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월 27일 묵상 본문 : 사무엘상 3장 1절 - 14절 - 심판의 자리에서 복음을 통해 주의 보좌로 나아가 생명과 안식, 순종의 기쁨을 누리게 하소서
시작 기도
주님, 어제의 분주한 일정으로 오늘은 늦은 시간에 주의 보좌를 향해 나아갑니다.
분주한 마음을 가라앉히게 하시고 주를 향한 소망을 다시 세우도록 인도해 주옵소서.
땅의 상황은 많은 눈과 추운 날씨로 여러 가지 위험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또한 여러 공공요금의 인상으로 생활의 어려움과 문제를 호소하는 일들도 많습니다.
땅의 상황에 매이는 자로 살지 않게 하시고 오직 주의 은혜에 매여 살게 하옵소서.
주의 은혜 가운데 살기 위해서 오늘도 주의 긍휼과 자비를 간구합니다.
죄와 부정함으로 더러워진 마음과 영혼을 주님 앞에 내어 드리오니 주의 보혈로 정결하게 씻어 주시고 새 영과 마음으로 주님 앞에 서게 하옵소서.
주와 교제함으로 마음에 평안을 얻게 하시고 주를 따를 기쁨을 누리며 살게 하옵소서.
함께 하시고 은혜와 진리로 날마다 인도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본문
1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
2 엘리의 눈이 점점 어두워 가서 잘 보지 못하는 그때에 그가 자기 처소에 누웠고
3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아니하였으며 사무엘은 하나님의 궤 있는 여호와의 전 안에 누웠더니
4 여호와께서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그가 대답하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고
5 엘리에게로 달려가서 이르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그가 이르되 나는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다시 누우라 하는지라 그가 가서 누웠더니
6 여호와께서 다시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일어나 엘리에게로 가서 이르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그가 대답하되 내 아들아 내가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다시 누우라 하니라
7 사무엘이 아직 여호와를 알지 못하고 여호와의 말씀도 아직 그에게 나타나지 아니한 때라
8 여호와께서 세 번째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그가 일어나 엘리에게로 가서 이르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엘리가 여호와께서 이 아이를 부르신 줄을 깨닫고
9 엘리가 사무엘에게 이르되 가서 누웠다가 그가 너를 부르시거든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라 하니 이에 사무엘이 가서 자기 처소에 누우니라
10 여호와께서 임하여 서서 전과 같이 사무엘아 사무엘아 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이르되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니
11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이스라엘 중에 한 일을 행하리니 그것을 듣는 자마다 두 귀가 울리리라
12 내가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말한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그날에 그에게 다 이루리라
13 내가 그의 집을 영원토록 심판하겠다고 그에게 말한 것은 그가 아는 죄악 때문이니 이는 그가 자기의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14 그러므로 내가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맹세하기를 엘리 집의 죄악은 제물로나 예물로나 영원히 속죄함을 받지 못하리라 하였노라 하셨더라
본문 해설
사무엘은 어린 나이에 여호와를 섬기는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는 당시 사무엘의 나이를 본격적으로 사회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12세로 추정했다.
그리고 당시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값비싼 보배를 찾기 어려운 것처럼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는 이상과 계시가 잘 나타나지 않았던 시대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당시 제사장이었던 엘리의 눈은 점점 어두워가서 잘 보지 못했는데 이는 육신의 눈뿐만 아니라 영적인 눈도 어두워져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하지 못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엘리가 자기의 처소에서 잠을 자고 있을 때 하나님의 등불은 거지지 않았고 사무엘은 하나님의 언약궤가 있는 여호와의 전에 누워있을 때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부르는 사건이 일어난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부르셨지만 사무엘은 그 소리가 엘리의 소리라고 생각하여 엘리에게 가서 자신을 불렀냐고 대답하지만 엘리는 자신이 부르지 않았음을 이야기하고 자리로 돌아갔다.
이어서 다시 하나님은 사무엘을 부르셨고 사무엘은 다시 엘리에게 가서 자신을 찾았는지를 물었지만 엘리는 자신이 부르지 않았음을 말하고 다시 자리에 눕게 된다.
이런 모습은 아직 사무엘이 율법으로만 하나님을 알고 교제를 통해서는 하나님의 음성을 알지 못했음을 의미하며 하나님의 말씀이 그에게 주어진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음을 설명해주고 있다.
하나님은 세 번째 사무엘을 부르셨고 사무엘은 다시 엘리에게 가서 자신을 불렀냐고 묻지만 엘리는 자신이 부르지 않았기에 그 부름이 하나님의 부르심인 줄 깨닫고 그에게 조언을 한다.
그래서 사무엘에게 다시 가서 누웠다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리면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라고 대답하라고 이야기 해준다.
이에 사무엘은 자기 처소에 누웠고 하나님은 전과 같이 사무엘을 부르셨으며 이에 사무엘은 엘리가 지도한 대로 말씀하시면 주의 종이 듣겠다고 대답한다.
이에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이스라엘 가운데 하실 일을 말씀하시면서 그것을 듣는 자들의 두 귀가 울리는 큰 사건이 일어나게 될 것을 선포하신다.
그 일은 엘리의 집안에 말씀하신 것에 대한 성취였으며 엘리의 집을 심판하시는 것은 엘 리가 아들들이 죄를 저지르는 것을 막지 않고 하나님의 자주를 자청한 것임을 선포하신다.
그래서 하나님은 엘리 가문의 문제는 제물이나 예물로 속죄할 수 없음을 선포하시면서 심판의 엄중함과 반드시 실현 될 것임을 드러내신다.
나의 묵상
사무엘이 민족의 지도자로 세워지는 과정은 사무엘이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는 하나님의 모든 일은 하나님과의 만남과 함께 교제하는 과정을 통해 진행됨을 보여주는 것으로 성도의 삶도 바로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해 시작되는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지만 이런 하나님과의 교제는 제사가 진행되고 율법을 지키는 것처럼 보이던 엘리 제사장의 시대에서는 보기 드문 일이었으며 하나님의 이상과 계시의 사건도 없었음을 보여준다.
결국 타락한 시대에서는 하나님과의 교제가 희귀한 일이 되고 있음을 보여주며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자들도 찾아보기 힘든 모습임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에도 수없이 많은 매체들을 통해 말씀을 들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고 많은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지만 성도가 하나님과 교제하는 일을 쉽게 찾아 보기 어렵다.
특별히 복음을 통해 생명을 얻고 누리도록 하신 은혜에 대해 감사하며 하나님과의 교제를 이어가는 일은 쉽게 찾아보기 힘든 일이 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많은 성도들이 주의 생명을 얻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지만 그 가운데 생명의 풍요함을 누리는 사람은 많지 않고 율법준수에 대한 부담으로 살아가는 자들도 적지 않은 것이다.
이런 모습은 당시 엘리 제사장의 모습에서도 선명하게 드러나는데 엘리는 제사장이었지만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진 자의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자였다.
그래서 하나님은 엘리에게 나타나지 않으시고 사무엘에게 나타나셨으며 과거에 엘리에게 선포한 하나님의 심판을 사무엘을 통해 다시 선포하시는 일을 일으키셨던 것이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없는 율법의 준수는 형식이 되며 하나님 앞에서 죄를 쌓는 일이 된다.
그 모습을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보여주었는데 그들은 제사를 지내는 율법의 행위 가운데 자기의 욕심을 따라 제물을 갈취함으로써 하나님 앞에서 죄를 쌓게 되었던 것이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없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살피는 과정이 없는 율법의 준수는 그 자체로 하나님을 기만하는 것이 되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로 살게 만드는 것임을 보여준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진행하시면서 먼저 말씀에 대한 분명한 이해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들을 바르게 세우시는 일을 행하신다.
엘리와 두 아들의 타락으로 말씀이 바르게 전해지지 않았기에 하나님은 엘리와 두 아들을 심판하시고 그 뒤를 이어 사무엘에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선포하도록 사무엘을 찾아오신다.
그리고 그를 부르시고 그가 하나님과 교제하는 자가 되게 하셔서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세상 가운데 선포하며 생명의 길로 나아가도록 인도하신다.
구약에서는 하나님께서 상징적인 인물을 통해 그 일을 행하셨지만 태초부터 계획하신 생명의 역사를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하신 후에는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 생명의 길로 가도록 이끄신다.
그래서 오늘날에는 복음을 통해 생명을 얻고 누리는 자들을 사용하셔서 생명의 역사를 드러내도록 만드시고 하나님과의 영적 교제를 회복하도록 만드시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영적 교제는 하나님 안에서 안식을 누리는 것이 되며 그 일을 위해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셨고 그 일을 성취하셨으며 성도들도 그 안식에 참여하는 자가 되도록 만드셨다.
이것을 히브리서 기자가 분명하게 증거 하면서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해 안식에 참여하는 자가 되는 것이 성도가 가야 할 길이며 추구해야 할 사명임을 제시한다.
9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10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의 일을 쉬심과 같이 그도 자기의 일을 쉬느니라 11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13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14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4:9~16)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의 안식을 누리는 것을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는 것임을 제시하며 성도가 이 일을 위해 힘쓰고 하나님의 말씀은 그 일을 지도하고 있음을 선포하고 있다.
인생에 연약함이 있고 어리석음이 있으며 무지와 패역함이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그 모든 연약함과 문제를 벗어나게 만들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 은혜의 보좌에 들어가게 만든다.
그리고 그 안에서 안식을 누리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로 서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여전히 문제와 어리석음을 가지고 사는 인생임에도 불구하고 주의 긍휼과 자비를 구하며 안식과 교제 가운데 나아가기를 힘쓰는 것이 인생의 참 지혜요 능력임을 고백하게 하신다.
오늘도 주님과 교제하는 삶을 통해 안식을 누리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로 서는 역사가 나의 삶, 그리고 주의 지체들의 삶 가운데 풍성하게 나타날 수 있기를 기도한다.
묵상 기도
주님, 저의 삶도 엘리 제사장처럼 무지하며 어리석고 하나님의 심판으로 향하는 자의 모습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자리에 머물게 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통해 생명의 자리로 인도하시며 하나님의 풍요함을 누리고 전파하는 자로 세우신 주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할 수밖에 없음을 고백합니다.
패역한 자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자리에 서는 어리석음을 날마다 벗어나게 하시고 주의 긍휼과 자비를 따라 감사함으로 살아가는 주의 백성이 되게 하옵소서.
이를 위해서는 오직 복음을 통해 주의 보좌로 나아가 주와 교제하는 과정이 있어야 함을 기억하고 날마다 주와 교제하기를 힘쓰는 자 되게 하옵소서.
사무엘이 하나님의 언약궤 옆에 머무르며 살았던 것처럼 저의 삶도 주의 복음 안에 머무르기를 힘쓰는 주의 백성의 삶이 되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오늘도 주의 은혜와 긍휼을 의지하며 믿음의 길을 가는 자 되길 소망합니다.
마음과 생각을 주관하여 주시고 주 안에서 평안과 기쁨을 누리며 전하는 자로 살게 하옵소서.
함께 하시고 날마다 은혜와 진리로 붙들어 주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