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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라디아서 5: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1 순종 : 불순종 = 성령 : 육체 = 하나님의 법 : 죄의 법
사도 바울은 성령과 육체의 관계를 생명과 사망으로, 더 나아가 생명의 성령과 사망의 죄로, 더 나아가 생명의 성령의 법과 죄와 사망의 법으로 설명했다. 사실 우리의 순종과 불순종은 모두 여호와의 법도이다. 왜냐하면 언약이기 때문이다. 순종하면 주시겠다는 언약이 생명이고 불순종하면 주시겠다는 언약이 사망이다. 여기서 사망하게 하는 법은 불순종의 법 다시 말해 죄를 따르는 법을 말한다(롬8: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롬8:2)
위 말씀처럼 우리에게는 두가지 법이 있다. 즉 생명의 법과 사망의 법이다. 또한 바울은 순종하면 하나님의 법이라고 불렀고 불순종하면 죄의 법이라고 불렀다. 우리의 죄성(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박지 않으면 마음으로 하나님의 법을 기뻐한다 해도 육신은 살아서 죄를 법을 따를 것이다(롬7:22-25). 그러므로 우린 예슈아와 함께 옛 남편(죄성)을 십자가에 못박고 성령의 법을 따라 불순종에서 해방되어 자유로워져야 한다. 그럴때 우린 더이상 육신을 따르지 않고 영을 따라 행함으로 율법이 요구하시는 것을 이룰 수 있다(롬8:4)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롬7:22,23)
남편 있는 여인이 그 남편 생전에는 법으로 그에게 매인 바 되나 만일 그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벗어나느니라 (롬7:2)
# 갈라디아서 5: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2 성령과 육체는 서로 대적한다
사람은 영적인 존재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하나님의 아들들이다. 그러므로 본성이 하늘의 것들을 따르게 되어 있다. 누구나 하나님을 추구하기 원하고 온전함을 이루기 원한다. 이러한 온전해지고자 하는 마음이 모두 있으면서 왜 이루지 못하는 것일까? 그것은 온전해지기 위해 무엇을 추구하는가에 있다. 하나님의 법을 추구하는가? 죄의 법을 추구하는가? 하와는 죄의 법을 추구하다 약속의 땅에서 쫓겨났다. 이처럼 말씀은 우리가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기뻐하지만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따른다고 말하고 있다(롬7:21-23). 우리는 결코 하나님의 법(성령의 생명의 법)과 죄의 법을 동시에 추구할 수 없다. 이유는 성령과 육체는 추구하는 바가 반대이므로 서로 대적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롬7:21-23)
사단은 하나님의 유업을 얻을 인간을 질투한다. 그래서 우리의 대적 마귀는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 그러나 우리에게 잠깐 닥치는 환란과 고난은 여호와께서 우리를 온전케 세워 그날에 예슈아와 함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려고 허락하신 일이다. 즉 모든 성도들이 동일하게 겪는 고난이다. 그러므로 시험을 당할지라도 고난 중에 염려하지 말자. 우리가 고난에도 불구하고 육체의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따를 수 있도록 아버지께서 친히 우리를 훈련하실 것이고 반드시 굳건하게 세우시고 온전케 하실 것이다(벧전5:7-10).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 (벧전5:7-10)
3 율법의 요구를 이룬다
우리의 본성은 하나님과 같이 거룩하고 온전한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그 요구는 하와를 보면 알 수 있다. 에덴에서 최초의 인간 하와는 하나님처럼 완전한 존재가 되기 원했다(창3:5,6). 사실 하나님을 닮은 완전한 자가 되어 영생을 얻는 것은 태초부터 정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계획이었다. 그러나 사단이 하와를 미혹한 것처럼 지금도 우리를 미혹한다. 방법은 거룩한 목적을 이루지 못하도록 불순종을 합리화하는 것이다(엡2:2). 이처럼 육신이 주는 생각은 결국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래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할 뿐 아니라 원수가 되게 만든다(롬8: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롬8:7,8)
태초에 아담과 하와가 용 곧 옛뱀 마귀를 따라 불순종하여 에덴에서 쫓겨났다. 그와 같이 오늘날도 우리는 용의 미혹을 따라 불순종하면 회복될 에덴, 예슈아께서 통치하실 예루샬라임에 참여하지 못할 것이다(계20:2,4). 반면 하나님의 영인 성령은 우리로 진리에 순종하게 함으로써 육체를 대적하고 율법의 요구를 이루게 한다(롬8:4). 즉 성령이 주는 생각은 하나님의 법에 죽기까지 순종하게 함으로써 생명을 얻게 하고 하나님과 샬롬을 이루게 한다(롬8:4-6). 이와 같이 죽기까지 순종하는 예슈아의 고난에 참여한 자들이 그날에 여호와의 영광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벧전4:13,14). 다시 말해 불순종의 미혹을 이기고 순종한 자들은 마침내 썩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와 영생을 상속받을 것이다(계21:7).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탄이라 잡아서 천 년 동안 결박하여... 또 그들을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계20:2,4)
# 갈라디아서 5:18.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
4 율법은 죄가 아니다
우리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면 율법 아래 있지 않다고 바울은 말했다. 율법 아래 있지 않다는 것은 더이상 죄의 종으로써 율법의 제제(금지 당함)를 받지 않는 것을 말한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율법 아래 있다는 것은 이스마엘이나 땅에 속한 자들처럼 믿음을 만나지 못했거나 죽은 행실을 가진 자들이었다. 즉 믿음이 없거나 의로운 행실이 없는 자로 유업을 얻지 못하는 어린 신앙 상태를 말한다(갈4:1,7). 그러나 성령은 우리로 순종하게 하여 율법의 요구를 이루게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불순종(죄)에서 해방되어 죄의 저주에서 자유롭게 한다.
‘율법 아래 있지 않다’라는 것은 ‘죄로부터 자유롭다’라는 뜻이므로 마치 율법이 죄라고 오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렇게 오해할까봐 율법이 죄가 아님을 분명하게 증언했다(롬7:7). 여기서 분명한 것은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죄가 무엇인지 가르치고 생명을 주시려고 율법을 주셨다는 것이다. 그러나 도리어 우리가 불순종하여 사망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것은 율법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이다. 그럼에도 사망하게 하는 율법을 통해 얼마나 생명을 줄 수 있는지도 알 수있다. 불순종하여 죽게된 우리를 위해 이번에는 예슈아를 보내셔서 율법에 순종하게 하여 우리를 살게 하신 것이다. 우리의 옛사람인 죄성을 십자가에 매달아 율법에 대해 죽게 하셨다. 그러므로 이젠 예슈아처럼 오직 순종의 종이 되어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다(롬7:4-12). 이와 같이 율법으로 인해 죽게된 사람들을 또한 율법으로 인해 생명을 얻게 하신 분은 여호와시다. 즉 아담으로 인해 죽게 된 자들을 예슈아로 인해 살게 하신 것이다. 그래서 아담의 불순종에 속한 자들이 사망하는 것처럼 예슈아의 순종에 속한 자들이 의로움을 통해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이다(롬5:19,21). 그러므로 오직 율법은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다(롬7:12). 언제나 문제는 사람에게 있지 하나님께 있지 않다!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 이로 보건대 율법은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도다 (롬7:4,7,10-12)
# 갈라디아서 5:19.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20.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21.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Meekness, temperance: against such there is no law.
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25.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26.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5 성령의 열매를 금하는 율법은 없다
육체의 일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이웃을 사랑하지 않아서 범하는 죄이다.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 우상숭배, 분쟁, 시기, 이단 등 모두 사랑하지 않아서 생기는 불순종에 해당된다. 마찬가지로 성령의 열매는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온유, 절제 등 모두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 대한 순종에 해당한다. 이렇게 순종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의 정욕과 탐심이 십자가에서 죽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령의 열매를 금지하는(상반되는) 법은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여기서 '금지할'의 어원은 '반하는' 영어로는 against 를 사용하여 '상반되는' 이라는 뜻이다. 즉 성령의 열매는 율법이 요구하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결과이다. 그러므로 죄가 아니고 율법의 제재를 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처럼 예슈아의 십자가 희생은 우리로 하여금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여 많은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한다(롬6:16).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롬6:16)
6 컬트, 밀교는 이단이다
‘이단’은 헬라어 αἱρέσεις(하이레시스)를 번역한 것이다. 그 뜻은 ‘선택, 당파, 분리, 이단’이며, 히브리어 성경은 이 단어를 כתות (키토트) ’컬트’라고 번역했다. 기독교 신학에서 컬트(cults)는 교회의 교의 체계 속에 수용되지 않는 토착 제사, 이교적, 개인적 제사, 신령 운동 등을 뜻한다. 이들의 교리는 은밀히 행해지고 가르쳐지며, 주술과 마법을 통해 자신들의 비법들을 전달하는데 이러한 신비 종교를 ‘밀교’라고 부른다. 밀교는 비밀리에 전해지는 종교적 사상을 가리키므로 교리에 대해 자세한 사항을 알 길이 없다. 크게는 불교, 힌두교 등 대부분의 신비 종교가 이에 해당하며 가톨릭의 기원도 '미트라 밀교'에서 비롯되었다고 전해진다.
컬트는 ‘종교 숭배’로 특정한 인물이나 사물을 향해 직접적으로 헌신하거나 종교적으로 경배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많은 이단들이 실질적으로 숭배하는 교주를 가지고 있거나 형상을 만들어 경배하고 있다. 이처럼 교주를 가지거나 형상을 세운 집단에게 컬트(이단)는 다시금 경종이 되는 단어이다. 반면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 한 분께만 영광을 돌리고 경배를 드린다. 예슈아의 십자가 희생으로 우리는 죄악을 떠났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으며 의의 종이 되어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게 되었다(고후5:18).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고후5:18,21)
7. 3대 절기와 구원의 3단계
만약 성령의 열매를 많이 맺는 의로운 삶을 살지 않고 육체의 열매를 맺는 불의한 삶을 산다면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고 말씀하고 있다(고전6:9,10).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게 되는 구원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해보자. 바울은 믿음의 결말이 구원이라고 말했고 구원에 이르기까지 성장하라고 말하기 때문에 구원은 한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과정을 포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벧전1:5,9). 즉 구원은 믿음의 성장 과정을 포함하고 있고 그에 따른 결과이다.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벧전1:9)
우리의 믿음이 성장하는 인생 여정은 여호와의 절기가 담고 있다. 절기는 예슈아의 초림과 재림을 담고 있기 때문에 구원의 시작과 완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여호와의 절기는 크게 3대 절기로 나눌 수 있다(출23:14). 그와 같이 우리의 믿음의 성장도 3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여호와의 3대 절기는 유월절, 오순절, 장막절이고 믿음의 3단계도 유월절, 오순절, 장막절로 자라게 되며 구원의 장성한 분량으로 채워진다.
먼저 1단계는 ‘유월절 단계’로 믿음의 시작이면서 동시에 구원의 시작이다(출7:34). 이스라엘이 애굽이라는 세상에서 구원을 받은 것처럼, 세상 죄에서 건짐을 받았고 영원한 안식을 향한 믿음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이것이 구원의 시작 단계이다. 2단계는 ‘오순절 단계’이다. 거룩한 법도를 받고 거룩한 사람, 거룩한 가정, 거룩한 나라를 순종으로 세워가는 단계이다. 세상 법도로 부터의 구원이며 이제는 하나님의 법도를 세워가는 좀 더 성장한 믿음의 단계이다. 개인 구원 뿐 아니라 공동체의 구원을 함께 이루어 간다. 날마다 말씀에 순종하며 성화를 이루어 가는 삶이고 예슈아를 닮아가는 제자로서의 삶으로 고난을 통해 믿음을 증명하며 구원을 이루는 인생의 모든 여정을 포함한다. 히브리서 기자는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애굽의 죄로부터 건짐을 받고(구원) 믿음이 있었지만 그러면서도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아서 언약의 땅에 이르지 못했다고 말한다(히4:6). 즉 순종이 없는 미성숙한 믿음이었고 죽은 믿음이었던 것이다. 이 광야의 역사는 안식의 나라에 들어가기 원하는 우리를 위한 예시이며 경고이다. 그러므로 구원에 이르기 위해 예슈아의 장성한 믿음의 분량으로 자라나기를 힘써야 한다(엡4:13). 그리고 마지막 3단계는 ‘장막절 단계’이다. 장막절은 다시 오실 예슈아께서 통치하실 메시아 왕국을 말하고 또한 하나님의 장막이 우리 중에 영원히 거하며 함께 살게 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의미한다. 즉 말세에 나타나게 될 믿음의 결말인 '구원의 완성’이 이루어지는 때이다(벧전1:5, 히10:39).
그러면 거기에 들어갈 자들이 남아 있거니와 복음 전함을 먼저 받은 자들은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들어가지 못하였으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히4:6,11)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불순종하여 많이 죽은 것처럼 예슈아께서도 구원을 받을 자가 적다고 경고하셨다(눅13:23). 그러므로 바울은 구원을 이루기 위해 항상 두렵고 떨림으로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라고 경고하고 있다(빌2:12).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주여 구원을 받는 자가 적으니이까 그들에게 이르시되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눅13:23,24)
8 인정받고 자랑하고 싶은 욕구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산다고 말하면서도 헛된 영광을 구할 때가 많다. 그로 인해 상처를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한다. 인정받고 자랑하고 싶은 인간의 욕구로 인해,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는 것을 막을 때가 얼마나 많은가? 그럴수록 예슈아의 본을 좇아야 한다. 예슈아께서는 억울하게 심문당할 때조차 입을 열지 않으셨다. 그 모습을 보고 빌라도가 굉장히 놀랍게 여겼다(마27:14). 우리의 기본적인 욕구인,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예슈아께서는 이기셨다. 억울하게 비난받고 죄인처럼 정죄당할 때조차 겸손히 침묵하셨다. 내가 아무리 옳아도, 내가 다른 사람 때문에 고난을 받아도, 주님 앞에 어느 누가 의인이라고 스스로 내세울 수 있겠는가? 비록 억울할지라도 많은 정죄와 비난을 받을 때 그들을 위해 진정으로 축복하며 침묵할 수 있다면, 비로소 우리는 헛된 영광을 구하는 욕망에서 자유해질 것이다. 그래야 예슈아의 남은 고난에 동참할 수 있으리라.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벧전2:20)
샤밧 예배: 토요일 11시
대전시 동구 가양동 39-11 2층 레올람 토라 하우스
https://cafe.naver.com/freeflaging
#히브리적관점 #갈라디아서 #레올람토라 #미라클조
삭제된 댓글 입니다.
댓글 감사드립니다~^^
결국 생명의 법이냐 사망의 법이냐의 싸움인데
이 해석에도 미혹을 받아 불순종이 합리화된 것 같습니다
예슈아께서 죽으신 것이 마치 가톨릭의 전통을 따르게 하기위한 것처럼 되어버렸으니 말이죠
일점 일획도 더하거나 빼지 말라고 하셨지만 배가 산으로 가고 말았습니다
너무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예슈아께서 말씀하신 거처럼 반드시 회복될 것을 믿습니다
마태복음 5: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로마서 8장
[2] 왜요? 메시아 예슈아와 연합하여 이 생명을 이루는 성령의
토라가 나를 죄와 사망의 “토라”에서 해방시켰기 때문입니다.
예전엔 신약이 쉽다고 생각했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특히 로마서 같은경우 말에 뜻이 애매하게 흘러가는것 같아서 헷갈렸지요.
한글로 오기까지의 번역상의 뜻이 흐려진게 많다는걸 점점 느끼게 되면서 히브리 성경을 번역기에 돌려서 보는게 더 쉽더라구요.
살전 5:19 성령을 소멸하지 마십시오 <--이 부분도 영원한 황동제단의 불을 끄는것을 비유로 한다고 말하더군요.
점점 시간이 흐를수록 구약을 알아야 신약이 더 잘 보이는것 같아요
오늘도 평안하십시요 ^^
샬롬~~^^
감사합니다
황동 제단의 불을 끈다...
은혜받았습니다
할렐루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