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920주일설교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요한복음17:15-19)
본문: 요한복음17:15-19
제목: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오늘은 요한복음 17:15-19절의 말씀을 가지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오늘 말씀 제목이 무엇입니까?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우리가 주기도문을 드릴 때마다
하나님 앞에 올리는 고백 중 하나는
“악에서 구하소서”입니다.
예전 번역으로 하면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입니다.
저는 이 본문 말씀을 묵상하면서
예전에 상영되었던 한 영화가 떠올랐고,
설교에 도움이 될까 하는 마음으로
그 영화를 찾아서 보게 되었습니다.
홍원찬 감독이 연출하고 황정민, 이정재 배우가
주연을 맡은 영화로,
제목이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였습니다.
그러나 그 영화에는 기독교적인 영성이나
은혜의 냄새는 전혀 없었습니다.
그저 전형적이고 참혹한 범죄 영화였습니다.
영화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과거 어두운 암살자로 살며 온갖 죄를 지었던 주인공이,
존재조차 몰랐던 자신의 어린 딸이
태국에 납치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주인공은 유일한 핏줄인 그 어린아이 하나를 구하기 위해
태국의 어두운 밑바닥으로 들어갑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무자비한 추격자와 부딪히며,
수많은 사람이 총에 맞아 죽고 칼에 죽는
참혹한 피바람이 불어납니다.
죄 있는 자도, 길 가던 시민도, 경찰도 죽어갑니다.
결국 수많은 사람이 죽고
주인공 자신마저 목숨을 잃은 뒤에야,
겨우 그 어린아이 하나만 살려내며 영화는 끝이 납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왜 감독은 이런 피비린내 나는
폭력 영화에 거룩한 주기도문의 한 문장을
제목으로 썼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감독의 의도는 이것이었습니다.
스스로 구원받을 수 없는 깊은 죄악 속에서
살아온 어두운 인물이, 벼랑 끝에서
유일하게 죄 없는 아이 하나를 구하려고
몸부림치며 던지는 절박한 비명,
곧 "나를, 그리고 이 아이를 다만
이 지옥 같은 악에서 구하소서"라는
비극적인 절규를 표현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세상은 종종 그렇습니다.
내가 원하는 어떤 목적을 위해서라면 온갖 죄악도,
폭력도, 수단과 방법도 가리지 않고 행합니다.
그러나 세상이 말하는 구원은
수많은 파괴와 비극으로 끝날 뿐,
참된 평안을 주지 못합니다.
성도 여러분, 이러한 죄악으로 가득한 세상 한복판에서
우리는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오늘 본문은 십자가를 바로 앞에 두신 예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위해 올려드리시는
거룩한 기도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15절)
예수님은 세상의 폭력이나 수단 방법이 아니라,
십자가의 거룩한 사랑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악에서 구하시기 위해 기도하십니다.
그렇다면 주님은 왜 이 기도를 하시는 것일까요?
그리고 이 기도는 악한 세상 속을 살아가는
오늘 우리에게 어떤 삶을 요구하고 계십니까?
1.다만 악에서 구하소서(15-16절)
요한복음 17장은 예수님께서 제자인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는 내용입니다.
우리는 지난주 우리를 보존하시고 지키시기를 위해
기도하시는 예수님 기도를 들었습니다.
예수님은 계속해서 15절에서 이렇게 기도하십니다.
15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기도의 목적은 우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앞에서 예화를 들었던 영화에서는
어린아이가 그 지옥 같은 곳에서 구원받아
천국 같은 파나마라는 어느 바닷가로 가서
사는 것으로 영화는 끝이 납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구원은 그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이 험악한 세상에서 구원하여
곧바로 천국에 데려가기를 위해서
기도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분명하게 알아야 할 것은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다음에
우리가 살아야 할 터전은
이 험악하고 죄악 된 세상입니다.
우리를 미워하고 속이고 공격하는 자들과
우리는 한 가정에서 한 동네에서 한 직장에서
살아야 합니다.
도대체 예수님은 무엇을 위해서 기도하시는 것입니까?
지난주 말씀 속에서도 보존하시고 지키시기를 위해
기도하시는 주님을 보았습니다.
어떻게 보존하시겠다고 하십니까?
우리를 건강하게 돈이 많게 존경받으며 살도록
보존하신다고 하십니까?
예수를 믿으면 우리의 모든 삶이 형통하고
안전하고 풍성하고 평안하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우리는 말씀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존하시기를 위함이니다”
왜 우리가 악에 빠지면 안될까요?
그것은 우리의 신분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고
빌립보서3:20절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늘에 속한 우리가 그 악한 세상 속에 빠진다면
하늘 시민으로서 정체성을 잃어버린 자가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우리를
이 세상의 악에 빠지지 않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또한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시면서
“악에서 구하소서”라고 늘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보내셔 오셨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셨고
그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셨듯이,
예수님은 우리에게도 그렇게 하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처럼
우리 또한 세상에 속하지 않은
하늘 시민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단순히 교회에 오고,
성경 읽고, 기도하는 행위 자체에
머물지 않습니다.
깨어서 내가 누구인 줄 알고 주님의 말씀을 따라서
이 세상에서 악에서 빠지지 않고
사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그리고 그 삶을 살기 위해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기도의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2.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17절)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악에 빠지지 않고
하늘 시민으로 살 수 있습니까?
예수님은 17절에서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합니다.
우리가 거룩해지는 길은
우리의 노력이 아닌,
오직 진리의 말씀에 있습니다.
오직 진리만이 우리를 거룩하게 하는
훈련을 할 수 있고 무기가 될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거룩해 지는 길은 나의 노력이 아닌,
오직 진리의 말씀에 있습니다.
여기서 거룩은 세상을 떠나 고고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 살되 ‘구별된 삶’을 사는 것입니다.
300년을 동행했던 에녹이 세상에서
자녀 낳고 일상의 삶을 살았듯이
우리들도 세상에서 일상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세상 사람들처럼
돈이나 성공, 이익을 따라가지 않고
세상과 전혀 다른 기준으로
살아가는 것이 거룩입니다.
세상은 요구합니다.
그들과 같은 편에 있기를 원하고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을 좋아하고
같을 길을 가야만이 인정해 줍니다.
그들과 다르면 따돌리고
그들과 다르게 행동하면 틀렸다고 하고
그들의 기준과 다르면 악하다고까지 합니다.
세상은 만만하지 않고 강하고 교활합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노력이나 힘으로는
전혀 가능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힘으로나 노력으로
그렇게 살아보려던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더 비참한 상태로 바뀌었든지
아니면 아주 교활한 이중 인격자가 되어
외식하는 자로 살아갔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악과 유혹을 이겨내고
거룩하게 구별되는 유일한 길은
‘진리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진리의 말씀으로 사는 것이 어려워서 주저할 때
적당히 타협하라고 유혹하고
남들도 다 그렇게 산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내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기준이
바로 세워져 있으면,
세상의 유혹 앞에 능력이 생깁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성령의 검인 말씀을 통해서
세상의 유혹을 쳐서 멸하도록 합니다.
우리로 말씀을 묵상하게 하고
생명의 길이 무엇인지 알게 합니다.
그런 진리를 아는 사람이라면
매일의 삶에서 말씀을 묵상할 수 밖에 없으며
그 말씀을 내 삶의 잣대로 삼아 살아가게 됩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삶을 거룩한 삶이라고 합니다.
3.세상에 보내어진 제자들(18-19절)
예수님께서 늘 자신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오셨고
아버지의 뜻을 이루러 오셨다고 고백하십니다.
그것은 예수님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래서 18절에서 주님은 이렇게 선포합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
예수를 믿고 산다고 하는 것은
바로 예수님께로 부터 세상에 보내어진
존재라는 사실을 알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믿는 이들이 죽게 되면 무엇이라고 합니까?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원래 보내어진 고향, 영원한 천국이 있기에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보내어진 세상에서
예수님의 뜻을 이루며 살아야 합니다.
19절에서 예수님은 “그들을 위하여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를 공동번역성경에서는 이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사람들을 위하여
나 자신을 아버지께 바치다”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죄가 없으신 예수님께서
자신을 거룩하게 하신다는 것은,
인류의 죄를 대속할 거룩한 ‘제물’이자 ‘대제사장’으로
십자가에 자신을 완전히 바치신다는 뜻입니다.
제자들은 스스로의 힘으로는 악을 이기거나
자신을 하나님께 거룩하게 드릴 능력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 먼저 자신을
거룩한 제물로 바치셨고, 그 대속의 공로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한 하나님 자녀로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영화 속 주인공은 아이 하나를 구하기 위해
세상의 또 다른 악과 피비린내 나는 폭력으로
자신을 망가뜨렸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피비린내 나는 악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당신 자신을 거룩한 제물로 바치는
거룩한 희생과 사랑으로
우리를 세상 속에서 구원해 내셨습니다.
주님이 당신 자신을 바쳐
우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신 이유는
바로 세상을 피해 도망치게 하시기 위함이 아닙니다.
오직 세상 속으로 거룩하게 보내기 위함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세상에 보내어진 자로서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기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바로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기도 주기도문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하기 어렵다면
이 주기도문을 천천히 암송하셔도 좋습니다.
특별히 오늘의 말씀은 주기도문 중 하나인
”악에서 구하소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마음에 두고 실천하여 살아가야 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첫 번째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악에서 구하소서“라는 기도는
세상을 피해 도망치게 해 달라는 기도가 아닙니다.
험악한 세상 한 복판에서
하늘 시민답게 보존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기도문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악에서 구해 달라고 기도하셨듯이
우리도 삶에서 악에서 구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두 번째 붙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악에 빠지지 않고
예수님이 우리를 보내신 뜻을 행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내 의지로 하려고 해야 합니까?
내가 힘써서 노력해야 합니까?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자신을 바치신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로 의의 호심경이 붙었음을 기억하고
그가 주신 말씀으로 검을 삼아 세상과 싸워야 합니다.
그렇게 행하기 위해 주님의 주신
진리의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세 번째 살아 내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으로 나가야 합니다.
바로 그곳이 우리가 살아가야 할
주님이 나를 거룩하게 구별하여 보내신
파송지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바로 그곳에서 하늘 시민으로서
진리의 말씀으로 거룩하게 되어
담대하게 세상을 이기며 살아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뜻임을 기억하시고
세상에 나가 진리의 말씀으로 거룩하게 되어
승리하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