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을 일으키는 삶을 살라! 낡은 삶에 무슨 가치가 있는가! 나는 너희들을 보호하지 않으며 아끼지도 않는다. 나는 너희들을 진심으로 사랑한다. 전쟁을 하고 있는 나의 형제들이여!" - F.니체.
"생존을 바라는 자는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영원한 투쟁의 세계에서 싸움을 바라지 않는 자는 살 가치가 없다." 히틀러의 투쟁의지를 간결하게 나태내주는 본문 문구다. 군대를 제대한 지 이제 5개월에 접어든다. 결코 짧지 않는 5개월 동안 나는 무엇을 했는가. 전역할 때 가다듬었던 의지는 아직도 예리한가. 혹시 일상의 반복에 닳고 닳아 두부조차 벨 수 없는 건 아닌가. 생은 여전히 흥미롭게 다가오는가. 아직은 웃을 수 있는가. 여러 질문들이 습격처럼 덮친다. 이런 끈질긴 불안은 내게 확고한 의지를 요구했다. 흔들리 않는 티탄의 무거움을. 강직함을. 이러한 이유에서 나는 다시 이 책 '나의 투쟁'을 잡아들었다. 고3 때 너무 지루해 던져버린 이 책을 또 읽는다는 생각에 답답함이 엄습했지만 읽어야 했다. 모든 만남은 때가 있지 않은가.
책에서 히틀러는 시종일관 줄기차게 독일과 독일인의 강성-부흥을 외친다. 독일의 부국강병을 위해 히틀러는 여러 이론과 신념을 토해놓는다. 다양하고 방대하기에 그 이론을 정리하는 것은 이 후기의 목표가 아니기에 생략한다. 단, 그의 사상이 터무니 없지만은 않다는 것은 말해두고 싶다. 인간심리의 취약점을 이용해 설득력 있게 인종론과 대중조작과 선전의 기술, 유태인의 야비함을 설명해나간다. 나는 히틀러의 사상에 굳이 시비를 걸지는 않는다. 도덕보다는 현실을 따지는 내 기질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실용성이다. 물론 2차세계대전 주요 전범으로서 수많은 병사와 무고한 사람을 희생시키고 광기에 가까운 유태인 혐오로 인종청소를 주도한 그의 인성까지 긍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의 실용적인 이론과 성격의 강인함에 호의를 보이는 것이다.
책에서 얻은 것은 복잡한 이론이나 피끓는 애국감정이 아니라 생에 대한 히틀러의 강한 긍정의 의지다. 삶에 대한 강한 애착과 운명에 대한 불굴의 반항정신. 이 소돔의 세계에서 무한경쟁 시대에서, 전역한 지 반년도 안 된 내게 히틀러는 새삼 열정을 불어 넣어준다. 히틀러는 실러의 시구를 인용하여 생에 대한 적극성과 도전정신의 의의를 느끼게 해준다. "네가 생명을 걸지 않는다면, 생을 얻는 일은 없으리라." 이 얼마나 고무적인가. 그렇다. 생을 긍정하고 사랑하는 인간은 불굴의 반항정신으로 투쟁하고 또 투쟁해야 한다. 거침없는 용기과 행동력 그리고 공격. 그가 늘 반복 주장하듯이 공격만이 최선의 방어인 것이다. 운명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고 싶은가? 그렇다면 공격하고 싸워라. 투쟁하라. 히틀러는 내게 투쟁의지를 좀 더 강하게 점화시켜주었다. 자기자신을 확신하고, 불관용적이며 타협하지 않고 감상에 빠지지 않는 것. 중요한 것은 힘이며 투쟁이다. 행동하라. 공격하라.
*히틀러는 무솔리니를 만날 때 그에게 니체전집을 줄 정도로 니체를 흠모했다. 나의 투쟁에서 역시 니체의 분위기를 많은 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히틀러의 강인한 투쟁의지와 생에 대한 강한 열정은 아마 니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첫댓글 자신이 미치광이 권력자에 의해 어떻게 왜곡되었는지를 알았다면 니체가 무덤에서 벌떡 일어났을 겁니다.
휴머니티라는 점에서 니체의 이론이 히틀러의 잔학성에 이용된 것은 분명 가슴이 아픕니다. 그러나 원론적으로 니체의 이론엔 답이 없고 진리도 없고 천개의 얼굴만이 있습니다. 왜곡이라기보다는 히틀러의 '니체'라고 하는 게 더 낫겠네요.
천만에요. "영원회귀"를 외칠 정도로 생을 사랑한 니체와, 생을 정면으로 대면하기를 두려워한 나머지 맹목적인 권력의지(니체가 말한 Wille zur Macht와는 달리 지극히 세속적인 정치적 권력에의 의지)로 자신뿐 아니라 전 독일 국민을 몰고간 히틀러는 도저히 같은 범주로 설명될 수 없는 인간입니다. 니체식으로 표현하면 히틀러야말로 생을 저주한 인간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니체는 신생 독일 제국을 증오했습니다. 바로 세속적 권력에의 도취가 개인의 자유로운 삶에의 진지한 접근을 저해한다고 보았기 때문이지요. 반대로 히틀러는 "끊임없이 대중을 도취시켜라"고 말했습니다. 사실은 그 자신부터 권력에 도취되어 있었기에 그랬던 거지요. 그 거창한 수사와 외견상 불굴의 투쟁가처럼 보이는 활동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는 자신으로부터 도피하려 한 인간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굳이 말하자면 히틀러는 니체보다는 바그너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죠. 니체가 독일민족의 부정적 특성으로 지목한 "파멸에의 의지"가 둘 사이의 공통점이라고 하겠네요. 표면적으로 강인한 의지를 보이는 듯 하지만, 결국은 삶을 초극하는 "초인"이 되려하기보다 보다 큰 "숙명적인 의지"에 이끌리는 인간... 그는 자신이 아니라 자신 속의 일부분인 부정적인 의지에 이끌린 인간이겠지요.
자~ 이제 생명을 걸고 생을 얻는 ..이를태면 다크포스(?) ㅡ.ㅡ;를 알았으니까, 착한포스를 길러보아요. 물흐르듯이 사랑으로 생을 살아갈수 있습니다. 법정의 무소유..꼭 맘에 드는건 아니지만 지금 상태에서 더 자신을 채찍질 하다가는 또하나의 유영철이 탄생하지 않을까하는;;;ㅋㅋ 농담이요^^;
천재소년님 제 글을 끝까지 안 읽어보셨군요. 선악이란 추상적인 잣대로 벌써 저를 끼워 맞추시려 하시다니요. 유영철이란 비유는 뭐죠. 농담이라도 기분이 나빠요. 값싼 비유입니다. 조조라고 해주시지. 윗글의 맥락은 히틀러 찬양, 범죄조장이 아니라 가혹한 운명과 싸우는 인간의 실존은 어떤 마음가짐이어야 하는가입니다. 천재소년님도 세계와 싸우고 있잖아요. 태어났다고 그저 그렇게 휘둘리며 사는 노예는 아니죠? 맥없는 노인인가요, 아니죠? 그럼 싸워야죠. 운명과. 저한테 공격을 투사하지 말고.
자자아모르파티님..너무 딱딱하게 보지마세요^^; 다시한번 제가 반박한다면 투쟁이되겠네요;;ㅋ 아모르님의 의견도 존중하고 내 의견은 그냥 의견일 뿐이라는 마인드를 가진다면 훨씬 자유로운 사람으로 살 수 있을것 같네요. 세계는 나를 휘둘기도 하지만 그 속에서 어떤 느낌을 가지던지는 본인의 의지입니다. 절때 노예가 될수 없죠. 님의 말씀대로 투쟁한다고 바뀔 만큼 하찮은 것도 아니고요.^^ 아우슈비츠에서도 희망은 있었어요^^
그리고 '포스'라는 어휘 아실지 모르겠지만 스타워즈에서 나옵니다. 최신 에피소드 123(?)을 보시면 선악의 관계가 모호합니다. 선악이란 그런거지요. 논리만으로 충당될수 있는것이 아닙니다. 휴머니즘은 그런 흑백논리에서 자유롭죠^^ 아이로봇인가(?)로봇 아이던가?ㅡㅡ; 하여간 로봇하고 흑인주인공 나오는 영화있는데 논리가 어떤 결과도 낳을수 있는지 보여줍니다. 한번보세요^^;(제목도 잘 모르면서 추천은;;)
제대하셨다고하니..(저의경험을) 저는 상병제대를 했습니다(이유는생략)..군기가 잔뜩 들어있다가 빠지기 전에(병장되기전에) 제대하니 "안되면되게하라"는 군인정신때문이었던지 복학도 1년미루고 제대후 1주일도 안돼서 지방에서 서울로 일하러(아르바이트) 갔습니다...^^ 그때생각에 다니던 학교를 때려치우고 다시 대학을 갈까도 했는데......암튼 힘들게 군대생활하다 외박나오면 민간인들이 엄청 빠져보이는(너무 한가하게 보이는)것은 확실합니다. 어쩌면 님께서 그런 기분일거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근데 6개월내지 1년지나면 똑같습니다. 인간이란게 워낙에 적응을 잘해서.^^ 히틀러나 니체가 좋다가도 세월지나면 유행가를 좋아하기도
책읽는다는 녀석치고 왕년에(젊었을때) 니체니 칸트책을 안읽어본 녀석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정말 중요한 것은 "필요에 의해서 책을 읽는다"는거죠..님처럼 왕년에 어려워서 던져놓은 책을 다시 읽는 것...얼마나 재미있겠습니까!! 부럽습니다. 공부할 시간이 있다는 거...그것도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의 공부를 할수 있다는 것.......ㅠㅠ
책방에 '니 무덤에 침을 뱉으마' 란 책이 있던데 아주 좋아요.
좋은 글입니다. 자기 생에 대한 고민은 항상 겪는 것이니까요. 저도 히틀러의 <나의 투쟁>을 읽었습니다만, 건성으로 읽어서 그다지 기억에 남아 있지는 않네요. 화이팅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