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마지막 밤에…
오늘도, 10월 내내 그랬던 것처럼, 분주복잡하게 하루를 보냈다.
아침 일찍 부산대병원에 가서 기관지내시경검사를 했다. 그 사연이 이렇다. 지난 늦봄에 기침과 함께 가래에 피가 섞여 나왔고, 왼쪽 가슴 상부가 우리이-하게 아팠다. 그래서 동아대병원 암 전문의에게 시티와 엑스레이를 찍어보았더니 폐암은 아니라고 했다. 나는 6.25사변 피난통에 폐렴을 앓았었고, 대학 때는 폐결핵으로 왼쪽 허파에 구멍이 3개 나있다. 의사는 이것이 나이가 들어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고 하면서 좀 두고 보자고 했다. 그리고 1-2주정도 지나니 괜찮아졌다.
그런데 몇 일 전부터 또 그랬다. 계속 그냥 두고 볼 수 만은 없어서 오늘은 부산대병원에 가서 기관지내시경검사를 했다. 우화, 위내시경검사는 저리 가라다. 훨씬 힘들었다. 오후 1시부터는 어제 저녁부터의 금식을 풀고 물/음식을 먹을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간혹 이런저런 부작용이(때로는 심각한) 나타날 수 있으니 이틀 정도는 몸조리 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식사 후 좀 누워 쉬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식사로 좀 살만하니, 녹산 일로 미루어 두었던 자잘구례한 집 일들 생각이 나를 압박해왔다. 이것들을 어서 해치워야만, 내가 하루라도 빨리 3층 내 공부방에 들어앉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 쉬기를 생략하고 오후 내내 정신 없이 바빴다.
저녁 식사 후 집 사람이 주방에서 과일을 들고 오면서 느닷없이 묻는다.
“당신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시우?”.
“날은 무슨 날? 와 카는데?”
“노래 가사에 있지 않수 왜… ‘10월의 마지막 밤’이라고. 오늘이 바로 10월의 마지막 밤이유”.
“아- 그래?”. 식탁 바로 옆에 있는 달력(내 오른 쪽 눈 높이에 걸려있는 경구가 준 예쁘고 작은 달력)을 보면서, “아하- 그러네. 오늘이 바로 그 <잊혀진 계절>의 ‘10월의 마지막 밤’이네!”
순간 내 마음 한 구석에서 어떤 삼삼한 정서가 피어 오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집 사람 왈 “10월에 당신이 한 게 뭐가 있수?”.
어 이거 무슨 찬 물? 로맨틱이랄까 멜랑콜리랄까 삼삼한 정서가 싹 가셔졌다. 잠깐 침묵과 생각.
다시 집 사람 왈 “옆에 그 신문 스크랩을 한 번 보슈”.
나는 목을 오른 쪽으로 돌렸다. 순간 나는 “아-하, 참 기가 찬다” 하면서 허탈하게 웃었다. 상기 그 달력 바로 뒤에 집게로 집어 고개만 오른 쪽으로 돌리면 하시라도 볼 수 있도록 해 둔 <내고장사하>의 한 스크랩을 들여다 보았던 것이다.
9월 우리 동기모임에 간다고 대문을 나서는데 한 아주머니가 사하구신문을 돌리고 있었다. 1001번 버스로 1시간이 더 걸리는지라, 심심풀이로 보려고 한 부를 얻었다. 그 첫 페이지에 우리 사하구의 <10월 주요 문화.행사>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는데 모두 14일이나 되었다. 거의 다 참석하고 싶었다.
책과 필을 놓은 지가 만 2년이 넘은지라, 이번 10월에는 꼭 내 속살을 좀 찌워보아야겠다는 생각에서 다시 꼼꼼히 들여다 보았다. 그리고는 아무리 바빠도 다음 것들은 반드시 참석하리라 결심했다. 그리고는 그 페이지를 잘 접어서 안주머니에 넣어 집에 와 빨간 사인펜으로 표시를 했다:
l 17일: 김수우 시인(인문학북까페 백년어서원 대표), 공감의 상상력을 위하여
l 31일: 정형진 역사학자(국제신문 <고대문화 새로 읽기> 연재), 고대문화를 만든 사람들의 시각으로 새로 읽기
l 10일: 을숙도 명품콘서트(베버의 클라리넷 협주곡 제1번)
l 18일: 을숙도문화회관 제9회 부산국제합창제
그래서 어떻게 됐는가? 부끄럽고 한심하게도, 단 한 곳도 참석하지 못했다.
참석은커녕 그 스크랩을 드려다 본 기억도 없다!
'10월에 당신이 한 게 뭐 있수?'. 정말이다. 이거 도대체 10월이 다 가도록 내가 무얼 했단 말인가? 바로 좀 전의 그 삼삼한 정서와는 반대로 허탈함과 자괴감이 마음 깊수우-욱이 들었다.
드디어 집사람에게 척추협착(상하협착)이 왔다.
할매의 푸석푸석해진 뼈로 만 2년을 노가다 일 한 댓가가 온 것이다.
눕지도 앉지도 서지도 못하고, 그저 고통의 신음만 계속이다.
병원 약을 묵고 진통주사를 맞아도 별 차도가 없다.
하루 24시간 내내 그토록 아프니, 나 역시 죽을 지경이었다.
이 와중에 한편으로 나는 벼르고 벼르던 비뇨기과에 갔다. 몇 년 전부터 내 고환이 세 개인 것처럼 감지되었기 때문이다. 어릴 때 누구는 삭부랄이란다 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서 내가 바로 삭부랄인 가부다 생각하고 그냥 생각 없이 지냈는데, 우리들의 주치의 박 원장 왈 그것이 별 것 아닐 수도 있고 별 것 일 수도 있으니 일단 비뇨기과에 가보라고 했다. 그래서 하단 비뇨기과에 같더니 박 원장과 동일한 진단을 내리면서 일단 대학병원에 가보라고 진료의뢰서를 써주었다(오호라, 박 원장은 외과는 물론 만병통치과 전문의!). 하지만 도저히 시간이 나질 않는다. 10월과 11월 상순에 이사가 제일 많으니, 세상없어도 10월내에는 일을 마쳐야 하기 때문이다(월세라도 조금 받아 궁핍한 형편에 숨통을 조금이라도 티우기 위해, 폐가처럼 된 녹산의 촌집을 10개월이 넘도록 수리 중임).
그래서 내 붕알 문제는 11월로 미루고, 주말이고 휴일이고 없이 시멘콘크리트작업을 연거푸 10일정도 했다. 이제 집사람은 빠지고, 나 혼자 해야 하니 하루에 해내는 일 양이 얼마 못 된다. 게다가, 과연 결혼식의 달 10월인지라 이 와중에 혼사참석도 여러 번 있었다. 서울 넘어 파주까지 가는 혼사도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완전 설상가상으로, 또 가슴이 우리이-하기 시작하더니 다시 객담/객혈이 나온다. 하지만 몇 일 내에 실외 혐오스런 곳을 다 콘크리트작업으로 잡아야 하니, 바로 병원에 갈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어제와 오늘 부산대병원에 가서 70만원이나 들여 시티촬영과 기관지내시경검사를 했다. 그리고 오후 내내 분주하게 자잘구레한 집 일들을 하고 저녁을 먹고 나니, ‘10월의 마지막 밤’이 된 것이다!
10월의 마지막 밤, 저녁식사 후 사과를 먹으면서 뭐라고 형언하기 어려운 미묘한 감정상태에 들었다. 삼삼한 정서가 피어 올랐었고, 곧 이어 허탈함과 자괴감이 들었었고, 속절없이 그 신문 스크랩을 떼내어 휴지통에 넣으면서 다시 형언할 수 없는 어떤 미묘한 감정에 든 것이다. 그리고는 뒤이어 무거운 궁금증이 뒤따른다: 11월 5일에 객혈의 병원검사결과가 나오는데… 어떤 결과가 나올지…; 조만간 또 대학병원에 가서 붕알 정밀검진을 받아야 하는데… 별 것 아니어야 할 텐데…
아- 어찌 이리도 복잡.다난.미묘한 심상의 '10월의 마지막 밤'인가! 젊은 날의 그 아리삼삼하던 ‘10월의 마지막 밤’이 엊그제 같은데… 토셀리의 세레나데가 귓전에 들려오는 듯하다, 가슴이 저며오는 듯한 아름다움이여!
사랑의 노래 들려온다, 옛날을 말하는가 기쁜 우리 젊은 날!
금빛같은 달 빛이 동산 위에 떠오면
그 때 자미롭던 그 때 그 때가 꿈결과 같이 지나 가건만
내 마음 속 깊이 세겨진 그대!
아-그리워라, 사랑아... "
내일이면 11월의 첫 해가 떠오른다.
11월의 내 가을은 보다 힘차고, 보다 아름다울 것임을 꿈꾼다: 구미에 사는 손아래 친구와 직지사 일대 단풍구경 하기로 했고, 서울.대구 동기들과 다맛하야 단풍으로 물든 문경세제를 걷기로 했고, 우리 부산동기들 등산팀을 따라 하루를 즐기고도 싶고, 최근 파주에서 딸 치운 형님이 놀러 오신다고 하셨고, 안동 친구와 청송 주왕산에 단풍구경 가기로 했고, 퇴임 후 청도 전원지역에 귀농한 한 동기는 서리오기 전에 고구마 캐고 자연방사로 키운 닭 잡아 묵으로 오라카고, 여름에 와서 2박3일 놀다간 서울 손아래 친구는 호사스럽게도 링컨콘티넬탈로 중부지역 어디에 단풍구경 갈 날짜를 잡고 있는 중이고, 바로 옆에 을숙도문화회관 대공연장에서는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케빈 케너화 함께 정경화 바이올린 리사이틀이 있으니 꼭 가 보아야겠고 등등
이번 가을의 맨 끝자락, 11월의 마지막 밤에는 과연 어떤 결산이 나올까?
문득 푸쉬긴의 시가 떠오른다.
세월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너무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마라.
과거는 항상 아름다운 것
현재는 언제나 슬픈 것
그러나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2013년 10월의 마지막 밤
강 학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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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입인사로 졸고 한 편 올렸습니다^^.
저는 1996년 뉴질랜드로 이민 가서 15년을 살다가 부산으로 귀국한지 2년이 되었습니다. 말이 통하는 고국인데도 정착에 여러가지로 애로가 많아 이제사 겨우 좀 자리가 잡힌듯 합니다.
이번 문경 모임에서 대부분 동기들을 반 세기만에 처음 만나게 되어 감개가 컸습니다. 특히 서울 김석무 총무의 서울동기소개는 아주 인상에 남습니다. 그의 그 말과 폼에서 3년의 인연으로 무려 반 세기 동안 훈훈한 정분을 나누어 온 저력을 느꼈습니다.
상기 졸고에 저의 적나라한 '10원짜리' 일상이 담겨있어서 반 세기의 공백을 매우는데 얼마간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우리 까페가 북적북적하는 가운데 모두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기원합니다.
* 부산대병원에서 별 문제 없는 없는 것으로 결과가 나왔습니다^^.
첫댓글 우와~ 대단한 필력이로고! 읽으면서 너무 웃었다.이 팍팍한 세상, 웃음을 준 당신 너무도 고마워라.내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문단에서 한가닥 한 솜씨다.계속 글을 올려주기를 갈망합니다.
디어 범, 멀리서 격려 보내줘서 고맙네^^. 항상 건강하고 또 만나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