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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 아래 태어난 인간들의 삶과 죽음
창 23 : 1 – 20
세상에 태어난 사람에겐 각자의 삶이 주어지는데 그 인생의 무대는 이 세상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하나님이 창조하여 주신 처음 세계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처음 세계는 탄식하며 눈물 흘리는 세상이 아니었습니다.
죄가 없음으로 사망이나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일이 없었고 모든 것이 풍성함으로 의와 평강과 희락이 넘치는 아름답고 풍성한 세계였습니다.
1,그런데 인류를 대표한 아담이 생명언약을 깨뜨림으로 죄가 세상에 들어와 저주를 받음으로 좋은 것을 다 잃어버리고 좋지 않은 것들이 나타남으로 고통하는 세계가 되었습니다.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도 파괴되고 자연의 관계도 파괴되었습니다. 동물과 동물들의 관계도 파괴되고 약육강식의 세계가 되어 모든 피조물이 탄식하며 썩어짐의 종노릇 하는 것입니다.
통치권도 마귀에게 넘겨줌으로 죽음의 세력을 가진 마귀가 이 세상 임금이 되었고
죄를 가진 인간은 마귀의 종노릇하며 수고의 땀을 흘리며 살다가 죽는 것입니다.
그런데 죽음은 빈부귀천이나 남녀노소를 차별하지 않습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세상을 떠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죽음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2,그렇지만 인간에게 소망이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죄로 나타난 모든 것을 제거하고 다시 회복시켜 의와 평강과 희락을 누리게 하실 여자의 후손을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이 여자의 후손이 오시는 줄기로 아브라함이 은혜를 입어 이삭을 낳았고 모리아 산에서 이삭을 대신 하여 드린 어린 양을 통해 메시아의 구원사역을 계시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님은 우리 죄를 구속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부활하심으로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취하시고 하나님보좌 우편에 좌정하셨습니다.
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죄와 사망에서 해방된 모든 성도들은 예수님께서 공중에 강림하실 때 영광스런 몸으로 부활하여 아버지나라를 상속받고 영생을 누리는 것입니다.
3,그래서 예수님이 부활승천하신 이후에 성도들의 죽음은 저주가 아니라 복이 되었습니다.
모든 죄 값을 영원히 갚아주심으로 죄로 인한 영원한 죽음도 없고 형벌도 없기 때문에 성도에게 있어 죽음은 두려움과 공포가 아니라 영원한 기쁨과 행복이 되었습니다.
마치 제대하는 군인이 고향집으로 돌아가 즐겁게 부모형제를 만나는 것처럼 죽음을 통해 천국에 들어가 하나님과 믿음의 형제들을 만나 부활할 때까지 안식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불신자의 죽음은 악한 죄를 짓고 감옥에 들어가 형벌을 받는 것과 같기 때문에 살아있을 때 예수님을 믿고 죄를 용서받지 않으면 유황불 못에서 영벌을 받습니다.
4,인간의 죽음에는 3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죽음은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진 영적죽음으로 영이 죽은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처음 죄를 지었을 때 죽지 않고 살아 있었던 것은 영이 죽었기 때문입니다.
둘째 죽음은 영혼과 육신이 분리되는 죽음입니다.
영혼이 육신은 떠남으로 육신은 흙으로 돌아가고 영혼은 하늘낙원이나 음부로 들어갑니다.
셋째 죽음은 살아서 죄를 용서받지 못하고 죽으면 그 영혼은 음부에 갇혀 있다가 백보좌 심판 때 부활하여 유죄판결을 받고 유황불 못에서 영벌을 받는데 이것이 둘째 사망입니다.
이러한 인간의 죽음은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고 하셨기 때문에 .... 죽는 것이고
죄의 삯은 사망(롬6:23)이기에 ......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죽음 이후에는 심판이 있기 때문에 .. 죄가 있으면 영원한 형벌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살아있을 때 예수님을 믿어야 죄를 용서받기 때문에 교회와 성도는 복음을 전해야 하고 복음을 들은 인간들은 자기 죄를 인정하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해야 합니다.
5,1절에 사라가 127세에 죽었는데 그녀의 인생과 삶은 아브라함과 결혼함으로 한 몸이 되었고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올 때 함께 들어와서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사라가 하나님 앞에 실수한 것이 성경에 4번 기록되었는데 ....
아브라함이 기근으로 인해 애굽으로 내려갈 때 예쁜 사라 때문에 죽을까봐 아내가 아니고 누이라 부르자고 했을 때 사라는 거절하지 않고 동조함으로 어려움을 당했는데 또 이런 일이 24년이 되었을 때 동일하게 일어났는데 사라는 남편을 혼내지 않고 동조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사라의 큰 실수는 아이를 낳을 수 없게 되자 자기 여종 하갈을 남편에게 주어 이스마엘을 낳게한 사건이고 89세 때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찾아와서 내년 이맘 대에 내 아내에게 아들이 있으리라고 했는데 이 말을 들은 사라가 아멘하지 않고 속으로 웃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아들에 대한 확신을 주셨고 사라는 회개하고 자기가 아들을 낳을 것을 굳게 믿음으로 사라는 아들을 잉태하여 90세에 이삭을 낳았습니다.
사라는 항상 이삭을 보면서 웃었고 기쁨으로 하늘 본향을 사모하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살다가 127세에 하나님 품에 안김으로 사라의 죽음은 복된 죽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사라의 믿음을 칭찬하고 있습니다. (벧전3:6)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순종한 것 같이 너희는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함으로 그의 딸이 될 것이니라.
히11:11-12.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가 많아 단산하였으나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알았음이라 이러므로 죽은 자와 같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은 후손이 생육하였느니라.
6,아브라함은 함께 동거 동락했던 사라가 죽자 슬피 울며 애통했습니다.
이것이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보는 인간들의 모습니다. 특히 가족들의 슬픔과 애통은 그동안 맺어온 사랑과 정, 잘해주지 못한 회한으로 슬퍼하며 애통하지만 이러한 슬픔과 애통은 믿는 지와 불신자가 전혀 다른 것입니다.
불신자들은 죽음을 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절망적 슬픔과 애통으로 오열하지만 믿는 자들은 죽은 자들의 소망을 알고 어디에 갔는지를 알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그간 맺어온 사랑과 정, 잘못한 것으로 인해 잠시 슬퍼할 수 있지만 그것으로 끝내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주님이 부활승천 하신 이후부터 주 안에서 죽는 성도는 죽는 순간 그 영혼은 천사들에 이끌려 셋째하늘에 있는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 부활하실 때가지 구원의 은혜를 감사하며 기뻐하며 찬송하며 안식을 누리기 때문입니다.
그곳이 하나님 보좌가 있는 하늘본향이요 영광스런 아버지 집이요 우리의 처소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도 그곳에서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이 땅에 오셨고 아버지 뜻을 다 이루신 후에 다시 올라가신 곳도 그곳이고 승리한 성도들도 그곳에 다 있습니다.
히12:22-24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 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하늘에 기록된 장자들의 모임과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하게 된 의인의 영들과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나은 것을 말하는 뿌린 피니라. 그래서 예수님 안에서 믿음으로 살다가 죽은 성도들은 다 복된 것입니다.
7,사람의 육신은 흙로 만든 영혼의 집이기에 영혼이 몸안에 있을 때만 영혼의 뜻을 나타내는 활동하다가 영혼이 떠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음으로 무덤에 묻혀 흙으로 돌아갑니다.
그래서 사라의 몸도 흙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장사지낼 묘지가 없음으로 아브라함은 헷 사람들이 모여 있는 성문으로 가서 장사할 땅을 겸손히 구했는데 이 일을 통해 아브라함의 삶과 인생을 알 수 있고 어떤 영향력을 나타내며 살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헷 사람들에게 자기를 나그네요 거류민이라고 고백했습니다.
나그네는 고향이나 고국을 떠나 사는 자를 가리키며 우거한 자는 낯설고 정이 들지 않는 곳에 체류하는 자인데 히브리서에서는 나그네와 외국인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샘족인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갈대아 땅을 떠나 함족이 사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타향이었고 나그네와 외국인이었습니다.
그래서 믿는 신이 달랐고 외모와 언어가 달랐고 사는 방식이 달랐습니다.
이런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수많은 후손과 가나안 땅을 주겠다고 약속하심으로 아브라함은 그 때를 믿음으로 바라보며 나그내와 거류민으로 살았던 것입니다. 이미 좋은 땅들은 원주민들이 살았기 때문에 이곳 저곳을 옮겨 다니며 살아야 했고 부당한 일도 당했지만 여호와의 말씀에 따라 의와 공도를 행하며 살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아브라함과 함께하여 복을 주심으로 그의 공동체는 창대케 되었습니다.
그래서 얼마든지 땅을 사고 좋은 집을 짓고 평안히 살 수 있었지만 하늘 본향을 바라보고 가는 곳마다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나그네와 거류민으로 산 것입니다.
히11:13-14.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8,그럼에도 큰 세력을 가진 헷 사람들이 아브라함을 내 주여라고 했고 우리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방백이라고 했고 재판관처럼 성문위에 앉았던 에브론도 내 주여 라고 불렀습니다.
주여는 사람을 존경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방백은 하나님께서 높은 자리에 임명한 자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선지자가 되어 언약을 받았고 하나님이 함께하심으로 복을 받아 수천명을 거느린 공동체의 수장이 되었지만 항상 겸손했고 나그네와 이웃을 돌아보며 의와 공도를 행함으로 내가 섬기는 하나님을 드러내 헷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친 것입니다. 헷 사람들도 이런 아브라함을 무시하지 않고 존경하여 주여 라고 불렀고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세우신 하나님의 방백으로 인정하며 섬겼던 것입니다.
9,이런 아브라함이 사라의 매장지를 구하자, 자기들의 매장지 중에 좋은 곳을 택하여 장사지내라고 했지만 아브라함은 그렇게 하지 않고 에브론의 막벨라 굴을 구했습니다.
9절. 그가 그의 밭머리에 있는 그의 막벨라 굴을 내게 주도록 하되 충분한 대가를 받고 그 굴을 내게 주어 당신들 중에서 매장할 소유지가 되게 하기를 원하노라 하매
이 말을 들은 에브론은 내 주여 하면서 그 굴과 밭을 그냥 주겠다고 했지만 아브라함은 그렇게 하지 않고 정당하게 은 사백세겔을 주고 그 땅을 소유함으로 그가 죽은 후에도 문제가 되지 않고 자손들의 매장지가 되었던 것입니다. 17-18절 마므레 앞 막벨라에 있는 에브론의 밭 곧 그밭과 거기에 속한 굴과 그 밭과 그 주위에 둘린 모든 나무가 성 문에 들어온 모든 헷 족속이 보는 데서 아브라함의 소유로 확정된지라
10,여기서 우리는 아브라함이 장사지낼 매장지를 사고자 했던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아브라함이 사라의 삶과 죽음을 귀하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성도의 죽음을 귀하게 여기기 때문에 아브라함도 사라의 죽음을 귀하게 여겼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믿음으로 살아온 하나님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헷 사람들은 자기들의 매장지 중에서 좋은 곳을 골라 매장하라고 했지만 아브라함은 사라의 시체를 이방인들의 시체와 함께 묻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구별되고 깨끗한 무덤에 묻히길 원했기 때문에 막벨라 굴을 사서 매장한 것입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자손들에게 주신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반드시 자기 후손들이 그 땅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아 살게 될 것을 굳게 믿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부요로 얼마든지 많은 땅을 사고 호화로운 집을 지으며 살 수 있었지만 지금까지 땅 한 평사지 않고 장막에 거하며 나그네로 살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라가 죽자 메장지가 없음으로 막벨라 굴을 사서 사라를 장사지내고, 집안의 매장지로 삼은 것은 그의 후손들도 하나님의 약속대로 반드시 이 땅을 차지하게 될 것을 믿고 그 약속을 잊어버리지 않고 기억하도록 그 땅을 증표로 산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도 그곳에 묻히고, 이삭과 리브가도 그 땅에 살다가 그곳에 묻혔습니다.
야곱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고센 땅으로 내려가 살다가 죽었지만 그곳에 묻도록 유언함으로 그 굴에 묻혔고, 요셉도 믿음으로 유언을 했습니다. 창50:25. 하나님이 반드시 당신들을 돌보시리니 당신들은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그래서 요셉의 유골도 이스라엘이 출애굽 할 때 가지고 나와 그곳에 묻혔고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통해 그 땅을 기업으로 주심으로 아브라함의 후손들의 땅이 되었던 것입니다. 수21:43.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사 주리라 하신 온 땅을 이와 같이 이스라엘에게 다 주셨으므로 그들이 그것을 차지하여 거기에 거주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시고 이스라엘에게 주신 땅은 새 언약 백성들에게 주실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그림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동일한 뜻을 가진 여호수아가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약속에 땅에 들어가 그 땅을 기업으로 주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도 영광스럽게 다시 오셔서 성도들을 부활시키고 변화시켜 공중으로 끌어 올린다음, 불의한 세상을 심판하시고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면 만물이 새롭게 됩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의 후손인 모든 성도들을 이끌고 새 땅으로 내려와 그 땅을 기업으로 상속받고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동안 왕 노릇하다가 영생을 누립니다.
사11:6-9절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그래서 주 안에서 살다가 죽는 자들이 복된 것임을 믿으시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