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의 더위는 갈 곳이 없다 백화점에서 쫓겨난 더위가, 식당가 커피숍 사우나 지하상가에서 문전 박대당한 더위가, 은행가 의사당 법원 도청 시청 군청 동사무소 관공서에서 내몰린 더위가, 교회와 성당과 절에서 부정당한 더위가, 버스 전동차 기차 승용차에서 거절당한 더위가, 극장 도서관에서 거부당한 더위가, 학교 학원 회사에서 퇴학 퇴원 퇴출당한 더위가, 꽃집 빵집 어린이집 예식장에서 내쫓긴 더위가 유기견 혹은 좀비가 되어 악에 받친 채 거리로, 골목으로 공원으로 역전 대합실로 광장으로 고시원으로 벌방으로 떼 지어 다니고 있다 언젠가 더위가 미쳐 날뛰는 날이 올 것이다
[시평]
연일 무더위가 맹위를 떨친다. 나이 든 사람은 웬만해서는 낮에는 밖에 나가지 않는 게 좋다고 보도한다. 잘못 나다니다가 온열질환에 쓰러질지도 모른다고 한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에어컨이 잘 돌아가는 실내에 앉아 있다가, 햇볕이 들어가는 어슬녘이 되면 나가야 한다고 무더위와 함께 살아가는 길을 가르친다.
에어컨이 없던 시절에는 어떻게 이 무더위를 지냈을까. 언제 우리나라에 이렇듯 많이 에어컨이 보급됐는가. 돈이 많은 사람의 집에나, 높은 사람의 사무실에나 겨우 설치됐을 에어컨. 우리의 어린 시절, 너무 더워서, 길고 긴 여름 방학 내내 땡볕을 피해 앉아서 놀면서, “물뼈다귀 아이스케이크!” 하며 퍼런 통을 짊어진 장사가 지나갈 때만을 기다리거나, 펌프 물을 콸콸 틀어 훌훌 벗고는 등목을 하며 삼복더위를 지내곤 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백화점이나 식당가, 커피숍, 은행, 동사무소, 교회와 성당, 절, 심지어 버스에까지 에어컨은 펑펑 돌아간다. 그래서 이제 이 무더위가 머물 곳은 어디에도 없다. 어쩌면 이 무더위는 이들 건물들로부터 그만 퇴출당해 버리고 말았다. 이 시대의 무더위는 마치 유기견이나 된 듯, 좀비나 된 듯, 악에 받쳐 씩씩거리며 골목을 떠돌 뿐이다. 아, 아 무더위를 퇴출시켜버린 뒤, 우리들 모두 실내에서 떠도는 에어컨 바람, 바람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