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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였더라. 내가 우도의 모래사장 위를 달리기 시작하던 때가. 피부는 풍랑주의보가 내려진 바닷가 바람에 둔감해지기 시작했고, 몇 시간 동안 제대로 굽혀보지도 못한 무릎은 뛰기 시작할 때마다 욱신거렸다. 옆에서 함께 취재 나온 사진 기자가 한 마디 던진다.
침을 닦고 다시 달리려고 하니 침을 닦은 손이 흥건하다. 내가 여기 취재 간다고 하니 “재밌겠다~”라며 해맑게 웃던 차 팀장, 돌아가면 이 손으로 얼굴을 문질러주고 말겠어. KBS <해피 선데이>의 ‘1박 2일’은 분명히 오락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왜 취재 나온 나는 엄홍길 산악인의 히말라야 등정에 따라 간 느낌이 드는 걸까. 엄살이 심했나. 하긴, 엄살이다. 내가 지금 모래사장에서 편하게 이런 생각이나 하고 있는 동안, 은지원과 김C는 밥 한 번 제대로 먹어 보겠다며 스스로 바닷가에 빠지고 있었으니까.
“하고 많은 취재 중에 왜 하필 이걸 오셨어요?” 2월 22일 오후 1시, 김포공항의 잔디밭. '1박 2일‘의 녹화 직전에 김C가 이 말을 했을 때, 나는 그 다음 날 벌어질 일들을 눈치 챘어야 했다. 하지만 그 때 나는 ’1박 2일‘의 여섯 멤버들이 제주도로 갈 때 비행기를 타느냐, 배를 타느냐를 놓고 하는 ’복불복‘ 게임을 보며 배를 잡고 웃고 있었다. 비행기를 타면 1시간, 배를 타면 13시간. 혹은, 강호동 말대로 비행기를 타면 뉴욕에도 갈 수 있는 시간. 이걸 결정하는 게 탁구도, 달리기도, 낙엽 던지기도 아닌 룰렛이라니. 나영석 PD는 “큰 일 일수록 내 운명에 내가 아무 것도 못하니까”라며 룰렛을 선택했다지만, 그 덕에 출연자들은 룰렛의 화살표 하나에 희비가 엇갈렸다. 비행기를 타는 ‘은초딩’ 은지원은 “티켓팅 하러 가자”며 소리를 질렀고, 배를 타는 이수근은 미련이 남은 듯 한 번 더 룰렛을 돌렸다 (하지만 결과는 다시 배였다) 룰렛으로 13시간과 1시간을 결정하는 ‘복불복 게임’은 ‘1박 2일’의 특징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각본도, NG도, 재촬영도 없다. 사전 협의 없이 1박 2일, 혹은 2박 3일 내내 진행되는 라이브 코미디 쇼. MC몽이 강호동 닮았다며 끌고 나온 MC몽의 매니저가 웃길지 안 웃길지 누가 알겠나. 한 번 돌아가기 시작한 카메라는 멈추지 않고, 편집되지 않으려면 최대한 많이 웃겨야 한다. MC 몽은 등장하는 순간 주위의 낙엽을 긁어모아 자신에게 뿌렸고, 김C와 이수근은 룰렛을 돌리기 전 즉석에서 KBS <개그콘서트>의 ‘달인’을 흉내 냈다. 웃기는 걸로만 치면 방송보다 현장이 더 웃기는 프로그램이라니. 오길 잘했..............잠깐, 계속 이렇게 찍는단 말야?
이명한 PD의 한마디. “출연자들이 깨어 있을 때는 스태프들도 계속 쫓아다니면서 찍어요.” 그럼 나도? “우리 하는 것처럼 똑같이 해야 해요”라던 김C의 말이 스쳐 지나갔다. 아하하하하하하. 설마. 그러나, 김포공항에서 인천항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나는 수첩을 들고 배를 타게 된 이수근과 이승기, MC몽의 말을 계속 받아 적고 있었다. 6mm 카메라는 계속 돌아갔고, 세 사람은 끝없이 개그를 하고 있었다. 화제는 ‘1박 2일’에서 어떻게 캐릭터를 잡느냐부터 시작해 친한 연예인들 이야기로 넘어갔고, 어느새 MC몽은 자신이 친하다고 주장한 최진실에게 전화를 걸고 있었다. ‘짬밥에 밀려’ 배를 타게 된 나영석 PD는 그들이 하는 말에 어떤 개입도 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MC몽에게 배에 타기 전까지 최진실과 통화가 되느냐의 여부를 놓고 용돈 만원을 거는 내기를 했다. ‘1박 2일’의 PD는 상황 설정을 짜거나, 출연자의 연기 지도를 하는 역할이 아니었다. 그들은 흐름에 따라 출연자들에게 새로운 동기 부여를 하거나, 감정을 자극해서 더 많은 걸 끌어내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끌어낼 때 끌어내도 우리 밥 먹을 시간은 주셔야죠. 인천항에 도착한 뒤 배를 타기까지 남은 한 시간 동안, 출연자들은 VJ와 함께 3만원의 용돈으로 식사를 해결하고, 다른 스태프들은 따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수근이 우연히 말한 “당구치며 자장면 먹는 맛”은 이승기의 “나 한 번도 그렇게 해본 적 없는데”가 됐고, 다시 나영석 PD의 “당구치면서 일본어 쓰면 천 원씩 벌금”이란 말에 어느새 진짜 당구를 치는 걸로 바뀌었다. 설마, 그 사이에 당구장을 어떻게 섭외해. 하지만 십여분 뒤 달려온 스태프의 한마디. “저기 모퉁이 돌아서 쭉 가면 있어요” 수십 명의 스태프들이 그들 세 명을 둘러싼 채 인천 거리를 걸었고, 도착한 당구장에서는 “MC몽이다” “나 당구치는 거 마누라가 보면 안 되는 데”라며 ‘1박 2일’ 출연자들을 맞이하는 당구장 손님들이 있었다. ‘저질 탁구’와 ‘저질 달리기’에 이은 ‘저질 당구’의 시작. 저녁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고, 당구장 아주머니가 준 요구르트가 촬영 시작 뒤 처음 먹은 음식물이었다. 배에 타면 이렇게 13시간을 보내야 하는 구나.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배가 가거도 편에 나온 그런 작은 배가 아니라 엄청나게 큰 배였다는 사실. 나영석 PD는 제주도를 거쳐 우도로 가는 이번 여행길에서 꼭 이 배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그 여객선은 말 그대로 대한민국 중년의 파라다이스였으니까. 대형 여객선 안에는 다음날 아침 한라산을 ‘등산’하기 위해 모인 수많은 중년의 남녀가 있었고, 그들은 선실 내에서 거하게 술판을 벌리거나, 춤과 노래를 하며 금요일 밤을 즐겼다. 뽕짝에 맞춰 강풍이 부는 바람에서 갑판 위에서 유럽 레이브 파티 못지 않은 춤판을 벌이는 어르신들의 모습은 별천지였다. 물론, 그래도 카메라는 돌아갔지만. 세 사람은 탑승객을 즐겁게 하기 위해 “누구 하나 바다에 빠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심하게 바람이 부는 배의 꼭대기에서 춤을 췄다. 즐거운 여행, 그리고 그 여행을 더욱 즐겁게 하는 연예인들. ‘1박 2일’이 큰 반향을 얻고 있는 것은 그들이 여행의 즐거움을 제대로 전달하는 ‘선수급’ 여행객들이기 때문은 아닐까.
여행 코스는 물론, 그들이 여행에서 겪는 일들은 모두 실제 상황이다. 하지만, 그 여행을 하는 것은 24시간 내내 사람들을 즐겁게 하려는 예능인들이다. 가까이서 지켜 본 ‘1박 2일’은, 마치 유명한 여행가가 쓴 여행기처럼 사람들에게 여행의 즐거움을 극대화시키고 있었다. 물론, 그건 선실에서 갑판으로, 다시 갑판에서 선실로 이동하며 출연자들을 쫓고, 출연자들이 말만 꺼내면 모든 것을 준비하는 스태프들의 능력 때문이기도 했지만. 덕분에, 서서히 발바닥이 저려오기 시작했다. 옆에서 스태프의 한마디. “이거 하면 살 빠져요” 선상 댄스 파티가 끝난 뒤에도 한 시간 이상 계속된 세 남자의 수다를 모두 듣고 잠을 자기 위해 객실로 들어오니 몸이 욱신거린다. 그런데 그 때 작가가 객실 문을 열고 들어온다. “내일 아침에 갑판에 나가서 조깅하거든요. 그 때 깨워드릴게요.” 하늘이시여.
배를 타고 온 제주도의 바람은 전 날보다 더욱 차가운 것 같았다. 내가 출연자도 아닌데 왜 비행기를 타고 미리 도착한 세 사람이 얄미워 보이는지. 하지만, 그들도 30분 뒤에는 야생의 상태로 돌아갔다. 풍랑주의보가 내린 제주도 바닷가에서 누가 야생이 되지 않으랴. 강호동이 “하필이면 왜 이런 날에 오셔서 고생이에요”라며 우리를 걱정한다. 그러게 말이에요. 강호동은 다음 날 ‘무릎 팍! 도사’ 촬영이 예정 돼 있었고, 다른 출연자들도 각자의 스케줄이 있는 상황. 지금은 그럭저럭 배로 여행지인 우도에 갈 수 있는 상황이라지만, 내일 아침 배가 뜬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잠시 카메라를 끄고 이야기를 할 법도 하지만, 나영석 PD는 “그냥 (풍랑주의보가 걸렸다는 사실을) 까고” 카메라가 켜진 상태에서 출연자들과 회의를 한다.
출연자들은 현실적으로 심각한 상황과 프로그램의 녹화가 동시에 진행되는 상황. 출연자들은 사전 협의 없이 카메라 앞에서 자신의 결정을 보여줘야 한다. 연예인들이 자신의 캐릭터를 중심으로 끊임없이 웃음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1박 2일’은 버라이어티 쇼다. 그러나 ‘1박 2일’의 제작방식은 오히려 정통적인 리얼리티 쇼에 가깝다. 끊임없이 돌아가는 카메라도, 예측할 수 없는 바람의 세기도 모두 진짜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인생은 복불복”이라며 프로그램을 위해 배를 타겠다고 결정하는 강호동이 주는 어떤 찡한 느낌은 ‘1박 2일’의 리얼함이 빚어내는 멋진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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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이 출연하는 리얼리티 쇼. 언제나 웃음을 줘야 하는 연예인들이 리얼리티 쇼의 현실성 안에 떨어지면서 ‘1박 2일’은 예상치 못한 순간들을 만들어낸다. 살면서 추운 것만큼 싫은 게 없다는 은지원이 우도에서 바닷가에 뛰어드는 건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이미 이승기와 이수근이 물에 한 번씩 빠진 상태에서 은지원이 빠지는 건 보통 코미디의 흐름에서는 예상하기 어려운 일. 그러나 끊임없이 그들을 쫓는 카메라 앞에서 무언가를 보여줘야 하는 연예인들은 자신에게 포커스가 집중된 순간 무엇이든 한다. 이명한 PD의 한마디. “다들 착해서 하자고 하면 다 해요.” 제작진이 슬슬 악마로 보이기 시작한다. 그래서 ‘1박 2일’은 출연자들끼리 즐겁지만, 그들 자신에게는 자신의 인기를 건 서바이벌 게임이기도 하다. 방송 시작부터 “캐릭터가 없다”며 고민하던 MC몽은 끝없이 ‘꺼리’를 만들기 위해 고민한다. 연예인 동료들에게 전화도 해보고, 과격하게 춤도 춰 본다. 반대로 확고부동한 메인 MC 강호동은 상황이 바뀔 때마다 호들갑을 떨면서 프로그램을 왁자지껄하게 만들지만, 흐름이 진행될 때는 자신이 나서기 보다는 다른 출연자들의 행동을 이끌어내는 역할을 한다. ‘허당’ 캐릭터로 어느새 강호동이 “황제님”이라고 부르게 된 이승기는 코미디에 적극적이기 보다는 강호동 옆에서 그의 말을 거드는 경우가 많고, 막내라는 입장 때문인지 그가 나서지 않아도 다른 캐릭터들이 그를 먼저 놀리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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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실제 성격과 상황에 따라 ‘1박 2일’에서의 행동이 달라지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캐릭터가 만들어진다. ‘1박 2일’은 재밌는 캐릭터가 많은 프로그램이지만, 역설적으로 반드시 캐릭터가 중요한 프로그램은 아니다. 버라이어티 쇼에서의 활약이 곧 자신들의 현실이 되는 출연자들이 자연 속에 내던져 지면, 그들은 천천히 캐릭터를 만들어낸다. 그래서 ‘1박 2일’은 리얼리티 쇼와 버라이어티 쇼의 오묘한 경계를 파고든다. 모두가 우도 바닷가에 빠진 것을 멀찍이 지켜보고 있던 MC몽은 숙소에 돌아와 뒤늦게 “나도 빠졌어야 했나”라며 걱정한다. 그리고 강호동은 그런 MC몽에게 “그럼 지금 빠져라”라며 슬슬 약을 올리더니 숙소에 있던 호스를 슬쩍 우물가에 가져다 놓는다. 아, 차라리 사약을 먹으라고 하세요, 강호동씨. 결국 스스로 호스의 물을 틀어 몸을 철철 적시는 MC몽. 이건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둘 사이에는 이 상황에 대한 어떤 합의도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결국 코미디를 만들어낸다. 어디까지가 그들의 진짜 성격인지, 쇼를 위한 계산된 코미디인지 알 수 없다. 그래서 ‘1박 2일’은 마치 만화 캐릭터가 현실에서 벌이는 코미디 같은 느낌을 준다. 모든 게 진짜인데, 캐릭터들만 만화처럼 재미있다.
연예인들을 2,3일 동안 쫓아다니며 코미디를 하도록 만드는 ‘1박 2일’의 촬영 방식은 연예인에게 만만찮은 부담감을 줄 가능성이 높다. 스태프들이 ‘협상의 달인’, ‘강호동 선수’ 등으로 표현하는 강호동이 가끔씩 “카메라만 꺼주면...”이라며 슬쩍 웃는 것은 설정이 아니다. 그리고 이것을 가능케 하는 힘은 스태프들이 보여주는 이 리얼리티 쇼 안의 쇼맨들에 대한 애정일 것이다. 촬영팀, 연출팀, 그리고 출연자들의 매니저와 코디네이터까지 많을 때는 70명에 달하는 ‘1박 2일’의 스태프들은 출연진과 헤어지는 순간까지 그들에게 집중하고, 그들을 지원하며, 그들의 행동 하나하나에 호응한다. 우도의 목장에서 출연자들이 가장 높은 곳으로 뛰어가자 한 명도 빠짐없이 우르르 달려가는 스태프들의 모습은 정말 양떼를 연상시켰다. 그리고 그건 좋은 촬영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라기 보다는 2,3주에 한 번씩 떠나는 여행에서 생긴 그들만의 즐거움 때문인 듯 했다.
물에 젖은 출연자들이 잠시 씻는 동안, 스태프들은 그들의 옷을 스스로 빨아서 햇볕에 말리고, 씻고 나온 출연자들의 몸부터 체크한다. 그리고 그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발 전에는 “가볍게 생각하자구요. 뭐 얼마나 힘들겠어요”라고 하던 사진기자가 다음날 이동 중인 차에서 핫팩에 손을 비비며 “예비군 훈련 말고 이렇게 시간 안 가는 건 처음이에요”라고 말할 정도로 힘든 ‘1박 2일’의 촬영현장에서, 그들이 웃고 떠들 수 있는 원천은 끊임없이 그들을 웃겨주는 출연진들이었다. 각본 없이 진행되는 쇼에서 끝없이 웃음을 만들어낼 수 있는 출연진들, 그리고 그들을 완벽하게 지원하면서 어느새 “우리만큼 분위기 좋은 팀도 없다”고 자부하는 스태프들. 그렇게 ‘1박 2일’은 버라이어티 쇼의 세계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들이 모여, ‘진짜’ 여행 속에서 엔돌핀으로 가득한 쇼를 만들고 있었다. 언젠가, 다시 한 번 그들의 야생 속으로 들어갈 때가 있을까. 아, 물론, 다음에는 그저 구경꾼으로 가고 싶긴 하지만.
첫댓글



사진부분만 액박 배꼽이당


저만 그렇게 보이나요

알려주




저렇게 즐거워 하다가.. 얼마나 아팠을까...............ㅜㅜ
진짜 즐거웠겠다..
마음맞는사람있으면 저렇게 여행할만 할거같다....부러워 1박2일 남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