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아몬드 연마 부문 선구자 가브리엘 톨코브스키 사망 |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다이아몬드 커터 중 한 명인 가브리엘 ‘가비’ 톨코브스키가 84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톨코브스키의 사망은 가족들의 SNS를 통해 알려졌다. 톨코브스키는 1939년에 텔 아비브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족은 수대 째 다이아몬드 사업에 종사해 온 다이아몬드 가문이었다. 톨코브스키의 아버지 장은 이스라엘에서 다이아몬드 연마 공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여기서의 교육을 통해 톨코브스키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여러 다이아몬드를 연마하는 평생의 커리어를 준비할 수 있었다.
톨코브스키는 2008년 싱가포르의 더 스트레이츠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매일 일이 끝나면 아버지는 다이아몬드 연마를 배우기 위해 전 세계에서 온 사람들과 함께 직장에서 집으로 돌아와 우리 집의 커다란 거실 겸 침실 겸 식당에 앉았다.”라고 말했다.
2000년의 마틴 라파포트와의 인터뷰에서는 “아버지는 사촌과 함께 1932년에 앤트워프에서 팔레스타인(현 이스라엘)으로 이주했다. 아버지는 이스라엘에서 첫 번째 연마 사업체를 설립한 사람이 됐다. 당시에는 다이아몬드를 연마할 때 자전거를 돌려 폴리싱 휠의 동력으로 사용해야 했다. 전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연마 산업의 초창기에 활동한 많은 사람들이 아버지의 연수생 출신이었다. 나는 아버지에게서 기술을 배웠고 이렇게 흔치 않은 기회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1975~1995년에 가브리엘 톨코브스키는 지금은 사라진 드비어스의 연마 부서 다이아트라다(Diatrada)에서 일했다. 그는 1991년에 드비어스의 설립 100주년 기념으로 공개된 273.85캐럿의 센테네리 다이아몬드를 연마한 것으로 유명하다.
2000년 인터뷰에서 그는 “수개월 동안 그냥 연구만 했다. 스톤을 낮이고 밤이고 보고 또 봤다. 낮에는 내가 스톤을 보고 밤에는 스톤이 나를 봤다.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답을 찾아야만 했다.”라고 말했다.
더 스트레이츠 타임스의 기사에 따르면 드비어스가 톨코브스키가 연마를 맡았다고 발표한 이후 그와 그의 아내는 신문 기자들로부터 숨어 다녀야 했다. 그러다가 마침내는 케이프타운의 구석진 곳에 위치한 한 호텔 지하의 비밀 방에서 지내게 됐다. 톨코브스키는 그 후 3년간을 보안이 엄격한 지하 작업실에서 센테네리를 연마하며 보냈다. 연마 완성품은 런던 탑에 전시됐다. 그는 또한 드비어스를 위해 545.67캐럿의 골든 주빌리 다이아몬드를 연마하기도 했다.
앤트워프의 한 다이아몬드 원석 거래소 임원 마크 앙드레 주커는 “그는 언제나 다이아몬드는 재화가 아니라 감성을 표현할 수 있는 독특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열정은 끝이 없었다. 그는 진정으로 다이아몬드와 로맨스를 나누고 있었다.”라고 말했다. 유명한 다이아몬드 가문의 일원이었던 톨코브스키는 라운드 브릴리언트 컷을 발명한 마르셀 톨코브스키의 증조카이기도 하다.
드비어스의 한 대변인은 “그는 다이아몬드의 신비함을 이해하고 있는 몇 안 되는 마스터 세공가이자 선구자였다. 가비는 그의 모든 예술성, 전문성, 그리고 열정을 역사상 가장 아름답고 유명한 다이아몬드 나석 세공에 쏟았다. 우리는 그를 기억할 것이며, 유족에게 진심으로 위로의 마음을 전하는 바이다.”라고 말했다.
/ 라파포트 뉴스
귀금속경제신문(www.diamond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