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동아리방 신설 축하합니다.
골프에 대한 글이나 그림 좀 올려도 될까요?
1. 골프의 기원과 역사
골프는 넓은 대지에서 클럽(Club)으로 볼을 쳐서 구멍(Hole, 혹은 Cup)에 들어가게 하는
게임이다. 또는 넓은 장소에 인위적으로 코스를 만들어 클럽을 이용하여 18개의 홀 컵
안에 볼을 넣는 경기로서 얼마나 적은 시도에 홀 컵에 볼을 넣느냐로 승부가 가려지는
스포츠로 선수들의 체격이나 체력보다는 정신력과 섬세한 기술에 의해 결정되는
스포츠 종목이다. 승부는 볼을 친 회수로 결정하며, 친 횟수가 적은 사람이 승리하는
경기이다
골프의 기원에 대해서는 명확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 문헌에 남아 있는 내용들을
살펴보면 네덜란드의 아이스하키와 비슷한 경기가 스코틀랜드 지방으로 건너가
목동들이 양몰이 지팡이로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 중 초원에 굴러다니는 돌멩이를
지팡이로 힘 컷 후려친 것이 일정한 거리를 날아가 초원에 있던 토끼 굴속으로 굴러
들어가게 되었는데 이것을 지켜 본 목동들이 호기심이 생겨 다시 시도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고 몇 번의 시도를 통해 구멍에 넣을 수가 있었기에 목동들끼리 놀이로써
호응을 얻어 고유한 놀이로 발전하여 체계화 된 게 골프라는 설이 있다
또한, 네덜란드에서 얼음 위에서 스틱을 써서 하는 숄(Chole)이라는 놀이가 있었는데
그 놀이에는 긴 코를 뜻하는 롱 노즈(Long Nose)라는 스틱을 사용하였는데 그 도구가
초기의 골프 클럽과 유사하다고 한다는 설도 있다.
1991년 링홍링교수는 골프의 원조는 중국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중국에서 골프는
츠이완이라 불렸는데, 943년에 간행된 남당사서에 기록되어 있다는 주장이다.
지금까지 골프에 대한 공인된 기록은 1457년 스코틀랜드 의회가 결정한
골프금지령인데 이 기록보다 중국기록이 514년이나 앞선다.
즉, 오늘날 시행되고 있는 골프의 원형은 15세기경 스코틀랜드에서 발달된 것이
통설로 1413년 스코틀랜드에서 골프경기가 있었고 스코틀랜드의 세인트앤드루스
대학 도서관에 1552년에 기록한 한 장의 양피지가 있는데 이것이 지금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골프 문헌이다.
골프경기 규칙은 1744년 세인트 앤드류스 클럽이 개최한 골프채를 상품으로
내건 대회에서 공정한 규약이 필요하다고 하여 13개의 규칙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골프경기 규칙의 시초라고 할 수 있다. 이때 골프경기가 18홀로
규정된 것이었다. 그 이전에는 9홀 이내 또는 28홀 등 다양하게 경기가
이루어 졌으며, 규정된 거리도 없었다.
1860년 최초의 공식경기로서 스코트랜드의 프레스트 윅 클럽에서 개최한
제 1회 전 영국 오픈 골프선수권대회에서 상금 5파운드를 걸고 36홀
경기가 이루어졌다. 1885년 전 영국 아마추어 대회가 열렸다.
세계 최초의 프로 골퍼는 세인트 앤드루즈클럽 소속 이였던 앨런 로버트슨이였으며,
그 후 톰모리스 부자가 세인트 앤드루즈 코스에서 18홀에 79타라는 경이적인
대기록을 수립하였다.
1800년대 후반 골프경기는 미국으로 전파되면서 경기규칙이 명확하게 구조
되었으며, 보다 인기 있는 경기종목이 되었다. 1888년 미국에서 처음으로
골프장이 개장 되었으며, 1894년 미국 골프협회가 창립되었고, 그 이듬해인
1895년 제 1회 아마추어 선수권대회와 전미 오픈 선수권대회가 개최 되었다
1800년대 후반 호주, 캐나다, 남아공화국 등으로 전파되면서 전 세계로 확산하여
현재는 골프장이 있는 나라가 160개국이고, 수천 만 명이 즐기고 있으며,
미국에만도 25,000여개의 골프장이 있으며, 일본 역시 2,000여개의 골프장이 있다.
유럽에서도 환경문제로 제약을 받았는데 1990년대 이후에 골프를 즐기는 인구가
급격하게 증가 하고 있으며, 골프 경기가 올림픽의 경기 종목으로 채택된 것은
단 한번 1904년 미국 세인트루이스에서 개최된 제3회 대회뿐이다
아시안 게임에서는 1982년 인도 뉴델리에서 개최된 제9회 대회부터 채택되어
1986년 서울대회와 1990년 북경대회 때 거행 되었고, 현재 전 세계에서
200여개이상의 골프대회가 열리고 있으며 직접 중계방송을 통하여 골프 경기의
매력을 보여줌으로 골프참여자는 증가하고 있다. 세계 스포츠 동향이 관람
스포츠에서 참여 스포츠로 바뀌어 가고 있는 추세로 세계 여러 나라에서
골프인구는 날로 늘어나고 있다.
2. 한국 골프의 발달
우리나라에 골프가 처음으로 소개된 것은 1887년 황실고문으로 와 있던 영국인들이
원산세관 내의 유목산 중턱에 6홀 규모의 코스가 만들어져 경기를 했다는 기록이 있다.
실질적 한국 골프의 시작은 1929년에 군자리 골프장(현재의 어린이대공원)이
개장되면서부터 이다. 영친왕은 군자리 골프장의 부지를 제공하였을 정도로
골프 애호가였으며 최초의 골퍼로 인정받고 있다. 당시 일반인들은 골프에 대해
알지 못하였으며, 주로 왕족과 외국인들이 주로 참여하였다.
우리나라 프로골퍼의 역사는 연덕춘 선수에서 출발한다. 1941년 연덕춘 선수가
전 일본 오픈 선수권대회에서 290타로 우승하였다.
연덕춘이 배출한 수많은 프로 선수들 중에 한장상이 1972년 일본 오픈에서
한국인으로서 두 번째로 우승했으며, 1973년에는 김승학이 아시아 서킷
1차전인 필리핀 오픈에서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우승하였다.
또한, 1974년 조태운이 한국 오픈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황금기를 맞이했었다.
군자리 골프장은 광복이후 4년 만에 이승만대통령의 특별배려와 주한 미군의
장비 지원으로 1949년 5월에 복구되었으나, 1개월 만에 6.25로 다시 폐쇄되었다.
휴전 후 1954년 7월에 파 72의 국제 규모의 골프코스로 복구 되면서 한국의
골프는 본궤도에 올랐으나, 경제개발 국가정책에 의해 골프는 사치운동으로
분류되어 특별소비세가 부가되어 일부 특수층 인사만이 골프를 즐겼다.
그러나 1980년대에 이르러 골프는 스포츠의 한 영역으로 인식이 바뀌면서
골프장 건설도 활기 띄었다. 1982년 골프경기가 아시안 경기대회의 정식종목이
되면서 선수양성에 힘을 쏟았으며, 그 결과 1986년 남자부 단체에서
금메달을 획득 하였다. 그 후 아시아에서 골프 강국이 되었다.
특히 1998년 우리나라의 IMF체제의 경제 위기 속에 박세리 선수가 미국 여자
골프선수권대회에서 우승과 함께 국민들에게 경제 재건의 기틀의 희망을 갖게 하였다.
이후 김미현, 미셀위, 최경주, 박지은, 신지애, 양용은 등 많은 선수들이 미국 선수권
대회(LPGA, PGA)에서 우승을 하면서 세계무대에 한국 골프의 위상을 높였다.
특히 박세리 선수는 아시아에서는 최초이고, 세계적으로 최연소
나이에 2007년 7월 6일 미국프로골프 명예의 전당에 입회하게 되었다.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복지국가의 기틀을 마련하는 국가정책에서 골프는
중요한 수단이 되고 있으며, 많은 시,군지자체에서 골프장 건설에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