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라! 이대로 피앙 함 가 보자~!”
끝없이 펼쳐진 푸른바다. 망망대해를 향해 노 젓는 철이형의 목소리가 들떠있다. 우리를 부르는 소리에 옆에서 있던 현실주의자 아낙들.
“거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예가 어딘줄 아나?”, “철이씨, 여기서 평양까지 가려면 열흘은 가야 할 거예요.”하하하… 모두가 한바탕 웃는다.
# 여름바캉스
‘위아모’가족들이 오랜만에 모였다. 이번 모임은 장장 2박 3일의 여정이다. 윗동네 6세대, 11명, 아랫동네 3세대 7명. 가족들 총동원해서 충남 태안으로 여름바캉스를 온 것이다.
“동갑이도 간?”
동갑이는 철이형과 국이형이다. 둘다 쥐띠이며 평양 출신이다. 이들은 서로 비슷한 공통점이 많다. 고향에 아내와 딸이 있는 것도, 군대를 제대하고 외화벌이를 하러 다른 지역으로 갔다가 UN을 거쳐 한국에 들어온 것도 같다.
어린시절 비슷한 동네에서 같은 문화를 경험해서 그런지, 이 둘은 처음 대면한 날부터 말이 잘 통했다. 이들옆에서 가만히 이야기를 듣노라면, 마치 어린시절부터 둘이 친구였다는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사실 둘은 나이 50이 넘어서 고향과는 머나먼 타지, 서울에서 처음 만난 사이이다.
“형, 철이형은 제일 먼저 간다고 했어요.”, “기래? 고럼 나도 가야디!”
“국아 정목사가 하는 여름바캉스인지 몬지 나도 껴주라! 나 답답해서 미치겠다. 나이 많은 사람들하고 있으려니, 몸이 쑤셔서. 이번 여름엔 나도 바람 좀 쐬야겠다.”
“정목사 최사장도 가도 된?”, “그럼요! 최사장은 우리 위아모의 1기 회원이잖아요.”
최사장은 요즘 입주가사도우미를 하고 있다고 한다. 남의 집에 들어가 어른들을 모시고 사는 것이 어찌 쉬우랴. 1년을 했으니 스트레스 지수가 많이 올라가 있는가 보다. 어디 최사장뿐이랴. 모두가 팍팍한 삶의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며 살았을 텐데. 이렇게 시작해서 한명, 한명 모인것이 18명이다.
“형님. 우리 이제 출발해요. 형님 차는 어디쯤 갔어요?”, “기래? 우린 다와서. 너희 어케 오니? 우린 차 안 막힐려고 일찍 나와써! 5시에 출발했디! 기러니 3시간 반 걸리두만.”, “일찍 출발하길 잘 하셨네요. 형님. 그럼 먼저 숙소에 짐 맡기고 놀고 계세요!”
태안에 있는 신두리 해수욕장, 우리의 목적지이다. 국이형네는 4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를 3시간 30분만에 도착했다. 가다가 휴게소도 들리고 아침도 먹었으니, 정말 일찍 도착한 것이다. 막히는 차 사이에서 있고 싶지 않은 거겠지! 답답한 도시를 빨리 떠나고 싶은 거겠지! 그만큼 바캉스를 빨리 가고 싶은 거겠지!
“국이형, 우리 왔어요!”, “이제 완? 야! 은찬이 많이 컸다. 무얼 먹고 이리 큰? 잘 컸다. 잘 컸어! 야 니들이 *한이가 보구나!”, “아. *한이네는 우리보다 좀 늦어요. 이 아이들은 *윤이와 *민이. 자 인사하자! 그리고 여기는 *민이 엄마 선이씨!”, “안녕하세요!”, “어이쿠, 안녕하세요. 잘 오셨습니다.”
*국이형의 반응이 참 재밌다. 나에게 호기롭게 말하던 그가 새로운 사람에게는 아주 얌전하고 다정하게 바꼈다. 말투는 또 어떤가? 조심스런 표준어 말투가 너무 서툴러 웃음이 나온다.
이번 여름바캉스는 지난 2년동안 진행했던 마을사업의 사람들을 초대했다. 2021년과 2022년의 마을사업 참여자 구성이 좀 다르다. 2021년, 1기 때는 *국이형과 내가 중심으로 최사장과 같은 몇 몇의 사람들을 모아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자조모임의 시간을 가졌고 2022년, 2기때는 1기의 연말평가를 통해 가족에 아젠다를 잡고 엄마들 모임, 아이들 놀이모임을 진행했다. 이때 참여한 사람들이 *한이네, *민이네이다.
“자! 너희들은 빨리 바닷가 가서 놀고 오라! 철이 삼춘이 배가지고 와서! 보트있디, 보트, 나도 한참을 놀고 왔디! 너희들도 가보라!”
이렇게 위아모, 우리들의 여름바캉스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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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에서의 여름휴가
저 멀리 보이는 철이형이 가져온 보트를 타는 아이들, 그 앞에 조개를 줍는 아이들. 우리 옆에는 뭐가 그리 좋은지, 아이엄마들이 팔도강산의 사투리들로 조화를 이루며 깔깔거리고 있다. 가족들의 행복한 모습을 국이형과 나란히 앉아 보고 있노라니 ‘아! 이것이 가족휴가구나! 우리 모임이 어느덧 이런 시간을 가지게 되었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처음 정착도우미로 만났던 때가. 마을활성화사업을 시작하자고 했던때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형, 여름방학때 가족들과 어디로 놀러 다녔어요?”
“우린 기탄게 없서! 어디 놀러 다닐수 있난? 우린 일하러 다녔디…”, “어른때 말구요. 학생때, 방학때 말예요. 방학때 일했어요?”
“길테도. 북한은 말이디, 방학이란게 없서, 아니디 방학이 있디, 15일. 초급 중학교, 기리구 고급 중학교, 기때는 8월에 15일을 방학을 준단 말이디. 긴데 방학은 무언, 우린 일하러 댕기디. 도로정비나 수해복구사업에 동원된, 농촌에 가기도 하디! 여기 학생들은 길케 안하디?”, “여기도 학생들이 농촌봉사를 하러 가기도 해요! 그래도 방학이 길어서 충분히 학생때 놀러도 다니고,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기도 합니다.”
북한의 학생들은 남한의 학생들에 비해 방학이 비교적 짧다. 우리의 초등학교 격인 소학교의 방학은 8월 한달을 방학기간으로 준다. 반면,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8월 15일부터 말일까지 15일의 기간이 방학이 주어진다. 남한의 방학은 개인의 휴식이라는 의미에서 방학을 보내지만, 북한은 사회에 필요한 역할을 감당하는 의미에서 방학을 보낸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우리도 농활이라던지 봉사활동을 하고, 북한도 가족들과 물놀이를 가기도 한다.
북한의 노동법 65조에서는 노동자와 사무원들에게 매년 14일간의 정기휴가와 7일에서 21일간의 보충휴가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북한에서 휴가의 의미는 개인의 여가생활을 즐긴다는 의미는 없다. 휴가는 가족과 집단을 위한 경제 활동이나 집안일을 위한 활동으로 허가를 받을 수 있다. 이 휴가는 주로 가족의 경조사나 경제활동, 김장이나 겨울철 땔감을 장만하는데 사용된다.
가족들과의 여름 휴가는 주로 국가 기념일인 공휴일에 간다. 북한의 여름에 있는 공휴일은 전승기념일인 7월 27일, 광복절인 8월 15일, 청년절인 8월 28일이 있다. 이 때는 북한 당국이 지정한 공휴일이어서 누구도 눈치를 보지 않고 놀 수 있다. 그래서 이 날은 강이나 바다나 어느 곳이든 사람들이 많다. 몇 일 안되는 자유를 누릴수 있는 날, 북한 주민들은 모두가 하루를 소중하게 즐긴다고 한다. 가족과 지인과 함께 강이나 바다로 가서 물고기를 잡거나 먹을 것을 먹으며 노래와 춤을 신나게 추면서 그들은 힘들었던 일상과 무더위를 이겨낸다.
하지만 평양은 다른 모습의 휴가를 볼 수 있다. 문수 물놀이장, 만경대 물놀이장, 능라 인민 유원지 등, 외국인들도 입장할 수 있는 관광지가 평양에는 있기 때문이다. 이 곳은 우리 나라의 워터파크와도 비슷하다. 하지만 일반인들이 가기에는 그 이용료가 너무 비싸다. 북한의 한달 월급이 평균 3,000원인데, 입장가 2만원이라고 하니, 국가 당국으로부터 표를 받지 않는 이상, 이용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이 곳은 주로 외국인들이 ‘익스프레스 티켓’을 사며 비싸게 이용되고 있다.
“동상, 고마워, 우리는 말이디, 이런 시간니 필요해서. 최사장 보라. 얼마나 좋아한! 맨날 말도 통하디 않는 로인들 돌보고, 애들 챙기고, 길케 하는데, 저 보라! 얼마만에 웃넌!”
저기 최사장도, 아랫동네 순여도, 윤이맘도 모처럼 햇빛 좋은 날 아래서 활짝 웃는 모습이 여간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 가족오락관
“자! 여름바캉스 재밌으셨나요?”, “네”, “오늘 마지막 밤입니다. 모두 이 마지막 밤을 아쉽지 않도록 신나게 놀아 봅시다.”, “네”, “자, 이 시간은 가족오락관! 가족들이 두 팀으로 나뉘어서 팀대항으로 게임을 할 거예요. 여러분 잘 할 수 있지요?”, “네”
모인 가족들이 남녀노소 할거 없이 떠나갈듯 대답을 한다. 마치 바다 건너 누구가에게 들으라는 듯, 아니면 지금까지 답답하고 힘든 마음을 이렇게라도 내뱉으려는듯.
“첫번째 게임 ‘스피드퀴즈!’. 이 게임은 주어진 시간안에 답을 모두 맞추는 것입니다. 설명을 잘 해야 됩니다. 자 그렇다면 첫 번째 팀부터 할까요? 나오세요”
“자! 이거 무언! 련락! 머리받기! 단번에 차 넣기!”, “축구”
“자! 판공잡기! 득점련락! 걷기 위반! 벌 넣기!”, “농구”
“야, 이거 무언, 야구? 이거 미제가 도아하는 운동아닌! 나 이거 어떻게 설명한?”
“철이형, 시간 다 됐어요! 그래도 많이 맞췄네, 형 야구하는것 못 봤어요?”, “기래, 북에서는 야구를 안 하디. 본 적이 없서”
“철이씨, 나는 철이씨 덕분에 북한 용어들 많이 배웠네! 스포츠 용어인데, 이렇게 다르게 사용하네요!”, “길티요. 기러니 우리가 이곳에서 얼마나 힘들갔시오?”, “맞아요! 우리가 같은 민족이라고 생각해서 말이 통할거라고 생각하는데, 이렇게 다르네요. 사실 말 뿐이겠어요? 그 동안 다른 문화와 사상을 배경으로 살았는데, 생각도 많이 다를거예요.”, “기래도 이케 하면 되디! 통일이 뭐 있간, 우리가 하는 것이 통일이디! 어제 정목사가 ‘위아모’라고 했디? 우리 ‘위아모’하면 되는기야!
‘윗동네, 아랫동네 모엿수다’의 여름바캉스, 이제 마지막 밤, 2박 3일의 짧은 시간이 이렇게 지나간다. 지난 이틀, 서로 잘 모르는 팔도의 사람들이 모여 이웃사촌이 만들어졌다. 새로운 조카들과 삼촌, 이모가 되고, 언니, 오빠, 동생이 되어 바다에서 보트도 타고, 조개도 줍고, 고기도 굽고, 나누는 시간들이 얼마나 오랜만인가!
짧은 휴가 이지만 북한에서도 이들은 이렇게 가족들과 휴가를 보냈을 것이다. 홀홀단신 남한에 내려와 그동안 가족도 없이 친척도 없이 외롭게 지내야만 했던 시간들, 모처럼 여름바캉스를 통해 가족애를 느낄 수 있는 시간되었을 것이다. 국이형의 호기로운 말에 이들을 보며 마음으로 응원을 해 본다.
‘여러분! 우리가 비록 피를 나눈 가족은 아니지만,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 의지하며 이웃사촌이 되어 살아갑시다. 함께 한 여름바캉스의 좋은 기억을 가지고 우리 일상에서도 잘 살아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