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추·말복이 지났으나 더위의 기세는 꺾이지를 않는다.
거기다 기후를 고려치 않은 계획이 되고보니 늦더위와 겹쳐 고난의 행군이 되고 말았다.
한마디로 노고(勞苦)만 남은 노고산 산행이 되고 만 것.
처음 연지저수지 뚝방을 걸어 이마산(200)을 찍은 뒤 북진, 노고산과 ‘팔공지맥’을 건너 ‘두리봉(△436.9 카카오맵)’과 ‘절뒷산(369.8)’을 차례로 거친 뒤 군위의 ‘일연공원’으로 내려설 참이었다.
그런 뒤 귀가길에 인각사 답사를 위하여 잠깐 버스를 댈 계획이었으니 실로 야심찬 계획이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노고산 오름길은 급경사에 펑퍼짐한 능선이라 이렇다할 등로가 나지 않아 더욱 힘든 곳.
사유지인 듯 능선을 따라 철사줄이 쳐져있고, 이리저리 헝컬어진 선답자들의 흔적만 난무한다.
‘피레네’와 ‘알프스’를 넘어 로마로 진격하는 ‘한니발’의 여정이 이랬을까?
노고산(老姑山 557.5)은 천지개벽일 때 산꼭대기만 새머리처럼 보인다고 새마산, 또 산상봉(山上峯)에 샘이 있어 ‘새미산’이라고 하였다.
또 이름을 풀어 ‘할미산’, 뒷산에 성(화산산성)을 쌓다가 이곳에서 그만 두어 헛수고 하였다는 의미로 ‘노고산’이라 했다는 전설이다.
안간힘을 다한 뒤 올라선 노고산을 내려서면 이제 잡목터널을 통과해야 한다.
화산령을 지나 이날의 최고봉인 605.2m봉을 내려선 임도에서 그늘막에 퍼질고 앉은 지친 일행들을 만난다.
그래, 오늘 산행은 여기까지다.
임도를 구불구불 돌아 당지(唐池)저수지 상류에 있는 ‘당지2리경로당’으로 버스를 불렀다.
우리 버스가 ‘일연공원’이 아닌 ‘인각사’로 들어왔으나 암말도 하지 않았으니 나의 심신은 이미 단전 상태.
‘인각사(麟角寺)’는 ‘은해사(銀海寺)’의 말사로, 일연이 <삼국유사>를 저술한 곳이며, 경내에 ‘군위 인각사 보각국사탑 및 비(보물 제428호)’가 있다.
인각사에서 얼마간의 뜸이 들어서야 완주팀들의 안위와 무사귀환이 생각났다.
오늘 우리의 날머리는 ‘일연공원’이니 그제서야 부랴부랴 일연공원으로 차량이동을 하였다.
산행코스: 연지저수지-묘지-이마산(왕복)-236.4-노고산-화산령-605.2m-임도-당지2리경로당(약 10km,5시간)
* 버스이동하여 인각사 답사, 일연공원 주차장 뒷풀이
궤적.
약 10km에 5시간.
고도표.
'안평의 산행'에서 차용한 지도를 일부 편집하였음.
처음 계획한 코스(약 14km에 더위와 난이도를 를 감안하여 6시간 예상함. 주어진 시간 10:23~16:30)
호기롭게 준비한 표지기.
네비에 '영천시 화산면 효정리 1264-1'을 입력하여 연지저수지에 버스를 댔다.
저수지 뚝방을 걸어...
건너편 나즈막한 좌측 봉우리가 이마산.
농막을 지나...
임도급 산길은...
묘지로 통하는 길.
묘지 위에서 이마산을 다녀와야 한다.
이마산의 마빡을 찍고...
돌아온 묘지 위 평상.
여기선 눈을 부릅뜨고 길을 찾아야 하는 것.
나는 무심코 잘못 내려섰다가 질러 갈려고 갈팡질팡 잡목더미에 갇히고 말았다 . 그럴 때는 다시 원점으로 회귀하는 게 기본.
되올라와서...
찾은 길.
시멘트 임도를 거슬러 좌측 능선으로 붙었는데, 뒤에서 인기척이 있다.
권형님이다. 역시 그 지점에서 길찾노라고 헤맸단다. 이후 형님을 앞세웠더니 동물적인 감각으로 성큼성큼 앞서간다.
그러다가 노고산이 올려다 보이는 지점에서 갈마곡지 방향(서쪽)으로 곧장 진행하다 금방 되돌아와 북진을 한다.
기독교 묘지들이 있는 능선에서 노고산이 높이 솟았다.
동행자는 권형님.
무덤을 살짝 에두르며...
산판길 수준의 평이한 산길을 걷는다.
무덤을 지나면서...
본격 산길로 접어들며 된비알이 시작된다.
펑퍼짐한 능선에는 용도를 알 수 없는 철사줄이 쳐져있어 철사줄을 따라 오르다 철사가 끝나는 지점에서 우측으로 붙었다.
끙끙~ 커다란 바위를 우회하며 좌측 능선으로 올라섰더니...
열린 공간으로 산맥이 하늘을 받치고 섰다. 팔공지맥인가?
한결 수월해진 능선을 오르다 고개를 드니 '장다리'님이 바위 위에 올라 앉아 넋을 놓고 쉬고 있다.
오늘 산길에서 제일 명당이라면 명당이다.
노고산 직전에서...
돌탑이 있는 노고산에 올랐다.
'후라이' 님은 병풍바위를 찾아 쌩고생을 했다하고, 우리는 나중에 '당지마을'로 내려갔지만 이곳에서 1.7km길은 확인하지 못했다.
그래서 안내판을 빌려와 '당지리 버스 종점(현위치)'을 참고하였다.
여든 후반의 연세로 지칠 줄 모르는 권형님이지만 오늘은 자못 표정이 다르다.
이 높고 험한 산에 늙은(老) 시어미(姑)가 산다고?
우선 정상주부터 한잔 해야지. 허겁지겁 쑤셔넣는 밥숫갈에 목이 메인다.
그리고 돌아보는 돌무더기. 산성을 쌓다가 노고(勞苦)만 하고 말았다는 그 성돌(城石)들인가?
팔공지맥 높은 산맥이 가로 막고 선 지점. 잡목더미의 터널을 뚫고 내려서는 지점엔 카메라 앵글을 맞출 데도 없다.
그렇게 30여분의 고투끝에 내려선 화산령.
준비해간 '화산령(華山嶺 485)'표지기를 걸었다.
이 일대는 대부분 사유지인 듯.
널따란 임도급 수준의 산길을...
내려 왔더니...
철문이 달린 임도.
탈출 의도를 갖고 퍼질고 앉아 있는 일행들. '불감청(不敢請)이언정 고소원(固所願)'이라 하였다.
퍼질고 앉는 길가에 보라색 도라지가 이쁘다.
방향(당지리)만 짚어보고 지형도에도 없는 임도로 내려서다가 되올라오는 일행들.
비포장 묵은 길이 이어진다며 다시 강행하다...
임도 아래에서 산장같은 집이 보이더니 그곳에서 고함소리가 들린다. 길이 아니라고 한다며 웅성웅성.
그래서 산장주인의 호의로 철문을 내려서서...
예의 그 산장으로 안내되었다.
고도 500m가 넘는 산중에 뻥 뚫린 조망하며 이곳은 신선이 사는 영역이 분명할 터. 거기다 뜻밖의 융숭한 대접도 받았다.
신선은 호랑이와 함께 산다지.
산장주인의 호의로 사유지 비포장 임도를 따라...
닫힌 철문을 통과...
포장임도에 내려선다. 이 포장임도는 지형도에 표시된 임도로 처음부터 이 임도로 내려와도 거리는 비슷할 것.
결론적으로 말하면 우리의 행로는 잘못된 것(사유지이기 때문)으로 차량이 다니는 이 임도로 내려와야 정답이다.
영천시 산불조심 차량이 올라가고, 우리는 철문을 벗어나...
개가 짖어대는 농가를 지난다.
암자인 듯한 곳을 내려서는데, 모기와 하루살이들이 온 얼굴을 후벼판다.
귀,눈,코 불문해서 눈만 빼꼼히 드러낸 채 수건으로 얼굴을 감쌌다. 청정지역이라서 그런가, 그렇다면 여기는 사람 살기가 힘든 곳.
'당지2리경로당'을 지나면...
대형버스 회차가 가능한 버스 종점이다.
그때 마침 우리 버스가 들어오고 있다. "빨리빨리 털고 타세요" 죽어라 따라붙는 하루살이를 털고 타라는 당부다.
그렇게 들어온 인각사는 어쩐지 휑한 느낌.
나는 일연공원에서 인각사까지 '일연테마로드'를 걸은 B팀들이 인각사에 머무는 줄 알았다.
그래서 '떡 본 김에 제사를 지낸다'는 말처럼 카메라를 들고 사찰 한바퀴를 돌았다.
군위 인각사지 안내판.
통일신라 시대부터 번성하여 고려시대엔 보각국사 일연이 5년동안 머물며 '삼국유사'를 쓴 곳이다.
문화재는 보물 제428호인 '인각사 보각국사 탑 및 비'와 '인각사 석불좌상(유형 문화재 제339호),'인각사 미륵당 석불좌상(유형문화재 제426호),'인각사 삼층석탑(문화재자료 제427호)이 있다.
한때 스님으로 지냈다는 고은(高銀)선생이 쓴 '일연찬가(一然讚歌)'가 빗돌에 새겨져 있다.
글쓴이는 학천(鶴天) 이상명(李相明) 선생.
한곳에 가지런히 모아둔 석재들로 보아 그 규모가 상당해 뵌다.
극락전 우측 신령각 앞에 두 기의 석물이 있다.
좌측이 보물로 지정된 '인각사 보각국사 탑'이고, 우측이 유형문화재인 '인각사 석불좌상'이다.
보각국사 일연의 승탑으로 보물 제428호.
아침에 해가 뜨면 이 탑에서 광채가 나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일연스님 노모의 묘를 비추었다고 한다.
높이 242cm. 1962년 인각사 동쪽 부도골에 쓰러져 있던 것을 지금의 위치로 옮겨 복원한 것이다.
8각원당형으로 지대석 위에 8각의 하대석이 놓여 있는데 윗면은 경사가 급한 편이며 중앙에 8각의 굄이 있다.
중대석의 각 면에는 동물상이 양각되어 있고, 상대석에는 8엽의 복판 연꽃무늬를 선각으로 표현했다.
팔각의 탑의 중심부에 ‘보각국사정조지탑(普覺國師靜照之塔)’이라는 탑명과 사천왕입상과 보살입상이 조각되어 있다.
탑의 상층은 불상, 중층은 연화, 하층은 토끼·사자·원숭이 등 여러 동물의 형상이 조각되어 있다.
그 옆에 있는 '석불좌상'.
삼국유사면 괴산리에서 옮겨온 '인각사 석불좌상'은 고려전기에 조성된 석불로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다.
극락전을 바라보는 곳에 사방 1칸짜리 팔작지붕 비각이 있고, 그 앞에 향나무 한그루가 자태를 뽐낸다.
비각 안에는 귀한 몸채가 있으나...
아무런 식별이 불가하니...
그저 안내판을 참고할 따름이다.
그 위엔 다시 자그마한 맞배지붕 산령각.
미륵전엔...
'미륵전 석불좌상'이 있다.
그 옆 목어 아래에 '인간사 일장춘몽(一場春夢)'을 뜻하는 글귀.
'인각사 미륵당 석불좌상' 안내판.
지팡이(活柱)를 짚고 선 극락전 앞에 신라시대 삼층석탑을 빼닮은 경북 문화재자료인 '군위인각사삼층석탑'이 있다.
크기가 왜소하고, 훼손되었으며 보륜의 장식물은 원래의 것이 아닌 것으로 추정되나 '나말려초'의 석탑이다.
안내판.
팔작지붕 국사전 안에는...
보각국사 일연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이 영정은 2001년에 새롭게 조성하여 국사전에 봉안했다.
진영 옆의 위패엔 '보각국사원경충조일연각령'. 위패이지만 각령이라 한 건 최고의 존칭을 쓴 듯.
1283년 국존(國尊)으로 추대돼 ‘원경충조(圓經沖照)’란 호를 받았다.
이듬해 군위 인각사를 중건하고 '삼국유사' 5권을 저술한 이후 1289년 7월 8일 인각사에서 세수 84세, 법랍 70세를 일기로 입적했다.
절 뒤 바위 벼랑에 기린의 뿔을 걸었다고 이름 지어진 인각사(麟角寺)는 '절뒷산'의 산세가 기린의 긴 목처럼 뻗어내리다 뿔이 걸린 형세.
일연테마로드 안내판.
일연테마로드 효행의 길 안내판.
씻기 위해 바위벼랑(학소대?)아래의 계곡으로 내려갔더니 천막의 근무자가 접근을 못하게 한다.
물놀이 금지를 하고 있는 듯.
그래서 찾아든 화장실 옆의 5꼭지 수도시설은 지하수인 듯하나 주변 환경이 너무 불결하다.
그러나 선택은 없다.
리더가 맥을 놓고 있는 사이 모든 게 중구난방이다.
흩어져 있는 일행들을 불러모아 완주팀들이 하산하는 '일연공원'으로 이동, 한산하고 널따란 주차장에 테이블을 펼쳤다.
그 사이 완주팀들은 깨끗한 화장실에서 씻을 수 있었으나 아직 귀횐하지 않은 일행들이 있다.
그들은 산길을 잘못 내려가 화산산성 입구에서 기다린다는 연락이다.
“나, 너무 지쳤어요.이제 대장직을 그만 두어야겠어요.”
체력과 능력의 한계를 체감한 뒤 무거운 책임감을 감당해내지 못해 토해낸 말이다.
첫댓글 함께해서 즐거웠습니다.
노고에 감사합니다.
행복한 토요일되세요^^
수고많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