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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흥리(大興里)
경기도 양평군 양평읍에 있는 리(里).
대부분의 지대가 비교적 완만한 구릉성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마을 외곽은 산지로 둘러싸여 있다.
-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신흥리, 천변리, 용산리, 대곡리를 합쳐 대흥리가 되었다.
자연 마을로는 개울께, 신흥, 불당골, 주막거리 마을 등이 있다. 개울께 마을은 개울가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지명이며, 신흥 마을은 새로 이룩된 마을이라 하여 이름 붙여지게 되었다. 불당골 마을은 불당이 있었다는 의미에서 불리워진 이름이며, 주막거리 마을은 주막이 있었다는 뜻에서 명명되었다.
대흥리(大興里)
경기도 이천시 대월면에 위치한 리(里).
평야지대에 자리한 농촌마을이다. 자연마을에는 범흥이(凡興ㅡ), 큰골 등이 있다. 범흥이는 대흥리에서 으뜸이 되는 마을이다. 큰골은 대곡이라고도 부르며 해룡산 밑 골짜기에 있다 하여 유래된 지명이다.
대흥리(大興里)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서부에 있는 법정리(里).
본래 은진군(恩津郡) 김포면 지역으로, 황산(黃山)의 일부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채운면 성서리(城西里)의 일부를 병합하고 대정정이라 하여 논산군 강경면에 편입되었다.
-1931.4.1 강경면이 강경읍으로 승격됨에 따라 강경읍에 소속되어 오다가
-1947년 대흥동이 되었다. 대정정(大正町)이라 하다가 1947년 일본식 동명의 변경에 의하여 대흥동(大興洞)으로 변경되었다.
-1988.8.1 동을 리로 고쳐 대흥리라 불렀고,
-1996.3.1 논산군이 논산시로 승격되면서 논산시 강경읍 대흥리가 되었다.
평지가 대부분의 지역을 차지하고 있는 마을이다. 해발고도 10여m에서 시가지가 매우 발달해 있으며, 마을 동쪽으로 금강이 흐르고 있다. 북쪽으로 금강의 지류가 흘러가고 있으며, 마을 중앙으로도 하천이 흐르고 있다. 자연마을로는 성서, 황산남촌 마을 등이 있다. 성서 마을은 대흥리와 산양리 사이에 걸쳐 있는 마을이며, 황산남촌 마을은 대흥리의 원 마을로 황산 남쪽에 위치한다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인구는 총 911세대에 2,112명(남자 1,005명, 여자 1,107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2015년 12월 31일 현재). 면적은 0.31㎢이다(2008년 6월 기준). 이 중 경지 면적이 0.016㎢로 밭이 0.008㎢, 논이 0.008㎢에 불과하여 농업활동은 미미하다.
도로변에 젓갈제조 및 판매업의 기능체들이 국지적으로 들어서 있고, 강경역과 대흥시장 일대에는 서비스업의 기능체들이 많이 들어서 있다. 시가지에는 호남선 철도의 강경역과 시외버스터미널 등이 들어서 있고, 이와 관련하여 상업적 기능체와 주택이 들어서 있다.
국도 23호선이 중앙부를 북동~남서 방향으로 지나며, 북동쪽으로는 강경읍 남교리와 남서쪽으로는 강경읍 채산리에 연결된다. 지방도 68호선은 국도 23호선에서 분기하여 북서~남동 방향으로 개설되어 있는데, 북서쪽으로는 황산대교를 건너 강경읍 황산리에 연결된다. 이 외에도 지방도 799호선이 남동부를 북동 방향과 남동 방향으로 지나는데, 북동 방향으로는 강경읍 남교리의 강경역과 남동 방향으로는 강경읍 채산리로 연결된다. 호남선 철도가 남동부에서 북동 방향 및 남서 방향으로 지나는데, 북동 방향으로는 강경읍 남교리의 강경역에 연결되고, 남동 방향으로는 강경읍 채산리를 거쳐서 익산시 망성면으로 연결된다.
대흥리(大興里)
충청남도 아산시 선장면에 있는 리(里).
곡교천의 유역에 위치하며 대부분의 지역이 저지대를 이루고 있고 들이 분포하여 주로 논농사가 행해진다. 자연마을로는 대포, 성지몰, 어촌, 창말 등이 있다. 대포는 대흥리에서 가장 큰 마을로 앞에 개(포)가 있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성지몰은 창말 남쪽에 위치한 마을이며 큰 우물이 있어서 목욕을 하면 피부병이 나았다고 한다. 어촌은 창말 옆에 있는 마을로 전에는 이 마을 앞으로 큰 개가 나서 고기잡이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하여 어촌이라 불린다. 창말은 대포 옆에 있는 마을로 옛날에는 이곳에 개가 나서 대동창을 두어 조세로 받은 곡식을 쌓아 두었다가 배로 실어 서울에 보냈다 하여 해창이라 칭하였고 창말이라고도 한다.
대흥리(大興里)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성남면 중부에 있는 법정리(里).
동쪽으로 성남면 대화리·신덕리, 서쪽으로 성남면 석곡리·대정리, 남쪽으로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의 관정리, 북쪽으로 석곡리·신사리·대화리와 이웃하고 있다.
조선 시대에 목천군 남면 지역이었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목천군 남면 송평리, 신흥리, 대양리의 일부, 화전리의 일부를 통폐합하여 대흥리라 칭하고 충청남도 천안군 성남면에 속하게 하였다. 통폐합 대상인 송평리, 신흥리, 대양리 및 세성면 화전리 중 대양리의 ‘대’ 자와 신흥리의 ‘흥’ 자를 따서 대흥리(大興里)라 부른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1963년에 충청남도 천원군 성남면 대흥리로,
-1991년에 충청남도 천안군 성남면 대흥리로,
-1995년에 충청남도 천안시 성남면 대흥리로,
-그리고 2008년에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성남면 대흥리로 각각 변경되었다.
남쪽 경계부는 200여m의 구릉성 산지를 형성하고 있고, 남부와 동부의 대부분은 100~200m의 구릉성 산지를 형성하고 있다. 서부와 북부의 대부분은 100m 이하의 비교적 저평한 지형을 형성하고 있다.
북서부에는 승천천의 범람원 충적 평야가 비교적 넓게 형성되어 있는데, 이 충적 평야는 인접한 신덕리와 석곡리 북서부의 충적 평야에 동쪽과 서쪽으로 연속된 것이다. 북서부 충적 평야의 대부분은 논으로 개발되어 있고, 경지 정리가 잘되어 있으며, 승천천의 하안에는 대부분 인공 제방이 축조되어 있다. 서남부의 능골 인근의 소류지로 유입되는 소하천 연변에는 소규모의 곡간 범람원 충적지가 형성되어 있고, 대부분 논으로 개발되어 있다. 구릉성 산지의 완사면에는 곳곳에 밭과 과수원이 개발되어 있다.
남쪽 경계부에는 해발 고도 200여m의 능고개가 있다.
면적은 3.80㎢로, 이 중 경지 면적은 논이 0.38㎢, 밭이 1.11㎢이며, 총 140가구에 280명[남자 157명, 여자 123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2012년 8월 31일 현재).
대흥 1·2리의 두 개 행정리로 이루어졌으며, 자연 마을로 황산(荒山)[거칠미], 대양, 능골 등이 있다. 황산이란 명칭은 땅이 거칠고 비옥하며 철분과 칼륨이 많아 거칠미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사당골은 거칠미 서남쪽에 있는 골인데 선인 독서형의 명당에 서당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능골은 산양리라고도 부르는데 댕골 남쪽에 있으며 조선 시대 에 왕과 약혼한 신 처녀의 묘가 산 능선에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점골은 정골이라고도 부르는데 생골 위에 있으며 예전에 그릇점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고, 탑골은 도로봉 위에 있는 골로 탑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중산간의 평야 지대인 전형적인 농촌 마을로 주위에는 작은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승천천과 그 지류 유역 농경지에서 벼농사가 이루어지고, 하천 주변 산기슭 완사면에서는 밭농사가 주로 이루어진다. 특산물로는 쌀이 있다.
경부 고속 도로가 대흥리의 북동쪽 경계부를 남동~북서 방향으로 지나고 있다. 지방도 691호선은 서쪽 경계부를 굴곡하면서 남북 방향으로 지나고 있고, 시도 1호선은 북부를 북서~남동 방향으로 지나고 있다. 지방도 691호선과 시도 1호선은 북서쪽에 인접한 석곡리의 북서부에서 교차하고 있다. 기타 도로들이 대흥리의 곳곳을 지나면서 시도에 연결되고 있다.
대흥리(大興里)
충청남도 청양군 청남면에 있는 리(里).
대부분 낮은 구릉지와 평지이다. 서쪽에는 중추천이 흐르고, 남쪽에는 지천이 흐른다. 자연마을로는 갓점(입점), 대추울(대출, 대추), 한터(대대)가 있다. 갓점은 조선시대에 갓점이 있었다 하여 이름 붙여졌고, 대추울은 대추가 많이 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한터는 가장 큰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대흥리(大興里)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남서부에 있는 법정리이자 행정리(里).
1590년대에 함평노씨(咸平魯氏)가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흥덕군(興德郡) 이동면(二東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신월리(新月里)·신흥리(新興里)·주항리(酒缸里)·상현리(上玄里)·대곡리(大谷里)와 내안촌(內安村)·신정리(新亭里)·해평리(海平里)의 각 일부가 병합되어 대흥리가 되었고, 성내면에 편입되었다. 대흥리의 지명은 행정구역 폐합 당시 대곡과 신흥의 이름에서 ‘대(大)’자와 ‘흥(興)’자를 을 따서 대흥(大興)리라 하였다.
지형은 대체적으로 북쪽은 평지이며, 남쪽은 100m 내외의 산지가 형성되어 있다. 대흥리는 논농사 중심이다. 관개 시설로는 남쪽에 대흥소류지, 북동쪽에 신흥제가 있다.
대흥리 1개의 행정리에 자연마을로는 신월(新月), 주항, 가비동(可碑洞, 개비골), 시목동(枾木洞), 간난쟁이, 수랑동 마을이 있다. 신월마을은 대성, 상현(上弦), 만월뜸으로 3개 마을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상현(上弦)은 초승달 모양의 마을이며 만월은 보름달이 뜨는 모양의 마을, 대성은 큰 별 모양의 마을을 이루어서 상현(上絃)뜸이 대표적인 마을로 신월(新月)로 칭하였다. 신월마을은 고창에서 독립만세운동 등을 펼친 의사(義士) 노진룡(魯鎭龍)의 출생지이다. 가비동(可碑洞)마을은 풍수설에 의하면 옥등괘벽(玉燈掛壁)이 있다 하여 괘벽동(掛壁洞)을 개비골이라 부르게 되었다. 시목동마을은 마을에 감나무 정자가 있었다 하여 명명하였다. 수랑동마을은 대흥리에서 으뜸되는 마을인데 부근의 논이 수렁으로 되었다 하여 명명하였다.
면적은 1.22㎢이며(2010년 3월 기준), 인구는 총 42세대에 75명[남 40명, 여 35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2014년 12월 31일 기준). 경지 면적은 0.56㎢로 밭 0.27㎢, 논 0.29㎢, 임야 0.43㎢ 등으로 되어 있다. 대흥리 중앙에는 지방도 734호선이 동서 방향으로 지나고 있다.
대흥리(大興里)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에 있는 리(里).
자연마을로는 봉덕, 원대흥, 송광, 오성(오도리, 외성리), 위봉리가 있다. 이 마을들의 유래를 살펴보면 ‘봉덕’은 곧 ‘새터’를 뜻한다. ‘봉(鳳)’을 ‘새봉’이라 새김하므로서 ‘봉(鳳)’은 ‘새’의 새김이고 ‘터’의 고어는 ‘덕’이니 ‘새터’가 곧 ‘봉덕’이다. ‘터’를 ‘덕’이라고 할 시대라면 봉덕은 조선조 이전에 이루어진 마을이다. ‘대흥’은 대중 사이에서 이루어진 자연명이 아니라 명명된 이름이고 송광은 뒤에 송광사가 있어 이루어진 이름이고 오성은 오도리와 외성에서 한자씩 취한 분리명으로 오도리는 오도리에서 고산면 남봉리로 넘어가는 고개이름이 오도치이다. 외성리는 위봉산에 있는 위봉산성의 바깥쪽이므로 일컫는 이름을 말한다. 위봉리는 뒤쪽에 위봉사가 있어 지어진 이름인데 이 밖에 대흥리에는 여러 고적지가 있다. 위봉산 중턱에 위봉산성이 있고, 위봉산성안에 행궁(行宮) 터가 있는데 행궁은 임진왜란 때 전주성이 위급하자 경기전(慶基殿)의 영정을 옮겨 모신 곳이다. 절로는 송광사, 쌍계사(雙溪寺), 태조암(太祖岩), 송광사 남쪽에 있던 남암(南岩)의 은선암(隱仙岩)의 터, 위봉산 성 바깥쪽에 있던 외성창(外成倉)의 창고 터, 위봉산성 안에 있던 내성창(內成倉)의 창고 터, 위봉산성의 서문 등 허다하다.
대흥리(大興里)
전라남도 고흥군 금산면에 있는 리(里).
거금도의 서쪽 만(灣) 안에 위치하고 있다. 대흥이라는 명칭은 대망천 마을과 신흥마을의 앞자와 뒤자를 따서 붙인 것이다. 면소재지로서 자연마을에는 상하촌, 중촌, 신흥, 용동이 있다. 상하촌은 산이 그물과같이 감싸고 있어 큰망내라고 불렀고 중촌과는 반대로 위, 아래쪽이란 의미로 상하촌이 되었다. 중촌은 큰망내의 중간 들판에 위치한 마을이라 하여 중촌이 된 것이며 신흥은 마을이 커지면서 분리되어 새로 일어나 번창한다는 의미로 지은 이름이다.
대흥리(大興里)
전라남도 담양군 수북면에 있는 리(里).
대부분 평지이며 전형적인 농촌지역이다. 방죽밑들이 자리잡고 있다. 자연마을로는 만화동, 대흥 등이 있다. 만화동은 마을 뒷 등성이에 꽃나무가 많아 항상 꽃이 피어 있었던 것에서 유래되었다. 대흥은 대흥리에서 으뜸이 되는 마을이며 크게 일어나라는 뜻으로 붙여졌다.
대흥리(大興里)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에 있는 리(里).
쇠산 자락에 위치하며, 전형적인 중산간 마을이다. 갈치봉이 있다. 자연마을로는 대흥리(대흥)이 있다. 대흥리는 대흥사가 있었으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대흥리(大興里)
전라남도 장성군 북하면에 있는 리(里).
낮은 고개가 많아 골짜기가 많은 지역이다. 자연마을로는 대흥ㆍ갈마ㆍ대정 마을이 있다. 대정(大井)마을은 갈마지 서쪽 큰 골짜기에 있는 마을로서 큰 우물이 있다 하여 대정이라 이름 붙였다. 갈마마을은 목마른 말이 물을 마시는 '갈마음수형'의 명당이 있다 하여 갈마마을이라 부른다.
대흥리(大興里)
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에 있는 법정리(里).
신라시대에 가리현 소재지였고, 조선 말기에 성주군 가현면에 속했던 지역이다. 1690년경(숙종 16) 성주 지방의 도씨[또는 부씨]가 이주하여 마을을 개척할 때 새로 일어나는 마을이라 하여 새방골[新坊谷] 또는 신촌이라 하였다.
-1906년(고종 43) 고령군에 편입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중리·신촌동·양동을 합쳐 대흥(大興)이라 하고 성산면에 편입하였다.
-1988.5.1 성산면 대흥리가 되었다.
의봉산[535m]에서 남동쪽으로 뻗은 산줄기와 물한령[449.8m]에서 남동쪽으로 뻗은 산줄기 사이에 형성된 깊은 계곡 말단부에 자리 잡은 농촌 마을이다. 계곡 북서쪽 산 정상의 솔티재를 넘으면 성주군 용암면 용계리이다. 솔티재 남동쪽에 용기소담지·목곡지·조정소류지·운교소류지·용소저수지 등에서 발원한 용소천을 따라 좁고 길게 경지가 형성되어 있고, 계곡 상류에서부터 상용리·용소리·대흥리·강정리가 차례로 들어서 있다. 두렁산·삼재딧산·시때끝·중리안산 등의 산과 삽령 등의 고개가 있고, 개랑굼들·두렁들·밍강들·삽재들·상보들·새방골앞들·안강들·양지편앞들 등의 들이 펼쳐져 있다. 골짜기로는 딧골·샘줏골·야망골·장골가 등이 있다.
자연마을로는 새방골, 양지마, 중리, 삽재가 있다. 새방골은 1690년경 성주 지방의 도씨가 이주하여 마을을 처음 개척할 때 새로 일어나는 마을이라 하여 새방골이라고 한 것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양지마는 조선 중엽에 형성된 마을로 마을의 위치가 양지 바른 곳에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중리는 새방골과 삽재 중간에 위치한 마을이라는 뜻으로 이름 지어졌으며 현재 대흥리에서 중심이 되는 마을이다. 삽재는 대흥리 입구의 조그마한 마을로 삽가래 같이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대흥리(大興里)
경상북도 군위군 군위읍에 있는 리(里).
구릉성 평지에 자리하였으며,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작은 하천이 있어 논농사가 주로 이루어지는 곳이다. 크게 흥할 곳이라는 의미에서 대흥리라 이름하였다. 자연마을로는 대흥, 농바우, 솔티, 청자골, 무시골, 산성동마을 등이 있다. 대흥마을은 본 리가 시작된 마을로, 지명 유래 또한 대흥리의 그것과 같다. 농바우마을은 농처럼 생긴 큰 바위가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솔티마을은 소나무가 많은 곳이라 하여 불리게 된 이름이고, 청자골마을은 정자가 있었다 하여 칭해진 이름이다. 무시골마을은 무쇠가 났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산성동마을은 뒷산에 산성이 있었다 하여 불리게 된 이름이라 한다.
대흥리(大興里)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에 있는 리(里).
마을 앞 넓은 들로 이천과 개화대천이 흐른다. 벼농사를 주로 하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자연마을로는 갓덤(새떰), 개바대(가바대,가평,구촌,개화대,사동), 댓골(관동,죽곡), 미이미(하아,하산), 새떰 등이 있다. 개바대는 예전에 사직단이 있었다고 한다. 갓덤이 미이미 남쪽 가에 새로 된 마을이다. 댓골은 대흥리에서 중심되는 마을로 대나무가 많다. 새떰은 새로 된 마을이라는 뜻이다. 앞으로 크게 발전하라는 뜻에서 대흥리라 이름하였다.
대흥리(大興里)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에 있는 법정리(里).
동쪽은 2㎞ 거리에 있는 금산(錦山, 387.9m)을 경계로 신림리와 근남면 행곡리가 있고, 서쪽은 첩첩산으로 멀리 국시봉(國是峯)이 높이 솟아있으며, 서면 하원리가 있다. 남쪽은 불영사계곡을 건너면 근남면 수곡리 지역이고, 북쪽은 악구산(岳丘山)이 있으며, 산 너머에는 북면 두천리가 있다. 그리고 남쪽은 불영천이 불영사 계곡을 지나 근남면에서 왕피천에 합류하여 동해로 흐러들고 있다.
-본래 울진군 상군면의 지역으로,
-1916.3.1일 입석동이 통합되어 대흥리로 개칭되고, 울진면에 편입되었다. 옛날에 이 마을에 대흥사(大興寺)라는 사찰이 있어서 사찰 이름을 따서 대흥동이라 부르게 되었다.
자연마을으로는 대흥동, 건잠(乾岑), 장구령(長丘嶺), 독점, 돌선골(立石洞), 깨밭골 등이 있다. 대흥동(大興洞)은 계곡의 양편에 19가구가 살고 있는 마을로 옛날에 대흥사(大興寺)가 있었다 해서 이름 붙여졌다. 돌선골은 자연석(自然石)이 높이 서 있었다 하여 이름 붙여졌다. 깨밭골은 산골마을로 밭이 많고 토질(土質)이 좋지 않으나 깨 농사가 잘 된다 하여 깨밭골이라 불린다.
총 62세대에 94명(남자 50명, 여자 44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2015년 12월 31일 현재). 주민의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며, 주요 농산물은 쌀·고추·콩·감자 등이 생산되고 있다. 이 외에도 송이버섯이 약간 채취되고 있다.
주요 성씨로는 김녕김씨(金寧金氏), 울진장씨(蔚珍張氏) 등이 많이 살고 있다. 문화 유적으로는 대흥사지, 대흥사지 부도, 대흥리 성황목, 성황당 등이 있다. 국도 36호선이 남쪽으로 지나 동쪽에 있는 근남면과 서쪽에 있는 봉화군과 연결되고 있다.
대흥리(大興里)
평양특별시 상원군의 중부에 있는 리.
북서쪽과 북쪽은 흑우리(黑隅里), 북쪽과 북동쪽은 장항리(獐項里), 동쪽은 번동리(繁洞里), 남쪽은 전산리(錢山里), 남서쪽과 서쪽은 용곡리(룡곡리, 龍谷里)와 접한다. 지명은 평야가 있어 크게 흥할 마을이라는 뜻이다.
평안남도 중화군 천곡면 대흥리·휴암리·개금리가 1952년 12월 북한의 행정구역 개편 때 면이 폐지되면서 합쳐져 신설한 상원군 대흥리가 되었고 1963년 5월 군과 함께 평양특별시에 편입되었다.
남부에는 번동산(238m)이 솟아 있으며 중부에서 포문천과 그 지류인 번동천이 합쳐져 북쪽으로 흐른다. 하천 연안에는 충적평야가 펼쳐져 있다. 리 면적에서 산림이 약 43%를 차지한다. 경지면적에서는 논이 많은 비율을 차지하며 주요 농산물은 쌀과 옥수수이다. 이 밖에 채소도 많이 나며 양잠도 활발하다. 주요 기관으로는 고등중학교, 인민학교, 병원이 있고 군소재지인 상원읍까지는 4㎞이다.
대흥리(大興里)
양강도(량강도) 보천군 남동부에 있는 리.
북쪽은 문암리(門岩里)·송봉리(松峰里), 동쪽은 상룡리(上龍里), 백암군 백암읍과 박천노동자구, 남쪽은 운흥군 대전평노동자구, 서쪽은 백자리(栢子里)와 접한다.
함경남도 혜산군 대진면 대흥리가
-1949년 1월 북한의 행정구역 개편 때 대흥리와 사지리로 분리되었다가
-1952년 12월 면이 폐지되면서 합쳐져 신설한 보천군 대흥리가 되었다.
-1954년 10월 양강도가 신설되면서 군과 함께 양강도에 속하였다.
백두고원 위에 있는 남부와 동부에는 높이 200m 안팎의 산들이 솟아 있다. 남동쪽 경계에는 누른봉(2,033m)이 있고 여기에서 발원하는 가림천의 지류 대진천이 리 가운데로 흐른다. 이곳에는 예부터 사슴이 많다는 사슴골이 있다.
리 면적에서 산림이 약 95%를 차지한다. 주요 수종은 잎갈나무·분비나무·가문비나무·황철나무·자작나무·피나무 등 통나무로 이용할 수 있는 나무들이며 산에서는 고사리와 고비가 많이 난다. 또한 사향노루·검은담비·사슴 등을 비롯한 동물들의 보호 지역인 대흥동물보호구가 있다. 주요 기관으로는 고등중학교, 인민학교, 병원이 있고 군소재지인 보천읍까지는 28㎞이다.
대흥리(大興里)
자강도 낭림군(랑림군) 동부에 있는 리.
북쪽과 동쪽은 인산리(仁山里), 함경남도 부전군 개화리(開花里), 남쪽은 갈점리(葛店里)·중강리(中江里), 서쪽은 연화리(련화리, 蓮花里)·장성리(長城里)·낭림읍(랑림읍)과 접한다.
함경남도 장진군 북면 대흥리가
-1952년 12월 북한의 행정구역 개편 때 면이 폐지되면서 신설한 낭림군에 속하였다.
-1953년 12월에는 갈점리 일부를 편입하였고
-1954년 10월 군과 함께 자강도에 이관되었다.
높이 800m 이상인 낭림고원에 동서로 길게 자리잡고 있다. 봉천산(1,759m)·형제봉(1,524m)·용포산(룡포산:1,653m) 등 높은 산들이 솟아 있고 남북 방향으로 장진강과 그 지류인 다리골천이 흐른다.
산림은 리 면적의 86%를 차지하며 주요 수종은 분비나무·가문비나무·잎갈나무·자작나무·참나무 등이다. 산에는 만삼과 황기를 비롯하여 약초가 많이 자라며 농작물 중에서는 옥수수가 많이 생산된다. 주요 기관으로는 고등중학교, 인민학교, 병원이 있다. 교통은 중강리·유벌리(류별리)·낭림읍 방면으로 난 도로가 있고 군소재지인 낭림읍까지는 42㎞이다.
대흥리(大興里)
자강도 화평군 남동부에 있는 리.
북쪽은 소북리(小北里)·가림리(街林里), 남쪽은 낭림군(랑림군) 삼포리(三浦里), 동쪽은 양강도(량강도) 김형직군 남사노동자구와 접한다.
평안북도 후창군 칠평면 대흥동이
-1949년 1월 북한의 행정구역 개편 때 군과 함께 신설한 자강도에 이관되었고
-1949년 10월 동이 리로 개편되면서 대흥리·히선리·석막리로 갈라졌다.
-1952년 12월 면이 폐지되면서 칠평면 대흥리와 히선리가 통합되어 신설한 화평군 대흥리가 되었다.
-1974년 5월에는 후창군 석막리가 편입되었다.
전반적 지형은 동부에서 서쪽으로 가면서 점차 낮아진다. 동부와 남부로는 낭림산맥이 뻗어 있고 여기에 천리산(1,869m)·불채산(1,01m)·불개미산(1,542m)·길중봉(1,393m)·가릉령(1,324m)·불개미령(1,386m) 등 높고 험한 산과 고개가 있다. 가릉령에서 발원하는 자성강 상류와 그 지류인 대흥천과 남소천 등이 흐른다.
산림은 리 면적의 92%를 차지하며 주요 수종은 소나무·분비나무·가문비나무·피나무·참나무·자작나무 등이다. 석막지구에는 금이 매장되어 있다. 경작지의 대부분은 밭으로 이용되며 주요 농산물은 감자와 옥수수이다. 도의 주요 꿀 생산지이기도 하다.
리에는 대흥임산사업소와 석막임산사업소가 있고 고등중학교, 인민학교, 병원이 있다. 교통은 가릉령을 넘어 자성에서 낭림으로 가는 도로가 지나며 이 길에서 갈라져 불개미령을 넘어 김형직군으로 가는 길이 있다. 군소재지인 화평읍까지는 20㎞이다.
대흥리(大興里)
평안남도 맹산군 중부에 있는 리.
북쪽과 서쪽은 평지리(坪地里), 북동쪽은 중흥리(中興里), 남동쪽은 양산리(楊山里), 남쪽은 기양리(岐陽里), 남서쪽은 송광리(松光里)와 접한다. 1949년 북한의 행정구역 개편 때 맹산군 동면 대흥리가 대흥리와 신흥리로 분리되었다가 1952년 12월 면이 폐지되면서 다시 통합되어 대흥리가 되었다.
북동부와 남서부는 산지로 되어 있고 북쪽 경계에 철옹산(1,098m)이 솟아 있다. 산들은 경사가 급하고 절벽이 많다. 리의 가운데로는 맹산강의 지류 동면강이 남동에서 북서 방향으로 흐른다.
산림은 리 면적의 약 83%, 경작지는 약 15%를 차지한다. 잎담배를 많이 재배하고 양잠도 활발하다. 또한 양을 많이 기르며 새끼양은 다른 지방에도 공급한다. 고등중학교, 인민학교와 같은 교육 기관과 병원이 있고 순천~금야 간 도로가 지난다. 군소재지인 맹산읍까지는 12㎞이다.
대흥리
함경남도 함흥시 회상구역의 북서부에 있는 리.
북쪽은 금사리, 신흥군 원동리, 동쪽은 성원리, 남동쪽은 광덕리, 남쪽과 남서쪽은 덕산동, 서쪽은 영광군 신덕리와 접한다. 8·15광복 전에는 함주군 덕산면 대평리·삼봉리·홍경리·안심리 지역이였다.
-1949년 10월 북한의 행정구역 개편 때 홍경리와 안심리가 합쳐져 운봉리가 되었고
-1952년 12월 면이 폐지되면서 대평리·삼봉리·운봉리가 합쳐져 신설된 퇴조군 대흥리가 되었다.
-1960년 10월 함흥시가 직할시가 되면서 덕산구역에 속하였다가
-1970년 7월 함흥시가 다시 도에 속하면서 덕산구역과 퇴조구역을 함흥시에서 분리하여 덕산군과 퇴조군으로 개편할 때 덕산군에 속하였다.
-1974년 1월 덕산군이 함흥시에 편입되면서 회상구역 대흥리가 되었다.
북쪽은 배봉(650m)을 비롯하여 높이 400~800m의 산들이 솟아 있어 비교적 높은 지역을 이루며 여기에서 남동쪽으로 가면서 점차 낮아진다. 남동쪽 경계를 따라 성천강 지류인 호련천이 흐른다.
산림이 리 면적에서 70% 이상을 차지하며 주요 수종은 소나무와 참나무이다. 경작지에서 논이 34%, 밭이 36%, 과수원이 22%를 차지한다. 주요 농산물은 쌀·옥수수·배추·무이다. 이밖에 사과·복숭아·포도 등의 과일도 많이 생산된다. 특히 포도는 알이 굵고 맛이 좋아 이 지방의 특산물로 알려져 있다. 주요 기관으로는 고등중학교, 인민학교, 병원이 있고 원산~우암 간 도로가 지난다. 시 소재지까지는 18㎞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