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나들이(1) - 국망봉
1. 국망봉 남쪽으로 이어지는 한북정맥, 멀리 끄트머리는 운악산이다
아름다운 너
네가 살고 있어
그곳이 아름답다
아름다운 너
네가 웃고 있어
그곳이 웃고 있다
아름다운 너
네가 지구에 살아
지구가 푸르다
―― 나태주, 「5월」
▶ 산행일시 : 2024년 5월 18일(토), 맑음, 미세먼지 나쁨
▶ 산행인원 : 5명(악수, 버들+1, 메아리, 하운)
▶ 산행코스 : 제2등산로(생수공장 갈림길,국망봉 대피소,국망봉,견치봉,안바위골,용수목)
▶ 산행거리 : 도상 12km
▶ 산행시간 : 9시간 12분(08 : 10 ~ 17 : 22)
▶ 갈 때 : 동서울터미널에서 시외버스 타고 이동으로 감
▶ 올 때 : 용수동 버스종점에서 15-5번 버스 타고 가평터미널로 가서 저녁 먹고, 택시 타고 가평역으로 가서
전철 타고 상봉역으로 옴
▶ 구간별 시간
06 : 50 – 동서울터미널
08 : 05 – 이동터미널( ~ 08 : 10), 산행시작
09 : 50 – 헬기장
10 : 45 – 국망봉 대피소
11 : 33 – 국망봉(國望峯, △1,168.2m), 점심( ~ 13 : 00)
13 : 50 – 견치봉(犬齒峰, 개이빨봉, 1,102m)
14 : 30 – 961m봉 직전 안부, 안바위골로 내림
16 : 25 – 임도
17 : 02 – 민가, 현종사
17 : 22 – 용수동 종점, 산행종료( ~ 18 : 10)
18 : 48 - 가평터미널
2. 국망봉 지도(1/50,000)
이른 아침 동서울터미널에서 설악산을 간다는 킬문 님 일행을 만났다. 설악산은 엊그제 40cm 가량의 폭설이 내렸
다. 이틀 전에 통제가 풀렸다. 아이젠과 두툼한 옷도 준비하여 간다고 한다. 한편 그들이 부럽기도 하다.
우리는 가평 이동의 국망봉을 간다. 우리들의 봄날 연중행사이기도 하다. 이 시간 사창리 가는 시외버스는 모처럼
붐빈다. 운악산, 백운산, 광덕산 등지로 간다는 여러 등산객들이 탄다.
이동터미널은 택시들도 바쁘다. 국망봉 등산로 입구인 생수공장까지 걸어간다. 거기까지 2.5km나 된다. 동네 골목
길을 지나며 울밑에 가꾼 초롱꽃, 작약, 자주달개비 등 여러 화초를 보는 것이 즐거운 눈요기다. 야산 비탈에 무리지
은 찔레꽃과 아까시의 맵도록 진한 향기에 재채기가 나오기도 한다. 이어지는 농로를 가다 고개 들어 바라보는 가리
산과 신로봉 서릉의 853m봉이 심산유곡의 준봉이다. 국망봉의 연봉 연릉은 안개구름에 가렸다.
생수공장 가기 전 계수나무 옆에 커다란 국망봉 등산안내도가 있다. 등산로로는 제1등산로와 제2등산로, 제3등산로
를 안내한다. 제1등산로는 2,000원을 내고 국망봉자연휴양림 매표소를 통과하여 광산골과 신로령, 돌풍봉(1,012m)
를 거쳐 국망봉에 오르고, 제2등산로는 장암저수지 아래를 지나 국망봉대피소를 거쳐 국망봉에 오르는 가장 짧은
거리로 가장 가파르기도 하다. 제3등산로는 제2등산로 오른쪽 지능선을 타고 1,130m봉을 올라 북진하는 등로다.
우리는 제2등산로로 간다. 등산안내로 바로 옆 풀숲에 소로가 있다. 자칫하면 놓치기 쉬워 엉뚱한 풀숲을 헤치느라
애먹는다. 작년에 그랬다. 한때 뚱딴지 밭이었던 묵밭을 지나고 수로를 만나면 수로를 따라 왼쪽으로 가야 한다.
수로 건너 곧장 가면 제3등산로 이어진다. 수로는 물이 넘칠 듯 흐른다. 수로 옆 그늘진 널찍한 풀밭에서 아침 요기
할 겸 입산주 탁주 분음한다. 메아리 님이랑은 새벽부터 서두르느라 아침을 먹지 못했다.
재네미골 계류 건너기가 조심스럽다. 약간 가파른 바윗길이다. 풀숲 헤치고 잠깐 오르면 탄탄한 등로가 나오고 장암
저수지 아래를 지나 숲속 임도를 가게 된다. 엊그제 많은 비로 오랜만에 큰물이 흐르는 재네미골 계류를 본다. 사방
댐 아래는 나이야가라 폭포 미니어처이다. 이정표가 등산로를 안내한다. 정자가 나오고 가파른 산비탈 철계단을
오른다. 국망봉 2.7km. 이정표는 0.3km마다 남은 거리를 알려준다. 큰 숨 한번 내쉬고 고쳐 잡고 박차 오른다.
하늘 가린 숲속 산기운이 선선하다. 산비둘기 구구대는 소리가 산중 적막을 더욱 적막하게 한다. 내 거친 숨은 가팔
라 코 박은 낙엽 더미를 헤집기도 하고 더러는 맨땅에 드러난 소나무 뿌리를 홀더 삼아 붙잡고 오른다. 헬기장을
지나고 한참 땀을 뺀 것 같은데 겨우 육백지점이다. 모두 모여 휴식 마치면 저마다 자기 걸음이니 홀로 가는 묵언수
행길이다. 다시는 이 길을 오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했으면서도 그만 잊어버리고 또 오곤 한다.
국망봉대피소가 반갑다. 길게 휴식한다. 남자 등산객 한 분이 휴식하고 있다. 그분은 승용차로 왔는데 제3등산로를
찾지 못해 헤매다 결국 2,000원을 내고 휴양림매표소를 통과하여 올랐다고 한다. 국망봉의 여러 등산로를 자세히
알려주었지만 지도와 나침반을 준비하지 않았다면 무용한 노릇이다.
오늘 산행의 한 목적인 애기송이풀을 볼 수 있을까 주변 풀숲을 살핀다. 국망봉 정상을 0.6km 정도 남겨놓고 왼쪽
사면 풀숲이 우선 누구의 눈에도 잘 보이는 그 서식지다.
3. 초롱꽃. 국망봉 들머리 가는 마을 고샅길에서
4. 작약
5. 자주달개비
7. 신로봉 능선의 853m봉
8. 가리산
9. 애기송이풀
10. 국망봉대피소 지나 국망봉 오르는 길
11. 큰앵초
여기던가, 저기던가? 이런, 지고 말았다. 어쩌다 한 두 송이 보이지만 저무는 봄날을 어렵사리 버티고 있다.
‘한겨레 : 온’의 2019.5.15.자 이호균의 ‘풀ㆍ꽃ㆍ나무 이야기’의 일부다.
“조선총독부에서는 1920년대부터 식민지배의 기초정보 확보를 위해 한반도의 식물을 대대적으로 채집하여 정리한
다. 당시 조선의 약용식물을 연구한 일본 학자 이시도야 츠토무(石戶谷勉)는 1936년 5월 17일 경기도 개성의 천마
산(天摩山)에서 애기송이풀을 처음으로 채집하여 일본에 보낸다. 이 표본을 기준으로 1937년 쿄토대 식물학 교수
고이즈미 겐이치(小泉源一)와 그의 제자인 오오이 지사부로(大井次三郎)가 “Pedicularis ishidoyana Koidz. &
Ohwi”라는 학명으로 정당 공표한다. 이리하여 한국특산종 애기송이풀은 비로소 출생 신고되어 세상에 빛을 보게
된다.”
종소명 이시도야(ishidoyana)는 최초 채집자 이시도야 츠토무(石戶谷勉)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서 붙인 것이고,
명명자 Koidz.와 Ohwi는 일본 식물학자 고이즈미 겐이치(小泉源一) 그의 제자 오오이 지사부로(大井次三郎)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나라 특산식물인 애기송이풀이 일본 사람 셋의 이름이라니.
“애기송이풀은 전 세계적으로 한반도 중부 이남에 분포하는 한국 고유종이다. 북한의 개성 천마산에서 최초 발견된
이래 남한에서는 전라남도 신안군에 그 분포가 처음 알려졌다. 최근 경기도 가평, 포천, 연천, 강원도 횡성, 경상북
도 영양, 충청북도 제천 등 10곳에서만 자생지가 확인되고 있다. 그러나 분포지가 극히 제한적이다. 한국 특산식물
이자 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 종인 애기송이풀은 산지 저지대의 그늘진 북사면 유량이 풍부한 계류 근처 서늘하고
습한 곳에서 주로 생육한다.”
이곳 국망봉을 오르는 0.6km가 아마 국망봉 전체 등산로의 하이라이트일 것이다. 곧추선 오르막에 설치된 핸드레
일을 자일인 듯 붙들고 오른다. 풀숲 큰앵초와 벌깨덩굴을 엎드리지 않고도 자연스레 눈맞춤한다. 이들이 없다면 이
오르막이 얼마나 힘들 것인가.
국망봉. 여러 등산객들이 올랐다. 너른 공터는 땡볕이 가득하지만 대기가 서늘하다. 봄안개인지 미세먼지인지 사방
뭇 산을 다 가리지는 못한다. 북으로는 광덕산, 회목봉, 복주산이 흐릿하고, 동으로는 석룡산과 화악산이 가깝고,
남으로는 한북정맥 장릉을 따라 그 끄트머리 운악산이 희미하고, 서로는 사향산과 관음산이 또한 가깝다.
작년의 백작약은 올해도 볼 수 있을까? 그 자리에 가본다. 수적조차 꺼리는 비탈진 북쪽 사면이다. 아무리 살펴도
보이지 않는다. 당 시인 유희이(劉希夷, 651~679?)가 읊은 시구 중 꽃과 사람이 올해는 서로 바뀐 듯하다.
年年歲歲花相似 해마다 피는 꽃은 같은데
歲歲年年人不同 해마다 그 꽃을 보는 사람은 같지 않네
매월당 김시습(梅月堂 金時習, 1435~1493)의 「개었다 비오다(乍晴乍雨)」가 내 바람의 일단이다.
이 시의 후단이다.
꽃이 피고 지는 것을, 봄이 어찌 다스릴고.
구름 가고 구름 오되, 산은 다투지 않음이라.
세상 사람들에게 말하노니, 반드시 기억해 알아 두라.
기쁨을 취하려 한들, 어디에서 평생 즐거움을 얻을 것인가를.
花門花謝春何管
雲去雲來山不爭
寄語世人須記認
取歡無處得平生
12. 애기송이풀
14. 멀리 왼쪽부터 광덕산, 회목봉, 복주산
15. 가리산
16. 삼합의 일원인 곰취
17. 중간 가운데는 백운산, 그 뒤는 백운산
18. 국망봉 정상에서
19. 참꽃마리
20. 산나물의 여왕이라는 박쥐나물
21. 안바위골 비폭
우리의 지정 쉼터로 간다. 등로 약간 비킨 바위벽 옆 숲속 공터다. 산상성찬이다. 작가 유시민이 낚시에 가서 즐겨먹
는다는 돼지목살볶음이다. 조리법이 간단하다. 김치찌개용보다 약간 더 크게 썬 목살을 팬에 살짝 볶은 다음 잘게
썬 대파를 넣어 함께 살살 볶다가 양념장을 넣고 그 물기가 없어질 때까지 볶는다. 그런데 고기 양이 너무 많았다.
두 번에 나누어 볶을 것을 5인분을 한꺼번에 볶으니 물이 흥건하다. 그래도 맛있다. 봄날 산중에서 맛있지 않은 게
있을까마는 곰취쌈에 하운 님이 가져온 양귀비주를 곁들이니 산중진미다.
생사면 누비는 일도 금세 시들해진다. 보이느니 박새고 단풍취이니 공연한 발품이다. 너덜에 채이고 절벽에 막히기
여러 번이다. 후줄근하여 주릉에 오른다. ‘길의 고마움을 아는 자는 길이 없는 데를 걸어본 자뿐이다.’라고 했다.
그러하다. 비로소 나는 듯 간다. 봉마다 갈림길이다. 왼쪽 갈림길은 용수목으로 수렴한다. 견치봉. 견치봉은 사납지
않지만 견치봉을 중심으로 그 남쪽과 북쪽능선이 개이빨처럼 사나운 암릉이다.
아무래도 이대로 물러서기는 아쉽다. 민둥산 가기 전 961m봉 직전 안부가 기로다. 왼쪽 사면이 넙데데하여 분위기
가 썩 좋아 보인다. 오룩스 맵에는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이다. 그런데 이 시도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았다. 얼마 안 가
골로 가게 되고, 그 양쪽 사면을 번갈아 쓸어내리면 되려니 생각했는데 실제는 크게 달랐다. 골짜기는 깊고 잡목은
울창하고 너덜 또한 암릉 못지않으니 등로가 나타났기 망정이지 된통 봉변을 당할 뻔했다.
처음에는 풀숲 누비는 게 사뭇 재미가 났다. 이따금 참꽃마리를 만났고 덕순이와도 동행했다. 박새 숲 지나고 골이
가까워진다. 잔 너덜이 나오고 계류는 잴잴 흐른다. 오룩스 맵에는 안바위골이다. 기시감이 든다. 지난주에 다녀온
오대산 가래터골과 매우 흡사하다. 계곡의 이끼 낀 너덜이 그렇고 계류 물살이 그렇고 계류 주변의 우거진 숲이
그렇고 걸음걸음 더듬는 계곡길이 그렇다. 그때 계류 건너려다 자연 님이 넘어졌었는데, 오늘은 계류 가까운 너덜을
내리다 영심 님이 넘어진다. 다행히 두 경우 모두 다치지는 않았다.
곳곳이 비폭(秘瀑)이고 비소(秘沼)다. 가다가 큰소리 들리면 다가가 옥계반석 들여다본다. 물이 차갑다. 알탕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산허리 도는 임도와 만난다. 이정표가 용수목 가는 길을 안내한다. 울퉁불퉁한 계곡 길의 연속
이다. 산골마을에 다다르고 등로가 풀린다. 대로를 내린다. 게을러졌다. 등로 약간 벗어난 오르막의 현종사를 들르
지 않는다. 20분 정도 가면 용수동 버스종점이다. 이곳 버스종점은 등산객들에 더없이 소중하다. 국망봉과 그 연봉,
석룡산, 화악산, 조무락골 등지 산행의 기점이고 종점이다.
오늘은 한가하다. 여느 때는 등산배낭이 대신 길게 줄서곤 했다. (15-5번)버스는 정확히 18시 10분에 출발한다.
38분 걸려 가평터미널이다. 저녁은 닭갈비다. 곰취는 아무데나 잘 어울린다. 덕순주 더하여 삼합이다. 잔 높이 들어
오늘의 무사산행을 자축한다.
24. 참꽃마리
26. 안바위골
27. 고광나무
28. 분홍아까시나무
29. 마을길 옆 지계곡
30. 함박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