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면 봄비도 그렇고 햇빛도 그렇고
그, 이제 막 따스함을 얹은 바람도 그렇고
우리에게 와서 서성이는 것만 같다.
왜 그렇게 느껴지는 걸까.
아침도 그렇고 저녁도 그렇고 별도 그렇고
자꾸만 싫지 않은 표정으로 서성이는 것만 같다.
그 봄비처럼, 그 저녁처럼
어느 인적 뜸한 곳의 뜰에 들어가 서성이고 싶을 때가 있다.
아무 이룰 일 없는 그 걸음으로.
그러나 무엇엔가 약간은 들떠서 꽃나무들이 성글게
서 있는 꽃밭 같은 데에 들어가 서성이고 싶을 때가 있다.
......
문득 길을 걷다가도 맑게 갈무리한 뜰을 만나면
나는 그 뜰에 들어서고 싶고
그리고 그곳에서, 가던 길을 모두 마무리하고 싶고
그곳에 한없는 눈빛을 누에의 실처럼 풀어내고 싶고
바람결에 이마를 주고 싶다.
그런 후 내 옹색한 마음들을 모두,
이불 홑청을 뜯어내 속을 말리듯
가슴을 터 꺼내서는 햇볕에 말리고 싶다.
햇빛은 무수한 말들로
내, 무엇에 비할 바 없이 닳아버린 마음에
이마를 부비리라.
그러나 내가 들어서고자 했지만,
그래서 한없이 서성이고 싶었지만
하지 못한 채 지나버린 뜰은 얼마나 많았던가.
'지금도 이 한밤중에도 나는
어디 허전한 듯 비어 있는 뜰이나 꽃나무 몇 서 있는
화단 같은 데에 들어가 조용히, 낮은 숨결로 서성이고 싶다.
아무 이룰 일 없이.
왠지 내게는 그 서성이는 풍경이
나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일 것만 같다.....'
'우리들은 왜 뜰이며 꽃밭들을 가꾸는 것일까.
그곳에 우리들의 신을 모시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닐까?
그것은 가장 맑은 신전을 가꾸는 일이 아닐까?
그렇다면 그 서성임이란? 예배란 말인가?
그랬으면 좋겠다!'
글 / 장석남의 '서성임의 풍경들' 중에서
그림 / Claude Mo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