 얼굴이 없어도 나는 아느니라. 내 아우니라.
모두들 .................
왕건 이렇게 돌아왔구나. 이렇게 왔어. 형을 대신해 나가더니 이렇게 되어서 왔어. (사이) 모두들 보시오. 여기 목이 없이 돌아온 이 시신은 신숭겸 장군이 아니라 바로 짐이올시다.
모두들 ..................
왕건 짐이 목이 잘려서 돌아온 것이올시다. 짐이 말이오...
모두들 (울먹이며) 폐하...
왕건 아우와 장수들은 내게 부탁하였소이다. 저들이 나를 대신하여 죽는 이유는 고려의 사직을 지키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이오. 대업을 이루라고 말이오. 내 어찌 저들의 뜻을 저버리리오. 그렇게 할 것이외다. 아우를 대신하여 얻은 목숨을 어찌 아까워하리오. 내 약속하거니와 남은 모든 생을 바쳐서 기필코 오늘의 한을 갚고 뜻을 이룰 것이오. 경들은 짐이 한 오늘의 말을 영원히 기억하도록 하오.
장수들 예, 폐하. 망극하옵니다.
왕건 돌아갈 것이오. 회군하십시다. 이 시신들을 모두 황도로 뫼셔가도록 하오.
장수들 예, 폐하.
배현경 시신들을 뫼셔라. 황도로 돌아갈 것이다. 회군한다. 회군할 것이다.
계속 반복되는 그 소리에서 아직도 침통함을 벗어나지 못하는 왕건의 그 표정으로... 디졸브
씬 길
왕건이 회군하고 있다. 그 쓸쓸한 회군길에는 신숭겸과 몇몇 장수들의 시신이 수레에 실려가고 있다. 그 위로 자료필름과 함께 해설이 이어진다.
해설 왕건 생애 최대의 패전. 공산 동수전투는 후삼국 시대의 그 많은 전투 중에서도 단연 최고의 기억으로 꼽히는 참담한 실패였다. 왕건은 이 전투에서 무려 일만의 장졸을 잃었다. 공산은 지금의 대구시와 영천시 신녕면, 그리고 군위군 부계면, 칠곡군 가산면 등의 경계에 있는 산이다. 주봉인 비로봉을 중심으로 하여 동서로 무려 40여 리에 걸친 능선을 이룬 산이다. 예전의 산 이름은 공산 혹은 동수산이라 하였으나 이 전투이후 이곳에서 여덟 공신이 순절하였다 하여 팔공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한다. 또한 이 당시 전투 과정에서 생겨난 지명들이 아직까지도 곳곳에 남아 있으니 왕건이 숨었다가 피신한 산을 왕산(王山), 홀로 숨었다가 승려를 만났던 염불암의 바위는 일인석(一人石), 백제군을 만나 두 차례에 걸쳐 군사를 잃고 패전한 곳을 아랫 파군재, 윗 파군재, 화살이 쌓여 내천을 덮었다는 살내, 나무꾼이 자신이 만난 사람이 왕이었다는 것을 알고 뒤에 아쉬워했다는 실왕리(失王里), 그리고 왕건이 물을 마셨다는 장군수(將軍水), 또한 잠시 피신했다가 간 암자가 있었다 하여 은적암(隱跡庵) 등등 아직도 현존하는 그 지명들이 천년 전의 상황을 그대로 전해주고 있는 것이다. 왕건은 그렇게 패배했다. 한편, 황도로 돌아가던 견훤은 그 도중에 지금의 성주인 대목군을 지나면서 들판의 곡식을 모두 태워 고려군의 추격과 신라로 향하는 길목을 끊으면서 태자들로 하여금 여세를 몰아 지금의 진주인 강주와 남해안에 상륙한 고려군을 공략하게 한다.
씬 인서트 (길-밤)
견훤들이 그렇게 가고 있다. 그들의 시야로 끝없이 불타고 있는 벌판들이 보여온다. 화광에 물든 그들의 표정에서...
씬 인서트 (또 다른 길)
신검을 비롯한 양검, 용검, 종훈, 최필, 김총들이 가고 있다.
신검 아바마마께서 신라의 황도를 불태우시고 왕을 바꾸어 앉히셨소이다. 또한, 고려를 대파시키고 돌아오신다 하오이다.
종훈 이 얼마나 기쁜 소식이옵니까? 바야흐로 백제의 시대가 활짝 열린 것을 느끼옵니다.
최필 이제 소장들에게 남해에 상륙한 고려군을 치라 명하시니 반드시 우리도 큰 전과를 세워야 할 것이옵니다.
용검 그래야지요. 아버님은 전투에만 나가시면 승승자구 하시는데 우리만 계속 패해서야 되겠사옵니까?
신검 그러게 말이다. 우리는 대야성과 용주성을 모두 잃었다. 사실 황도에 남아있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이냐? 아버님께서 돌아오시면 우리가 어찌될 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아주 황도를 잘 빠져 나왔어.
용검 왜 아니옵니까, 형님? 잘못은 우리 형제나 금강이나 똑같이 하였어도 꾸중은 우리에게만 돌아옵니다. 황도에 있었으면 분명 혼깨나 났을 것이옵니다.
신검 그러게 말이다. 우리 형제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 생각만해도 한심스럽구나. 어서 가자.
그들 그렇게 간다. 그 모습에서 디졸브 되면..
씬 백제 황궁 외경
씬 동 황후전
박씨가 고비와 함께 신료들을 마주하고 있다. 두 상궁들인 이상궁과 최상궁도 함께해 있다. 능환과 공직, 능애, 박영규, 금강, 문신인 일길찬 염흔(새 인물)과 영순도 함께 해 있다.
박씨 지금 폐하께서 돌아오고 계십니다. 천하를 깜짝 놀라게 할 대승을 거두고 오십니다.
능환 그러하옵니다, 황후마마.
박씨 그리고 우리 태자들이 강주와 남해에 고려군을 무찌르러 떠났습니다. 이렇게 나라가 하루가 다르게 그 위용을 더해가고 있습니다. 아니 그런가, 승평부인?
고비 예, 황후마마. 왜 아니겠사옵니까?
박씨 그런데 모든 것이 잘 되어 가고 있는데 이 황실과 조정에는 아직도 잘 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모두들 .............?
박씨 황실분들도 그러하십니다. 능애장군은 폐하의 친아우님이시고 우리 박영규 장군은 사위가 되시오.
두 사람 아, 예...
박씨 나라가 잘 될 때에 후사를 안정시키는 것은 신료들의 본분이 아닙니까? 도대체 어찌하려고들 이러십니까?
능애 황후마마, 실은 일찍이 여기 이찬께서 그 이야기를 폐하께 말씀드렸다가 크게 혼이 나신 적이 있사옵니다.
박씨 그래서요? 혼이 나는 것이 무서워서 신료들의 본분을 다 못한다 그 말입니까?
고비 .............?
능환 황후마마, 폐하께오서 그 이야기를 워낙 민감하게 생각하시는지라 좀 더 때를 보아야 할 것 같사옵니다.
박씨 좀 더 기다려요? 신검이 나이가 사십입니다. 얼마를 더 기다린다는 말입니까? 이건 사직에 관련된 일입니다. 폐하께서는 이제 이찬을 그리 신임하지 않으시는 것 같습니다.
능환 아, 그게 저...
박씨 귀동냥도 그렇게 들었고 요즘 돌아가는 것을 보면 다 압니다.
박영규 황후마마, 폐하께서 기다리라 하시는 일이옵니다. 잠시 더 참으시오소서.
박씨 황제의 자리를 달라 하는 것인가, 이것이...? 다음 보위를 장자에게 약속하시라는 것일세. 이 말이 무에 그리 어려운가?
공직 황후마마, 오늘의 그 꾸중이 지당하시옵니다. 실은 신 또한 오래 전부터 그 점이 갑갑하고 안타까웠사옵니다. 신검 태자마마께서 춘추 사십에 가까우시고 수많은 전투 경험과 치도의 도를 배우셨사옵니다. 마땅히 말씀을 하실 만 하옵니다.
박씨 호호호... 모처럼 노장 공직장군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그나마 막힌 속이 풀리는 것 같습니다. 좀 도와들 주시오. 너무 늦지 않았습니까? 사실이 그렇지 않습니까?
공직 이번에 폐하께서 오시면 신이 한번 말씀을 올리겠나이다.
박씨 고맙구려. 참으로 고맙구려. 모두들 눈치들만 보고 있는데 장군같이 경륜있는 분이 원로로서 한마디 하신다면 폐하께서도 생각이 달라지실 수 있지요. 부탁 좀 드립니다. 내 하도 답답해서 들 보자고 하였습니다. 이상궁...?
이상궁 예, 황후마마.
박씨 폐하께서 승전하여 돌아오신다네. 또한 여기 원로 신료들이 태자의 일을 논의하신다 하시네. 어찌 주안상을 마련하지 않겠느냐? 어서 올리도록 해라.
이상궁 예, 황후마마, 그리하겠사옵니다.
박씨 부탁들 합니다. 정말 부탁들 합니다. 이거야 원 속이 끓어서 참기 어려운 날이 너무도 많습니다. 정말 그래요.
씬 길 (낮)
견훤이 오고 있다. 기분 좋은 모습들이다.
견훤 이제 황도에 다 와가는구먼 그래.
최승우 그런 것 같사옵니다.
견훤 참으로 기분이 좋은 며칠이었네. 목적한 바는 다 이루지 못했어도 기가 막힌 날들이었어.
신덕 신들 또한 잊지 못할 전투일 것이옵니다. 공산전투는 그야말로 우리 백제의 역사에 크게 오래오래 기억될 전투이옵니다.
애술 특히나 적장 신숭겸이 고려의 왕을 대신하여 죽은 것은 두고두고 잊기 어려울 것이옵니다. 신은 지금도 그 생각만 하면 적이지만 가슴이 뭉클하옵니다.
견훤 맞아. 나 또한 그런 생각이 드네. 그래서 왕건 아우는 복이 많은 사람일세. 아무리 군신간이라도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기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지를 않는가?
최승우 그러하옵니다, 폐하. 그런 점에서 고려의 왕은 인간관계를 잘 맺어놓은 것 같사옵니다.
견훤 그건 그래. 하긴 사람 사는 모든 일이 다 그런 것일세. 역사란 것이 무엇인가? 사람이 살아간 발자취를 적어 놓은 것이야. 아무튼 왕건 아우는 복이 많아. 지금쯤 송악으로 돌아갔을 것인데...
최승우 그렇게 되었을 것이옵니다.
견훤 허허허...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지 꽤나 궁금하네 그려. 고려는 지금 보나마나 초상집일 게야. 초상집 말일세.
씬 송도 고려 황궁 외경
씬 동 광평성 관아 일각
유금필과 박술희, 김행선과 최응, 정윤 무, 왕규, 추언규, 최지몽들이 함께 해 있다. 모두 표정이 어둡다.
김행선 폐하께서 돌아오고 계신다 합니다. 이미 도성 가까이 이르셨다 합니다.
최응 마땅히 나가서 뫼셔야지요.
무 일만의 장졸이 다 죽었답니다. 어떻게 폐하를 위로해 드려야 할 지 난감합니다.
유금필 폐하의 아우이시고 우리의 형제인 신숭겸 장군이 전사를 했습니다. 폐하의 심정이 아마도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프실 것이올시다.
박술희 전령을 통해서 미리 온 소식을 보면 신숭겸 장군과 제장들은 그야말로 어느 전투보다도 장렬하게 싸우다가 그 목숨을 버렸다 하오이다. (눈물을 훔치며) 장수들의 본분이 전장에 나가 죽는 것이라 하더라도 생각할 수록 공산전투는 가슴을 찢어지게 합니다.
최응 지금은 용기가 필요할 때입니다. 지난 좌절이나 실패에 묶여 있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용기를 드려야지요.
추언규 그런 점에서 이번에 명주의 김순식 장군이 직접 폐하를 위로해 드리러 오고 있다는 것은 그나마 위안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김행선 그건 그렇소이다. 김순식 장군이 직접 폐하를 뵈러 오고 있다니 불행 중 다행이올시다.
최지몽 문제는 병부령의 말씀처럼 지난 일에 연연하기보다 보다 강한 의지를 폐하께 드리는 일이라 생각되옵니다.
왕규 그러하옵니다. 시중어른, 지난 악몽을 빨리 씻어 내는 일이 필요하옵니다. 그에 대한 준비를 서둘러 주시오소서.
김행선 알겠소이다. 전사한 영령들을 모시고 제를 지낼 준비를 해야겠소이다. 자, 모두들 폐하를 맞을 준비를 하십시다.
유금필 어쩌다가... 어쩌다가, 그토록 참담한 패전을 할 수 있다는 말인고...? 어쩌다가...
씬 동 황후전
황후 오씨와 유씨, 그리고 두 상궁이 함께 해 있다.
오씨 폐하께서 도성 가까이 이르셨다고..?
제조상궁 예, 황후마마. 지원군으로 간 배현경, 홍유 장군들과 함께 오고 계신다 하옵니다.
유씨 일만의 장졸들이 전사했다 하니 참으로 믿기지가 않사옵니다.
오씨 그러게 말일세. 우리가 그토록 염려하던 일들이 사실이 되어버렸네 그려.
김상궁 광평성에서 신료들이 모여 폐하를 마중할 준비를 하고 있다 하옵니다. 마마께서도 서두르시오소서.
오씨 그나마 뜻밖에도 명주의 김순식 장군이 온다 하니 다행일세. 그 사람 또한 얼마나 폐하의 근심거리 중 하나였는가?
유씨 그러게 말이옵니다.
오씨 자, 준비들 하세. 어서 나가 뵈어야지 않겠는가?
유씨 예, 황후마마.
씬 도성 문
왕건이 제장들과 함께 신숭겸 및 장수들의 시신을 끌고 들어서고 있다. 패전하는 군대는 힘이 없다. 모두들 숙연하게 그렇게 말없이 들어서고 있다.
씬 그곳
황후들과 신료들이 맞고 있다. 그 중에는 관복을 입은 김순식도 보인다. 황제들의 일행이 점점 가까이 이르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어느 쯤에서 그렇게 마주선다. 왕건도 걸음을 멈추고 그들을 둘러본다.
오씨 폐하, 얼마나 상심이 크시옵니까? 이렇게 무사히 귀환하심은 하늘의 도움이시옵니다.
유씨 공산 전투의 일을 다 들었사옵니다. 얼마나 애로가 크시었사옵니까?
왕건 그렇소이다. 참으로 힘든 전투였소이다.
김행선 폐하, 이렇게 무사히 돌아오시어 참으로 기쁘옵니다. 하늘이 폐하와 고려의 사직을 지켜주심을 또 한번 깊이 느끼옵니다.
왕건 고맙소이다.
최응 어서 오시오소서, 폐하.
유금필 폐하... (눈물) 신들이 어려울 때에 힘이 되지 못했음을 용서하시오소서. 소식만 듣고 가볼 수 없었던 지난 며칠이 참으로 치욕같았사옵니다, 폐하.
박술희 (눈물) 용서하시오소서, 폐하. 폐하를 도울 수 없었던 신들을 용서하시오소서, 폐하.
왕건 그만들 하시게. 경들을 볼 면목이 없소이다. 참으로 부끄럽게 이렇게 나만 살아서 돌아왔소이다. 부끄럽소이다.
모두들 망극하옵니다, 폐하.
그렇게 모두들 숙연한데 김순식이 나서며 고개를 숙인다.
김순식 폐하, 신 김순식 알현이옵니다.
왕건 오호... 경이 이곳까지 오다니 참으로 뜻밖이구려. 반갑소이다.
김순식 그 동안 여러 사정으로 인해 직접 찾아와 문후 드리지 못한 점 용서하시오소서. 신 김순식은 폐하의 패전 소식을 듣고 만사를 재치고 달려왔사옵니다. 신은 그 동안 폐하께 큰 염려만을 끼쳤사옵니다. 하오나 이제 아버님이신 허월대사님의 뜻을 받들어 뫼시기로 하였나이다. 신의 충성을 맹세하오니 받아주시오소서.
왕건 고맙소이다. 그리고 너무도 뜻밖이올시다. 명주는 큰 땅이오. 이제 그대가 짐에게 충성을 맹세하니 잃었던 기운이 다시 살아나는 것 같구려. 고맙소이다. 자, 어서 가십시다.
김순식 망극하옵니다, 폐하.
왕건 어서들 가십시다.
이들의 행렬은 그렇게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 모습에서..
해설 명주의 김순식, 그는 이 드라마에서 여러 번 중요한 대목에 등장을 하였다. 과거 궁예가 기반을 일으킨 것은 이 김순식의 도움이 결정적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허월대사로서 왕건을 도왔으나 김순식은 왕건의 역성혁명 이후 왕건을 등지고 있었다. 한때, 허월의 권유로 그 자식을 보내 관계를 원만히 하려한 적도 있었지만 이렇게 직접 와 충성을 맹세하는 것은 처음인 것이다. 좌절과 실패의 의욕을 잃었던 왕건으로서는 참으로 이외의 선물을 받았다고나 할까? 이 당시 명주 김순식의 영향력은 그만큼 컸던 것이다. 이로 인해 왕건은 그에게 왕씨성을 하사하며 그 고마움을 표하게 된다.
씬 동 황궁 조당
조당 가득히 신료들이 모여있다. 모두들 침통하다.
왕건 경들은 모두 들으오.
모두들 예...
왕건 지난 공산 동수 전투는 그 모든 것이 짐의 실책이올시다. 짐의 판단이 흐렸고 욕심이 앞서 일을 그르쳤소이다. (사이) 짐은 일만의 장졸을 다 죽이고도 이렇게 살아왔소이다. (다시 감정이 격해) 부끄럽고 민망하게도 살아서 이렇게 이 자리에 와 있소이다.
모두들 .............. (침통하다. 유금필과 박술희는 울고 있다)
왕건 지금의 목숨은 내 의제, 신숭겸 장군이 자신의 목숨을 버림으로써 대신하여 남겨준 것이오. 그리고 김락 장군과 전이갑, 전의갑 장군 형제가 여러 장수들과 더불어 함께 죽음으로써 짐을 그곳에서 구해내고 여기에 돌아오게 하였소이다.
유금필 (울며) 그만하시오소서, 폐하. 신하가 그 주인을 위하여 목숨을 버림은 당연한 것이옵니다.
박술희 그러하옵니다, 폐하. 장수들의 장렬한 죽음은 폐하께오서 이 나라 사직을 만년 반석 위에 세우시라는 염원이 담긴 것이옵니다. 그 뜻을 이루시오소서, 폐하.
김행선 그러하옵니다, 폐하. 그만 민망해 하시오소서. 나라를 위해 죽은 이들의 뜻을 받드는 것이 폐하와 신들의 소임이옵니다. 부디 뜻을 크게 하시오소서.
왕건 알고 있소이다. 비록 크게 패전하였으나 목숨을 내어놓은 장수들의 뜻을 너무 잘 알고 있기로 슬퍼할 겨를도 없소이다. 짐은 다시 일어설 것이오. 그리고 반드시 그 엄청난 치욕을 갚을 것이오. 경들도 이런 짐의 결심을 헤아려 주기를 바라오.
모두들 망극하옵니다, 폐하.
왕건 아울러 전군을 재정비 강화할 것이며 다시 짐이 전장에 나아갈 것이오. 그리고 전투에 임하기 이전에 장렬히 사망한 이들의 넋과 공을 기릴 것이오. 이미 시중이 이에 관한 준비를 하였다 하니 저들의 넋을 크게 위로하고 역사에 기록하기 바라오.
모두들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왕건 죽은 신숭겸 장군의 얼굴을 목공을 시켜 다시 만들고 황금으로 본을 뜨도록 하오. 또한, 장렬하게 죽은 이들에게 그에 걸맞는 시호를 내릴 것이며 그 후손들에게 벼슬과 영화를 보존하게 할 것이오. 더불어 저들이 전사한 자리에 원당을 세워 저들의 넋을 후대에 기리며 그 명복을 빌도록 할 것이오. 지체없이 시행토록 하오.
모두들 예, 폐하.
그러한 그들의 표정에서...
씬 인서트
황궁의 어느 전각에 제단이 마련되었다. 왕건이 신위 앞에 절을 하고 있다. 모든 신료들이 그렇게 절하고 있다. 그 위로...
해설 그랬다. 공산 전투에서 돌아온 왕건은 그 슬픔과 분함을 억누르며 다시 출전의 의사를 밝혔다. 더불어 전사한 장수들에게 시호를 내리니 먼저 신숭겸은 그 호를 장절공이라 하였고, 그 묘를 지금의 춘천인 광해주에 왕건 스스로가 쓰려고 했던 묘자리를 내주어 특별히 운구해 안장하게 하였다. 또한 신숭겸의 아우 능길과 그 아들 보장을 불러 벼슬을 주었고, 전사한 자리에 원찰을 세우니 바로 지묘사이다. 또한 후에 벼슬을 추증하니 '벽산 호기위 태사 개국공 삼중대광 의경익대 광위이보 지절저공신'이라는 긴 관직명을 하사한다. 왕건이 얼마나 신숭겸을 아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또한 김락은 신숭겸과 더불어 그 시호를 역시 장절공이라 하였고 뒤에 '통합삼한익찬공신'을 더하였으며 훗날 제사 때마다 그 상을 짚으로 만들어 조복을 입혀 반열에 앉혔다 한다. 또한 전이갑은 그 시호를 충렬공으로 그 아우 의갑은 충강공이라 시호를 내렸다. 그리고 후에 각각 '태사경 상서좌복야'와 '좌우 상기삼시 문하시랑'을 추증하게 된다. 황제를 대신하여 죽은 보답을 정성으로 다하였던 것이다.
눈물을 흘리며 계속 절을 올리는 왕건, 입술을 깨물며 신위를 본다. 그리고 다시 엎드리며 절규한다.
왕건 아우님, 부디 저 세상에서 편히 쉬시게. 이 형이 아우의 염원을 이룰 것이네. 아우의 염원을 이룰 것이네.
<162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