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주일 오후 사역을 다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밤 9시가 넘어 있었다. 내일 수업을 듣기 위해 학교로 올라가야 하는데 단돈 몇만 원이 없는 상황이었다.
기름값이 있어야 올라갈 텐데 아내의 얼굴을 살피니 아내도 없는 눈치였다. 약국까지 타고 갈 버스비가 없어서 요즘 애들하고 운동 삼아 40분을 걸어 다닌다는 아내다. 한 주간 아이들과 버텨내려면 그녀야말로 돈이 필요할 텐데….
집에 있어 봐야 뾰족한 수가 없어 보여서 “여보, 나 갔다 올게” 하고는, 자는 아이들을 뒤로하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서 무작정 교회 승합차를 타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여주휴게소에 다다랐을 때 더 가면 고속도로 한복판에 설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휴게소로 들어가 환한 가로등 불빛 아래 차를 세워놓고 뒷자리로 가서 앉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밤 11시가 넘은 시간에 더 이상 갈 곳이 없었다. 기름값을 부탁할 사람도, 여유도 없었다. ‘아내와 애들은 무슨 죄냐?’라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 자신이 너무도 한심하고 비참하고 불쌍하게 느껴졌다.
하나님이 저를 부르셨으면 다닐 차비는 주셔야 될 거 아니냐고 하소연하며 한참을 울고 있는데 누군가 밖에서 창문을 똑똑똑 두드렸다. 울음을 멈추고 돌아보니 어느 중년 아주머니였다. 교회 승합차 옆면에 교회 이름이 크게 쓰여 있는 것을 보고 교역자인가 싶었나 보다.
“전도사님이세요?”
”네.”
”여기서 뭐 하고 계세요?”
차마 기름값이 없어서 못 가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냥 좀 피곤해서 쉬고 있습니다.”
”아, 그래요?”
그리고는 곧 사라지셨다. 나는 울음을 그치고 마음을 추슬렀다. 무작정 앉아서 기도해보려고 했지만 기도도 나오질 않았다. 그냥 ‘하나님, 도와주세요. 아버지, 도와주세요. 저 너무 힘들어요’라고 되뇔 뿐이었다.
그때 다시 똑똑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조금 전 그 아주머니였다. 문을 열라는 손짓을 하더니 창문 틈 사이로 무언가를 건네셨다. 받고 보니 5만 원권 지폐였다.
”전도사님, 이거 가시다가 식사하세요.”
”권사님이세요?”라고 여쭤봐도 대답도 없이, 그 말만 남기고 이내 떠나가셨다.
5만 원을 받아든 나는 새벽까지 울었다.
눈물이 그치질 않았다.
하나님의 얼굴빛이 내게 비춰지는 것만 같고, 하나님께서 나를 보고 계신다, 지금도 여전히 하나님이 나를 보고 계신다는 것이 믿어졌다. 정말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느껴지는 그때 하나님은 일하기 시작하셨다.
4만 원어치 기름을 넣고, 남은 1만 원과 차에 있던 100원짜리 동전 몇 개로 고속도로 통행료(당시 제천에서 양지까지 5,200원이었다) 두 번 내고, 한 주간 공부하고 집에 돌아가니 기름에 경고등이 들어왔다.
그때 내가 받아든 5만 원은 50만 원, 500만 원, 5천만 원보다 더 큰 돈이었다.
당장 기름값이 없어서 꼼짝도 못 하는데 나중에 5천만 원을 받은들 무슨 소용이겠는가! 하나님이 여전히 나를 보고 계시고, 나를 위해 일하고 계신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충분했다.
그래서 나는 버틸 수 있었다.
또 하루를 버텼고, 그 한 주를 버텨냈다.
-부름 받아 나선 이 몸 어디든지 가오리다, 최기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