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미우리 이승엽은 올 시즌 기대에 못미쳤다. 내년은 요미우리와 계약 마지막 해. 그의 아버지 이춘광 씨는 올해는 쉬어가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소망을 가슴에 담아 전남 강진 베이스볼 파크에 표지석을 직접 써서 기증했다. 동아일보 자료>
고향(故鄕)이란 뭘까요?
사전적으로는 ‘자기가 태어나서 자란 곳’이고
‘조상 대대로 살아온 곳’이며
‘마음속에 깊이 간직한 그립고 정든 곳’입니다.
이 때문에 실향민에게 고향을 언제나 그리운 대상이고
해마다 명절이면 교통지옥을 감수하면서까지 향하는 땅이기도 합니다.
연어가 죽기 전 고향으로 거슬러 오르듯
인간 역시 나고 자란 추억의 장소를 잊지 못합니다.
요미우리 이승엽의 아버지 이춘광 씨(66)도 그렇습니다.
이 씨는 전남 강진군이 고향입니다.
군대 제대 후 대구에 정착한 탓에
강진과 대구가 모두 고향이 됐지만
태어난 곳에 대한 향수는 남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올해 7월 개장한 강진베이스볼파크도 이 씨의 역할이 적지 않았습니다.
2006년 제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때였습니다.
이 씨는 평소 친분이 두텁던 야구장 담장 제작업체를 제작하는
우수창 대표와 일본 도쿄돔에서 만났습니다.
우 대표는 이 씨에게 베이스볼 파크를 만들 생각이라고 하자
이 씨는 강진을 추천했습니다.
<강진베이스볼파크 표지석 앞에서 이춘광 씨(왼쪽)와 우수창 대표. 사진=황태훈>
우 대표는 “원래 남해를 생각했는데 강진을 가본 뒤 마음이 바뀌었다”고 말했습니다.
강진베이스볼파크가 세워진 도암면 학장리는 앞으로는 바다가
뒤로는 월출산이 위치해 경관이 수려했습니다.
바다에 섬이 많아 태풍을 거의 없고
산은 바람을 막아줘 다른 지역에 비해 겨울에도 따뜻한 곳입니다.
우 대표는 사재 50억 원을 들여 강진베이스볼파크를 세웠습니다.
이 씨는 수천만 원 짜리 표지석를 구해 무상으로 기증했습니다.
올해 3월부터 목포, 광주 등 지방을 돌아다니며 표지석이 될만한 돌을 찾아다녔습니다.
결국 충남 보령에서 표지석과 받침석을 포함해 무게 15t이나 되는 돌을 찾아냈다더군요.
“돌 모양이 위 보다 아래가 넓어야 안정적이죠. 발품을 파니까 그런 돌이 눈에 띄더라고….”
그런 강진베이스볼파크를 지난달 30일 이 씨와 함께 가봤습니다.
이 씨는 표지석을 어루만지며 이렇게 혼잣말을 했습니다.
“내가 나이 들어서 글씨 쓰는 연습 좀 했지.”
표지석 제작업체에서 직접 글씨를 써보라는 권유를 받고
매일 3시간씩 서예 공부를 했다고 합니다.
2개월 넘게 밤마다 ‘강진베이스볼파크’라는 일곱 글자를
쓰고 또 쓴 끝에 만에 완성했다는 거죠.
아마도 고향에 대한 애정을 담았을 터입니다.
그리고 하나 더 그의 둘째 아들 이승엽의 부활을 기원하는 마음도 느껴졌습니다.
표지석 옆에는 이승엽의 사인과
‘진정한 노력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는 좌우명이 적혀있었습니다.
<전남 강진,사진=황태훈>
아버지는 “강진베이스볼파크가 미래의 야구 꿈나무를 키우는 젖줄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아들의 얘기를 꺼냈습니다.
이승엽이 올 시즌 기대에 못미친 것에 대해
“야구도 인생처럼 쉬어갈 때도 있는 법”이라고 덤덤히 말했습니다.
마음고생은 아버지도 아들 못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이 씨는 지난 8월 아들을 보고 싶어 도쿄행 비행기 표까지 끊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2군에 내려간 아들이 부담될까봐 포기했습니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제 컨디션을 회복한 뒤에 일본으로 모시겠다”고 전했다 합니다.
이 씨는 믿었습니다.
이승엽이 계약 마지막해인 내년에는 제몫을 해줄 거라고 말이죠.
“승엽이가 야구팬에게 받은 사랑은 돈으로 따질 수 없죠.
언젠가 그것을 보답해야죠. 물질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말입니다.”
강진 베이스볼파크는 좌우 96m, 중앙 120m 길이의 정식 규격 야구장 4면과 돔 실내 연습장이 마련돼 있습니다.
연말까지 120명이 생활할 수 있는 선수용 숙소를 완공하고 내년 말까지 수영장, 캠핑장 등이 추가로 세워진답니다.
우 대표 역시 이승엽에 대한 애정이 많았습니다.
그는 강진베이스볼파크에 이승엽 박물관을 세우고 싶다고 했습니다.
“승엽이는 야구 스타를 넘어 존경받는 인물이 돼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야구 꿈나무들에게 희망을 주는 역할을 더 해줬으면 좋겠어요.”
이승엽은 대구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의 고향도 또 다른 고향입니다.
그 곳에 야구 공원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바람처럼,
이승엽이 일본 야구에서 홈런포를 쏘아올리고
또 야구 발전을 위한 역할을 해 준다면
제2, 제3의 이승엽이 더 많이 나오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스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