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와 늑대의 시간
인디언 부족에게 시간이란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시계에 의존하는
고정된 단위나 측정 가능한 양적 단위가 아닙니다.
그들에게 있어 시간이란
옥수수를 심어서 여무는 과정
양을 기르면서 일어나는 일 등
단편적이지 않은 연속적인 일로서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인식됩니다.
인디언 말에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황혼 무렵 모든 사물이 붉게 물들고
저 언덕너머로 보이는 동물의 실루엣이
내가 기르는 개인지, 나를 해치러오는 늑대인지 구분할 수 없는 시간
그 시간을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밝음에서 어둠으로 넘어가는 그 시간대에
사람의 눈에 개도 늑대같이 보이고, 늑대도 개 같이 보이는
사물의 분별이 헷갈리는 시간을 의미하지요.
개와 늑대, 빛과 어둠, 이편과 저편, 현실과 꿈,
이승과 저승의 시간적 공간적 경계가 불분명해지는 시간이지요.
선악, 미추, 명암, 장단, 고저의 분별이 어려워지는 것은
큰 스트레스로 작용했음이 틀림없습니다.
개와 늑대의 시간
이때는 선도 악도 모두 붉을 뿐입니다.
그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혼돈입니다.
온갖 사물이나 정신적 가치가 뒤섞이어 갈피를 잡을 수 없는 것이지요.
세상이 참으로 혼란스럽습니다.
여당은 이것만이 옳다하고 야당은 저것만이 옳다고 합니다.
고용주는 사용자의 욕심을 탓하고 사용자는 고용주의 탐욕을 탓합니다.
도처에서 자기중심적인 사고에 혼란을 더할 뿐이어서
어느 것이 옳고 어느 것이 그른지 참으로 알기 힘든 세상이 되었습니다.
장자는 무궁한 도(道)를 체득하고
없음(無)의 경지에 노닐라고 권고하지만
그 역시도 뜬구름 잡는 이야기에 불과합니다.
어떻게 살까?
참으로 큰 명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정답은 없겠지만 저는 배려와 사랑으로 살고 싶습니다.
상대방을 이해하고 더불어 살고자 하는 노력이 그나마 혼돈된 세상을
밝게 해주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정운복> 님이 보내주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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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센테니얼이란 책을 다시 읽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영원한 대륙"이라고 번역되어 나온 책인데,
제임스 A. 미치너가 쓴, 서부 개척기의 이야기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인디언들의 현명함, 수사법 등에 많이 놀랍니다.
"개와 늑대의 시간"!!!
참 가슴에 와 닿는 표현입니다.
은유적이기도 하고....
그들의 삶의 지혜로우에 놀라기도 하고...
우린 왜 그렇게 못살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첫댓글 저도 어제부터 선생님께서 올려주신 글을 읽으면서 바로 그 책을 생각하고 있었어요. 오래 전 미국으로 이민을 하게 되었다는 말씀을 드렸을 때 제게 빌려주셨던.... 다시 오랜 후 "Dancing with Wolves"라는 영화를 보았을 때도 그 책을 떠올렸어요. 참 많이 울며 봤던 기억이 나네요. 늦었지만 다시 한 번 감사드려요.
내가 참 무식한 짓을 곧잘 하는데, 센테니얼이 싸구려 제본이라 이제 해체가 되는구나. 그래서 열심히 타이핑해서 거의 완료됐다. 절판이 되어 구할 수 없거든. 절판된 책 몇 권을(레온 유리스가 지은 EXODUS. 폴 뉴먼이 주연해서 영화로도 만들어졌지. 펄벅의 어머니. 센테니얼)을 타이핑했다. 다 되면 이곳에 올려줄게.
지금 학년별 육상대회때문에 원주에 와 있다. 내일 아침에 이옥남, 엄태옥이랑 아침먹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