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조할머니, 할머니, 그리고 엄마를 거쳐 내게 도착한 이야기
그렇게 나에게로 삶이 전해지듯 지금의 나도 그들에게 닿을 수 있을까
과거의 무수한 내가 모여 지금의 내가 만들어졌듯
지금의 나 또한 과거의 수많은 나를 만나러 갈 수 있을까
서른두 살의 ‘지연’은 서울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희령’으로 떠난다. 희령 천문대의 연구원 채용공고를 본 건, 바람을 피운 남편과 이혼한 후 한 달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남편이 자신을 배신했다는 충격에서 쉽사리 헤어나오지 못하는 지연은 도망치다시피 이사를 결심한다. 바닷가의 작은 도시인 희령은 열 살 때 할머니 집에 놀러가기 위해 방문했던 때를 빼면 가본 적이 없는 낯선 곳이다.
“‘나아지고 있는 걸까’라는 질문에 선뜻 그렇다고 답할 수가 없”(15쪽)는 시간을 보내며 희령에서의 생활을 이어가던 어느 주말, 지연은 집으로 돌아가는 언덕에서 한 할머니를 만난다. 지연과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면서 가끔 마주칠 때면 반가운 내색을 하던 분이었다. 오후의 햇살로 반짝이는 바다가 보이고 부드러운 바람이 부는 언덕 위에서 할머니는 뜻밖의 말을 꺼낸다.
“아가씨, 내 손녀랑 닮았어. 그애를 열 살 때 마지막으로 보고 못 봤어. 내 딸의 딸인데.”
할머니는 거기까지 말하고 나를 가만히 바라봤다.
“손녀 이름이 지연이예요, 이지연. 딸 이름은 길미선.”
나는 할머니의 얼굴을 들여다봤다. 할머니는 나와 우리 엄마의 이름을 말하고 있었다. (…)
우리는 언덕 위에 어색하게 서서 서로를 바라봤다. 할머니의 얼굴에 장난스러운 표정이 떠올랐는데, 나는 할머니가 처음부터 나를 알아봤다는 생각을 했다.
“할머니.”
내 말에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만이야.”(20~21쪽)
어떤 이유에선가 할머니와 엄마의 관계가 소원해진 탓에 이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만나지 못했던 할머니는 그렇게 지연 앞에 나타난다. 지연은 할머니와의 재회에 어색해하고 어려워하면서도 “그런 감정들의 바닥에 깔린 엷디엷은 우애”(23쪽)를 신기하게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 만남을 계기로 할머니의 집에 방문하게 된 지연은 조심스러우면서도 따듯한 분위기 속에서 할머니와 대화를 나누다가 사진 한 장을 건네받는다. 사진 속에는 흰 저고리에 검은 치마를 입은 두 여자가 미소 짓고 있는데, 그중 한 명은 놀랄 정도로 지연과 닮아 있다. 할머니는 그 여자를 가리키며 말한다. 이 사람이 바로 자신의 엄마라고. 그러면서 황해도 ‘삼천’에서 백정의 딸로 태어나 핍박받으며 살던 지연의 증조할머니가 어쩌다 양민의 자식인 증조할아버지와 만나게 되었는지, 어떤 삶을 살아내며 이곳 희령으로 오게 되었는지 이야기를 풀어내기 시작한다.
그것을 시작으로 『밝은 밤』은 지연이 희령에서 새로운 생활을 이어나가는 현재 시점의 이야기와 할머니에게 전해듣는 과거 시점의 이야기가 교차하며 전개된다. 이 이야기 형식의 특별한 점은, 과거의 이야기가 할머니의 입을 통해 직접적으로 풀려나오는 것이 아니라 할머니에게 들은 내용을 바탕으로 지연이 재구성한 것이라는 데 있다. 즉 1930년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증조할머니의 이야기에서 출발해 현재의 자신에 이르기까지 백 년에 가까운 시간을 지연이 자신의 시점에서 꿰어나가는 이야기인 것이다. 그렇게 『밝은 밤』은 두 이야기의 시간을 오가며 사진과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던 오래전 사람들을 구체적인 형상을 지닌 인물로 그려냄으로써 그들을 현재에 다시 살려낸다.
“사랑은 모욕이나 상처조차도 건드리지 못한 마음을 건드렸다.”
지금 나에게 이른 궤적을 거슬러올라가며 발견하는 사랑의 기원
“시간은 흘러가는 강물이 아니라 얼어붙은 강물”이어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동시에 존재한다”(173쪽)고 여기는 전남편의 믿음과 달리, 지연의 재구성을 통해 되살아나는 이야기는 과거 또는 현재의 이야기로 고정되지 않고 서로의 이야기에 부드럽게 섞여든다. 백정의 딸로 태어나 누구에게도 환대받지 못하던 증조할머니가 ‘새비 아주머니’를 만나 처음으로 우정을 나누는 모습은 1930년대라는 시간을 벗어나 현재 어두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지연에게로 흘러들고, 팔순을 앞둔 할머니는 지연의 이야기를 통과하면서 주름이 깊게 패고 허리 굽히는 것을 어려워하는 나이든 노인이 아니라 “먹을 것을 투정하지도 않았고 젖니가 나는데도 보채지 않”(74쪽)는 순한 아기의 모습으로 다시 살아난다. 그렇게 인물들은 현재의 고정된 모습이 아니라, 수많은 ‘나’를 간직한 모습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다름 아닌 서로가 서로에게 전하는 ‘이야기’라는 점은, 소설이라는 형식에 대한 작가 최은영의 믿음과 애정을 확인시켜주는 듯하다. “네가 내 이야기를 들어주니까, 새비 아저씨는 그만큼 더 사는 거잖아”(81쪽)라는 할머니의 말처럼 과거의 이야기는 증조할머니와 할머니, 엄마를 거쳐 지연에게 전해지며 계속 이어지고, 그렇게 여러 겹을 통과해 도착한 이야기는 현재 지연의 삶에 어떤 식으로든 변화를 일으킨다. 그러니 『밝은 밤』을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어떤 삶은 왜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전해질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최은영의 아름답고 진지한 대답이라고. 최은영은 소설이 지닌 고유의 힘을 깊이 신뢰하는 정공법으로 한 걸음 한 걸음을 신중하게 내디디면서,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람들에게로 흘러가는 마음의 물길을 그려나간다. 책을 덮는 순간 완성되는 그 물길의 모양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한 가지만큼은 확실하다. 그 물길은, “그곳이 가시덤불”(56쪽)일지라도 아주 적은 사랑이 고여 있기만 한다면 그곳으로 흘러가리라는 것. 햇볕에 데워진 돌멩이를 만질 때 전해지는 온기처럼, 최은영이 발견해 우리에게 건넨 사랑은 이토록 따듯하고 단단하다.
“내게는 지난 이 년이 성인이 된 이후 보낸 가장 어려운 시간이었다. 그 시간의 절반 동안은 글을 쓰지 못했고 나머지 시간 동안 『밝은 밤』을 썼다. 그 시기의 나는 사람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누가 툭 치면 쏟아져내릴 물주머니 같은 것이었는데, 이 소설을 쓰는 일은 그런 내가 다시 내 몸을 얻고, 내 마음을 얻어 한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이었다.” _‘작가의 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