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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관념이라는 ARS 왜 안되는가?
벼룩의 고정관념, 고정관념이란 자기 자신을 제한하는 일이다.
스스로 자기 한계를 그어놓고 날개를 묶어두는 것이다.
한 과학자가 실험을 했습니다. 벼룩 두 마리를 잡아다가 컵 안에 넣었답니다. 컵 안에 갇힌 벼룩들은 원래 높이뛰기 선수들인지라 톡톡 잘도 튀어 컵 밖으로 나왔습니다. 놈들을 다시 붙잡아 이번엔 컵 위에 유리로 뚜껑을 씌었습니다. 벼룩들은 이번에도 열심히 튀어 올랐습니다. 그러나 뛸 때마다 자꾸만 유리 뚜껑에 머리를 부딪쳤습니다. 아무리 높이뛰기를 잘하는 벼룩이라지만, 머리를 부딪쳐 아픈 벼룩들은 차츰 튀어나가기를 포기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한참 후에 이번에는 유리 뚜껑을 제거하고 지켜보았습니다. 처음에는 컵 밖으로 잘도 튀어 오르던 벼룩들은, 우리 뚜껑 이 있는 곳 바의 직전까지만 튀어 오르고 더 이상 높이 튀어오를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유리 뚜껑에 머리를 부딪치던 벼룩들은 아마 이런 심경이 아니었을까요?
“아, 난 안돼. 난 결코 저 판으로 나갈 수 없어. 평생 동안 요 모양 요 꼴로 살 수밖에 없을 거야. 난 안돼!”
벼룩은 유리 뚜껑에 부딪히는 고통을 고통을 당해가면서 더 이상 튀어 올라봤자 나만 손해라는 고정관념이 생겼던 겁니다. 고정관념이란 이럴게 자기 자신을 제한하는 일종의 틀입니다. 스스로 자기한계를 그어놓고 날개를 묶어두는 겪입니다. 유답여행 때 꼭 이 이야기를 하는데, 한번은 어떤 분이 벼룩 이야기를 듣고는 통곡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저 벼룩의 모습이 바로 내 모습입니다!”
그분은 살아가면서 스스로 굴레를 씌우고는 혼자서 이렇게 약은 체를 해왔다는 겁니다.
“난 요만큼밖에 못 해. 내가 그걸 어떻게 해?”
<유답>에서
나라와 민족을 향하신 두렵고 떨리는 하나님의 말씀
아래의 말씀은 나라와 민족과 교회를 위해 2005년 11월 25일 치유학교 기도시간에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시다.
“게으르고 나태한 종들아, 내가 너희들을 향하여 언제까지 참으랴 내가 너희들을 왜 이곳으로 불렀는지 아느냐?
나라와 민족이 없다면 ‘내적치유’가 무슨 소용이 있느냐?
치유를 받고 돌아가서 한 마디라도 기도해 봤느냐.
제사장 나라를 삼기 위하여 이 민족을 정화하기를 원한다. 이 일을 위해 기도하라. 정화를 하여 세계만민이 내게로 돌아오게 할 것이다. 선교사를 많이 보낸다고 자랑하였느냐. 그들의 열매를 보아라. 나라가 있어야 선교도 할 수 있느니라.
게으르고 무익한 종들아. 너희 목에 칼이 이미 놓였느니라 심령을 찢으며 기도하라, 너의 목사들 때문에 나라가 망하게 되었다.
돈과 명예와 음란으로 무너진 너희를 얼마나 더 참으랴.
회개하라. 진노의 잔이 이미 기울어졌다.”
2005. 11. 25 신인숙
“전쟁의 북소리를 들으라!
전쟁의 나팔소리를 들으라!
깨어라! 외치라! 기도하라!
너희가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이 나라를 3일 밤낮을 흑암에 가둘 것이다.
나의 가슴을 더 이상 찢지 말라! 무엇으로 더 증거를 보이랴!
너희의 가슴을 찢고 기도하라.”
2005년 11월 25일 정남희
“민족의 죄악들을 내가 진노하는 것을 몸으로 느껴보라시며 점점 강도 있게 몸을 꼬이시고 가슴이 터질 것 같은 고총을 느끼게 하시고 북한 땅에 있는 형제자매의 뼈만 걸어 다니는 모습을 보이심. 이 땅의 악한 종들아 하나님의 진노를 두려워하라.”
황규춘 집사
“도끼가 이미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 북한의 네 형제 이웃의 토굴과 동굴에서 기도하는 소리를 내가 이미 들었다. 그런데 너희들은 쌀이 많다고 편하다고 네 동족 이웃의 고총을 외면하고 있다. 회개하라. 김정일과 수하(300명)의 생명이 이미 결정되었나니 너희들은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지 마라.
노무현 대통령을 위해서도 기도하지 마라.
북한을 두려워하지 마라. 전쟁을 두려워하지 마라.
전영태 목사
전인치유사역자 훈련학교 특별반 치유시간에 하나님께서 두렵고 떨리는 말씀을 저에게 주셨습니다. “본 센터의 책임자인 소장이 북한에 있는 내 자녀들의 아픔과 피눈물 나는 기도와 억울하게 죽어가는 영혼들을 구하기 위해 그 사명을 감당하지 않으면 너의 생명을 거두어 가시겠다”는 엄숙한 경고의 말씀이셨습니다.
2005. 11. 18 밤 11시경 김종주 소장
온전하신 아버지
[묵상이 있는 나눔방 3]
온전하신 나의 아버지
아버지에 대한 상처가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아버지가 완벽하고 온전해서가 아니라 그 분의 모든 행동 동기를 이해하기에 용서하고 원망으로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과 남편에 대한 안개지대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감지하고 지내왔다.
아버지에 대한 상처 치유 시간에 남편의 손이 가슴에 닿을 때까지도 내 마음은 평안했고 잔잔했다. 남편의 기도가 진행되고 주변에서 많은 사모님들의 울부짖음이 들릴 때 사모님들에 대한 연민만 느껴질 뿐 마음의 생각에는 변화가 없는데 눈물이 끊임없이 흐르기 시작했다. 거의 멍한 생태에서 눈물만 흘리는데 마음 가운데 소리가 들려왔다. ‘아버지가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아버지의 이중성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 ‘아버지는 너무나 약합니다. 거짓말쟁이입니다.’ ‘ 아버지의 사랑은 너무 왜곡되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런 아버지를 무조건 수용하고 이해하려고 했습니다. 그분의 삶의 환경과 가족관계까지도 무조건 이해하려 했습니다. 그래서 용서하고 내 마음 안에 그분으로 인한 상처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왜 아버지를 무조건 이해하고 수용해야 하나요? 나도 온전하고 멋진 아버지가 필요합니다.’
내면의 소리가 가슴으로 머리로 울리면서 내안에 맺혀있던 ‘무조건적 이해에 대한 분노들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리고 기도가 끝나고 기름주음 사역이 있고 안식 가운데서 평안을 누렸습니다. 이상하리만큼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평안이 올라오고 온 몸이 가벼웠습니다. 마지막 찬양 시간엔 기쁨과 감사의 찬양을 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의 찬양은 눈물범벅이 되는 가슴에 통증이 느껴지는 찬양이었으나 처음으로 온 몸이 감사와 기쁨 그리고 예수의 보혈의 능력이 확신되는 놀라운 찬양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님께 대한 심령의 한 부분에 있던 안개가 걷힌 듯 가볍고 즐겁고 기쁨이 넘쳤습니다. 지금 이 순간까지도 육신이 가볍고 즐겁습니다. 무거웠던 몸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고 온혈관이 정화된 것 같습니다.
하나님 앞에 다가선 느낌! 그리고 보혈의 능력에 대한 확신,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담대함과 기대감이 넘칩니다. 치영원에서 더 많은 은혜를 누리고 깨닫게 되었으니 받고 누린 은혜를 교회 가운데 풀어놓기를 소원합니다.
김미선 사모
승리자, 예수 그리스도
승리자, 예수 그리스도
사람을 상대하는 일에 대해서 겉 사람만 상대하면서 목회에서 많은 갈등을 겪었습니다. 그 때마다 좌절과 낙망에 많이 빠졌습니다. 목회 20년이 하나님의 은혜였으나 한계를 확실히 느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들은 강의를 통해 인간과 환경의 배후에서 악한 영들이 역사되어지는 모습을 알고 보게 되었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역사되어지는 내 생활에서 배후에 악령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조상의 우상숭배, 미신 숭배가 주는 후손들에 대한 영향력이 죽음의영, 가남의 영, 음란의 영등으로 인생을 지배하고 있었음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엡 5:12 우리의 씨름이 혈과 육과의 싸움이 아니라 악한 영들과의 싸움인 것을 성경이론이 아닌 실제 삶의 현장임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영혼을 다루는 목회에 더 확실한 통찰력을 갖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인간의 근본적인 영혼치료가 될 때에 진정한 하나님의 생명을 누리게 됨을 봅니다. 내 자신의 자신의 삶을 지배해온 악한 영들을 예수의 피고 결박하며 보혈의 능력을 활용하며 선포하며 나아가겠습니다. 아멘.
311기 조신영 목사
나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묵상이 있는 나눔방 5]
나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이곳 치유 세미나에 참석하게 된 동기는 초등학교 4학년부터, 중학교 3학년, 고등학교 1,2학년을 지내오면서 우울증과 자살기도, 과거의 상처, 방황의 시간들··· 세상에 지치고 살기 싫어 중 3때 하나님을 만났지만, 체험이 없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술과 담배, 마약, 성적인 죄들을 행했습니다.
사람에게서 받은 상처가 너무 커 정말 치유 받고 싶었고 하나님 옷자락을 잡는 심정으로 고모에게 치유 받고 싶고··· 힘들었다고 말하게 되었고, 가족 모두와 동행해서 왔습니다. 3년 전부터 주님께서는 글로써 응답과 치유를 해주셨고 인생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끌고 계신다는 것, 창세기 전부터 태초 전부터 날 사랑하시고 나의 모든 허물을 용서하신다는 것과 내가 하나님의 날개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셨고, 카이로스 달리다굼 내려놓음 등 반복해서 나에게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잡으라고, “너의 마음의 고통과 무거운 마음 내려놓고 나에게 그동안의 상처를 다 토하라고···” 하셨다.
첫날은 마음이 열리지 않아 눈물로 만나고, 정말 절망 가운데 이끌렸으나 그날 밤 촛불 기도회 때 하나님께서 “너는 잠시 묶여 있는 것이다. 털고 일어날 것이다. 네가 조금만 슬퍼하면 네게 더 큰 복을 주겠다. 달리다굼 소녀야 일어나 걸으라.”고 말씀하시면서 나의 상처의 문을 여셨다.
둘째 날 토설과 회개를 통해 많은 것을 깨달아 알게 하시고 엄마와의 마음의 장벽이 무너지면서 내 마음의 무거웠던, 내 등에 업혀있던 우울과 상처, 과거의 흔적과 상처를 준 사람들 모두, 그리고 날 제일 힘들게 했던 내가 떨어져 나갔다. 앞으로 나는 하나님의 진정한 딸로서 이 시대를 변화시키는 이 시대에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리더자로서 주님의 영광을 빛낼 것이다.
이예순(315기 중 · 고등부 치유사역에 참여한 학생)
승리가 무엇인줄 아는가?
[묵상이 있는 나눔방 6]
승리가 무엇인줄 아는가?
저는 2004년 초여름에 전인치유에 참석했습니다. 그때는 치유에 대하여 마음이 열리지 않아 치유를 받는 둥 마는 둥 하고 배운 것을 실제 생활에 적용하지도 못했습니다. 그 사이 2007년 1월 첫 주에 교회를 개척하고 문안 인사 차 중고생 때 신앙을 지도해 주신 목사님 사모님(통영 물가에 심기운 교회)께 전화를 드렸더니 이곳을 말씀해주셨습니다. 목회의 방향과 비전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던 차에 사모님의 권유를 듣고 정말 좋은 기회가 아닌가 싶어서 2월 1일~2일 있었던 돌파(금식)기도회에 참석하였습니다.
영적 전쟁을 이론상으로 알고 우리 가족이 조금씩 실천을 하고는 있었지만 더 많은 기도의 도움들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특히 각 지역을 붙들고 있는 어둠의 세려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대적하여(보혈, 기름부움) 복음의 빛이 비취게 돌파하는 기도에 큰 은혜와 도전을 받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개척한 저희 교회는 골목 앞에 애기 보살집이 있고 왼편에는 여호와의 증인, 오른편에는 새 하늘 교회가 조금 더 내려가면 증상도 전국 본부가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악한 영들이 점령한 그 땅에 주님의 보혈이 뿌려지고 덮여지지 않고 돌파되지 않고 어떻게 목회가 되고 전도가 될 것인가를 깨닫게 되어, 마침 목회자 치유 세미나에 다시 참석하여 부부가 전인으로 치유 받고 상처와 감정의 뿌리를 뽑아야겠다는 결단을 하였습니다. 본 집회에 참석하여 강사 목사님들의 말씀과 성령께서 역사하심을 바라보며 내안에 치유되지 못한 상처가 얼마나 많은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둘째 날 밤에 아버지에 대한 치유를 해을때, 돌이 지나고 돌아가셔서 한 번도 아버지의 이름을 불러보지 못했는데, 그 시간에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며 받지 못한 사랑과 원망의 마음 등을 토하면서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곳에서 배운 것을 교회에 적용하며 개인과 가정에 적용하여 능력들이 나타나게 해야겠다고 다짐하며, 먼저 가정 사역에 등록하여 부부가 하나 되어 온전한 치유를 받고 또 그 이후에 치영원에 등록하여, 저희 교회 이름처럼(광선교회 말라기 4:2) 치료의 광선을 발하고, 많은 영혼들의 묶여 있는 부분을 풀어주어 주님을 만나게 하는 그런 치유사역자가 되고 싶습니다.
김상수목사
족한 은혜
족한 은혜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고후 12:10)
저는 남편과 함께 네팔이라는 나라에서 12년간 선교를 하였습니다. 이 나라에서는 아버지의 종교를 답습하는데 복음을 전하다가 고발당하면 6년간 감옥에 가야하고, 세례주다가 고발당하면 8년간 감옥에 갑니다. 지난 2003년 7월 20일 학원 사역하면서 복음 전했다는 이유로 고발되어 사역 10년 만에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스텝 4명과 함께 20일 동안 현지인 감옥에 갔습니다. 그러나 많은 분들의 중보기도로 2년에 걸친 6차 공판에서 무죄로 판정되었습니다. 그 후 12년의 사역을 정리하고 4년간의 국내 사역을 위해 2005년 2월에 한국으로 입국하였습니다. 2005년 3월부터 지금까지 논산 전인치유 연구소에서 전인치유를 하면서 깨달은 것을 말씀드립니다.
첫째 : 무의식의 죄책감
저의 아버지는 혼자 평양에서 월남하셨고 군인출신이셔서 저희를 엄격하게 키우셨습니다. 이 유교적인 아버지 밑에서 저는 완벽하고 율법적으로 자랐습니다. 새벽기도와 십일조, 경건의 훈련등 규칙적인 생활인 몸에 배었습니다. 아버지는 늘 이복을 그리워하시다가 결국 알콜 중독이 되어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병색으로 연약한 아버지인데도 어릴 적 무서웠던 아버지가 늘 연상되어 죽음 직전 아버지 앞에서 전도하지 못했습니다.
육신의 아버지가 너무 두려웠습니다. 그러나 큰 영향을 주셨던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전도하지 못한 것이 내 무의식속에 죄책감이 되어 네팔에서 누구보다도 열심히 전도했던 것입니다.
둘째 : 반복되는 역사의 저주
저의 시아버지는 제 남편이 5살때 감옥에서 간첩 누명쓰고 억울하게 돌아가셨습니다. 돌아가실 때 '억울하다'하셨다고 합니다. 이 억울한 영이 아들에게 영적으로 흘러들어와 남편도 감옥에서 아버지와 똑같은 삶을 살게 되었고 감옥에서'억울하다'했습니다. 저주의 역사는 반복되는 것을 봅니다.
셋째 : 사단의 공격
인도에서 공부하던 작은 아들이 가장 친한 친구의 칼에 목이 찔려 죽을 뻔 했습니다. 다른 부모 같으면 이런 상태에서 다친 아들을 보며 큰 분노를 느꼈을 텐데 저는 그만큼 다친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하며 그 아이를 위로했습니다. 당시 부모로부터 보호받아야 할 아이가 그 자리에 부모가 없어 얼마나 회로웠고 힘들었을까요? 그러나 제 자신이 아버지로부터 받은 신체적 학대로 인해 아들의 다친것을 보면서도 분노가 올라오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안 것은 칼로 찌른 친구의 아버지는 현지인들 앞에 자주 어머니를 때리고 발로 밞았다고 합니다.
그 어머니는 자기 십자가라고하며 참았는데 어느 날 아버지의 폭력이 너무 힘들어서 남편을 칼로 찌르려고 했습니다. 그 현장을 아들이 목격했다고 합니다. 그 후 그 친구의 마음에는 '지금은 힘이 없지만 언젠가는 아버지를 칼로 찌르겠다'며 벼르고 있었다고 합니다. 결국 생각했던 악은 싹이나서 행동화 되었는데 사단에게 빌미를 주어 공격하게 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의식세계에서 사는 것같지만 우리가 알지 못하는 무의식 세계는 부모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고 같은 축복과 저주의 역사를 반복해서 삽니다. 사탄은 죄와 저주를 통해 우리의 삶과 가계를 노략질하고 파괴시키려고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풍성한 삶을 누려야 할 많은 성도들이 저주 아래 사는 것이 매우 안타깝습니다.
지금까지 안태길 교수님과 김 종주장로님을 통해 치유하신 주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성화가 필요하듯 치유는
우리 모두에게 꼭 필요합니다. 한국교회의 회개를 통해 북한의 문을 열게 하시고 한국을 제사장의 나라로 쓰셔서 세계선교를 감당케하실 주님을
찬양합니다.
감사합니다. 주님께 영광 !
조천연 선교사 전인치유사역자
나의 길을 찾는 여행
나의 길을 찾는 여행
7살부터 그렇게 오래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하고, 대학시절 UBF에서 성경공부를 하면서 날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을 만나고 배우고, 삼일교회에서 고등부 교사를 하며 내적 치유를 받고 수많은 신앙서적들을 읽고 공부하였지만 마음속에 분노와 외로움이 해결되지 않았다. 교회 목사님과 성도들의 수준 낮고 유치한 모습도 싫었고 늘 나에게 해야 될 일만 많은 것도 지겨워지기 시작한 것이 1년 전쯤 부터이다.
결혼을 하여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는 데도 행복하지가 않고 뭔가 늘 2%가 부족한 것 같았고 사소한 일로 다투게되는 것도 마음 아팠다.
동생이 1년전쯤 전부터 직장을 그만두고 크리스찬 치유 영성연구원에서 공부해가기 시작했는데 예전과 달라진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먼저는 동생을 괴롭힌 내가 다 잘못이었는데 어느 날 "언니를 언니로 인정치않고 권위를 무시한 죄를 용서해달라"는 것이 아닌가. 또 쓸데없는 소리보다 늘 참말을 하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졌다. 또 친정 화장실에 붙여 놓았던 평생 캠페인 "나는 오늘부터~" 을 몇 장 주길래 집 현과 앞에 붙이고 깨닫길 내가 너무나 원망, 불평하고 살아왔다는 걸 알았다. 동생이 그런 말은 가난의 영을 부르는 것이라 했다. 그 외에도 동생은 게으르고 자기중심적인데서 부지런하면서도 쉴 땐 당당히쉬고 또 할 말을 하며 부모님을 사랑하며 섬겼다. 또 동생 소개로 소책자를 읽으며 이곳에서 일하시ㅡㄴ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느낄 수 있었다. 언젠가 아니 겨울방학 때 시간을 내서 꼭 가리라 다짐하고 있던 찰나였다.
내 속에는 불교의 영, 동성애의 영, 사술의 영, 이단의 영, soul-tie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악한 영들이 살고 있었다. 그것이 문제였던 것이다. 내 바우자가, 내 부모가, 내 친구가, 내가 만난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상황과 조건이 아니라 바로 내가 문제였던 것이다.
또 3살 때 쯤 아버지가 심하게 울고 떼쓰는 나를 참지 못해 추운 겨울 고무 물통에 넣는 장며에서 죽기 싫어 발버둥치는 나의 자아를 보았고 나를 위해 고통당하고 슬퍼하시며 아버지 속에 있는 촉력의 영과 맞서 싸워 주신 주님을 만나고 그 품에서 편히 쉬게 됬었다.
무엇보다 다섯 딸 중 넷째로 태아기 때 내가 남성을 택하여 인식하지도 못한 채 동성애를 범하고(여동생을 안고 뽀뽀, 고3때 친구를 안고 뽀뽀) 사춘기 시절 심한 정체감 혼란이 오늘날까지 이어오고 있음을 알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가 하나님의 사랑스런 딸, 귀한 딸이라 하셨고 나도 그러고 싶다고 고백했다. 또 하나님은 내게 큰 기대가 있으셨다. 어린 영혼들을 사랑하고 치유하는 초등학교 교사, 교육계의 영향력 있는 지도자로 부르셨다.
또한 날마다 십자가 앞에 회개하고 새로워지고 그 안에 있는 참 평안과 쉼을 누리기를 간절히 원하시고 또 주셨다.
이 모든 일을 주가 하셨습니다.
주님께 영광!
311기 하정현
새부대가 되게 하소서
새부대가 되게 하소서
저는 어려서부터 주님을 영접하였습니다. 약물중독으로 인하여 심장에 이상이 생겼고 급기야 투석할 위기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기도 도중에 정안위 권사님께서 여기에 한번 가보라고 권면하셔서 이곳 양촌치유 센타에 오게 되었습니다. 저는 기대와 부푼 맘으로 사역자님의 지시에 따라 순종하며 병이 낮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주위의 사람들의 말과는 달리 아무런 일도 저에겐 일어나지 않았고 실망 가운데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에 돌아와 침대위에서 묵상하는 도중에 아랫배가 칼로 여기저기 찌르는 듯한 고통이 찾아왔고 나는 너무나 겁이 나서 화장실로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대변과 함께 많은 양의 피가 쏟아졌고 그 후 지금까지 주님의 은혜 속에 건강한 몸으로 새 삶을 누리고 있습니다. 주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의 감사드립니다.
316기 김연자 권사
영국에서 날아온 반가운 편지
영국에서 날아온 반가운 편지
메일 감사합니다. 장로님의 메일은 항상 위로도 되고 도전이 되어서 좋습니다. 코스타 대회에서 자연스럽게 양촌의 사역이 소개되도록 기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저희 부부 사이는 점점 좋아지고 있습니다. 물론 의견차이가 있기도 하지만 서로에게 깊은 인내가 생겨서 별로 화내지 않고 넘어가곤 합니다. 조금 올라올 대마다 예수의 피를 뿌리는데 참 효과가 좋습니다. 요즘은 저의 아내가 진심으로 사랑받고 있다고 느낀대요. 성적으로도 정말 적극적이 되었구요. 가장 많이 변한 것은 아내가 저의 권위에 적극 순종한다는 점입니다. 물론 자신이 할말은 전혀 두려움없이 하지만(이것도 아내가 건강하여 진 증거라 기분이 나쁘진 않네요)저에게 인수 받고, 축사도 요청하고, 얼마 전에는 제가 아내의 태아기 치유까지 하는 특권(?)을 누렸습니다. 저는 잘 몰라도 막 믿음으로 하거든요. 요즘은 둘이 너무 좋아서 참 재미있습니다. 물론 가야할 길은 멀지만... 우리가 이러 행복을 누리는 것이 정말 양촌의 전인치유 센터를 만난 은혜라고 여겨집니다. 6개월 전만하여도 너무 힘들었는데 ... 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저를 보고 총각 때 얼굴이 다시 나왔다고 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장로님과 안교수님을 비롯한 양촌 식구들의 덕이라 여겨집니다.
터키의 사역은 저에게 많은 교훈과 도전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선교사님들에게 이 사역이 얼마나 필요한 것인가를 몸으로 실감하였습니다. 무엇보다도 좋았던 것은 장로님과 박상신 목사님과의 우정을 나누었던 일이고요. 선교지에서 오랫동안 외롭게 지냈던 저에게는 정말 값진 시간이었습니다. 특히 제가 느낀 것은 며칠의 사역이 끝난 뒤에 1,2주 정도 남아서 정리작업(follow-up)을 하여 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깨닫는 일이었습니다. 막말로 막 뚜껑이 열린 선교사님들이 서로를 위한 사역을 할 수 있도록, 적어도 2주정도 남아서 도와드리지 않는다면 큰 효과가 없으리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안교사님에게 감사하다고 전해 주시고요. 사랑하는 박목사님에게도 같이 ‘회개’ 할 날을 기다린다고 전해주세요. 감사합니다.
영국에서 이요준 선교사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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