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들이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되리라
1요한 3,11-21; 요한 1,43-51 / 주님 공현 대축일 전 금요일; 2024.1.5.
복음사가 요한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부르신 첫 제자들은 안드레아와 시몬 그리고 필립보와 나타나엘이었습니다. 특히 범상치 않은 뜻을 품은 인물로 보신 나타나엘과 나머지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아직 드러나지 않은 공생활의 신비를 이렇게 알리셨습니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요한 1,51). 예수님께서 요르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실 때부터 공생활 내내 예수님께는 하늘이 열려 있었고 천사들이 오르내렸는데, 이를 입증해 주는 일들이 바로 공생활 동안 숱하게 일어난 기적 사건들이었습니다. 기적이야말로 하늘에 계신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하신 일들이었고, 이를 위해 하느님의 천사들이 부지런히 하늘과 예수님 사이를 오르내리며 신적 권능을 전달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기적을 복음사가 요한은 ‘표징’이라고 소개합니다. 이는 기적에 담긴 뜻이 있다는 용어입니다. 즉, 예수님의 신적인 권능이 드러나는 기적이야말로 그분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시오 또한 하느님과 똑같으신 분이심을 입증해 주는 표지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기적들 가운데에서 대표적인 것은 아픈 이들을 고쳐주는 치유 기적과 마귀 들린 이들을 해방시켜주는 구마 기적이었습니다. 공생활 동안 숱하게 일어난 치유와 구마의 기적들이 바로 예수님께서 나타나엘에게 이르신 바, “하늘이 열리고 천사들이 오르내리는” 결과로 일어날 수 있었던 바로 그 일들이었고, 이를 나타나엘을 비롯한 제자들이 본받게 된다면 그들도 능히 해 낼 수 있는 ‘더 큰 일’(요한 1,50)들이었던 것입니다.
오늘 복음을 기록한 복음사가 요한은 소아시아의 초대교회 신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사랑을 실천하자고 권고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처음부터 들은 말씀은 이것입니다. 곧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1요한 3,11). 이 사랑의 기준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당신 목숨을 내놓으신 십자가 죽음과 부활이라고 요한은 힘주어 강조합니다. 그러므로 “말과 혀로 사랑하지 말고 말과 행동으로 진리 안에서 사랑하자.”(1요한 3,18)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이 바로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오르내리게 되는” 일이며 또한 예수님께서 치유와 구마 기적으로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신 것보다 ‘더 큰 일’을 우리가 할 수 있게 되는 원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사랑을 전해야 할 아시아인들의 상황은 비해 매우 엄중합니다. 아시아는 제삼천년기의 세계 안에서 가장 큰 선교적 도전지가 될 대륙으로 교회 지도자들로부터 간주되고 있고, 아시아의 세계적 중요성에 비추어 교회 당국이 아시아의 선교활동을 각별히 중시하고 있음은 이미 주지되어 있습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수 차례에 걸쳐 아시아에 대해 특별히 언급하며 부진한 복음화 상황을 지적한 바 있습니다. “특히 외방 선교가 역점을 두어야 할 아시아 대륙에서는, 간혹 주목할 만한 개종 동향이 있고, 그리스도교 현존의 뛰어난 표본이 보이지만, 그리스도교인들의 수는 아주 미미합니다”(회칙 ‘교회의 선교사명’, 37항). 실제로 아시아는 유럽이나 아메리카 대륙과 달리 전 세계 비그리스도인들의 85% 가량이 살고 있는 정도로 비그리스도교적 대륙의 성격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오늘날 아시아에서 가톨릭 신자들은 필리핀에만 5천 5백만이 집중되어 있으며, 그밖의 일부 지역(인도 1300만, 인도네시아 400만, 베트남 350만, 한국 350만: 1999년 통계)에 편중되어 있어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에서 가톨릭 신자들은 1% 미만의 소수집단으로 머물러 있습니다. 교황청 인류복음화성 장관 요제프 톰코 추기경은 아시아의 복음화를 전망하면서 아시아에서의 가톨릭 신자 분포 상황을 다음과 같이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분포는 숫적으로는 필리핀에 가장 많고(가톨릭 신자 83%), 질적으로는 베트남(7%), 한국(7%, 개신교 신자 14%), 인도네시아(가톨릭 신자 3.5%, 개신교 신자 7%) 순입니다. 가톨릭 신자가 1% 미만인 국가로는 방글라데시(0.18%), 일본(0.35%), 몽골(0.01%), 네팔(0.02%), 파키스탄(0.79%), 태국(0.42%) 등입니다.” 가톨릭 신자가 인구대비 0.5%에도 미치지 못하는 나라들에서 교회 당국이나 신자들이 위축되어 있는 경우들이 톰코 추기경이 지적하듯이 생겨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종종 심리적인 영향을 미쳐, 일부 아시아 주교들이 지적한 것처럼 ‘소수 콤플렉스’가 됩니다”(아시아 교회 – “아시아 대륙의 현실과 기억과 경험”,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회보 89, 1995.9).
아시아 교회들은 오늘날에도 필리핀을 제외하고는 각국에서 여전히 ‘외래종교’ 내지 ‘서양종교’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서구 제국의 식민통치를 받았던 많은 국가들에서 그리스도교는 제국주의적 정복자들에게 협력한 부역자들의 종교로서 낙인찍혀 있으며, 외국인 선교사들의 활동은 엄격한 규제를 받고 있기도 합니다. 특히 북한과 중국,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미얀마 등과 같은 공산-사회주의 국가들에서는 교회가 박해받거나 극도의 통제를 받고 있으며, 이슬람교가 우세한 중동 제국이나 아프카니스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말레이시아와 같은 국가들에서도 선교활동이 상당히 제약받고 있으며, 종교적 자유가 헌법으로 보장된 인도 여러 주에서는 개종이 금지되어 있는 실정입니다. 그래서 필리핀, 한국, 일본, 대만을 제외한 모든 아시아 국가들 안에서 교회의 복음화 활동이 여하한 형태로이거나 제약을 받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이상 아시아 교회의 복음화 현실에 대하여, 심상태, ‘아시아 교회 안에서의 한국교회의 역할’에서 인용).
“이 광대한 대륙의 그리스도교 공동체들은 ‘성령께서 여러 교회에 하시는 말씀’(묵시 2,7.11.17.29; 3,6.13.22)을 들어야 합니다. 그들은 아시아인으로 육신을 취하셨던, 하느님 아버지의 첫 번째 복음선포자이며 선교사인 예수를 따르고자 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구세주는 아시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쇄신된 열성과 활력으로, 아시아의 교회는 선교 소명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요한 바오로 2세와 더불어 그들은 ‘제삼천년기에는 이처럼 광대하고 생동적인 이 아시아 대륙에서 신앙의 큰 수확을 얻을 수 있으리라는 것’(<아시아 교회> 1b항)을 바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제임스 크루거, "선교를 위한 아시아 교회의 쇄신", 출처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2012.5.7.).
교우 여러분! 아시아 대륙의 현실은 대단히 엄중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복음화의 당위성은 더욱더 크고 절박합니다. 그래서 훨씬 더 열악한 상황에서도 목숨을 내놓으시면서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려 주신 예수님께서 당신 제자들에게 장담하신 말씀을 다시 한 번 상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요한1,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