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4월25일(화)■
(데살로니가후서 2장)
1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심과 우리가 그 앞에 모임에 관하여
2 영으로나 또는 말로나 또는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해서 쉽게 마음이 흔들리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라
3 누가 어떻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되지 말라 먼저 배교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그 날이 이르지 아니하리니
4 그는 대적하는 자라 신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과 숭배함을 받는 것에 대항하여 그 위에 자기를 높이고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내세우느니라
5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이 일을 너희에게 말한 것을 기억하지 못하느냐
6 너희는 지금 그로 하여금 그의 때에 나타나게 하려 하여 막는 것이 있는 것을 아나니
7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나 지금은 그것을 막는 자가 있어 그 중에서 옮겨질 때까지 하리라
8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그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시리라
(묵상/살후 2:1-8)
◆ 말세의 징조 중 가장 분명한 징조 두 가지
(3) 누가 어떻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되지 말라 먼저 배교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그 날이 이르지 아니하리니
바울의 앞선 편지로 주님의 재림이 심히 가까웠다고 생각한 데살로니가 형제들은 마음이 흔들렸다. 일부 신자들이 생업도 내려놓고, 오로지 기도에만 전념하겠다고 하고, 어떤 신자들은 집안일도 내팽개친 채 오로지 교회 모임에만 몰두하기도 했던 것 같다.
이 소식을 들은 바울은 다시 균형을 잡으려고 한다.
역사를 보면 주님의 재림이 가까웠다고 소동을 일으킨 자들이 무수하다. 세계적인 재난만 일어나면 사람들은 즉시 재림이 가까웠다고 생각한다. 중세 때 페스트가 유럽 전역에 퍼졌을 때도, 세계 1차 대전, 2차 대전 때도 그랬다. 이번에 코로나가 온 세계에 퍼졌을 때도 사람들은 마지막이 가까웠다고 느꼈다.
세계적인 재난이 일어나면 마지막이 가까웠다고 느끼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래서 우리가 신앙의 자세를 돌아보고 더욱 주님을 가까이할 수 있다면 그것도 유익하다.
그러나 당장 임할 것으로 생각하여서 직장도 그만두고, 생업도, 학업도 포기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하다. 그렇게 하는 것은 언제나 문제가 되었음이 역사적으로 이미 증명되었다.
주님은 언제 재림하시는가?
밑도 끝도 없이 갑자기 임하시지 않는다. 반드시 뚜렷한 징조가 있다. 바울은 그 뚜렷한 증거 중의 두 가지를 우리에게 알려준다.
하나는 배교고, 또 하나는 불법의 사람이다.
◆ 배교
재림의 뚜렷한 징조 중 첫 번째는 '배교'다.
배교란 예수님을 믿다가 안 믿는 것인데, 개인적인 배교는 예수님 당시의 가롯 유다를 비롯해서 모든 시대에 언제나 있었다. 이런 것이 말세의 증거가 될 수는 없다. 오늘 본문에서 언급하는 배교는 개인적인 배교가 아닌 교회적인 배교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철저하게 세상과 구분되는 하나님 나라인데, 놀랍게도 마지막 때에는 교회가 집단으로 배교를 한다. 과거에는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교회를 떠났는데, 미래에는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가 교회의 지도자가 된다.
그들은 교인들에게 성경이 믿지 못할 책이라고 가르치며,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부정하고, 성도들의 가치관을 세속적으로 바꿀 것이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싸워야 할 성도들을 세속적인 가치를 위해 싸우도록 부추길 것이다.
설마 그런 교회가 있느냐고 질문하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다. 19세기 말에 시작한 자유주의 신학은 학문적으로 이미 배교의 토대를 마련했고 서서히 교회를 잠식해 나갔다. 놀랍게도 21세기에 들어와서는 상당수의 신학교에서 배교의 신학이 추세가 되었다.
이들은 예수님의 육체적 부활을 믿지 않고, 십자가의 대속도 믿지 않는다.
도대체 십자가의 대속을 믿지 않고도 어떻게 평화가 가능할까?
자기 의를 힘입어서? 아니면 하나님이 자비하시니 많이 봐주실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
이게 정말 궁금해서 얼마 전에 좌파 진영에 속한 친구 목사와 만나서 물어보았다. 도대체 예수님의 대속을 믿지 않고도 마음의 평화가 가능한가? 너희들이 추구하는 평화는 무엇인가?그는 대답하기를 이웃끼리 서로 존중하며 사이좋게 지내는 그런 평화를 추구한다고 했다. 과연 그런 수준의 평화로 사람들이 만족할까? 내면의 평화가 그런 것으로 가능할까?
예수님 당시에 좌파적 종교 지도자는 사두개인이었고, 우파적 종교 지도자들은 바리새인이었다. 이 두 세력은 교리적으로 서로 대립하였는데, 흥미롭게도 둘 다 하나님 편은 아니었다.
새싹이 돋으면 떡잎이 좌우로 퍼지지만, 그 뿌리는 하나이듯이 이들은 서로 대립된 듯했지만, 예수님을 반대하고 십자가에 못 박는 데서는 하나가 되었다. 교리는 달랐지만, 거듭나지 않은 심성은 똑같았았기 때문이다.
좌파적 교회는 성경을 더는 믿지 않는 교회,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받아들이지 않는 교회, 예수님의 몸의 부활을 더는 믿지 않는 교회가 됨으로써 배교의 길을 걸으며, 반면에 우파적 교회들은 교리는 그럴 듯하나 그리스도를 따르기 보다는 세상을 따르는 교회, 하나님보다 돈이 우선이 되는 교회, 십일조와 주일성수가 성도의 가장 큰 의무인 양 말하는 사이비 교회가 됨으로써 배교의 길을 걷는다.
상당수의 교회가 이미 배교의 길을 걷고 있다.
그런데 앞으로는 더 극심해질 것이다. 정상적인 믿음을 가진 자가 오히려 '이상한 자'가 될 날이 오고 있다.
사람들이 진리냐 아니냐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다수냐 아니냐에만 관심을 두는 이상 배교의 미혹을 피할 길이 없다.
작은 교회를 떠나서 유명한 교회로 간 사람에게 물어보니 작은 교회를 다니면 다른 사람들이 이단이나 사이비로 의심하여 이것저것 꼬치꼬치 묻는 게 싫어서란다.
많은 사람이 성경을 잘 모르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문맹에 가깝다. 성가대가 없다는 이유로 '이상한 교회'라고 생각하는 수준이다. 이러한 신자들을 미혹하기란 손바닥 뒤집듯이 너무나 쉽다.
우리가 배교의 시대에서 살아남으려면, 소수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며, 사람들의 조롱에도 담대함을 잃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성경을 보다 더 적극적으로 읽고 제대로 된 복음을 알아야 한다.
주님께서 '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마 7:14)는 말씀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 불법의 사람
재림의 두 번째 뚜렷한 징조는 '불법의 사람'의 출현이다.
이 사람은 아직 출현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주님께서 재림하시기 전에 큰 전쟁이 있으리라 생각하는데, 그것은 한편으로는 맞지만, 한편으로는 틀리다. 주님의 재림은 두 번에 걸쳐 일어나는데, 처음에는 공중으로 재림하시고, 그 후에 지상으로 재림하신다.
재림 전에 전쟁이 있을 것이라고 하는 것이 맞다고 함은 온 세계와 이스라엘 간에 일어날 인류 최후의 전쟁인 아마겟돈 전쟁(계 16:16)이 지상재림 직전에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전쟁은 공중재림 이후에 일어날 사건이니 우리는 이 전쟁을 경험할 수 없다. 그런 면에서 틀렸다고 한 것이다.
주님께서 공중으로 재림하시기 직전에는 세계적인 전쟁이 아니라 오히려 세계적인 거짓 평화가 있을 것이다.
불법의 사람이 나타나서 바로 그런 일을 할 것이다.
지금 모든 나라들이 전쟁을 한판 붙을 것처럼 술렁이지만, 전쟁은 재림의 징조가 될 순 있어도 끝의 징조는 아니다(마 24:6).
주님께서 재림하시기 직전에는 전쟁이 아니라, 오히려 평화다.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때다(살전 5:3).
불법의 사람은 이 세계에 거짓 평화를 가져올 것이다.
나는 이 사람의 등장이 요한계시록 일곱 인의 시작이라고 믿는다. 첫 번째 인 재앙에 흰 말을 탄 자가 나타나는데(계 6:2), 이 사람이 바로 불법의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 불법의 사람에 관해서는 성경이 여러 군데에서 암시하고 있다.
다니엘은 장차 성소를 무너뜨릴 한 왕을 언급하고 있으며(단 9:26),
예수님께서도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마 24:15)을 경고하셨고,
오늘 본문에서도 바울은 이 불법의 사람이 성전에 앉아서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할 것임을 언급하였다.
이 사람과 성전에 대해서 해석하려면 에스겔서의 성전, 다니엘서의 칠십 이레, 스가랴 서 등을 연결해서 보아야 할 것이다.
나는 이 불법의 사람이 세계적인 지도자로 나타날 것이라고 본다. 이 사람은 세계적인 통치를 완수하기 위해서 많은 사람을 동원할 것이다. 지금 중국은 14억 인구에 군인의 수는 370만 명밖에 안되지만, 공산당원의 수는 무려 9,670만 명이라고 한다(2021년 기준). 이 숫자가 중국을 통치하기 위한 수다. 그렇다면 전 세계를 장악하고 통치하기 위해서 필요한 당원 수는 얼마나 되어야 할까? 최소한 2억 명은 필요할 것이다.
놀랍게도 요한계시록에는 2억 명의 마병대를 언급하고 있다(계 9:16). 이것은 절대로 군대의 숫자일 수 없다. 온 셰계의 군인들을 모두 합쳐도 2,000만 명이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세계 전쟁이 일어날지라도 이런 숫자의 군인 수는 안 나온다. 더구나 이 숫자는 양쪽 군대의 숫자가 아니라, 한쪽에 속한 군대의 수라는 것을 감안하면 이것이 군인이라기보다는 통치자의 당원이 되어서 활동하는 자들의 수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2억 명의 당원들의 단속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엄청난 압력과 핍박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이때에는 사람들에게 666표를 이마나 오른손에 찍어주고 이것이 없는 자는 매매를 금지할 것이다(계 13:16-18).
이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내 블로그 요한계시록 묵상에 올릴 예정이다.
◆ 성전
(4) 그는 대적하는 자라 신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과 숭배함을 받는 것에 대항하여 그 위에 자기를 높이고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내세우느니라
불법의 사람이 성전에 앉아서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내세운다고 했다. 문제는 이 성전이 바울 당시에는 있었지만, 지금은 없다. 만일 이 예언이 성취되려면, 성전을 영적으로 해석하던가, 아니면 이스라엘에 성전이 다시 세워져야 할 것이다.
성전을 오늘날의 성도들의 모임이라는 등, 영적으로 해석해도 제법 그럴듯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예언의 성취를 보면 대부분이 문자 그대로 성취되었다. 그리고 불법의 사람이 문자적 성취라면, 성전도 그럴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앞으로 이스라엘에서 성전이 지어질 때, 그것은 마지막 때의 징조로 볼 수 있다. 지금 이스라엘에서는 소위 제3성전이라고 불리는 성전을 지을 계획을 매우 구체적으로 세우고 있다고 들었다. 그리고 이 성전이 지어질 때 우리는 주님의 재림이 아주 코 앞에 다가왔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제3성전은 에스겔에서 언급한 성전은 아닐 것이다.
이스라엘에서는 제 3성 전이 지어지겠지만, 결국 이 성전에 불법의 사람이 앉음으로써 오염되고, 일곱 번째 나팔에서 지진 등으로 무너질 것이다. 그때 하늘에 있는 성전이 잠깐 보이는데, 이 성전이 진짜 성전이다(계 11:19).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서 휴거되고 난 뒤에 크게 각성하고 회개할 것이며, 그 후에 제대로 짓는 성전이 에스겔 성전일 것이다(겔 43:11). 에스겔 성전의 번제단은 솔로몬 번제단의 절반도 안되는 작은 번제단으로서(대하 4:1, 겔 43:13-17), 백성들의 제사를 위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대속을 기념하기 위한 제단이 될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내 블로그에서 에스겔 묵상을 참조하시기를 바란다.
성경을 잘 모르는 상태로 이런 글들을 접하는 분들은 이 모든 말이 너무나 생소하고 엉뚱한 이야기처럼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성경의 본문들을 연구해 보면 일리가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물론 이것은 내가 개인적으로 성경을 연구하고 내린 결론이니 틀릴 수도 있다. 참고하시고 기억해 두시면, 틀림없이 이 말세를 분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이 모든 것의 해석은 개개인이 다를 수 있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결론은 이것이다.
배교자와 불법의 사람이 모두 주 예수께서 강림하실 때 멸망하리라는 것이다(8). 우리가 이 결론만이라도 잊지 않는다면, 이 세상의 모든 조롱과 핍박과 고난을 견뎌낼 수 있을 것이다.
주님,
주님과 함께 영광을 누리기 위해서 주님과 함께 당하는 고난을 감수해야 할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게 해주시고, 이 세대를 잘 분별해서 살아가게 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