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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왕건 <제 163회>
씬 길
흙바람을 일으키며 네 필의 말이 가고 있다. 백제의 사신들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길게 카메라 앞을 스쳐 멀어지면...
자막- 서기 928년 1월
해설 왕건이 공산 전투에서 크게 패한 이후 고려는 계속해 불운의 연속이었다. 승승장구하던 백제군은 지금의 성주인 대목군과 칠곡인 소목군을 공취하여 고려장군 색상을 전사시켰고 또한 견훤의 아들들은 강주를 공략하여 장군 김상을 전사시킨다. 이때 백제의 후방인 남해를 기습했던 고려의 수군은 애초의 목적이 견훤을 서라벌에서 물러나게 하는 것이었음으로 그 목적이 이루어지자 철군했다. 실제로 장기적인 전투를 수행할 능력이 없었던 것이다. 이때 견훤은 최승우를 시켜 왕건의 심사를 뒤틀리게 하는 국서를 보내게 된다. 자신이 삼한 통일의 주자임을 내세우는 글이었다.
씬 송도 고려황궁 외경
씬 동 편전
유금필, 박술희, 배현경, 홍유, 복지겸, 염상, 왕충, 윤신달, 박수문 형제와 김행선, 최응, 정윤 무, 왕규, 추언규, 최지몽들이 모여있는 가운데 왕건이 견훤이 보낸 국서를 보고 있다. 읽어가며 표정이 굳어지고 분노에 떨기 시작한다.
왕건 이 글을 백제의 왕이 보냈다는 말인가?
염흔 예, 폐하.
왕건 (계속 보며) 뭐라....? 경고망동하지 말라? 평양성 문루에 활을 걸고 대동강 물을 말에게 먹이겠다?
모두들 ................
왕건 짐이 비록 공산 전투에서 곤경을 치루었다 하나 길고 짧은 것은 아직 끝나지 아니 하였다. 어떻게 이렇게 무례한 글을 보낼 수가 있는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도다. 용납할 수 없어.
왕건은 읽고 있던 글을 바닥에 내팽개친다. 모두들 굳어있는 그 표정에서... 해설과 더불어 견훤의 모습이 수파된다.
해설 견훤이 보낸 국서, 후삼국 시대를 기록한 역사 기술들이 대부분 취약한데 반해서 이때의 견훤이 보냈다는 글은 비교적 아주 상세히 그 전문이 다 남아있다. 그 글을 요약 풀이하면 대략 이러하다.
견훤 (소리) 전일에 신라의 국상 김웅렴이 아우를 서라벌로 불러들이려한 것은 작은 자라가 큰 자라의 소리에 호응하는 것과 같도다. 반드시 백성들을 도탄에 빠뜨리고 종묘사직을 빈 터전으로 만드는 일이 아니랴. 나는 이에 채찍을 들고 서라벌로 가니 간신들은 도망하고 그 임금은 세상을 떠났도다. 그리하여 위태로운 신라의 황실을 다시 세워 주었는데 그대는 그 사실을 모른 채 내 충고를 외면하고 계교로써 서라벌을 엿보았느니라. 허나 어떠했는가? 그대는 내가 탄 말머리도 보지 못하였으며 오히려 좌장 신숭겸과 김락을 죽게 하였노라. 이제 그대는 나의 강함을 보았을 것이다. 이 형은 앞으로 활을 그대의 땅 평양성 문루에 걸고 대동강 물을 나의 말에게 마시게 할 것이다. 아우는 마땅히 이를 깨닫고 이후라도 겸손하여 후회하는 일을 스스로 부르지 말도록 하라.
왕건 (크게 흥분하여 일어섰다) 평양성에 활을 걸고 대동강 물을 말에게 먹이겠다? 누구 마음대로 그리 할 수 있다는 말인가? 누구 마음대로....?
모두들 ...........
왕건 그래도 문장만은 그럴 듯 하구나. 이 문장을 누가 썼느냐?
염흔 파진찬 최승우 어른께서 쓰셨사옵니다.
왕건 최승우라...?
최응 폐하께서도 보신 바 있는 최승우 그 사람이옵니다.
김행선 일찍이 당나라로 유학하여 벼슬까지 얻었다던 자가 어찌 도적의 무리인 백제왕에게 가 있다는 말인가? 한심한 일이로다. 폐하, 개의치 마시오소서. 논할 가치가 없사옵니다.
왕규 그러하옵니다. 적은 글재주로써 폐하를 우롱하려 하는 것이옵니다.
추언규 어찌되었든 나라와 나라 사이에 보내진 국서이옵니다. 마땅히 답서를 보내 저들의 오만을 꾸짖으셔야 할 것이옵니다.
왕규 그러하옵니다. 저들을 꾸짖으시오소서. 글은 글로서 대처할 필요가 있사옵니다.
왕건 두고보자 하니 갈수록 가관이도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이보게 내봉성령..?
왕규 예, 폐하.
왕건 이 국서에 답하는 글을 관할 부서에 명하여 써 보내도록 하라. 아직 이 고려는 시퍼렇게 살아 있으며 곧 그 교만을 꾸짖고 혼내줄 것이라 하라. 그리고 서라벌에서 있었던 저들의 짐승 같았던 짓들을 조목조목 열거하여 부끄러움을 깨우쳐 주도록 하라.
왕규 예, 폐하. 사신은 그만 물러가 대기하시오.
염흔이 대답하며 눈치를 보고 물러간다.
유금필 폐하, 저들의 오만과 방자함은 이제 극에 이르른 것 같사옵니다. 언제까지 참고 볼 수가 있사옵니까? 신에게 영을 주시오소서. 나아가 저들을 놀라고 고개 숙이게 하겠나이다.
박술희 신도 청하옵니다. 숭겸 형님의 원수를 갚게 해주시오소서.
염상 신도 청하옵니다. 부디 군사를 몰고 가게 해주오소서.
윤신달 그리하오소서, 폐하. 더 이상 이러고 있음은 굴욕이옵니다.
왕건 옳은 말들이오. 공산에서 돌아온 이후 우리는 다시 군사를 정비하느라 몇 달을 보냈소이다. 이제 어느만큼 기운을 되찾았으니 마땅히 우리의 자존심을 찾아야지요.
모두들 ........
왕건 한 개인이든 또한 국가 조직이든 마찬가지요. 한번 약한 틈새를 보이게 되면 상대는 한없이 깔보고 덤벼드는 법이오. 나는 요 몇 달을 절치부심하며 지냈소이다. 저들의 오만을 꺾도록 하십시다. 병부에서는 빨리 공략지점을 정하여 올리도록 하오.
최응 예, 폐하.
왕건 그리고 속히 저들의 국서에 답하는 글을 써서 저들 사신으로 하여금 보내도록 하시오.
모두들 예, 폐하.
왕건이 입술을 앙 다문다. 역력히 드러나는 그 불쾌한 표정에서... 디졸브되면
씬 도성 길
염흔 일행들이 되돌아가고 있다. 그들이 지나치는 길옆으로 한참 진행 중인 군사들의 이동과 훈련이 보여온다. 두려워하며 그들이 그곳을 그렇게 멀어져간다.
씬 다시 황톳길
염흔 일행들이 돌아가고 있다. 그 위로 왕건의 국서가 왕건의 목소리로 들려오고 있다.
왕건 (소리) 고려의 황제는 백제의 왕에게 전하는 바이오. 그대가 보낸 비단 서찰은 잘 받아보았소이다. 그러나 곳곳이 거짓이며 의심스러운 말뿐이니 어찌 진정한 글이라 할 수 있겠소이까? 이 사람은 지난 날 하늘의 명을 받고 백성들의 추대를 못 이겨 외람되이 옥좌에 오른 이후 오로지 광명정대한 길만을 보고 살아왔소이다. 지난 날 조물성에서는 군사들의 노고와 괴로움을 면하려 스스로 덕을 베풀고 물러났소이다. 그러나 이를 자만하여 끝까지 핍박함은 어찌된 일이오? 그대는 미친 호랑이와 같이 서라벌 땅을 침범하여 왕도 금성을 피폐하게 하였고 만민을 놀라게 하였으며 그 왕을 죽였으니 어찌 한 나라 때의 역신 동탁과 다를 바 있으리오. 그대는 황궁을 불사르고 궁녀들을 겁간하였으며 보물을 빼앗아 수레에 실어갔으니 천하가 어찌 이를 모를 것이겠는가? 머지 않아 짐이 묵은 원한을 씻고 그대의 땅으로 들어가 천하를 맑게 할 것이오. 허물을 고치지 않는다면 후회해도 미치지 못할 것이니 삼가 몸을 보전토록 하시오.
해설이 계속되는 동안 화면은 길게 사라지는 사신들에 이어 전주 황궁의 모습과 그 조당의 전경을 잡는다. 그리고 크게 웃으며 서찰을 보고 있는 견훤의 자신만만한 모습을 본다.
씬 그곳 조당
견훤이 웃으며 서찰을 접고 있다. 전 신료들이 모두 모여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인다. 염흔과 사신으로 다녀온 자들이 그 앞에 부복해 있다.
견훤 왕건 아우다운 말이로다. 이제 화가 날대로 났구먼. 늘 상부라 하던 그 형님 소리는 어디로 갔는고..?
최승우 허허허... 이미 두 번에 걸쳐 목숨을 잃을 뻔하고 크게 망신을당하여 한을 갚으려 하고 있는데 예의를 차리겠사옵니가?
견훤 하하하.... 하긴 그렇구먼. 아무리 성인 군자도 저쯤 되면 이미 인사불성이 되었을 게야. 제법 문장이 그럴 듯 하구나. 고려에서는 누가 이 글을 지었다 하더냐?
염흔 고운 최치원이 지었다 하옵니다.
모두들 (그 말에 술렁거리며 놀란다)
최승우 허허허... 고운은 지금 가야산 깊숙이 들어가 몸을 숨기며 살고 있다 들었사옵니다. 그리고 이 글은 잘 짓기는 하였사오나 고운의 글은 아니옵니다.
견훤 그럴 테지. 고운이 고려에 가 있다면 이야말로 천하 인심을 흔들 수 있는 이야기지. 아무튼 그럴 듯 하게 지었어.
신검 폐하, 신들은 폐하께서 명하신 대로 남해의 수군을 몰아내었고 또한 강주성을 함락시켰사옵니다. 이제 보아하니 고려가 다시 군을 움직이려고 하옵니다. 신들을 보내주시오소서.
견훤 암, 암... 가야지. 모름지기 이 시대는 싸움을 쉬어서는 아니 된다. 계속해 싸워야 하고 그리고 이겨야 한다. 강주와 남해에서는 잘들 싸웠다. 태자들의 체면을 지켰다는 것이다.
신검들 망극하옵니다, 아바마마..
공직 폐하, 신 공직 아뢰옵니다.
능환들 .............(눈치들을 본다)
견훤 오, 공직 장군이 무슨 일인가? 말해 보라.
공직 폐하께오서는 조물성에 이어 공산 동수에서도 대 승을 거두시고 돌아오셨사옵니다. 태자마마들 또한 남해와 강주를 평정하고 돌아왔사옵니다.
견훤 헌데....?
공직 신검 태자마마의 춘추가 이제 사십이시옵니다. 지난 날 이찬께오서 다음의 보위 문제를 꺼내신 적이 있사옵니다.
견훤 그랬지, 그랬어... 그래서 짐이 말했어. 아직은 때가 아니니 입을 다물라고 말이야.
공직 국가의 사직은 편안할 때에 그 뒤를 염려한다 하였사옵니다. 폐하, 더는 미룰 일이 아니옵니다. 통촉하시오소서.
모두들 ............? (긴장한다)
견훤 (노기를 띤다) 내 분명히 때가 아니니 말하지 말라고 하였어. 이찬이 내게 꾸중을 들었는데 공직 장군 경은 대체 무얼 믿고 다시 이 말을 꺼내는 것인가? 뭐라..? 신검이의 나이가 사십이 다 되었다고..?
신검 ..................?
능애 폐하, 공직 장군은 다만 태자마마들의 훗날의 염려되어...
견훤 아우도 입을 닫으라. 뭐라..? 나이가 되었으니 다음 자리를 약속하라 그 말인데... ? 뭐? 남해와 강주를 평정하였다고..? 그게그렇게 자랑스러운가? 저들은 내가 평생을 걸려 빼앗은 대야성을 하룻밤만에 내주었어. 나는 지금 그것을 추궁하지 않았어. 왜냐? 그나마 남해와 강주를 되찾았기 때문이야.
신검들 ..............
견훤 뭐가 그리 자랑스러운가? 뭐가 그리 대단해? 고려군은 저희들 스스로 물러간 것이야. 빈 땅 하나를 얻은 것이 그리도 대견한가? 입들이 있으면 말들을 해보아. 그런 것인가?
노해서 소리치는 견훤의 추궁에 모두들 어쩔 바를 모른다. 능환과 능애, 공직들의 표정이 굳어져 있다. 최승우도 눈치를 보고 신덕, 애술, 김총, 최필들도 마찬가지다. 장내는 금방 얼어붙은 것이다. 염흔도 영순과 더불어 어쩔 줄 모르며 공직을 본다. 금강은 아무 표정이 없다.
견훤 그대들보다도 더 짐은 후사를 걱정하고 있어. 그러나 황제의 자리는 백성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야. 마땅히 그 자격이 있는 자만이 그 자리에 앉을 수 있는 것이야. 알겠는가, 공직장군?
공직 예, 폐하. 하오나...
견훤 입을 닫으라 하였어. 아직도 할 말이 있는가? 누가 그렇게 시키던가, 도대체...? 누가.....?
모두들 ...............
견훤 내 다시 말하거니와 때가 되면 후사를 정할 것이야. 지금 우리 앞에는 통일대업이 더 시급해. 모두들 알겠는가?
모두들 예, 폐하.
견훤 다시는 이러한 말을 꺼내지 말도록 들 하라. 그 자격이 인정되는 태자가 나올 때, 그에게 후사를 넘길 것이니라. 알겠는가?
모두들 예, 폐하.
신검 ....................
견훤 고려군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어. 딴 정신들 팔지 말고 대응할 준비들을 하게. 이제 어지간히 동남 방면은 평정을 하였으니 이제부터는 아직까지 찾지 못한 상주 일대의 전 전선을 폭넓게 도모할 필요가 있어. 그에 대한 준비를 철저히 하도록들 하라.
모두들 예, 폐하.
견훤 군대의 편제는 파진찬이 다시 일러줄 것이니라. 신검이 너...
신검 예, 폐하.
견훤 그렇게 이 옥좌에 앉고 싶거든 공을 세워봐. 보란 듯이 큰공을 세워보란 말이야. 보란 듯이 말이야. 이번에 특별히 내가 지켜보겠노라. 특별히 말이야. 한심한 것들 같으니라고...
신검은 입술을 깨문다. 아무도 말이 없다. 그 침묵에서...
씬 동 황후전
박씨가 눈을 크게 뜨며 이상궁을 보고 있다.
박씨 또 공직 장군이 당했다는 말인가? 또...?
이상궁 예, 황후마마. 신료들이 모두 보고 있는 가운데 말을 꺼낸 공직 장군은 물론이고 신검 태자마마도 심한 핀잔을 들으셨다 하옵니다.
박씨 (생각한다) 아무래도 예삿일이 아니다. 이제 원로들의 말은 아예 처음부터 무시해 버리시지 않는가?
이상궁 그러게 말이옵니다, 황후마마. 마마의 말씀처럼 아무래도 폐하께오서는 금강 태자마마께...?
박씨 (벌컥하며) 금강이라니...? 그 외눈박이 어린것이 감히 옥좌를 탐을 낸다는 말이냐? 그 어린것이...?
이상궁 이미 황궁에는 그런 소문이 자자하옵니다, 황후마마.
박씨 어림도 없다. 순리를 어길 때에는 어찌 되는지 아느냐? 죽음뿐이니라. 목숨을 두려워 않는다면 무슨 일인들 못할까?
씬 동 고비의 처소
고비가 만족하게 웃고 있다. 그 앞에 금강이 서 있다.
고비 폐하께오서 아무래도 다음 보위를 우리 금강태자께 굳힌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몇 번에 걸쳐 그토록 완강하게 신검 태자를 멀리할 수가 있습니까?
금강 아직 모르는 일이옵니다, 어마마마. 기대를 하지 마시오소서. 노신들의 말도 옳사옵니다. 적장자가 우선이 아니옵니까?
고비 그것도 다 나름이지요. 틀림없습니다. 폐하께서는 금강태자를 생각하고 계시는 겝니다. 이럴 때일수록 행동거지를 조심하셔야 합니다. 아시겠습니까? 다음 보위에 오르는 일입니다, 태자.
금강 과욕은 화를 부른다 하였사옵니다, 어마마마. 그런 말씀은 절대로 하지 마시오소서.
고비 호호호호... 우리 태자는 겸손도 지나치십니다. 암요, 황제가 될 사람은 그만한 겸손도 알아야지요. 호호호호....
씬 동 대전 밖 (밤)
경계하는 군사들이 오가고 있다. 곳곳에 횃불이 밝다.
씬 동 대전
촛불이 일렁거리고 있다. 군사 전략지도를 펴놓고 견훤과 최승우가 마주해 있다.
최승우 상주 방면과 그 일대를 넓게 보시는 것은 아주 잘하신 일이옵니다. 기회에 고려의 전반적인 전투 능력을 시험해 볼 필요가 있사옵니다.
견훤 그래서 내가 신료들에게 다그치지 않았는가? 특히나 상주는 내 고향이야. 그 땅을 찾아야지.
최승우 예, 폐하. 지금이 기회이옵니다. 틈을 줄 필요가 없사옵니다. 우리 백제군은 상당한 여유를 찾은 만큼 이번 전투는 태자마마들로 하여 치르게 하시오소서.
견훤 그렇게 하세. 나도 그럴 참이었네. 저들은 아직 더 많은 경험을 쌓아야 해.
최승우 물론 그러하옵니다. 하온데 폐하.. 그 태자마마들 말씀이옵니다.
견훤 왜 그러는가? 또 무슨 말을 하려고..?
최승우 신도 오늘 공직 장군이 한 말은 일리가 있다 사료되옵니다.
견훤 짐도 알고 있네. 허나 현실이 그렇지 못해.
최승우 신검 태자마마를 어여삐 여기시오소서. 나름대로 열심히 하시고 계시옵니다.
견훤 금강이는 어찌하고..?
최승우 대부분의 신료들이 원칙과 순리를 원하고 있사옵니다.
견훤 모르는 소리일세. 제국을 지킬 수 있는 자만이 옥좌에 앉을 권리가 있어. 신검이는 아직 너무 모자라.
최승우 폐하...
견훤 이렇게 말하고 있는 나도 괴롭다네. 맏이가 맏이 노릇을 해 주었다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한숨 쉬며) 요 몇 년은 참으로 좋았는데... 통일을 이룰 수 있는 결정적 기회가 많았어. 그러나 부질없이 다 놓쳤어. 그 중에서도 태자들의 실수가 결정적이었어.
최승우 다 운이 따르지 못해 그리된 것이옵니다. 좋게 생각하시오소서.
견훤 좋게라..? 그리 편하게 말할 수 있는 자네가 부럽네 그려. 어떻게 이룬 제국인데 그리 쉽게 생각할 수 있겠는가? 나도 마음이 편치 않네 그려. 참으로 편치가 않아.
씬 동 어느 전각 안
신검이 생각에 잠겨 있다. 능환과 공직이 함께 해 있다. 염흔도 그 옆에 앉아 있다.
염흔 아직 때가 아닌 때에 어려운 말씀을 꺼내셨다가 혼만 나신 것 같사옵니다.
공직 허허허.. 혼이 나더라도 신료로서 할 말은 해야하지 않겠는가?
능환 공직 장군이 나를 대신하여 혼이 나셨소이다.
신검 이 몸이 불미하여 원로분들에게 폐만 끼치고 있습니다.
공직 어인 말씀이옵니까, 태자마마? 이럴 수록 힘을 내시고 폐하께서 원하시는 바를 꼭 이루시오소서.
신검 그것이 되어야 말이지요. 열심히 할 때는 다른 말씀을 하시고 어쩌다가 실수를 한번 하면 불처럼 노하시니....
능환 이제 곧 다시 출병을 하게 될 것이옵니다, 태자마마. 마지막이라 생각하시고 한번 더 힘을 내시오소서. 태자마마들도 상주 지방의 공략을 명하신다 하옵니다.
신검 허허허... 알고 있습니다. 마지막이라...? 마지막이라...?
그렇게 중얼거리는 의미있는 신검의 표정에서...
씬 전주 도성 (낮)
군사들이 출병하고 있다. 신검과 더불어 용검, 양검, 금강들이 앞을 섰고 그 뒤로 박영규, 종훈, 최필, 김총, 신덕, 애술, 상귀, 부달, 소달들이 따르고 있다. 견훤과 최승우가 능환, 능애, 공직 그리고 문신들인 염흔, 영순들과 함께 보고 있다.
최승우 우리 백제군은 상주 지방에 제 일군과 제 이군으로 선후를 나눌 것이옵니다. 제 일군은 신검 태자께서 맡으시어 상주 관내의 가은 쪽을 공격할 것이며 금강태자께서는 뒤를 바치게 되실 것이옵니다.
견훤 허허허... 그런가? 파진찬도 우리 신검이에게 기회를 주고 싶은 모양일세 그려.
최승우 태자마마 중 가장 맏이시옵니다. 당연히 큰공을 앞서 세우셔야 하지 않겠사옵니까?
견훤 어디 두고 보세나.
능애 불과 오천의 군사를 보내시옵니다. 너무 수가 적은 것 같사옵니다.
견훤 우리 백제군은 지금 사기가 충천해 있어. 상주를 공격하는 것은 오 천이면 충분해. (능환과 공직을 보며) 이찬과 공직 장군은 함께 가지들 못했다고 섭섭해하지 말게나.
능환 아, 예 폐하...
견훤 이제 자네들은 나이가 많아. 중요한 곳이 아니면 되도록 황도에 있는 것이 좋을 것일세. 아니 그런가, 공직 장군?
공직 예, 폐하...
염흔 .............(그런 공직의 눈치를 본다)
견훤 나이가 들면 그저 편한 것이 좋은 것이야.
견훤은 그렇게 멀리 가고 있는 군대를 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능환과 공직은 말이 없다. 그저 답답한 것이다. 그 표정에서...
씬 길
그렇게 신검의 군대들이 가고 있다. 그 긴 행렬의 꼬리에서..
씬 송도 황궁 외경
신 동 편전
왕건을 중심으로 신료들이 모두 모여 회의를 하고 있다. 유금필, 박술희, 배현경, 홍유, 복지겸, 염상, 왕충, 윤신달, 박수문 형제와 김행선, 최응, 최지몽, 정윤 무들이다. 이곳에도 전략지도가 크게 걸려 있다.
김행선 백제에서 신검이 이끄는 군대가 출병을 했다 하오이다. 우리도 서둘러야 하지 않겠소이까?
왕건 ..................
최응 저들은 오래 전부터 끊임없이 상주 방면을 노려왔사옵니다. 이제 다른 곳은 어지간히 정리가 되었다 생각하고 그 쪽을 노리는 것 같사옵니다.
왕건 상주라면 아자개 어른의 아들들이며 백제왕의 이복동생들이 있는 곳이오.
최응 그러하옵니다. 하오나 그곳은 사벌주 본성에 국한되어 있사옵니다. 저들이 노리는 것은 상주주변 전체이옵니다.
유금필 상주도 그렇고 그곳과 맞닿은 충주 또한 아직도 든든한 우리들의 영역이올시다. 백제가 온다한들 쉽게 되겠사옵니까?
박술희 세작의 말을 들으니 적군은 오천의 군사라 하옵니다. 큰 영토를 도모하러 오는 군대치고는 많은 군사가 아니옵니다.
왕건 우리를 얕보고 있음이야. 그러니까 태자들을 앞세워 오천의 군사로서 상주로 오고 있는 것이지.
무 아바마마, 저쪽에서 태자들이 온다 하니 이번에 소자도 나가보고 싶사옵니다. 허락하시오소서.
배현경 이번에는 소장들을 보내주시오소서. 저들 태자들의 코를 납작하게 해 보이겠사옵니다.
홍유 맞사옵니다. 태자들이 나오는데 폐하께서 가실 일이 아니옵니다. 공산 전투에서의 치욕을 이번에 신들이 갚아 올리겠나이다.
염상 신도 가겠사옵니다.
윤신달 신도 가겠사옵니다. 폐하께오서는 이곳 황도에 계시오소서.
왕충 아니옵니다, 폐하. 신은 많은 장수들이 전사한 그 공산전투에 참가하지 못했음을 한으로 여겨왔사옵니다. 신을 보내주시오소서.
박수문 아니옵니다. 폐하를 뫼시고 오면서 수십 번 어떻게 죽을까를 생각하고 있었사옵니다. 제 아우와 더불어 보내주시오소서.
박수경 신도 원하옵니다. 허락하시오소서, 폐하.
왕건 제장들이 모두 이렇게 한결같이 전투에 임하기를 원하니 짐은 참으로 든든하오. 그러나 어찌 짐이 계속해 당한 치욕을 두고 이곳에 편히 있을 수 있겠소? 이번 전투는 짐이 나갈 것이오. 이미 그 점을 말해둔 바 있소이다.
복지겸 폐하, 이번 전투는 저쪽에서도 태자들이 나온다 하니 정윤마마께 맡기시오소서. 그 점이 합당한 줄로 아옵니다.
최응 신도 그것이 좋은 대책이라 사료되옵니다. 그리 하시오소서, 폐하. 신이 정윤마마를 뫼시고 나가겠나이다.
무 허락하시오소서, 폐하.
왕건 암, 허락하고 말고... 그러나 이번 전투는 정윤과 더불어 짐이 갈 것이오. 병부령은 전군의 전략을 맡아야 하니 이곳 황도에 남아 있게. 그리고 공산 전투에 참여했던 장수들은 좀 더 쉬도록 하오.
배현경 아니, 폐하...?
왕건 이번 전투는 짐의 의제들인 유금필, 박술희 장군과 더불어 염상, 윤신달, 왕충 장군들이 부장으로 참여할 것이오. 특히나 여기 두 아우는 형제의 한을 갚는다는 의미가 크오이다.
두 사람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최응 하오나 폐하, 적을 너무 가볍게 보시는 것이 아니옵니까? 여기 많은 장수들을 쉬게 하심은 옳지 않은 줄로 아옵니다.
왕건 적은 불과 오천일세. 그리고 태자들이 총사로 오고 있어. 이번 총사는 우리도 정윤이 맡을 것이야.
무 망극하옵니다, 폐하.
왕건 저들이 상주로 온다 하니 우리는 군을 나누어 본대는 상주로 가고 나머지는 몰래 우회하여 삼년군(보은) 쪽으로 해서 저들의 옆구리를 찌르도록 하면 어떻겠는가?
최응 좋은 계책이시옵니다마는 삼년산성을 함락시켜 넘어야 하는 어려움이 있사옵니다.
왕건 그 성은 아주 작은 성일세.
최응 하오나 삼년산성은 여러 번 백제의 땅이 되었다가 우리의 영토가 되기를 반복한 곳이옵니다. 그리고 지금은 다시 백제의 땅이 되어 있사옵니다. 그곳 인심이 크게 믿을 바 못되니 앞서 사람을 보내 살피고 가시오소서.
왕건 그리하도록 하세. 어려운 일이 아닐세 그려. 자 그럼, 길을 두 곳으로 나누어 술희 아우는 왕충, 염상 장군과 함께 상주 쪽으로 가면서 그 일대를 모두 점검하라.
박술희 예, 폐하
왕건 금필 아우와 윤신달 장군은 나와 함께 삼년군으로 갈 것이야. 그 삼년산성을 함락시켜 그곳에 전진기지를 마련하게 되면 술희 아우와 우리 군이 협공할 수 있는 길을 열 수 있고 상주뿐만 아니라 주변 전체를 볼 수 있게 될 것이오. 이보게 병부령?
최응 예, 폐하.
왕건 병부령의 말대로 우선 앞서 전령을 보내어 우리 사정을 전하도록 해주게. 가면서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말이야.
최응 예, 폐하. 그리 하겠사옵니다. 하오나 그곳 호족들의 반응이 없다면 속히 길을 돌리시오소서. 백제군의 기습에 휘말릴까 우려되옵니다.
왕건 하하하... 그 일대는 짐이 훤히 아는 곳일세. 염려하지 않아도 될 것이야. 짐은 이번 전투를 기점으로 우리 고려의 위상을 다시 세울 것이야.
배현경 다시 한번 청하옵니다. 신들도 가게 해 주시오소서.
왕건 아니오. 이번 전투는 우리 의제들과 정윤, 그리고 여기 장수들로 족하오. 그대들은 다음 사태를 준비하고 대비토록 하오. 아시겠소이까?
모두들 예, 폐하.
왕건 그리고 이번에는 최지몽이도 짐을 따라가도록 하라. 네가 그동안 황도에 있으면서 많은 전투의 승패를 예측하였다고 들었다. 이번에는 함께 가서 전장터의 여러 가지를 몸소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최지몽 예, 폐하.
왕건 이번에는 뭔가 다를 것이야. 백제의 왕에게 꼭 보여줄 것이야. 그리고 그 오만의 콧대를 꺾어 줄 것이야. 암, 반드시 그리 될 것이야.
최응 ............ (걱정하는 시선으로 본다)
씬 동 황후전
오씨와 유씨, 제조상궁, 김상궁이 함께 해 있다. 그녀들은 불안하다.
오씨 폐하께서 또 전장터로 가셨네. 이번에는 우리 정윤까지 함께 갔다네.
유씨 어찌하겠사옵니까? 신료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가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사옵니다. 공산 전투에서 맺힌 한이 얼마나 크셨으면 그리 하셨겠사옵니까?
오씨 하지만 백제국에서는 태자들만 나오는 전장이라네. 굳이 그렇게 손수 가실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아녀자로서 일일이 간섭할 수도 없고... 갈수록 가슴에 병만 생기는 것 같네 그려.
제조상궁 복술에 밝은 내의성령이 함께 갔다 들었사옵니다. 그래도 좀 낫지 않겠사옵니까?
김상궁 그러하옵니다. 내의성령은 지금까지 그 예측이 한번도 틀린 적이 없다 하옵니다.
오씨 언제 폐하께서 그런 말에 귀를 기울이시는 분이시던가? 주변의 반대가 심하니 그저 구색을 맞추느라 데려가시는 것이겠지. 대체 이번 전투는 또 어찌될꼬...? 걱정이로고...
씬 길 (밤)
왕건의 군대가 가고 있다. 가면서 왕건과 유금필이 말을 나누고 있다. 그들 뒤로 박술희, 정윤 무, 염상, 윤신달, 왕충, 최지몽들이 따르고 있다.
왕건 이보게, 금필 아우?
유금필 예, 폐하
왕건 참으로 이 형의 꼴이 아주 우습게 되었네 그려. 백제의 왕이 한번 승기를 잡더니만 우리 고려 알기를 너무 우습게 보고 있어. 기껏 태자들을 보내서 상주를 함락시키겠다니 말일세.
유금필 그러게 말이옵니다. 젓비린내 나는 어린아이들이옵니다. 크게 맛을 보여 주어야 하옵니다.
박술희 우리도 오천의 군사가 가고 있사옵니다. 이번에는 반드시 설욕하실 수 있을 것이옵니다, 폐하.
왕건 암, 그래야지. 이번 기회에 우리 형제들이 숭겸아우의 한을 꼭 풀어보도록 하세.
그들 예, 폐하.
그들 그렇게 계속해 나아간다. 갈림길에 이르자 그들은 멈추어 선다.
박술희 하오면 페하, 신들은 이 길로 곧장 상주로 향하겠사옵니다.
왕건 조심하게.
박술희 염려 놓으시오소서, 폐하. 하오면 상주 근방에 이르러 다시 뵙겠사옵니다.
왕건 그리 하세. 우리는 삼년 산성으로 도착해 그 성을 접수하고 전령을 보낼 것이네. 거기서 보도록 하세.
박술희 예, 폐하. 하오면.... 자, 서둘러라... 길을 서둘러라...
염상 서둘러라... 대열을 정돈하라...
왕충 대열을 정돈하라..
왕건들은 그렇게 어둠 속에 섰다. 박술희들이 군대를 끌고 떠나고 있다. 왕건은 오래도록 그렇게 보고 있다가 유금필에게 끄덕여 보인다.
왕건 자, 우리도 가세. 이제부터는 무가 총사이니라. 이 아비는 그저 뒤를 바칠 뿐이야. 군대를 잘 통솔하도록 하여라.
무 예, 폐하. 전군 이동하라.. 전군 이동하라..
윤신달 이동하라. 행군을 속히하라.
그들 그렇게 행군을 재촉한다. 그리고 얼만큼 그 길을 빠져나가자 어둠 속에서 백제군의 세작 하나가 슬며시 일어나며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끄덕인다. 그의 시야로 양쪽으로 갈라서 사라져 가는 고려군들이 보여온다. 세작은 다시 몸을 감추며 말을 타고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씬 그 길 (낮)
정윤 무와 왕건, 유금필, 윤신달, 최지몽들이 가고 있다.
윤신달 폐하, 병부령의 말처럼 우리는 근래에 들어서 삼년산성 주변의 인심을 잘 파악하지 못하고 있사옵니다. 그 점이 좀 염려스럽기는 하옵니다.
왕건 그래서 전령을 앞서 보내지 않았는가? 호족들이 곧 나오겠지. 삼년산성은 짐이 잘 알아. 아주 작은 성이지. 거기에 백제군이 있다 한들 얼마나 있겠는가? 고작 몇 백 정도이겠지.
유금필 십중팔구 그럴 것이옵니다. 상주나 충주에 비하면 삼년군은 별 의미가 없는 성이옵니다.
왕건 하지만 우리에게는 전략적으로 아주 중요한 곳일세. 그곳에서 충주와 상주로 가는 지름길을 택할 수가 있어. 이보게 금필 아우?
유금필 예, 폐하.
왕건 이쯤해서 자네는 윤신달 장군과 탕정군(아산) 가는 길목 쪽으로 돌아서 삼년산성의 배후를 치게. 무와 나는 이 길로 곧장 가 정면을 노릴 것일세.
유금필 알겠사옵니다, 폐하.
왕건 내일 아침이면 성에서 서로 만날 수 있을 것일세.
유금필 알겠사옵니다, 폐하.
왕건 아무튼 이 삼년산성을 제물로 삼아서 상주전투를 제대로 한번 끝을 내보세.
유금필 하오나 폐하, 삼년군은 주변의 산세가 험하고 골이 깊사옵니다. 병부령의 말처럼 호족들의 도움과 안내를 충분히 받으시고 발빠른 첨병을 잘 활용하셔야 할 것이옵니다.
왕건 염려말게. 곧 호족들에게서 연락이 올 것일세. 그리고 내 몇 번이나 말을 했지만 그 주변은 내 손바닥 안에 있네 그려. 하하하... 자 그럼 또 보세.
유금필 예, 폐하. 허면 신은 여기서 길을 나누겠사옵니다.
왕건 그리 하세. 내일 만나세나.
유금필 예, 폐하. 자, 윤장군.. 군을 정비하십시다.
윤신달 예, 장군. 부장들은 군을 정비하라.. 우리는 탕정군 쪽으로 돌아갈 것이다. 서둘러라... 서둘러라....
왕건이 보며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인다. 무가 다시 소리친다.
무 행군을 계속하라. 서둘러라.. 행군을 계속한다... 서둘러라..
그 부산한 모습들. 왕건과 무는 그렇게 유금필과 다시 갈라져 간다. 보고 있던 유금필들도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들 그렇게 가면.... 숲 속에서 백제의 세작1이 보고 있다. 그리고 몸을 감춘다. 그 모습들에서...
씬 그 길
왕건과 무, 최지몽이 가고 있다. 왕건이 주변을 보며 말한다.
왕건 무야...?
무 예, 아바마마.
왕건 요 몇년은 참으로 우리 고려에게 운이 없었다. 너무도 많은 장수들을 잃었어. 그리고 회복하기 어려울 만큼 체신을 잃었어.
무 그것은 아버님 잘못이 아니옵니다. 모든 일은 때가 있다 들었사옵니다.
왕건 그래. 그러나 과연 그때가 언제인지 조바심만 더하는구나. 공산에서 돌아온 이후 나는 단 하루도 편한 잠을 이루지 못했다. 하늘이 무심치 않다면 이번에는 우리에게 무언가 길을 열어주실 것이다.
무 소자도 그리 믿사옵니다. 아버님을 도와 백제군에게 처절한 아픔을 보여줄 것이옵니다.
왕건 암, 그리하자꾸나.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한다. 상주와 충주 일대는 우리 군이 충분히 숙지하고 있는 곳이다. 저들을 반드시 궤멸시킬 수 있을 것이야.
그들 부자는 그렇게 각오를 하며 가고 있다.
씬 어느 길
신검과 금강이 이끄는 백제의 대군이 오고 있다. 양검, 용검, 박영규, 종훈, 최필, 김총, 신덕, 애술, 상귀, 부달, 소달들이 가고 있다. 금강을 보는 신검의 표정이 그리 밝지 못하다. 어느쯤 가고 있는데 멀리서 한필의 말이 달려와 가까이 이른다. 전령들이다. 군례를 하면..
신덕 너는 어디서 오는 군사이냐?
전령 적진에서 세작들의 장계를 가지고 오는 전령이옵니다. 여기....
신덕 (장계를 받아 신검에게 준다) 태자마마, 여기...
신검 (거만하게 본다, 읽다가..) 허허, 이런.. 이게 사실이냐?
전령 세작들이 두 번에 걸쳐 전해온 장계이옵니다.
애술 무슨 일이옵니까, 태자마마?
신검 기가 막힌 소식이올시다. 상주와 충주 그리고 삼년산성 인근의 고려에 속한 읍성들이 우리 백제군에 협력하겠다는 것이올시다.
모두들 오오...
신검 (다시 장계보며) 보시구려. 조물성과 공산에서 연전 연패한 고려를 믿을 수 없다는 것이올시다. 우리가 대군을 몰아 오는 것을 알고 미리 살길을 찾는 것 같소이다.
박영규 저들이 위계를 쓰는 것일 수도 있사옵니다.
신검 위계 같지는 않소이다. 고려군의 동향을 상세히 적어 올려왔소이다. 저들의 군대가 도중에 둘로 갈라지며 고려왕이 삼년산성 주변의 호족들에게 지원을 명령했다 하오이다. 그런데 저들은 그것을 거절하고 우리에게 왔어요.
애술 이렇게 되면 어떻게 되는 것이옵니까, 태자마마?
신검 어떻게 되기는요? 고려군 내부가 이미 흔들리고 있지 않습니까? 저들의 움직임이 훤히 우리에게 보이고 있어요. 박술희가 이끄는 군대는 곧장 상주로 오고 있고 고려의 왕이 이끄는 군대는 삼년군 쪽으로 갔다는 것이올시다. 지난밤에 아주 은밀히 말입니다.
종훈 태자마마, 이야말로 호기 중에 호기이옵니다. 상주로 국한되어 있는 전략을 재수정할 필요가 있사옵니다.
신검 암, 그렇구 말구요. 전략을 바꿔야겠소이다. 금강 아우야?
금강 예, 형님
신검 아무래도 네가 일군을 맡아 상주로 가야겠다. 가서 고려의 호족들을 만나 박술희 군을 맡도록 해라. 나는 고려의 왕을 잡아야겠다.
금강 ...........
종훈 좋은 생각이시옵니다. 저들은 지금 삼년산성을 취하고 우리의 옆을 찌르려는 것 같사옵니다. 저들이 오려면 아직도 하루가 남았사옵니다. 우리가 길을 빨리 하여 매복을 한다면 승산이 있사옵니다.
박영규 그러나 태자마마께서는 상주로 가라는 폐하의 영을 받으셨사옵니다. 목적지가 삼년산성이 아니옵니다.
신검 이보세요, 매부. 내가 금강아우에게 큰 기회를 주려고 하는 것입니다. 상주를 함락시키면 아버님께 큰 칭찬을 받을 게 아닙니까? 아우야, 상주로 가거라. 알겠느냐?
금강 (마지못해) 예, 형님
신검 여기서 군을 둘로 나눕시다. 이보시오, 최필장군?
최필 예, 태자마마.
신검 이 일대는 최필장군이 잘 알지 않습니까?
최필 여러 번 전투에 참여한지라 빤하옵니다.
김총 소장도 최필장군과 더불어 이 일대는 눈감고도 다 볼 수 있사옵니다. 고려왕이 오기 이전에 우리는 삼년군에 충분히 먼저 가 있을 수 있사옵니다.
신검 들었는가, 금강아우? 우리는 시간이 급하다. 너는 군사 이천을 줄 터이니 상주로 가서 박술희를 기다려라. 알겠느냐?
금강 예, 형님.
신검 허면, 두 아우와 더불어 최필, 김총장군은 함께 가십시다. 그리고 종훈 군사와 신덕 장군, 애술 장군도 가십시다. 나머지는 금강아우를 도와주시오.
모두들 예, 태자마마.
신검 서둘러야겠소이다. 먼저 가서 복병을 치자면 시간이 급합니다.
종훈 아무래도 하늘이 태자마마께 큰 선물을 드리려는 것 같사옵니다. 저들이 오는 길은 뻔하고 산은 험하며 매복을 하기는 안성맞춤인 곳이 바로 그곳이옵니다.
신검 그러게 말이올시다. 무얼하느냐, 금강아? 속히 상주로 가거라.
금강 예, 형님.. 자, 매부.. 가십시다.
박영규 예, 태자마마. 자, 일군은 금강태자를 뫼시어라. 행군을 서둘러라... 서둘러라...
그렇게 부산하게 그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신검이 보고 있다가 계속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너무 좋은 것이다.
신검 정말 고려의 왕이 그리로 온다면 이야말로 절호의 기회가 아니겠소이까?
신덕 그러하옵니다, 태자마마. 삼년산성의 전투는 누가 먼저 유리한 고지에 가 있느냐가 관건이옵니다.
종훈 단단히 그물을 치셔야 하옵니다. 일차, 이차로 군을 나누어 저들을 산속에서 궤멸시켜야 하옵니다. 사로잡기는 어려울 것이니 아예 고려왕을 죽이시오소서.
신검 물론이올시다. 그렇게만 된다면 얼마나 좋겠소이까? 오.. 드디어... 드디어 하늘이 내게 기회를 주시는 모양이올시다. 아버님도 실패하신 고려왕의 목을 내가 취할 수 있다니 이 얼마나 좋은 기회이겠소이까?
애술 그러하옵니다. 더군다나 저들은 오천의 군사를 반으로 나눈데다가 그 반을 또 쪼겠다 하옵니다. 그렇다면 저들의 군사력은 상대적으로 취약하기 그지없사옵니다. 결과가 훤히 보이옵니다.
신검 자, 서둘러야겠습니다. 어서 가십시다. 마음이 급해집니다.
양검 부장들은 무엇들 하는가? 총사께서 서둘라고 하신다. 속히 대열을 갖추어 출발하라.
부장들 대열을 갖추어라.. 출발하라...
군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신검은 기대와 감격에 벅차 숨을 거칠게 내쉰다.
신검 이제야말로, 이제야말로 아버님께 크게 선물을 하나 드리게 생겼소이다. 이제야말로....
신덕 그런 것 같사옵니다, 태자마마.
신검 이 한번의 전투로 지난날의 불신을 다 씻을 수 있게 되었소이다. 아버님께 보여드릴 수가 있을 것 같아요. 그런 예감이 듭니다. 정말 그래요, 허허허허.... (크게) 더 빨리 해라.. 행군을 더 빨리 해라...
부장들 행군을 더 빨리 하라... 빨리 하라...
그렇게 몰려가는 백제군들의 모습에서..
씬 어느 산 기슭
왕건과 무, 최지몽이 군대와 함께 오고 있다. 어느덧 석양이다. 왕건의 수기를 든 군사들이 앞에 가고 있다.
무 벌써 해가 지고 있사옵니다, 폐하.
왕건 그러게 말이다. 앞서 보낸 정탐병들은 적진이 모두 조용하다 하는구나. 백제군은 우리가 오는 것을 아직 모르는 모양이다.
무 어둠 속에서 극비리에 길을 잡았사옵니다. 알 리가 있겠사옵니까?
왕건 그러나 늘 전투에는 변수가 있기 마련이다. 조심을 해야지. 아무리 많은 군사와 좋은 여건을 가지고 있더라도 전략이나 첩보를 제대로 읽지 못하면 소용이 없는 것이다.
무 예, 아바마마..
왕건 헌데, 이상하구나... 병부령이 앞서 전령을 보냈다. 지금쯤 마땅히 호족들이 우리를 나와 맞아야 할 것인데 소식들이 없구나.
무 병부령은 호족들의 내응이 없으면 길을 돌리라고 하였사옵니다.
왕건 하하하... 그 동안 내가 여러 번 전투에 패하고 보니 병부령이 다소 걱정이 되서 해본 말일 게다. 어서 가자꾸나.
그때다. 얼마쯤 더 갔을 때, 갑자기 일진광풍이 인다. 그 흙먼지에 왕건들은 손을 가리며 먼 곳을 본다. 그리고 갑자기 왕건을 알리는 그 수기가 부러지며 떨어져 내린다. 모두들 보면...
무 어찌된 일이냐? 폐하의 대기가 부러지다니 이게 무슨 일인가? 저런 경솔한 놈이 있는가?
군졸 송구하옵니다, 태자마마. 소인의 잘못이 아니옵니다. 저절로 기가 부러졌사옵니다.
최지몽 ...........? (주변을 돌아본다)
무 그 대기는 폐하를 상징하는 깃발이니라. 부장은 무얼 하느냐? 저놈의 목을 베어라.
왕건 허허... 그만 하거라.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닌데 더 나무래 무엇하리. 헌데 웬 바람인고...? 그리고 대기가 부러지다니...?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일꼬...?
최지몽 폐하, 신 최지몽 아뢰옵니다.
왕건 말해보라.
최지몽 음산한 바람이 느닷없이 불어와 폐하의 기를 부러뜨렸사옵니다. 특히나 해질녘에 말이옵니다.
왕건 그건 무슨 소리인고?
최지몽 우연이 아니옵니다. 석양에 폐하의 대기가 부러졌다는 것은 하늘이 폐하의 불행을 미리 알려주는 것이옵니다.
왕건 불행...?
최지몽 그러하옵니다, 폐하. 신이 오면서 내내 마음속으로 일진을 점쳐 보았사온데 그 결과가 매우 불길하옵니다. 길을 돌리시오소서, 폐하.
무 아바마마, 어찌하면 좋사옵니까? 내의성령은 점괘가 불길하다 하옵니다. 아바마마의 대기마저 부러졌사옵니다.
최지몽 길을 돌리시오소서, 폐하. 신의 말을 믿어주시오소서.
무 아바마마, 병부령은 호족들의 도움이 없을 경우 분명히 길을 돌리라 하였사옵니다.
왕건 그 무슨 심약한 소리인고..? 언제는 호족들의 힘으로 싸웠느냐? 깃발하나 부러진 것을 가지고 이렇게들 겁을 먹어서야 무슨 전투를 한단 말이냐? 어서 그대로 행군을 계속하라. 날이 저물고 있다. 시간이 없어.
최지몽 폐하, 길을 돌리시오소서.
왕건 유금필 장군이 삼년산성의 후미를 치러 오고 있다. 우리가 호응하여 싸우러 왔는데 돌아가다니 도대체 어디로 간다는 말인가? 부장들은 길을 재촉하라.
부장들 폐하께서 길을 재촉하랍신다... 길을 재촉하라.... 서둘러라...
군마가 더욱 바삐 움직이기 시작한다. 왕건은 내심 석연치 않다. 주변을 다시 본다. 해가 숨고 있는데 까마귀 떼가 떼를 지어 날아간다. 최지몽이 다시 간한다.
최지몽 폐하, 늦지 않았사옵니다. 길을 돌리시오소서. 다시 생각해 주시오소서, 폐하...
무 아바마마, 내의성령의 말이 일리 있사옵니다. 다시 한번 생각하시오소서, 아바마마.
최지몽 폐하... ?
그러나 대답없는 왕건의 그 표정에서... 스톱모션.
<163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