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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여행지&데이트코스 스크랩 인천 내리 교회 ~우리나라 최초의 감리교회 (영상풍경-인천)
푸르름 추천 0 조회 257 10.04.24 11:26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인천 우리나로 최초의 성당인 답동성당에서 내려와 신포문화의 거리방향으로 걸어가기위해  

  지하도로 내려가 건너야 한다.

 

    지하도를 건너 다시 300M 정도 인천 시내 모습을 걸으며

   이곳에 처음을 배를 타고 이방인들이 들어 왔을때 이곳 모습 어떤 느낌 이었을까

   상상하며 걸어가다보면.....

  

 

  걸어 가는동안 건너편에 우리나라 최초의 극장인 애관극장 간판이 보인다.

 

 여러가지 보세 옷을 파는가게도 기웃거리고

 

  드디어 인천 내리교회가 보인다.

  우리나라 최초의 감리교회 만큼 오래된 흔적이 덜 보여 아쉬움이 있지만 역사가 있는 교회 

 

 아펜젤러가 씨를 뿌린 내리교회는 그 후 눈부신 성장과 발전을 이룩해왔습니다. 1887년에 아펜젤러가 인천에 파송한 노병 일은 1890년에 한국 최초의 자비량 예배당인 회당 여섯 칸을 건축했습니다. 1894년 한국 최초의 여성 전용 예배당을 자력으로 건축했습니다. 아펜젤러를 뒤이어 제 2대 담임목사요 제물포 선교 책임자로 부임한 존스(趙元時) 목사는 1893년 강화 교산교회 개척을 필두로 담방리교회(현 만수교회), 강화 홍의교회, 강화 상도교회, 강화 고비교회, 부평 굴제교회 등을 차례로 개척하여 내리는 명실상부 인천 강화 선교의 전초기지가 되었습니다.

1892년에는 존스 선교사의 부인에 의해서 영화학교가 설립되었는데 현존하는 한국 최초의 초등교육기
 
관이 되었습니다. 내리는 또한 1901년 5월 김창식과 더불어 안수 받은 한국 최초의 목사요 노병일이 전도해서 얻었던 인천 최초의 결신자인 김기범 목사를 배출했습니다. 그 5대째 후손이 오늘까지 내리에 출석하고 있다는 사실은 내리 역사의 유장함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오늘날 한국 감리교회의 못자리판이요 허브라 할 수 있는 중부연회의 모태가 된 서지방 조직에 있어서도 내리가 중심축이 되었습니다.
 (내리교회 홈페이지 글....)

   

   교회안에 들어서니 파이프 오르간이 보이고 넓고 웅장해 보였다.

  교회의 외형 만큼이나 신도들의 신앙심도 깊으리라~~~~믿고 싶다

  옛날 교회 종소리들으며 예배당 열심히 다닌적 있는데 아직도 찬송가 성경귀절 외워지는거 보면 신기하다. 

  

 

 스테인드 글라스 자연 빛이 예배당안에 가득~~

 

 

미주한인 선교 100주년 기념탑 

    다음 목적지는 대한성공회 내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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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10.04.24 11:26

    첫댓글 인천의 역사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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