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쿠로시오 난류가 연안으로 들어오자 - 평소 5m 안팎인 수중 시야가 탁 트여 - 극피동물 바다나리들 한가로이 유영 - 바위 전체를 뒤덮은 히드라들 장관 - 20m 바닥엔 개흙에 숨은 키조개 가득 - 암초 사이 빨간 부채꼴 산호 자태 뽐내
"박 기자 청물 들었어." 6월 중순. 평소 안면이 있던 스쿠버 다이버로부터 부산 바다에 청물이 들었다는 연락이 왔다. 청물은 쓰시마 섬에서 갈라진 쿠로시오 난류의 물 덩어리 중 일부가 다른 물과 섞이지 않은 채 우리 연안으로 유입되는 걸 말한다. 일 년에 한두 번이지만 청물이 들면 평소 5m 안팎인 부산 바다 속 수중시야가 갑자기 20m까지 '짱' 터진다. 운이 좋다면 난류에 실려 온 열대어까지 만날 수 있다. 청물을 맞이하기 위해 넓은 바다와 통해 있는 영도구 태종대 감지해변으로 향했다.
감지해변은 부산의 스쿠버 다이빙 메카라고 할만하다. 이곳에 자리한 다이빙 리조트만 십여 곳에 이르고 성수기 때는 200명이 넘는 다이버들이 바다를 즐긴다. '씨킹 스쿠버' 조영주 강사는 기자의 예고 없는 방문에 '빙그레' 웃음 짓는다. 기자와 10년 넘게 인연을 가진 자칭 '이대 나온 여자' 인 조 강사는 바다가 좋아 감지해변에 정착했다.
조 강사가 운전하는 배에 몸을 맡긴 채 감지해변 남동쪽 고래등으로 향했다. 고래등은 수면으로 돌출된 모양이 고래를 닮았다 해서 붙여진 작은 바위섬의 이름이다. 배에서 뛰어내려 물속으로 들어서자 시야가 확 트인다. 평소와 달리 한 눈에 펼쳐진 수중경관은 장엄하다 못해 신비롭기만 하다. 나침반을 보면서 태종대 절벽을 오른쪽으로 끼고 북쪽으로 향하는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바다나리 한 마리가 헤엄치고 있다.
불가사리와 같은 극피동물인 바다나리는 줄기를 가지고 고착 생활을 하는 종과 줄기 없이 이동하는 종의 두 가지로 분류된다. 줄기가 있는 부류는 몸을 바닥에 고정시킨 채 살아가는데, 이들은 100m 이상의 깊은 수심에 서식하므로 쉽게 관찰하기 어렵다. 잠수 도중 물속에서 흔히 만나는 부류는 갯고사리류라고 불리는 줄기가 없는 종이다. 갯고사리류는 아래쪽에 있는 갈고리같이 생긴 다리를 이용해서 바닥에 고착하거나 이동할 수 있다. 이들도 청물이 반가운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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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사리와 같은 극피동물인 바다나리는 줄기를 가지고 고착 생활을 하는 종과 줄기 없이 이동하는 종의 두 가지로 분류된다. 줄기가 있는 부류는 몸을 바닥에 고정시킨 채 살아가는데, 이들은 100m 이상의 깊은 수심에 서식하므로 쉽게 관찰하기 어렵다. 잠수 도중 물속에서 흔히 만나는 부류는 갯고사리류라고 불리는 줄기가 없는 종이다. 갯고사리류는 아래쪽에 있는 갈고리같이 생긴 다리를 이용해서 바닥에 고착하거나 이동할 수 있다. 이들도 청물이 반가운 걸까.
히드라 서식지를 발견한 것은 청물이 든날 감지해변에서의 큰 수확이었다.
이날 바닷속에는 평소와 달리 많은 수의 바다나리들이 팔과 가지를 펼쳤다 오므리기를 반복하면서 헤엄치고 있었다. 암초지대를 지나는데 바위 위에 자포동물에 속하는 히드라가 빼곡하게 붙어 있다. 한두 개체의 히드라야 흔하게 보지만 바위 전체를 덮을 정도의 규모는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배를 돌려 감지해변 남서쪽으로 향했다. 조 강사는 부산 바다에서 보기 힘든 키조개 서식지를 보여주겠단다. 포인트에 도착해서 20m 바닥면으로 내려갔다. 암반으로 형성된 남동쪽과 달리 바닥면의 지질이 개흙으로 덮여 있다. 평소 같으면 한치 앞도 보기 힘들겠지만 청물의 위력은 개흙에 몸을 숨긴 채 입을 내밀고 있는 키조개들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말았다. 키조개의 원산인 서해안과 견줄 수는 없겠지만 부산 앞바다에서도 키조개를 볼 수 있다는 건 멋진 경험이었다.
다음날 새벽 다시 태종대 감지해변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호형호제' 하며 지내는 박재경 강사를 찾았다. 같은 바다라도 가이드 마다 자신 있게 소개할 수 있는 포인트는 다르다. 박 강사는 감지해변 최고의 포인트로 20m부터 시작해서 수면까지 이어지는 감지해변 서쪽의 암초지대를 꼽았다. 바다 속으로 들어서자 큼직한 암초들이 군데군데 놓여 있는데 그 사이로 조류가 빠르게 흐른다. 조류는 산호 등 고착생활을 하는 바다생물들에게 플랑크톤을 실어 나르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조류가 빠른 곳에는 산호가 살고 있을 확률이 높다.
암초 사이를 살피며 지나는데 아니나 다를까 빨간부채꼴 산호가 무리지은 채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낸다. 부산 바다 곳곳에서 산호를 관찰했지만 청물을 배경으로 한 감지해변의 산호는 색깔부터가 달랐다. 산호에 너무 가까이 붙으면 긴장한 산호들이 폴립을 강장 속으로 감추어 버리므로 적당히 거리를 유지했다. 잠시 후 호기심 많은 용치놀래기 몇 마리가 산호의 화사함에 이끌린 듯 다가온다. 산호서식지를 뒤로하고 북쪽으로 향하자 수심이 조금씩 얕아지면서 해조류 군락지가 펼쳐진다.
조류에 휘감긴 해조류 사이로 참돔과 자리돔 치어들이 영역을 달리한 채 유영하고 있다. 갯바위에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와 맑은 햇살이 빚어낸 치어들의 은빛 몸짓에는 활력이 넘친다. 필리핀에서 출발하여 제주도를 거쳐 청물은 부산 연안을 스쳐 지나갔지만, 청물에 딸려온 바다생물 중 일부는 아직 부산 바다에 머물고 있는 지도 모른다.
이들이 성공적으로 정착하게 되면 부산바다에서 만날 수 있는 바다생물은 보다 다양해질 것이다. 부산은 청물로 대표되는 난류와 동해를 따라 내려오는 한류가 교차하는 지점이기에 바다환경이 더욱 풍성하고 역동적이다.
▶쿠로시오 해류
청물을 몰고 오는 쿠로시오 해류는 일본어로 흑조(黑潮), 즉 검은 조류라는 뜻이다. 난류인 따뜻한 바닷물에는 산소가 적게 녹아들어 플랑크톤 등이 서식하기 어려운 환경이 된다. 플랑크톤이 적게 산다는 것은 물속에 부유물이 적어 물이 맑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러한 이유로 부유물이 적은 난류는 맑고 짙푸르게 보인다. 그래서 적도 인근에서 발생하여 쓰시마 섬에 이르는 난류를 일본 사람들은 검푸른 물이란 뜻의 쿠로시오라 이름 지었다. 바다낚시를 즐기는 낚시꾼과 다이버들이 청물을 받아들이는 입장은 크게 다르다. 낚시꾼들은 청물이 드는 날에는 물고기가 자취를 감추어 허탕을 치기 일쑤지만, 다이버들은 오랜만에 물이 맑고 투명한데다 수온도 올라가 수중 경관을 구경하는 데 최고의 환경으로 생각한다.
공동기획 : 국제신문, 국토해양부 영남씨그랜트, 국립 한국해양대학교
청물을 배경으로 한 빨간부채꼴 산호가 화사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그 옆으로 호기심 강한 용치놀래기들이 지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