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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밤에도 하나님의 손은 움직인다
출 1: 8 - 2: 10
구약 출애굽기는 우리신앙의 선조라 할 수 있는 이스라엘이 애굽백성에 의해서 고난을 당하는 장면을 赤裸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민족적으로 가장 캄캄한 밤을 만났습니다. 하나님도 그들을 외면한 듯 무정한 고난이 그들을 짓눌러도 아무런 대책이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남의 나라 애굽에서 나그네로서의 설움을 뼈저리게 경험하며 인간으로서 상상을 초월하는 고난은 그들의 밤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그 어두운 밤에도 하나님의 손은 움직여 그분의 구속의 역사는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인간의 역사를 주도 면밀하게 계획하시고 성실하게 이끄시는 분이 야훼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우리는 여기에서 깨닫게 됩니다. 역사는 우연의 결과도 아닙니다.
또 권력자들에 의해서 主導되거나 힘없는 사람들의 투쟁의 결과로 맺는 결실도 아닙니다. 오직 역사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에 의하여 이루어짐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1945년8월15일 우리 민족의 광복의 역사를 통해서도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즘 같은 도시의 밤은 환한 전등불이 밝혀져 대낮같이 밝지만 옛날 시골길을 가다보면 한치 앞도 분간하기 어려운 칠흑같이 어두운 밤이 됩니다. 먹구름에 뒤덮여 별빛도 사라지고, 작은 손전등마저도 불빛을 감추어 버리면, 거의 동물적이고 감각적으로 길을 찾아가야 할 때가 있습니다. 더듬거리며 가야 하는 것은 멀리 바라볼 수 없다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한치 앞도 분간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더더욱 힘이 듭니다.
본문에 나오는 이스라엘은 역사의 어두운 밤중에 있었습니다. 길도 보이지 않고, 끝도 보이지 않는 길을 지난 430년이나 걸어왔습니다. 그렇게 긴 기다림 가운데 살다간 많은 사람들은 절망을 안고 죽어 갔을 것입니다. 이제는 自暴自棄하면서 살아야 하는 시간, 430년의 긴 시간이 지났으니 조그만 희망의 촛불마저도 꺼져 버린 암담한 상황 가운데 서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암담함의 시간들 속에서도 하나님은 그들에게 역사하고 계셨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자손이 번성케 되는 축복이었습니다. 번성케 되는 축복은 하나님이 이 땅에 내리신 최초의 축복이었으며, 더욱 고난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는 최고의 축복이었습니다.
1)토박이들의 나그네 억압(1:8-14)
오늘 말씀은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등극하는 이야기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는 최고 권력자였습니다. 당시 사람들의 입에는 최고의 실력자로 기억되었으련만 본문은 그에 대해 상세하게 소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는 역사적으로 고증 해 본 결과 람세스 2세로서 기원전 1290년∼1224년 까지 74년 간 애굽을 통치한 자였습니다. 그는 물론 나중의 기사에서 자주 언급되지만, 계속되는 하나님의 구속 역사 가운데서 그는 명함을 내밀 만한 존재는 아니었는지, 분명한 것은 그의 이름이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새롭게 왕으로 등극하여 체제를 정비하고, 원대한 꿈과 희망을 품고 권좌에 앉았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새로운 왕으로서 권력을 휘어잡고 그의 왕권을 돈독히 하는 일을 우선했어야 했을 것입니다. 아무리 왕권이 세습되던 때였다고 하지만 왕권에 올라왔다는 것만으로도 그는 분명 행운의 사나이였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가 물려 받은 애굽은 그 당시 세계를 지배하는 강대국 이였습니다.
그러한 그를 성경은 "요셉을 알지 못하는 왕"이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먼 옛날 요셉이라는 사람을 통해서 허락하신 하나님의 신비한 역사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했던 사람이었음을 이르는 표현이라 봅니다. 아련히 옛이야기로나마 하나님의 역사 하심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한 권력자, 만 왕의 왕 되신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하는 권력자였음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그는 왕위에 오르자마자, 왕권에 위협되는 모든 세력들을 다 척결하기 시작하는 가운데, 고센 땅에 거주하는 히브리 노예들의 수가 급증하면서 굉장한 위협의 불씨가 되고 있음을 파악하게 됩니다
. 그래서 그는 히브리 노예들의 수를 줄이면서 그들의 세력을 약화시키는 굉장한 정책을 수립하게 됩니다. 마침내 나그네 이스라엘백성에게 강제노동을 시키는 정책이 시행이 됩니다. 이들에게 강제노동을 시킴으로 피곤하게 만들고 부부관계를 억제함으로서 결국 자손의 증대를 막자는 것도 되고 土木工事도 하는 一石二鳥의 성과를 거두자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동안도 참 힘이 들었지만 이제는 그 인내 수준을 넘어설 만큼 엄청난 노역들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라암셋 국고성 공사는 그 규모가 엄청나서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고되게 일해야 했습니다
. 규정도 갈수록 엄해져서 현장 감독에 의해 죽임을 당하거나 죽도록 채찍질을 당하여 거동조차 어려워지는 자가 부지기수였습니다. 여름 태풍에 시달리고, 가을 찬서리에 시달리는 들국화는 향기와 아름다움이 더해 가듯이 그들은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며, 창성해 가고 있었으니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창대케 되는 것은 최초에 인류의 조상 아담의 가정에게 주셨던 복입니다(창1:28)."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하였으니 이것은 홍수심판을 지난 노아에게 주셨던 복이었습니다
. 또 그것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약속이었는데(창12:2), 그것이 성취되고 있음을 그들은 아련히 기억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은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는 것이기에 그것은 강대국, 다스리는 자, 부요한 고용자 이집트 사람들에게 새로운 위협거리가 될 정도였으니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는 한 가지 축복만은 남겨놓고 계셨던 것입니다. 모두가 버림받은 것 같은 때도 하나님은 버리지 않으셨으며, 모두가 외면한 것 같은 시간에도 하나님은 그들을 주목하고 일하시고 계셨습니다.
품삯도 미래도 보장되지 않는 현실에서 단지 생존만이 허용된 강제노동은 인간의 자유를 제한하고 그의 기력을 소진시켜 인간으로서 존엄성마저 파괴되어 그들은 죽음의 상태에 잠겨 버렸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12절을 보면 "그러나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식하고 昌盛하니" 이 말은 억압자가 약자를 억압하는 것에 비례하여 하나님은 약자에게 그 만큼의 보상을 해준다는 말입니다. 죽음만을 기다리는 고난의 현장에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이시여 고난의 현실보다 그 이면의 축복을 간파해내는 신앙의 태도와 믿음의 눈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이 현실은 우연히 당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이 창세기 15:13절에서 예언된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성도의 고난은 하나님의 계획 속의 일환일 수 있습니다.
2) 그런 와중에도 하나님을 두려워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1:15-22)
설상가상이라고 할 것인가? 갈수록 문제는 어려워져 이제는 남자아이가 태어나면 모두 죽이라는 왕의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그 힘든 노역에도, 먹고 싶은 것이 있어도 꾹 꾹 참아내며 열 달을 뱃속에 품고 키운 내 핏줄인데 어떻게 그 새 생명을 죽인다는 말인가? 그러나 무지막지한 사람들은 이제 산파들에게 嚴命을 내렸습니다. 사내아이는 태어나기 전에 죽이라는 참으로 잔인한 명령이였습니다.
고센 땅 지역을 담당하는 산파 십보라와 부아는 참 좋은 사람들이었지만 왕의 엄명 앞에서는 과연 어떻게 할 도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참 다행한 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17절을 보면"그러나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을 어기고 남자를 살린지라"하였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순교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었음을 보여 줍니다. 그들은 생명의 권한을 가지고 있는 왕을 두려워하지 않고 진정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 그들에게 왕의 위협을 적절하게 벗어날 수 있는 지혜를 덧입혀 주신 것입니다. 성경은 왕의 이름은 기록하지 않으면서도 그들의 이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최고 권력자의 이름은 기억하지 않아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의 이름은 기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역사에는 이렇게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외하는 사람들의 이름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의 수가 많은데 두 명의 산파들만 언급되는 것은 이들이 모든 산파들의 대표이면서 관리자였을 것입니다. 산파는 당시 몇 안 되는 여성이할 수 있는 직업 중에 하나였으며 상당히 존경받는 직업이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길은 둘 중에 하나가 죽어야하는 길이 아니라 둘 모두가 사는 길입니다. 잠언19:23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사람으로 생명에 이르게 하는 것이라 경외하는 자는 족하게 지내고 재앙을 만나지 아니하느니라" 하였습니다.
3)계속되는 하나님의 역사(2:1-10)
십보라와 부아의 용기와 슬기에 낙담한 이 이름 없는 군주는 이제 그의 모든 백성들에게 이 남아학살에 참여할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22절). 이러한 악한정책이 자행되고 있는 중에 아므람과 오게벳 사이에 사내아이가 태어난 것입니다. 그 아이는 어떠한 모습인가를 "아들을 낳아 준수함을 보고"에서 잘 알 수 있습니다. '준수하다'말은 히브리어 '토브'( )의 해석입니다. 이 낱말은 '좋다', '아름답다' 또는 '튼튼한', '건강한'이라는 뜻입니다. 모세가 '토브'하다는 말은 모세가 준수하다는 것뿐만 아니라 맡은 일을 잘 수행할 수 있는 목적에 합당한 자임을 드러내준다고 합니다. 이 단어에 근거하여 랍비전승은 부모가 지어준 모세의 이름은 '토비아'였을 것이라고 합니다.(차준희)
이러한 악이 자행되고 있는 동안에도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을 수행해 가는 사람들은 여인들이었는데,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과 누이 미리암, 그리고 바로의 공주이었습니다. 대제국의 군주였고, 수많은 생명들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는 권력자였으나 바로가 어찌할 수 없었던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히11:38). 여전히 위험은 있지만 하나님은 그 어두움의 시간에 한 아이를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 출생 당시부터 죽음의 위협을 받는 밤에 태어난 베들레헴의 한 아이의 탄생으로 온 인류에게 빛이 비취었는데, 노예로 살던 고센 땅 한 켠에서 태어난 한 아이로 인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어두운 밤에 한 줄기 빛을 비추고 계셨습니다. 幼兒 虐殺令 때문에 그는 갈대상자에 넣어져 나일강에 버려졌으나 하나님의 손길은 그를 버리지 않으시고, 살기 등등한 학살령이 내려진 그 심장부에서 하나님의 사람을 키우고 계셨습니다. 그의 태어남과 생명보존과 자라감이 어찌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진행되고 있었다고 하지 않겠습니까? 어두운 밤에도 하나님의 손은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결론입니다.
아무리 어두운 밤이라도 하나님의 손은 일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도 어두움의 시간에 쓰임 받을 사람이 누구이겠습니까? 권력자를 최고로 삼는 이 때에 하나님 앞에서 진정으로 존귀한 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직 하나님밖에 두려워할 줄 모르는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아무리 어두운 역사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손은 여전히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리고 계심을 믿고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의지하시기를 바랍니다
준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출1: 8 - 2: 10
요즘 같은 도시에 환한 불빛으로 밝혀져 있지만 옛날 시골길은 한치도 앞을 볼 수 없는 칠흑 같은 어두운 밤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는 어두운 밤이 있었습니다 400여년 간의 애굽의 종살이가 자포자기 할 수밖에 없는 어두운 밤이었습니다. 희망의 빛이라고는 전혀 없는 암담한 생활이 430년이나 기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암담한 현실에서도 구원을 하나님은 준비하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버려진 것 같아도 이스라엘은 자손이 번성하였고 하나님은 조용히 새로운 역사를 준하고 계셨습니다.
1.학대 중에도 준비하시는 하나님(8-14)
요셉이후에 시간이 많이 지났음을 증거하는 말씀은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라고 하였습니다. 요셉이라는 사람을 통하여 역사하신 신비한 하나님의 역사를 알지 못하는 권력자가 애굽을 다스리는 시기였습니다.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 와서 살게된 것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만 왕의 왕이신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하는 왕이며 자기 뜻대로 나라는 다스리는 왕이라는 말입니다. 그가 아멘호텝1세나 토투모세1세일 것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민족은 인구는 증가하고 큰 위협이 되었습니다. 400여년이나 그들의 종으로 부려먹었지만 애굽인은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이 많아지자 만약에 전쟁이 나면 대적과 합세하여 자기들을 대적일 되지만 않을 까 염려가 생겨났습니다. 그렇다고 다 죽여 없이할 수 도 없으니 지혜로운 방법으로 그들을 학대하기로 결정한 것이 그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서 노역을 시키기로 결정을 하였습니다. 학대함으로 번성을 억제하려는 것입니다.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는 일을 동원하였습니다. 거대한 성을 건축하기 위하여 흙이기기와 벽돌 굽기와 농사에 동원하였습니다. 사막과 같은 땅을 개간하여 농토로 만든 일입니다. 어떻게 하면 그들의 힘을 약하게 만들 까를 궁리한 것입니다. 채찍질하고 엄청난 노역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본문에 보면 그들은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고 창성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가을 찬 서리에 시달리는 들국화는 향기와 아름다운을 더 해가는 것입니다.
성도가 세상에 살면서 의롭게 살려면 고난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핍박을 받으면 받을수록 더욱 빛이 나는 것입니다. 기독교역사의 전성기는 좋은 시절이 아니라 무서운 핍박을 당할 박해 시기였습니다. 그때였습니다. 로마가 10대에 걸친 학정과 기독교 말살정책을 펼 때는 생명이 역사하였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고난 중에서도 향기를 드러내야 합니다. 꽃잎은 상처를 입을 더 멀리 향기나 날아간다고 합니다. 미국의 서해안에서 동해안으로 물고기를 운반하던 청년이 있었습니다. 2주일이나 차량으로 운반하는 동안에 다 죽고 말았습니다. 이유를 연구한 결과 바다에는 서로 먹고 먹히는 생존경쟁속에 살다가 너무나 과잉보호를 받는 것을 알고 수족관에 낙지를 한 마리 넣었습니다. 다리를 뻗어 잡으려하면 위험을 피해 움직여 도망을 다녔습니다. 2주일이 지나도 죽지 않고 생명을 이어갔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이 고난을 통해 연단하시고 버리지 않으시고 번성하게 하셨습니다.
2.위기 중에 준비된 사람(15-22)
이렇게 노역을 시켜도 아이를 잘 나서 인구가 점점 번성하자 구체적인 방법으로 남자아이를 낳으면 다 죽이라는 명령이 떨어진 것입니다. 이것은 인구말살 정책입니다. 동물보다 더 잔인하게 취급하였습니다. 산파는 십부라와 부아라는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왕의 명령을 어기고 남자아이들을 죽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왕의 명령을 어기면 죽음입니다. 그들은 신의 대리자로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신의 대리자로 자처하는 바로 왕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순교적인 신앙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이야말로 히11장에 나타난 세상이 감당하지 못할 사람들입니다.
왕은 산파를 불렀습니다. 왜 명령을 듣지 않고 남자아이들을 살렸느냐 산파가 바로에게 대답하되 히브리 여인은 애굽 여인과 같지 아니하고 건장하여 산파가 그들에게 이르기 전에 해산하였더이다 그것은 사실이며 지혜로운 대답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산파들에게 은혜를 베풀었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지혜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점점 왕성하여지고 그 산파들에게 은혜를 주셨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선대한자는 하나님이 선대한다는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여리고 성에 잠입했던 정탐꾼을 살려준 기생 라합과 그 가족을 구원하신 것은 그것을 증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이번에는 더 적극적으로 아이를 낳으면 남자는 강에 던지고 여자만 살리라는 것입니다. 이 명령은 산파에게 내려진 명령이 아니라 모든 국민에게 내려진 구체적인 살해명령이 떨어진 것입니다. 사단의 역사는 한가지가 실패하면 그것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더 적극적으로 역사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택함 받은 백성의 신음소리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구원을 준비를 활발하게 움직이시고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계셨습니다.
3.구원을 위하여 준비된 사람들(2:1-10)
본문은 모세가 태어난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데 아들을 낳으면 하수에 던지라는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전 국민을 상대로 유아학살에 참여하도록 권고하였습니다. 그때 태어난 아이가 모세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준수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가 어두움의 세상에 민족을 구원할 지도자로 태어난 것입니다. 그가 죽을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그를 위하여 준비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의 어머니가 석달을 숨겼다가 더 이상 감추어 기를 수가 없게 되자 갈대상자를 만들어 역청을 발라 새지 않게 하여 나일강에 띄워 보낸 것입니다. 그때 두 번째 준비된 사람인 바로의 공주가 목욕하러 나왔다가 우는 아이를 보고 히브리 아이인줄 알고 불쌍히 여기며 히브리여인 중에 유모를 불러오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투트모스 1세는 아들이 없었고 그의 딸 핫셉수트와 배다른 형제 투트모스 2세와 결혼을 시켜 왕위를 계승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아들이 없었습니다. 아들이 없으면 왕위를 잇지 못합니다. 이런 와중에 강에서 건진 것은 그에게 큰 행운이었습니다.
드디어 그를 낳은 어머니가 그를 기르는 유모를 뽑혀 아이를 양육하게 하였습니다. 모세는 애굽의 왕자가 되었고 그의 어머니 오게벳은 자기 아들을 기르며 삯을 받는 축복을 받게된 것입니다. 그가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 되어 애굽의 왕궁에 들어가게 되었고 애굽의 학술을 배우게 되었고 이스라엘 민족을 430년의 종살이에서 구원을 준비된 하나님의 일꾼이 된 것입니다.
어두운 밤에도 하나님은 일하십니다. 역사의 캄캄한 밤에도 하나님은 역사하고 계십니다. 눈에 희망이 보이지 않는 다고 하여도 절망하지 마세요 암담하고 어두운 현실에도 지금도 하나님은 준비된 일꾼을 양육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을 준비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시대를 책임질 준비된 일꾼입니다. 준비된 일꾼은 역사의 책임을 다하여야 합니다. 모세는 죄악의 낙보다 하나님의 백성과 고난 받는 일을 선택했던 하나님의 일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하면서 묵묵히 기다리는 믿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