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유학은 진(秦)나라가 중국을 통일하기 이전까지의 원시적 확립기의 유학을 가리키는 말로서 공자(孔子)·맹자(孟子)·순자(荀子)의 사상이 중심이 된다.
내용적으로는 선왕(先王)과 공자의 가르침을 통해 덕화(德化)를 실현하려는 도덕적·정치적 사상체계이며 공자가 계승한 선왕은 요(堯)·순(舜)·우(禹)·탕(湯)·문왕·무왕(武王)·주공(周公)을 가리킨다. 이 시기의 유교가 시원적 규범성을 함축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원시유교(原始儒敎)라고도 한다.
공자는 〈시경(詩經)〉과 〈서경(書經)〉을 핵심으로 하는 주대(周代)의 전통 문화를 '수기안인'(修己安人)이라는 인간론을 중심으로 해석함으로써 유가(儒家)의 기본적 방향을 제시했다. 맹자는 공자의 인간론을 진심론(盡心論)으로 발전시켜 인간의 도덕적 주체성을 강조했다. 또한 그는 〈춘추(春秋)〉를 공자의 저술로 유가의 전통 속에 수용하면서 도덕적 정치론인 왕도정치론을 확립했다. 순자는 제자백가(諸子百家)의 학설이 갖는 한계성을 지적하면서도 그들이 지닌 진리의 한 측면을 수용해 그것들을 유가적으로 재해석하면서 공자의 인간론을 예론을 중심으로 체계화했다. 이와 같은 선진유학의 정신은 후대에 계승되면서 각 시기의 변동에 따라 새롭게 해석되고 변모했다. 한당(漢唐) 유학이 선진유학에서 제시된 보편적 인간상으로서의 군자를 추구하기보다 임금이야말로 인정(仁政)을 통해 인간의 선한 본질을 구현하는 주체가 된다고 주장했던 것은, 한당 유학이 중앙집권적 전제군주제의 이념으로 기능했기 때문이다. 송명(宋明) 유학은 모든 사람이 성인(聖人)이 될 수 있다는 보편적인 인간상을 회복시킴으로써 선진유학의 정신으로 되돌아갈 것을 표방했다. 그러나 이 시기의 유학은 도교와 불교의 사상적 대립 속에 자극을 받으면서 사변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다. 이기설의 도입을 통한 철학적 체계화를 이루었던 것이다. 이 이기론에 바탕한 인성론에는 당시의 신분제와 중화적 세계질서를 옹호하는 논리가 내포되어 있었다. 〈논어〉와 〈맹자〉가 가장 중요한 경전으로 확정되고, 공자·증자(曾子)·자사(子思)·맹자의 학통이 정통으로 규정된 것은 이 시기이다.
우리나라에는 삼국시대에 유학이 전래되었고 고려시대에도 유용한 통치수단으로 이용되었다. 한편 고려말에 수용된 송대 성리학이 조선시대에는 다른 사상을 용납하지 않는 절대적 사상체계로 자리잡아 중세적 신분제와 토지제도를 유지하는 이념적 토대가 되었다. 조선 후기에는 이이(李珥)·김장생(金長生)·송시열(宋時烈)로 이어지는 학통이 주자의 정통을 계승했다는 주자도통주의(朱子道統主義)를 내세우며 정치적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었다.
이들을 비판하고 나선 것이 실학자들인데, 그들은 당시의 사회현실을 개선하는 이념적 토대를 주자(朱子)의 경전해석이 아닌 공맹(孔孟)의 학설 그 자체, 즉 선진유학(先秦儒學)에서 구하고자 했다. 출처: 다음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