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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여행 장두이 문화국장(연극배우)
체코 프라하에서 50마일 ‘Caslav’에서 태어난 미술과 건축을 전공한 세계 최고 최상의 세트 디자이너, 무대미술가.
700편에 가까운 연극, 오페라 등에 무대미술의 족적(足跡)을 역사에 남긴 巨木.
미국 권위의 USITT(United States Institute for Theater Technology)에서 최고 무대미술가상을 받다.
프랑스에서 문학과 전 예술분야에서 중요한 공헌을 인정해서 수여하는 ‘슈발리에’와 ‘레지옹 도뇌르’ 두 개의 훈장을 받다.
영국 ‘로얄 예술대학’과 미국 ‘웨스턴 미시간대학’에서 명예 박사학위를 받다.
‘Josef Svoboda
1920년 차슬라프에서 태어나 2002년 프라하에서 사망한 세계 연극무대미술부문 최고의 신격화로 인정되는 ‘Josef Svoboda
가 그 장본인이다!’
연극, 뮤지컬, 오페라, 무용, 콘서트, 퍼포먼스 등 무대에 회화적, 건축적 작업으로 작품의 입체화를 꾀하며, 보는 관객들에게 단순한 묘사로서의 도움이 아닌, 또 다른 차원의 공간으로 감각과 감성 그리고 상징과 은유, 사색(思索)의 창을 열어주는 무대미술가는 무대 위 최고의 설치미술적 ‘비주얼 아티스트’다. 요즈음 AI의 차용(借用)으로 거대화면에 채워진 무대 배경이 아닌, 순수 [컨셉~디자인~실제 手작업]으로 마무리하는 무대미술이야말로 무대의 핵심적 주요부문인 것!
사진: 스보보다 무대1
지금도 세계 곳곳의 무대를 디자인해서 조형하고 치장하는 무대미술가들 가운데, 독보적인 아티스트로 거침없이 거론되는 ‘Josef Svoboda’는 예술의 도시 프라하 'Central School of Housing'에서 건축을 먼저 수학(修學)한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그는 연극과 디자인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프라하 음악원에서 시노그래피(Scenography/무대 디자인의 뜻)를 본격적으로 공부하고, 응용미술 아카데미에서 건축을 공부하기 시작, 본격적인 무대미술의 경지를 터득한다.
평론가들이 그의 작품들에 대한 찬사(讚辭)들을 모아본다.
‘사실적인 연극무대에 反사실주의 무대로, 5차원의 상상을 채워주었다.’
‘非자연주의를 문학이 아닌 실제 무대에 활짝 열어준 아티스트다.’
‘무대 디자인을 넘어 총체적이며 건축적인 무대 입체화를 완성했다.’
사진: 스보보다 무대2
‘조셉 스보보다’는 자신을 무대 디자이너라기 보다는 ‘무대 시나리오작가’라고 말한 적이 있다. 역사적으로 서구에서 무대미술 혹은 무대장치에 대한 최초의 언급은 고대 그리스 연극에 대해 거론한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詩學이다. 그는 무대 위에 배우들 못지않게 중요한 무대미술에 대해 언급하며 크레딧을 준 것이다. 이에 반해 동양은 전통적으로 인도, 중국, 일본, 인도네시아 그리고 우리 신극(新劇) 이전의 구극전통극(舊劇傳統劇)도 무대 미술이나 장치에 대해 큰 몫을 차지하거나 역사적 변화는 거의 전무하다.
그러나 서구 연극은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로마시대 그리고 르네상스를 거쳐 엘리자베드 시대의 낭만주의 연극, 사실주의, 자연주의 그리고 현대 연극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무대미술은 연극의 시대사조(時代思潮)와 더불어, 변천과 발전을 거듭했고, 공연의 중요한 핵심요소로 이어져 온 것이다.
사진: 스보보다 무대3
1948년 ‘죠셉 스보보다’는 체코 국립극장 무대디자이너로 발탁되어 30년 이상 재직한다. 그러나 국제적으로 그를 세상에 알리게 된 건, 1958년 4월 17일부터 10월 19일까지 열렸던 ‘브뤼셀 엑스포 58’이다. Alfred와 Emil 형제 연출과 함께 'Laterna Magika'와 'Polykran'관을 당시로선 충격적인 ‘멀티미디어 설치작품’ 형식으로 디자인한 것. 플라스틱과 유압장치의 도입 그리고 레이저를 사용한 공간은 당시 환상의 디자인이었다.
사진: 스보보다 무대4
지금도 그의 무대디자인을 펴낸 책들에 실려 있지만, 그의 대표작들은 ‘Insect Comedy(1946년 체코 국립극장)’, ‘Rusalka(1958년 베니스에 있는 La Fenice극장)’, ‘오페라 Carmen(1972년 뉴욕 메트로폴리탄오페라하우스)’, ‘The Firebird(1972년 코펜하겐 왕립 Danish극장)’, ‘Jumpers(1974년 케네디 센터극장)’ 등등.... 각 작품의 컨셉과 극장에 걸맞게 디자인 된, 최고의 비주얼 무대장치였다.
사진: 스보보다 무대5
근.현대에 이르러 서구 연극사에서 연극의 혁신적 인물들이 있으니, 새로운 개념의 조명과 무대디자인을 이끈, 영국의 Edward Gordon Craig(1872-1966)와 스위스의 Adolphe Appia(1862-1928), 그리고 독일의 토탈음악공연을 주창한 오페라 작곡가 Richard Wagner(1813-1883), 독일의 다큐멘터리 서사극론자(敍事劇論者) Erwin Piscator 등이 거론되는데, 그 다음세대 연극무대의 혁신적인 인물은 ‘조셉 스보보다’가 당연히 그 뒤를 잇는다고 할 수 있겠다.
사진: 스보보다 무대9
1992년 30년 이상 활동했던 체코국립극단을 나와, 1년 후, 체코의 ‘Laterna Magika’극장 예술감독으로 자리를 옮겨, 많은 작품에 헌신적인 일을 담당한 그는 2002년 4월 15일 사망했다.
그에 관한 책들, ‘The Scenography of Josef Svoboda/웨슬리안 대학 출판사 1974)’, ‘The Secret of Theatrical Space/Applause 연극서적 출판사’ 등이 지금도 세계 연극계에 널리 읽혀지고 있다.
사진: 스보보다 무대10
무대미술계에 ‘달리’나 ‘피카소’ 같은 존재와 버금가는 'Josef Svoboda'는 체코 무대는 물론, 독일, 미국, 프랑스, 스페인, 네델란드, 노르웨이, 라트비아, 스웨덴, 폴란드, 이스라엘, 벨기에 등의 무대에 무대미술의 새로운 획기적인 ‘열린 상상’의 공간을 구현하고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의 천재적인 구상과 실제 작업의 영향은 지금도 많은 무대미술 뿐 아니라 건축, 설치미술 분야에 이르기까지 많은 아티스트들과 디자이너들에게 계속 이어지고 있다.
사진: 스보보다 무대11
‘조셉 스보보다’의 어록 가운데 필자의 가슴에 맴도는 말 :
“모든 예술작품은 그 속에서 생명의 신비와 비밀을 엿보게 해야 한다.”
“무대미술 예술가들은 작가와 연출가와 동등한 조건으로 협력하는 아티스트지 노동자가 아니다.”
한때 우리나라에도 조영래, 박석인 선생들 같은 미술과 조각 그리고 디자인과 실제 목수 수작업을 이해한 무대미술가들이 있었다.
사진: 스보보다 무대12
냉혈한 AI 시대....
보다 人性과 靈魂이 묻어난 무대가 그립기도 하다.
사진: 스보보다 무대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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