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
''죽은 거로구나! 내가 죽은 거야!"
나는 울부짖었습니다.
"말도안 돼! 죽으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고!
그냥 먼지로 돌아가는 건데,
썩어 없어지고 마는 건데
이게 말이 되는 거야?
죽은 사람은 아무 의식도 없어.
과학자들이 분명 그렇게 말했다고!
그럼 그게 다 헛소리란 건가?
육체가 썩어도 영혼은 남는 거였어?"
내세에 대해 이런저런
말을 하는 교회의 성직자들을
나는 머저리 악당들이라
비웃곤 했습니다.
죽은 자를 위한 미사를
올리지 않으면 천국 문을 통과할 수
없다느니 하는 따위의 얘기는
헌금을 받아먹으려고
지어낸 흰소리라고 생각했지요.
어수룩하고 소심한 사람들을
지옥이니 연옥이니 하는
무서운 이야기로 을러서
복종하게 만들려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나는 그따위 소리에 넘어갈
생각이 추호도 없었습니다.
나는 성직자들의 감춰진
사생활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겨우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들의
허황된 말은 믿고 싶지도 않을뿐더러,
죽음이 닥치면 당당히 맞겠노라고
떠벌리며 다니곤 했습니다.
죽으면 모든 게
소멸된다고 생각했으니까요.
도대체 누가 신의 존재여부에
대해 단언을 할 수 있겠습니까?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살아 있는 자는 단지 추측을 통해
이러쿵저러쿵 속설을 만들어낼 뿐입니다.
그렇게 큰소리를 치며 자신만만해하던
내가 이제 내 무덤 앞에 처연히 선 채
사랑하는 여자가 꽃을 뿌리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게 된 것입니다.
눈앞에서 무덤이 점점 투명해지더니
내 이름과 사망 날짜가
새겨진 관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관 속에 누워 있는 나 자신의
희끄무레한 주검이 보였습니다.
이미 부패가 시작된 육신은
끔찍해서 바라볼 수조차 없었습니다.
아름다움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리고,
형상조차 알아볼 수가 없었지요.
나는 시신을 보다가 다시
나 자신을 봤습니다.
손으로 팔다리를 더듬어보고,
내 얼굴의 익숙한 형태를 만져보았습니다.
죽었는데도 버젓이 이렇게 살아 있다니.
만일 이게 정말 죽음이라면,
그 성직자들의 말이 결국 옳았단 말인가?
죽은 자들이 전부 살아 있다면
그들은 모두 어디에 가 있는 걸까?
이 캄캄한 공간이 지옥일까?
나로 말하자면, 지옥 말고는
갈 곳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나는 교회에서 가장 믿음이
약한 자보다 더 심한 불신자였으니
연옥조차 갈 수 없었 을 것입니다.
나는 교회와는 완전히
연을 끊은 채 살았습니다.
성직자들의 추하고 욕심 사나운
작태를 방치하는 교회가
어찌 사람들에게 영성을 말할 수
있겠냐며 코웃음을 치곤 했습니다.
교회에도 선한 사람이
있는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숙덕거림과 조룽의 대상이 되는
악인들 또한 부지기수입니다.
교회는 이처럼 비열한 자들을
내쫓기는커녕 오히려
높은 지위에 앉히곤 했지요.
이탈리아에 살면서 교회 권력의
끔찍한 남용을 지켜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국가가 앞장서서
이처럼 부패한 세력을 일소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 번쯤 해봤을 것입니다.
19세기 초반 이탈리아의 국내 정세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잘 알 겁니다.
로마 교회는 압제자들의
하수인 역할을 자청했습니다.
주변의 가까운 사람이
성직자에게 밀고 하면
성직자는 다시 관리에게 일러바치고,
그렇게 붙들려온 사람들로
지하감옥이 득실거렸지요.
심지어 조국을 사랑하고 압제자를
증오한 죄밖엔 없는 무고한
젊은이들도 많이 수감됐습니다.
온 나라가 밀고자로 들끓다 보니
사람들은 가장 가까운 친지에게조차
속마음을 털어놓길 꺼렸습니다.
이 모든 사실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탈리아 국민의 가슴에
이글거리는 분노가 들불처럼 번져
신과 교회에 대한 믿음을 불살라버린다
해도 놀라지 않았을 것입니다.
용암이 터져 나와 인간의 영생에 대한
소망을 쓸어버린다 해도,
그 소망이 기회의 가르침에
복종해야만 얻어지는 것이라면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노라며
등을 돌렸던 것입니 다.
이렇듯 내가 세례를 받을 당시엔
교회에 대한 반감과 경멸의
분위기가 팽배해 있었습니다.
나는 교회의 가르침이라면
관심조차 가져본 적 없었습니다.
만일 교회가 지옥에 보내는
영혼들이 있다면
나는 그 일순위라고 할 수 있었지요.
이런 생각을 하면서
사랑하는 그녀를 다시 바라보자,
그녀가 나를 보러 지옥까지
찾아올 일은 없을 거란 생각이 들더군요.
그녀도 언젠간 죽음을 맞겠지.
그녀가 무덤에 묻힐 때까지
지상에 남아 있어야 할 텐데
죽은 사람은 지상을 떠나지 못하고
삶을 누렸던 장소 주변을 맴도는 것인가?
이런저런 생각으로
머릿속이 터질 것 같았습니다.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려
안간힘을 써봤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보이지 않는 장벽이 그녀의 주변을
에워싸고 나를 가로막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아무리 애를 써도
그녀를 만질 수가 없었습니다.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나는 아직 살아 있어,
비록 죽긴 했지만 여전히
의식이 남아 있고 모든 게 똑같아"
하고 외쳤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아무 말도
듣지 못하는 듯했습니다.
내 존재를 전혀 인식하지 못했지요.
그녀는 여전히 슬픔에
잠겨 흐느끼고 있었습니다.
살며시 꽃을 만지며
내가 살아생전 꽃을 좋아했으니
그녀가 나를 위해
꽃을 갖다 놓아준 것을 분명
고마워할 거라고 중얼거렸습니다.
나는 최대한 큰 소리로 외치고
또 외쳤지만 허사였습니다.
슬프게도
그녀는 마지못해 몸을 일으켜
작별인사를 하고는 떠나버렸습니다.
나는 온 힘을 다해 그녀를 따라가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검은 실 같은 사슬이 거미줄처럼
몸을 둘러막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 힘으론 도저히
그걸 끊을 수 없었습니다.
몸을 움직이면 고무줄처럼
늘어났다가 당겨지며 몸을 원위치로
되돌려 놓았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썩어가는
육신의 느낌이 전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사지에 오른 독이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고통이느껴지면서 또
다른 공포가 밀려왔습니다.
그때 위엄 있는 목소리가
어둠 속에서 들려왔습니다.
"너는 영혼보다 육신을 더 사랑했구나.
네가 그토록 애지중지하며 집착해온 것이
결국 어떻게 썩어가는지를 보아라.
얼마나 허망한 것이냐.
얼마나 혐오스럽게 변했느냐.
그리고 네가 육신의 쾌락에 팔려
영혼을 얼마나 소홀히 여기고
방치해왔는지를 보거라.
네 지상의 삶이 영혼의 모습을 이토록
혐오스럽고 추악하게 만들어놓은 것이다.
색어 없어 지는 것에 몰두한 나머지
죽지 않고 영속하는 것을
이 지경으로 만든 것이다.''
나는 나 자신을 바라보았습니다.
마치 앞에 거울이 있는 것처럼
내 모습이 보였습니다.
맙소사! 그건 의심의 여지 없는
나의 모습이었지만
너무도 끔찍하게 변해 있었습니다.
믿을 수 없으리만치 비열하고
천박한 모습이었습니다.
얼굴과 몸매마저
역겨운 몰골을 하고 있었습니다.
두려움에 몸이 움츠러들며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경이 됐습니다.
누가 내 꼬락서니를 볼까봐
더럭 겁이 났습니 다.
아! 이제 다시는 그녀를 찾을 수 없겠구나.
이런 모습은 절대로 보여주고 싶지 않아!
죽을 때의 모습으로 기억에 남겨두고
영영 떠나 는 게 차라리 나을 거야!
이 끔찍한 몰골보다는
지상에 있을 때의
모습이 휠씬 더 나을 테니까.
어쩌다 이 지경이 된 걸까!
절망과 비통함이 극에 달한
나는 비명을 지르며 나 자신을 때리고
머리카락을 쥐어 뜯다가
그만 의식을 잃고 쓰러졌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정신을 차려보니 사랑하는
그녀가 다시 보였습니다.
이번엔 꽃다발을 들고 와 무덤에
올려놓으며 전보다 더
애틋하게 혼잣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녀가 혹시라도 알아 볼까
두려워서 움츠리고 숨으려 했습니다.
살아 있는 걸 알리기보다는 차라리
지금처럼 슬퍼하게
내버려두자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나는 눈물을 머금고
그녀를 떠나보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내 미친 듯이
그녀를 불렀습니다.
먼발치에서나마 볼 수 있도록
떠나지만은 말아 달라고 애원했습니다.
그녀는 나의 부르짖음을
듣지는 못했지만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낀 것처럼
잠시 멈칫하며 뒤돌아서서
발걸음을 돌릴 듯하더니
이내 가던 길을 다시 갔습니다
그 후로도 두세 번 그녀가
무덤을 찾을 때마다 나는
움츠러들어서 다가갈 수 없었지만,
막상 무덤을 떠날 때는
내 곁으로 와달라고 외치고 싶어
미칠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그녀를 부르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소리쳐봐야 산 사람은 들을 수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온 세상 사람들에게
이미 죽은 존재였지만,
오로지 나 자신.
내 가혹한운명 앞에서만
살아 있을 뿐이었습니다.
아! 이제 나는 죽음이 영원한 잠도,
망각도 아니란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죽음으로 모든 게
끝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절망에 찬 심정으로 제발
내가 모든걸 잊고
사라지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기도 중에 나는 그것이
불가능한 일이란 걸 깨달았습니다.
인간은 불멸의 영혼이어서
선하든 악하든, 행복하든 불행하든,
영원히 사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육신은 썩어서 흙으로 돌아가도,
인간의 실체인 영혼은
썩지도 사라지지도 않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의식이 조금씩 깨어나면서
나는 지나온 인생을
똑똑히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처음엔 희미했지만 점차
강렬하고 또렸해졌습니다.
나는 비통함과 절망감에
고개를 떨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모든 과오를 되돌리기엔
이미 늦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