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자식상팔자가 초미의 관심속에 어제 5개월만에 종영되었다. 마누라는 '이제 무슨 재미로 주말 저녁을 보내나...'하며 허탈해 한다. 언어의 마술사답게 김수현은 현란하고 감칠 맛나는 대사를 쏟아냈고 오랫동안 김수현과 호흡을 같이한 PD 정을영의 연출도 탄탄했다. 그래서 시청률이 종편임에도 불구하고 지상파 드라마를 추월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을 해 낸 것이다.
이 드라마는 현대 사회상의 백화점이다. 미혼모, 독신주의, 연상의 여인과의 결혼, 사랑도 버리고 돈을 좇아 결혼하는 배금주의자, 대학진학보다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풋풋한 젊은이, 마마보이, 시어머니에게 할 말은 하는 며느리 등등 요즘 2~30대에 일어 날 수 있는 모든 일상사를 소재로 하고 있다.
여기 한 세대를 뛰어 넘어 이들의 부모세대를 보면 은퇴한 후 늙은 부모를 한 집에서 모시면서 지극정성으로 효도하고 경제권은 모두 마누라에게 이양한 채 제 목소리 한 번 제대로 못내는 소심한 60대 중반, 대기업상무까지 했는데도 경제권은 구두쇠 부인에게 완전히 빼앗기고 답답함에 몸부림치는 60대 초반, 그야말로 무자식이 상팔자라고 언제까지나 연애시절처럼 지내는 50대 초반 그리고 구시대의 가부장적 권위만 내세우는 이들의 아버지에 맞서 순종만하던 노부인이 벌리는 황혼이혼 투쟁 등등 이야기거리가 무뭉무진했고 모두에게 공감이 가는 얘기였다.
로버트 베닝가의 '아름다운 실버'라는 책을 보면 이런 애기가 나온다. 노년기가 되면 네가지 유형의 부부가 있는데, 부부사이가 원수같은 부부, 타인같은 부부, 친구같은 부부 그리고 연인같은 부부가 있다고 한다.
먼저, 원수같은 부부는 말년을 사소한 일에도 부부싸움으로 보내는 사람들로 이들은 부부의 신뢰를 잃었고 갈등의 뿌리가 너무나 깊어 이혼을 하던지 전문가의 도움을 받든지 해야 한다고 한다.
타인같은 부부는 한마디로 남남같은 부부로 결혼해서 살다보면 바쁜 일과 자녀양육 등에 시달리느라 부부사이가 소원해져서 노년이 되어 부부관계를 다시 새로운 눈으로 보면서 적극적으로 문제를 풀려는 노력이 없으면 그들은 이름만 부부일뿐 늙어 죽을 때까지 서로가 이방인인 것이다.
그리고 친구같은 부부는 거의 매일 함께 이야기하고 산책이나 등산 등 운동도 같이 하는 부부로 이들은 어려운 처지에 빠지더라도 서로를 버리지 않고 같이 염려하고 보살피며 일상에서 상대에게 친절한 작은 행동을 할 주 아는 부부이다.
마지막으로 연인같은 부부인데 바람직하기는 하지만 현실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든 부부로 한달에 한두 번은 영화도 보고 고급 커피숖에도 가고 값비싼 외식도 하면서 노년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만족한 밤자리도 하는 부부이다.
이러한 유형의 부부를 무자식상팔자 세 아들 부부에게 대입해 보면 어떻까?
첫째아들 유동근/김해숙 부부는 친구같은 부부라 할 수 있다. 유동근은 교사를 정년퇴직했으니 매월 3백만원 정도 연금이 나올텐데 아마도 이것이 김해숙통장으로 들어가나 보다. 돈 한푼 허트게 쓰지 않는다. 그리고 부인이 시부모에게 효도하고 가정을 잘 꾸려나가니까 이것이 고마워서 매사에 부인에게 절대 복종한다. 오히려 친구라기보다 주종관계라 할 수 있다.
둘째 송승환/임예진은 원수같은 부부다. 대기업상무까지 했으면도 그 동안 월급은 그렇다치고 퇴직금까지 부인에게 빼았겼으니 그 과정에서 얼마나 피똥나게 싸웠겠나? 노후를 즐길 줄도 알아야 하는데 돈밖에 모르니 감정이 통할리 없다. 엄부 밑에 불효할 수 없어 마지못해 살아온 거다. 송승환이 주도하여 3형제가 커피숖을 차리는 것을 보면 송승환은 60이 넘어도 꿈을 가진 로맨티스트다. 그러기에 거실에서 혼자 음악을 감상하곤 하지 않는가. 이러니 초현실파 임예진과 맞을리가 없다. 그들은 잘못된 만남이다. 진즉에 헤어졌으면 송승환은 더 충만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막내 윤다훈/견미리같은 부부는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유형의 부부는 내가 70평생을 살아오면서 본 적이 없으며 내가 읽은 수 많은 문학작품에도 이런 캐릭터는 없었다. 더구나 애도 없고 입양도 시키지 않으며 애완동물도 키우지 않으면서 이런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은 그저 웃자고 설정한 얘기일 뿐일 것이다. 인간관계는 본질적으로 갈등이다. 그런데 이러한 무리한 관계에서 갈등이 없다는 것은 우리 모두의 소망사항이리라.
하태수
드라마의 글메체는 어디까지나 작가의 흥미쪽에도 ...여러유형별로...기울어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