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하 劉東夏(1892 ~ 1918)】 「1909년 안중근 의거에 참여, 연해주에서 항일 투쟁」
1892년 1월 5일 함경남도 원산부(元山府) 길명(吉明)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유경집(柳敬緝)은 한의사였고, 1899년 무렵 블라디보스토크(Владивосток)로 이주했다가, 이후에 포그라니치니(Пограничный)에 거주하였다.
안중근(安重根)과 유경집은 일찍부터 친교가 있었으며,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처단을 결행하기 위해 1909년 10월 21일 블라디보스토크를 출발해 하얼빈(哈爾濱)으로 가는 도중 포그라니치니에 들렀을 때, 러시아 통역이 필요하다는 안중근의 요청에 의해 일행에 합류하였다. 10월 23일 하얼빈에 도착한 뒤 안중근의 의거 계획을 듣고 기꺼이 동참하였다.
하얼빈에 도착한 이들 일행은 『대동공보』 하얼빈 지국을 맡고 있는 대동공보 기자 김형재(金衡在)를 찾아가 이강(李剛)의 편지를 건네주었고, 김형재의 소개로 조도선(曺道先)을 합류시킬 수 있었다. 10월 23일 김형재의 소개로 일행 4명은 김성백(金聖白)의 집으로 안내받고, 하얼빈에서의 활동 계획을 논의하였다.
당초 이들은 의거의 완벽한 성공을 기하고자 동청철도(東淸鐵道)의 출발지인 남장춘(南長春)·관성자(寬城子)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의 도착지인 하얼빈, 채가구(蔡家溝) 등 네 곳에서 의거를 실행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경비가 모자라고, 실제 가동 인원도 부족해 부득이 도착지인 하얼빈과 채가구의 두 곳으로 한정하여 계획을 추진해 갔다.
교차역으로서 기차가 쉬는 전략적 요처인 채가구에는 우덕순(禹德順)·조도선을 배치하고 하얼빈은 안중근이 맡기로 하였다. 이때 통역과 두 공격 지점 사이의 연락을 담당하는 업무를 받았다. 만약 이토 히로부미가 탑승한 특별 열차가 채가구에서 정지하면 우덕순과 조도선이 기차에 뛰어 올라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기로 하고, 만일 이것이 실패하면 종착지인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공격하기로 계획한 것이었다. 이토 히로부미는 당초 10월 25일 하얼빈에 도착할 것으로 알려졌으나, 다음날로 도착일이 변경되자 안중근에게 즉시 이를 알려 의거를 결행하는데 결정적 정보를 제공해 주었다.
안중근 의거 직후 붙잡혀 1909년 11월 1일 안중근을 비롯하여 우덕순·조도선 등과 함께 뤼순(旅順) 감옥으로 이송되어, 1910년 2월 14일 관동도독부 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 6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풀려난 후 러시아 연해주 등지에서 항일투쟁을 벌였으며, 1918년 러시아 내전 시기 혁명군에 가담하여 백군과 대항하던 중 일본군에 붙잡혀 총살당했다고 한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8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