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이든 측근’ 美대사, 日기시다 첫대면서 “함께 야구 봅시다”
이매뉴얼 주일 美대사 부임으로 본 美日 밀착
‘실세’ 이매뉴얼 부임에 日 반색… 거물급들 가는 주일 美대사
中 견제 위해 밀착 가속
4일 일본 도쿄 나가타정의 총리 관저. 지난달 23일 부임한 람 이매뉴얼 신임 주일 미국 대사(63)가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를 처음 예방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측근인 윌리엄 해거티 전 대사가 상원의원 선거 출마를 위해 2019년 7월 사퇴한 후 주일 미 대사 자리는 약 2년 반 동안 공석이었다.
미 3대 도시 시카고에서 태어났고 이곳에서 시장까지 지낸 이매뉴얼 대사는 열렬한 야구팬인 기시다 총리를 위해 시카고가 연고인 미 메이저리그(MLB) 프로야구팀 시카고 컵스와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유니폼을 모두 선물했다. 그는 옷에 지난해 10월 제100대 총리로 취임한 기시다를 위해 등번호 ‘100’과 총리의 영문 이름 ‘기시다’를 새겼다. “이 옷을 입고 같이 야구를 보자”는 그의 말에 기시다 총리 또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매뉴얼 대사는 도착 후 8일간 격리를 마치자마자 곧바로 이달 1일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 외상과 만났다. 3일 후 총리까지 예방했다. 지난해 1월 부임한 강창일 주일 한국 대사가 1년이 흐른 지금 총리는커녕 외상과도 만나지 못한 것과 대조적이다. 일본이 미 대사를 얼마나 예우하는지 잘 보여준다.
미국 또한 대통령의 최측근, 전 부통령 등 백악관과 바로 통화할 수 있는 거물급 인사를 일본에 많이 보냈다. 주한 미 대사로 차관보 혹은 부차관보급의 직업 외교관이 주로 왔던 것과 천양지차다.
이매뉴얼 대사는 2008년 미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과 대선에서 당시 초선 상원의원이던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잇따른 승리를 이끌어낸 집권 민주당의 ‘실세 중 실세’다. 그 공을 인정받아 오바마 행정부의 1기 백악관 비서실장을 지내며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고 당시 부통령이던 조 바이든 현 대통령과도 가까워졌다. 바이든 행정부 출범 후 더 밀착하는 미일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 이매뉴얼 대사인 것이다.
○‘오바마·바이든의 남자’ 이매뉴얼
미 정치를 전공한 와타나베 마사히토(渡변將人) 홋카이도대 조교수는 지난해 12월 이매뉴얼 대사의 내정이 보도된 직후 마이니치신문 기고에서 주일 미 대사의 특징을 4가지로 분류했다. △미 대통령에 대한 접근성이 높음 △미 의회와 집권당 내 영향력이 강함 △비즈니스 등 비(非)정계 분야의 영향력이 큼 △일본에 대한 지식이 높음이다. 와타나베 조교수는 “이매뉴얼 대사는 일본에 대한 지식을 제외한 나머지 세 특징을 모두 갖춘 이례적 인물”이라며 그의 부임이 바이든 미 행정부의 일본 중시 경향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이매뉴얼은 1959년 몰도바계 유대인 가정의 3남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인문학 명문 세라로런스칼리지와 노스웨스턴대 석사를 졸업한 후 1992년 미 대선 당시 빌 클린턴 민주당 대선후보의 캠프에서 자금 모집을 맡았다. 클린턴의 당선 후 정책보좌관을 지냈고 클린턴의 퇴임 후 프레디맥 등 금융사에서 근무하며 큰돈을 번 것으로 알려졌다. 2002년 시카고가 속한 일리노이주 하원의원으로 뽑혔고 4선(選)에 성공했다. 이때 일리노이 상원의원인 오바마 전 대통령을 만났다.
당시 이매뉴얼은 한 살 어린 오바마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했다. 2008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클린턴 전 대통령의 부인 힐러리 클린턴 당시 뉴욕주 상원의원과 오바마가 맞붙었다. 클린턴 의원은 자신이 보좌했던 대통령의 부인이었고 인지도와 자금력 또한 앞섰지만 이매뉴얼은 두 진영 어디에도 참여하지 않고 중립을 지켰다. 사실상의 오바마 지지나 다름없는 행보였다는 평가가 나왔다.
대선에서 승리한 오바마는 그에게 초대 백악관 비서실장을 맡겼다. 당시 오바마와 차를 타고 가던 이매뉴얼이 민주당 하원의원의 전화를 받고 “지금 바빠서 통화하기 어렵다. 오바마와 얘기하라”며 전화를 넘긴 것은 유명한 일화다. 둘의 관계가 단순한 대통령과 참모가 아니라 정권 창출의 동반자 성격에 가까움을 알 수 있다.
이매뉴얼 일가(一家)는 바이든 대통령과도 막역한 사이다. 하버드대 의대를 졸업했으며 미 생명윤리학계의 석학으로 꼽히는 이매뉴얼의 형 이지키얼 펜실베이니아대 교수(65)는 2020년 미 대선 당시 바이든 민주당 대선후보의 보건정책 고문을 지냈다. 현재도 바이든 행정부의 방역 정책에 깊게 관여하고 있다.
이런 이매뉴얼 대사의 영향력은 지난달 21일 이뤄진 미일 정상의 화상 정상회담에서도 입증됐다. 기시다 총리는 취임 후 줄곧 바이든 대통령과의 대면 정상회담을 원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등으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런 상황을 아직 일본에 도착하지도 않은 이매뉴얼이 나서 온라인 회담으로 정리했다고 요미우리신문은 보도했다. 이매뉴얼은 당시 회담에서 대사 내정자 자격으로 바이든 대통령 옆에 배석했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는 “일본에서는 이매뉴얼 대사를 ‘바이든의 절친’을 넘어 차기 민주당 대선 후보군에도 오를 수 있는 인물로 보고 있다”며 역대 주일 미 대사의 면면이 화려했지만 이매뉴얼의 ‘급’ 또한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평했다.
○JFK 딸 캐럴라인·라이샤워도 유명
실제 미국의 역대 일본 주재 대사 중에는 이매뉴얼 못지않은 유명인이 많다. 존 F 케네디 전 미 대통령의 딸 캐럴라인 케네디 전 대사, 지미 카터 미 행정부에서 부통령을 지낸 월터 먼데일, 한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인 ‘매큔-라이샤워 표기법’의 창시자인 동아시아 석학 에드윈 라이샤워, 2차 세계대전의 미 승리를 이끈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의 조카 더글러스 맥아더 주니어 등이 대표적이다.
이 중 일본의 사랑을 특히 많이 받은 사람은 최초의 여성 주일 미 대사인 케네디 전 대사다. 공직 경험이 전무한 그는 2008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일찌감치 오바마 지지를 선언했고 공을 인정받아 대사로 발탁됐다.
2013년 11월 부임한 그는 전무후무한 환대를 받았다. 도착 나흘 만에 일왕에게 신임장을 제정했고 하루 뒤 아베 신조(安倍晋三) 당시 총리와 만났다. 면담 후 아베 총리는 관저에서 점심을 대접했다. 현직 총리의 식사 접대는 파격으로 받아들여진다. 그가 일왕의 거처 ‘고쿄(皇居)’로 마차를 타고 갈 때는 약 1km 길에 4000명이 넘는 인파가 몰렸다. 시민들은 미 성조기를 흔들며 박수를 쳤고 방송사 또한 생중계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2016년 5월 현직 미 대통령 최초로 히로시마 평화공원을 찾았다. 한국 중국 등이 “제2차 세계대전의 가해 역사를 의도적으로 지우고 원폭 피해자만을 자처하는 일본의 역사 공세에 동조하는 행위”라고 반발했지만 방문이 성사됐다. 대통령과 각별한 케네디 대사의 역할이 있었다는 후문이다. 당시 오바마는 이 공원의 한국인 위령비를 찾지 않았다.
앞서 2015년 3월 오바마의 부인 미셸 여사 또한 남편 없이 두 딸과 일본을 방문했다. 케네디 가문이 설립한 미 케네디재단과 일본 와세다대가 공동 주최하는 심포지엄에 초청을 받았기 때문이다. 역시 케네디 대사가 참석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1961∼1966년 대사를 지낸 에드윈 라이샤워 또한 일본의 존경을 한몸에 받았다. 그는 미 선교사의 차남으로 도쿄에서 태어났고 재혼한 부인도 일본인이었다. 하버드대에서 일본사도 전공해 역대 최고의 일본통 대사로 꼽혔다.
그는 1964년 정신병을 앓던 일본인 청년의 칼에 넓적다리를 찔려 중상을 입었다. 출혈이 심해 긴급 수혈을 받았다. 당시 라이샤워 대사는 “이제 내 몸에도 일본인의 피가 흐른다”고 말해 일본을 감동시켰다. 안전을 우려해 귀국하라는 조언도 거부했다. 하지만 수혈된 피 속에 간염 균이 들어 있어 평생 간염 후유증을 앓았고 훗날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귀국 후 하버드대에 일본연구소를 설립했고 미국의 아시아 정책 수립에도 깊숙이 관여했다.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법조인 출신 존 루스 당시 대사 또한 ‘도모다치(友達·친구) 작전’을 포함해 미국의 다양한 지원을 이끌어냈다. 그는 주일 미 대사 최초로 원폭 투하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열린 평화기념식에 참석했다. 루스 대사 역시 오바마의 주요 기부자 겸 측근이었다.
카터 행정부의 부통령 먼데일은 퇴임 후 빌 클린턴 대통령에 의해 대사로 발탁됐다. 1984년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그는 당시 미 최초로 여성 부통령 후보인 제럴딘 페라로 뉴욕주 하원의원을 러닝메이트로도 뽑아 화제를 모았다.
전직 미 2인자답게 그는 양국의 해묵은 현안인 오키나와 후텐마의 미 해병대 공군기지 이전 문제 해결에 주력했다. 주거지 한복판에 있는 이 기지는 각종 낙하 사고, 소음 등으로 주민의 거센 반발에 직면한 상태였다. 그는 1996년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 당시 총리와 후텐마 기지를 일본에 반환하기로 합의했다. 당시 “5∼7년 내 전면 반환하겠다”고 했지만 아직 지켜지지 않았다. 옮겨갈 새 기지가 없는 탓이다. 현재 오키나와 헤노코에 새 기지를 짓고 있지만 “아예 오키나와 바깥으로 옮기라”는 주민 반발로 공사 속도가 느리다.
○中 견제 위해 미일 밀착 가속화
신임 대사 이매뉴얼의 최고 과제는 중국 견제를 위한 미일 협력 강화가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미 일본 호주 인도 4개국 협력체 ‘쿼드’는 물론 반도체 동맹, 공급망 재편 등에서도 일본이 미국의 편에 서서 중국에 맞서주기를 바라고 있다.
이를 의식한 듯 이매뉴얼 대사 또한 일본의 입맛에 부합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는 일본이 중국, 러시아와 각각 영토분쟁을 벌이고 있는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와 쿠릴열도(일본명 북방영토)에 대해 “일본을 지지한다”고 했다. 기시다 총리와 처음 만났을 때는 양복 왼쪽 상단에 일본인 납북자를 상징하는 파란 리본으로 된 배지를 달았다. 역대 모든 정권이 주요 과제로 꼽는 납북자 문제 해결을 위해 북한을 공동 압박할 뜻을 비친 것이다. 백악관 비서실장 시절 불같은 성정과 거친 언사로 ‘람보’라는 별명도 얻은 그지만 일본을 사로잡기 위해 세심한 준비를 했음을 읽을 수 있다.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바이든 행정부 출범 후 ‘중국 견제’라는 거대한 의제가 등장하면서 미일 동맹이 기존의 군사 안보에서 첨단 기술의 취득 및 보호, 사이버 보안, 디지털 통상 등 경제 안보로 확대되고 있다”며 “이 부분에서 한국이 일본에 굉장히 밀리고 있다고 본다”고 진단했다. 박 교수는 최근 주한 미 대사로 내정된 필립 골드버그 주콜롬비아 대사가 과거 대북 제재 업무를 맡았던 국무부 대북제재 조정관 출신임을 거론하며 “한국에 대한 미국의 관심은 ‘북한’에 있음을 보여준다”고 진단했다.
도쿄=박형준 특파원, 김수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