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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영적 징자여! 격려하는 사람이 되라!”
+ 본 문 : 사도행전 11장 19절 - 26절 (신약성경 206쪽)
19 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
20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21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 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22 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
23 그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믿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권하니
24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
25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26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아멘!
서로 인사 / “잘 되고 있습니다. 기도하면 됩니다. 축복한대로 됩니다.”
“당신은 역사의 주역입니다. 오늘도 좋은 일이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유아기의 어린아이들 특징 가운데 ‘자기 중심성’ 이라는 게 있습니다.
자기중심성이란? 유아기의 모든 아이들은 온 세상에서 자기를 주연 배우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부모는 물론, 형제, 선생님, 친척, 친구 - 모두는 자기를 에워싸고 있는 엑스트라에 불과합니다.
이런 주인공 의식, 자기중심성이 어른이 된 다음에도 없어지지 아니하고 나타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을 전문용어로 성인 아이라고 부릅니다. 흔히 사용하는 쉬운 말로 할까요? 철부지입니다.
한 때 자기를 자기가 높이기도 하고, 자신의 장점을 알리는 자기 PR 시대가 미덕인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자기중심적인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자기가 주인공이 아니라 남을 세워줄 줄 아는 사람, 타인을 배려하고 격려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오늘 우리 시대에, 오늘 교회 안에 이런 사람이 필요합니다. 안개꽃 같은 사람 말입니다.
심지어 교회 안에서조차 모두들 자기를 나타내고, 목사가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알아주기를 원하고,
자기 생각과 주장을 앞세우고, 그런 자기의 생각과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비난하고 욕하는,
그러는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돋보이도록 뒤에서 조용히 받쳐주는 안개꽃 같은 사람이 필요합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꽃이라도 안개꽃이 뒤에서 받쳐줘야, 아름다운 꽃이 훨씬 더 돋보이는 법입니다.
주님이 진짜로 원하시는 사람은, 어디서나 누구와도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안개꽃과 같은 사람,
여럿이 어우러져 있을 때에, 나를 통하여 다른 사람이 드러날 때에 더욱 가치 있는 사람입니다.
사도행전은 초대교회 역사를 펼쳐 보이며, 우리에게 안개꽃과 같은 한 사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에게 대단한 지면을 할애하지 않으면서도 그를 통해 세워지는 중요한 인물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때 핍박자였으나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났던 사람 사울을 세워 바울이 되게 했던 사람,
그렇게 개종한 후 고향에 묻혀 살아가던 사울을 발탁해, 위대한 전도자가 되도록 격려했던 사람,
버림받은 마가를 격려해 다시 일선 사역자로 세워주었던 사람, 그가 바로 격려 사역자 바나바입니다.
폭스 잭슨(Fox Jackson)이라는 신학자는, 바나바에 대해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나바는 신약성경에서 가장 매력 있는 인물 중의 하나이다. 그는 남의 장기를 잘 찾아내어 살리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재능으로는 바울보다 못했을지 모르나, 크리스천의 덕으로는 더 우월했다.
그는 시기질투를 몰랐으며, 남의 허물과 실수를 그냥 용서했으며, 다른 사람의 장점만 보았으며,
다른 사람들과의 화목을 위해서는 타협하기에 주저하지 않았던 용납의 사람, 용서의 사람이었다.”
바로 그 사람 바나바의 본래 이름은 요셉이었습니다. 「바나바」라는 이름은 다른 성도들이 붙여 준,
별명이었습니다. 바나바란 별명의 뜻은 위로의 아들, 격려의 아들, 격려의 사역자라는 뜻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바나바를 통해 큰 위로와 격려와 힘을 얻고 새롭게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를 “바나바 - 위로와 격려의 아들! 위로와 격려의 사역자” 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교회 안에, 우리교회 셀 목장 안에서 가장 필요한 일이 있다면 바로 격려의 사역입니다.
연약한 자를 세워주는 위로의 사역입니다. 앞장 서 일하는 사역자들을 칭찬하고 격려하는 일입니다.
모든 성도들은 목회자의 격려와 칭찬을 받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받지 못하는 분들은 불평합니다.
그런 분들에게는 제가 백 번, 천 번, 만 번 죄송하고 미안합니다. 용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목사인 저도 사람인지라, 원망과 불평과 불만보다는 성도의 격려와 칭찬을 받고 싶습니다.
격려는 지친 사람들을 일으켜 세웁니다. 열심 있는 사람들에게 더 큰 일을 할 수 있도록 힘을 줍니다.
켄 블랜차드라는 사람이 쓴 베스트셀러 가운데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이 쓰여 진 배경이 있습니다. 킹슬리라는 사람이 휴가 중 플로리다의 해상동물원을 방문합니다.
그가 거기서 범고래 쇼를 보게 됩니다. 거대한 범고래들이 신나게 묘기를 부리고 있었습니다.
구경꾼들에게 꼬리로 물벼락을 뒤집어 씌우기도 하고, 익살스럽게 꼬리를 흔들어 보이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은 범고래 쇼를 구경하고, 고래는 재미있어 하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쇼를 구경한 다음 킹슬리가 범고래 조련사에게 물었습니다. “나는 부하 직원 몇 사람을 훈련시키고,
내 자식 두 명을 가르치는데도 힘이 들고 지쳐 있는데, 어떻게 말도 안 통하는 고래를 훈련시켜,
묘기를 부리게 할 수 있습니까?” 이 물음에 대한 조련사의 대답을 듣고 회사와 가정을 바꾸었답니다.
조련사의 대답을 세 가지였습니다. 첫째는 돌고래와 신뢰를 형성하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잘할 때는 칭찬을 많이 하고, 잘못할 때는 못 본척 빨리 다른 행동으로 유도한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과정을 칭찬하라는 것입니다. 결과는 비록 실패했어도 열심히 한 일은 칭찬하라는 것입니다.
대게 잘했는데도 칭찬받지 못했고, 잘못했을 때 지적 받고 꾸중만 받고 자란 사람은 부정적입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은 쉽게 다른 사람을 칭찬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매사에 불평과 불만을 늘어놓습니다.
그러나 자랄 때에, 잘 한 일은 칭찬 많이 받았고, 잘못했을 때에는 격려를 받고 자랐던 사람들은,
매사에 긍정적입니다. 다른 사람의 작은 일에도 창찬해 줍니다. 실패하면 위로하고 격려해 줍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성령충만 받은 사람은 매사에 칭찬합니다. 위로합니다. 격려합니다. 박수쳐줍니다.
이런 사람들 곁에는 항상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로부터 칭찬받습니다. 그래서 외롭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 격려의 사역자 바나바는 사도행전 4장 36절, 37절에 처음 등장합니다.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 사람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라(번역하면,
위로의 아들이라) 하니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그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 아멘!
오순절에 성령님이 강림하시면서, 교회가 세워지자마자 초대교회는 놀랍게 부흥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급성장하는 교회를 유지하고, 계속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많은 재정이 필요로 했습니다.
또한 늘어나는 성도들 중에는 고아와 과부가 많아, 선교와 구제를 위한 많은 물질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구했고, 성도들이 힘써 헌금을 드렸습니다. 바나바는 전 재산을 다 드렸습니다.
본래 바나바는 구브로 출신이었습니다. 구브로는 소아시아 근처에 있는 사이프러스 섬을 말합니다.
당시 구브로 섬 사람들은 아주 부유했습니다. 광산이 있었고 무화과와 밀농사가 잘 되는 곳이고,
기름과 벌꿀의 산지로 유명했습니다. 바나바는 그 섬에서 큰 농장을 소유하고 있었던 부자였습니다.
그렇게 부자였던 바나바는 그 큰 농장을 팔아 모두 다 헌금하여, 구제와 선교에 쓰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성도들은 그를 위로의 아들, 격려의 사역자 바나바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종종 실패를 맛보게 되는데 그 실패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대부분이 인간관계의 실패에서 오게 됩니다. 이 인간관계의 실패는 신앙생활의 행복을 빼앗아갑니다.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인간관계속에 살아가는 게 인생사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인간관계를 통해서,
기쁨을 얻기도 하고, 괴로워하기도 하고, 또 행복을 느끼기도 합니다. 이렇게 좋은 인간관계는,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합니다. 그러나 잘못된 인간관계는 우리의 삶을 실패하도록 만들어 버립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우리 사람은 절대로 불평이나 비판하는 말을 듣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누구나 다 칭찬받고, 격려 받고, 위로받고, 인정받고, 축복받고, 높여 주는 말을 듣고 싶어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른 사람의 칭찬 한 마디는 내 인생에 활력이 넘치게 만듭니다.
그리고 우리 역시 누군가를 칭찬하다 보면, 칭찬하는 나 자신이 놀라웁게 바뀌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적극적인 인생관을 가지게 됩니다. 나를 돕는 좋은 사람들을 얻게 됩니다. 삶이 행복해 집니다.
더 잘 하려는 꿈과 소망을 가지게 됩니다. 여유 있는 삶을 살게 됩니다. 자신감을 가지게 됩니다.
칭찬은 묘하게도 상처를 치유하는 명약이 됩니다. 서양 속담처럼 칭찬하면 쓸모 있는 사람이 됩니다.
평강공주가 바보 온달을 칭찬과 격려의 방법으로 대합니다. 마침내 바보 온달이 대장군이 되었습니다.
칭찬은 다른 사람을 칭찬하는 것도 멋있습니다만, 자기가 자기를 칭찬해 보는 것도 참 좋습니다.
나 자신이 나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다른 사람들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할 수가 있습니다.
나 자신이 나 자신을 격려할 줄 아는 사람이, 다른 사람들을 진심으로 격려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장점이과 은사가 무엇인지? 나의 장점과 은사들을 찾아야 합니다.
나의 장점, 나의 은사가 무엇인지를 알면, 내가 내 자신을 사랑하게 되고, 칭찬하게 됩니다.
나의 장점, 나의 은사가 무엇인지를 알면, 내게 그런 장점과 은사를 주신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장점과 은사들을 찾아 그것을 격려해 주고, 칭찬해 주고, 사랑하게 됩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먼저 저부터, 그리고 여러분들도 잘하는 사람들을 더 잘 하도록 격려하여 주고,
실수하고 잘못한 사람들, 실패하고 넘어진 사람들에게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용기를 주며 삽시다.
사람은 말 한마디에 용기를 얻어 일어설 수도 있고, 말 한마디에 낙심하고 넘어질 수도 있습니다.
어느 학교에 성도 이름도 똑같은 학생이 한 학년, 그것도 한 반에 배치를 받게 됩니다.
그런데 한 아이는 말 그대로 성적이 뛰어난 모범생이었고, 다른 한 아이는 말썽꾸러기였습니다.
새학기가 되어 말썽꾸러기 엄마가 아이가 걱정이 되었든지, 잘 부탁하려고 담임선생님을 찾아갑니다.
말썽꾸러기 엄마가 말합니다. “제가 아무개의 엄마입니다. 선생님 우리 아이 좀 잘 부탁합니다.”
선생님은 새학기에 이렇게 학교까지 찾아와서 잘 부탁한다고 말한 것으로 보아, 그 엄마는 틀림없이,
이름이 똑같은 모범생의 어머니인 줄로 알았습니다. 그래서 만면의 미소를 띠고 이렇게 말합니다.
“저희 반에 어머님의 아들과 같은 아이가 있다는 게, 선생으로서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모릅니다.
어머님의 아들 때문에 우리 온 반 아이들이 격려를 얻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기대가 갑니다.”
말썽꾸러기 어머니는 의외의 칭찬을 받고 너무 감사해서 집으로 돌아가 선생님 이야기를 전합니다.
그리고 놀라운 일은, 다음날 그 말썽꾸러기 아이가 평생 처음으로 숙제를 완벽하게 해 왔습니다.
그리고 3개월 후, 그 말썽꾸러기 아이가 전교에서 가장 성적이 향상된 아이로 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6개월 후, 말썽꾸러기 그 아이가 반에서 3등내에 드는 모범생으로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실수로 했던 선생님의 칭찬이, 비록 말썽꾸러기였지만, 아이의 가능성에 불을 지르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인정하고 칭찬하고 격려하는 만큼 사람이 바뀌어 질 수 있습니다. 여러분! 믿습니까?
다시 오늘 본문 말씀으로 돌아갑니다. 이처럼 격려의 사역자 바나바가 있었기에 바울이 있었습니다.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그리고 복음 전도자로 나섭니다.
그러나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아무도 받아주지 않습니다.(행 9:26)
그도 그럴 것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예수 믿는 사람들을 모질게 잡아 죽이던 그가 예수님을 믿어?
복음 전도자가 돼? 아닐게야. 우릴 속이는 것일게야. - 그리고 아무도 그를 믿어주지 않았습니다.
그때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사도 바울에게, 격려를 보내는 한 사람이 등장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이 하나님을 어떻게 만났는지, 예수님이 이 사람에게 어떻게 만나주시고 말씀하셨는지,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에 어떤 역사가 있었는지, 신원 보증을 서 준 사람이 바로 바나바였습니다.
이렇게 바나바의 신원 보증을 통해서, 사도 바울은 비로소 제자들과 함께 있을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로 당당하고 떳떳하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었고, 복음 전도자로 살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 복음 전하는 사도가 된 것은 바로 바나바 때문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 가운데 지금 필요로 한 사람은 바나바와 같은 한 사람입니다.
목회자에게, 다른 모든 성도들에게, 가능성에 불을 지를 수 있는 한 사람이 지금 있기를 원합니다.
오늘 교회에, 우리 사회에, 서로 얼굴 내미는 리더가 되겠다는 사람은 많으나,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바나바와 같이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위로하고 격려하고 칭찬하는 사람들이 없기 때문에 시끄럽습니다.
성경에 보면, 스데반집사님의 죽음과 함께 예루살렘교회에 큰 핍박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핍박 때문에 흩어진 사람들이 복음을 전하게 되면서, 땅끝까지 복음의 불길이 타오르게 됩니다.
이때 유대인들은 물론 헬라인에게도 복음을 전하게 되었고, 안디옥에서 이방인들도 믿게 됩니다.
그래서 예루살렘교회가 회의를 통해, 안디옥교회 목회자로 격려의 사역자 바나바를 보내게 됩니다.
그렇게 파송 받아 목회했던 바나바 때문에, 안디옥교회가 놀랍게 부흥성장을 하게 되었습니다.
바나바 혼자서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부흥했습니다. 이때 생각났던 사람이 바로 바울이었습니다.
그렇게 바나바와 바울이 동역하게 되었는데, 사도행전을 앞부분에서 ‘바나바와 바울’로 나옵니다.
그런데 조금 더 뒤로 넘어가면 ‘바나바와 바울’ ‘바울과 바나바’ 이라고 번갈아서 나옵니다.
그리고 조금 더 뒤로 가면 바나바가 뒤로 빠집니다. ‘바울과 바나바’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성경을 기록하고, 교회를 개척하고,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위대한 사역을 감당하자,
격려의 사역자답게 바나바는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조용히 사도 바울의 사역을 겸손하게 돕습니다.
한 사람을 세워서 나보다 더 위대한 사역을 감당하는 바라보며 행복해 할 수 있었던 사람.
사도 바울을 하나님의 영광스런 복음전도자로 세우고 조용히 사라진 사람, 그가 바로 바나바였습니다.
내 주변에 있는 뭇 사람들을 세워주고 말없이 행복을 느끼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바나바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시대에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바로 바나바와 같은 사람입니다.
지금 여러분 곁에 바나바와 같은 사람, 한 사람만 있다면 여러분은 반드시 성공자가 될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가정에도 바나바와 같은 사람, 한 사람만 있어도 그 가정은 행복한 가정이 됩니다.
지금 여러분의 직장에도 바나바와 같은 사람, 한 사람만 있어도 그 직장은 잘되는 직장이 됩니다.
지금 우리 교회에도 바나바와 같은 한 사람만 있어도 우리교회는 반드시 부흥할 것입니다.
그 한 사람 바나바를 찾고 계십니다. 그 한 사람 바나바가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진심으로 원합니다.
기독교 역사 속에 바나바가 없었다면, 우리는 사도 바울을 잃어버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세상엔 부정적인 비판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서로 상대의 문제점을 찾는데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이럴 때 일수록 우리교회와 저와 여러분이 격려와 돌봄 사역을 제대로 감당하면 세상이 변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성령님을 다른 이름으로 ‘보혜사 - 격려자요. 돌보아 주시는 분’ 이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격려자요. 돌보아 주시는 성령이 충만한 교회는, 돌봄과 격려사역이 충만한 교회입니다.
오늘도 성령이 함께 하실 때 하시는 사역이 있습니다. 상처 난 마음을 어루만져 주시는 사역입니다.
우리가 낙심되어 있을 때에 일으켜 세워주십니다. 갈 길을 알지 못할 때에 갈 길을 인도해 주십니다.
우리가 성령의 사람이라면, 우리주변의 이웃들에게 격려와 돌봄의 사역자로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상대방보다 내가 먼저 칭찬해야 됩니다. 칭찬하되 구체적으로 칭찬해야 합니다.
남의 말을 늘 좋게 해야 합니다. 보이지 않는 데서도 다른 사람들을 늘 좋은 말로 칭찬해야 합니다.
그래서 말이 돌고 돌아서 상대방에게 들려졌을 때도, “그 사람이 당신을 칭찬을 많이 하데요.”
그 말을 들은 사람은 꿈과 희망을 갖게 될 것입니다. 칭찬을 한 그 사람에게는 축복이 임할 것입니다.
그리고 긍정적인 사람을 많이 사귀십시오. 부정적인 사람하고는 당분간 친구도 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조용히 그 부정적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십시오. 그래야 내가 긍정적인 사람이 됩니다.
얼굴이 밝은 사람, 늘 말이 희망적인 사람, 불평이 없는 사람,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사람,
이런 사람과 교제하면 내 인생이 달라집니다. 성령의 사람과 교제하면 내가 성령의 사람이 됩니다.
좋은 선입견을 가지려고 노력하십시오. 내 생각과 고집을 앞세우지 마십시오.
그렇게 내 생각과 고집이라는 내가 만들어 놓은 틀 속에 다른 사람을 모두 집어넣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색안경을 끼고 사람을 보지 마십시오. 긍정적인 안경을 쓰고 보면, 매사가 긍정적으로 보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래서 지금 진정으로 필요한 사람이 바나바와 같은 사람입니다.
가정에서도 남편을 격려하는 바나바와 같은 아내, 아내를 격려하고 칭찬하는 바나바와 같은 남편,
부모에게 기쁨을 주는 바나바와 같은 자식들, 자식에게 용기를 주는 바나바와 같은 부모가 필요합니다.
직장에서도 혼자 성공하는 이기적인 사람이 아니라, 그가 먼저 성공하도록 도와주는 바나바 같은 사람,
지역사회에서도 영향력을 주는 바나바와 같이 사람을 세워, 행복하도록 만들어 주는 사람이 됩시다.
저와 여러분 모두 우리 교회에서 바나바와 같이, 서로 위로하고, 다른 사람들을 격려하고,
많이 칭찬해 주고, 세워주는 이 시대의 바나바가 되어, 하나님과 많은 사람들에게 길이 기억되는,
위로자, 격려자, 긍정의 사람 바나바의 사역을 감당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