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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30. 묵상글(연중 제17주일. - 거룩한 교환(Sacrum Commercium). 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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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30. 연중 제17주일.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님.
- 거룩한 교환(Sacrum Commercium)
오늘의 독서와 복음을 아우를 때 연중 제17주일의 주제는 지혜입니다.
그런데 독서는 솔로몬이 지혜를 청해서 소유하는 자가 되었음을 얘기하고,
복음은 보물이 묻힌 밭을 모든 것을 팔아 소유하는 자에 대해 얘기합니다.
결론적으로 지혜란
비우고 채우는 능력이요,
버리고 얻는 능력이며,
팔고 사는 능력입니다.
부연하면
무엇을 비우고 무엇으로 채울지 아는 능력이요,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얻을지 아는 능력이며,
무엇을 팔아 무엇을 살지 아는 능력입니다.
부연하면
무엇이 더 중요하고 무엇이 덜 중요한지 아는 곧 식별하는 능력이요,
알고 식별할 줄 알 뿐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행하는 능력입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부귀와 장수를 청하지 않고,
지혜를 청하되 자기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모두를 위해 청합니다.
복음의 지혜로운 사람은 모든 걸 팔아 보물이 묻힌 밭을 삽니다.
그런데 모든 걸 팔아 사야 할 보물이란 하느님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돈보다 건강이 중요하고,
장수보다 하느님 나라가 중요함을 알기에
평생 모은 재산을 팔아도 아깝거나 슬프지 않고
기쁘게 모든 걸 팔아 하느님 나라를 사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클라라 성녀는 이것을 거룩한 교환(Sacrum Commercium)이라고 했습니다.
이 지상 것을 팔아 천상 것을 사는 그런 교환의 삶을 우리도 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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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30. 연중 제17주일.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님.
오늘은 연중 제17주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하늘나라는 우리 마음속에 숨겨져 있는 보물과 진주를 발견하는 것에 비유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마음 안에 참된 나, 진실된 나인 그리스도가 모셔져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성 보나벤뚜라는 그리스도를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물을 감추어 두신 생명의 책과 같다고 말합니다. 이 지혜와 지식의 보고인 생명의 책은 우리 마음속에 충만한 빛을 영원히 비추고 있습니다. 모든 다양한 지혜가 이 영원한 빛으로부터 비추어져 나오며 우리 마음안에 빛나고 있습니다. 영원한 기원과 부패하지 않는 본질, 생명을 주는 지식과 지워질 수 없는 글씨를 가진 이 생명의 책을 찾아 내야 합니다. 이 생명의 책에 감추어진 지식은 감미롭고 그 깊이는 헤아릴 수 없으며 그 말씀은 이루 표현할 수 없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감추어진 보물인 이 생명의 책을 찾아내는 사람은 누구든지 생명을 얻고 하느님의 은총을 받으며 하늘나라를 체험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숨은 이 보물을 찾기 원한다면 먼저 우리 손이 지저분해지는 것을 감수하면서 땅을 파야만 합니다. 진주는 진주조개가 입은 상처에서 자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상처를 받아서 아파하고 고심할 때 그 안에서 보물을 찾게 됩니다 상처를 통해서 내가 참으로 누구인가를 알게 됩니다. 바로 그곳에서 나의 마음을 만날 수 있으며 좀더 활동적이 되고 숨겨진 보물인 나의 참된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상처들로 말미암아 내가 스스로 덮어쓴 가면들을 부수어 그 안에 있는 참된 모습이 드러납니다. 불평하는 곳, 불만족해하는 곳, 서로 비난하는 곳, 바로 상처입고 실패와 좌절이 있는 그곳에서 우리는 보물을 찾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는 성공을 통해서보다 우리의 실패와 상처를 통해 더 많이 보물의 가치를 깨닫게 됩니다.
시리아의 성 에프렘은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실 때 인간의 가장 깊은 곳에 하늘나라를 넣었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그 감추어진 보물을 찾을 때까지 깊이 파야 합니다. 하느님을 발견하려면 하느님과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장소, 우리의 가장 중심부에 존재하시는 하느님의 나라가 있는 내면의 방을 찾아서 파야 합니다. 모든 장애물을 물리칠 수 있는 가장 좋은 연장이 바로 기도인 것입니다. 문제는 거짓 하느님, 우상, 상상의 산물에 의해 진실된 하느님이 대치되지 않고 또한 어떤 신비스런 경험을 가지려고 애쓰지 않고 열심히 단순하게 진실로 기도하는 데 있습니다.
기도는 본질적으로 인간과 하느님과의 만남이므로 그것이 참된 대면이 되려면 각자가 진정한 자신이 되어야 합니다. 거의 대부분 우리는 진실하지 못하며 사실상 우리가 하느님이라 상상하는 어떤 것에 향해 있을 때 진정한 하느님에게 향해 있다고 믿기 때문에 우리와 관계하는 하느님도 흔히 우리에게 진실치 못합니다. 또한 우리가 진실로 그분 앞에서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이러한 거짓되고 진실되지 못한 나로 인해 가리워져 우리 마음속에 묻혀져 있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물이 들어 있는 생명의 책을 찾아내어 참된 나인 그리스도를 만나 하느님 나라를 체험할 수 있도록 주님께 은총을 청하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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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요일 성체의 날✝️
당신은 하루에 얼마나 많이 하느님의 이름을 부릅니까?
기도는 단순한 것이 좋다. 가장 단순한 기도는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는 기도이다. 그냥 단순하고 간절하게 ‘예수님 사랑’하고 마음으로 되뇔 때,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 안에 있게 된다. 그분의 현존을 의식하게 된다. 기도할 때, 많은 말을 하는 것은 오히려 두뇌를 피곤하게 만들고 계속해서 정신을 사용하기에 자기 착각에 빠질 수 있게 된다. 여러분들은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기도를 알고 있을 것이다.
이 기도는 호흡과 함께 ‘구세주 예수여 불쌍한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하고 계속 반복하는 것이다. 아주 단순한 이 기도를 되풀이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정신이 하느님께 집중되고 하느님과 하나됨을 체험하게 된다. 기도 중에 가장 쉽고 빠르게 하느님을 체험할 수 있는 기도는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는 기도이다.
야훼 하느님, 마라나타, 예수 사랑, 예수 평화, 압빠 하느님 등 하느님의 이름을 호흡과 함께 매일 같이 계속적으로 불러 보라. 여러분은 금방 영적인 체험을 하게 될 것이다. 이 기도를 통해서 여러분의 감정이 치유됨을 발견할 것이고, 하느님에 대한 여러분의 신앙이 깊어짐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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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페소 평화 관상 기도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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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30. 연중 제17주일. 이영근 아오스딩 신부님.
“하늘나라는 밭에 묻혀있는 보물에 비길 수 있다.”(마태 13,44)
이 세상에서, 가장 값지고 소중한 것은 무엇일까? 절대 최고의 가치를 지닌, 내 목숨을 내어주고서라도 얻고 싶은 것, 그것은 무엇일까? 참된 행복, 참된 기쁨, 참된 보물, 그것은 무엇일까? 바로 그것을 여러분은 발견하였는지요? 그리고 그것을 이미 가지셨는지요? 아니면 그것을 갖기를 진정으로 원하시기는 하는지요?
오늘 [말씀전례]는 바로 이 ‘진정 중요한 것’에 대한 말씀입니다.
<제1독서>에서 주님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시어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느냐?”(2열왕 3,5)라고 묻자, 솔로몬은 대답합니다.
“당신 종에게 듣는 마음을 주시어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1열왕 3,9)
이처럼, 솔로몬은 백성을 분별 있게 통치할 “듣는 마음”을 청합니다. 여기서 ‘듣다’(샤마)라는 동사는 단순히 듣는 행위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귀 기울여 들은 것을 받아들여 수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습니다. 지혜는 ‘소통하는 듣는 마음’에서 옵니다. 곧 ‘말씀을 듣고 들은 말씀을 받아들여 수용하는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해줍니다.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로마 829)을 밝히면서 말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미리 뽑으신 이들을
당신의 아드님과 같은 모상이 되도록 미리 정하셨습니다.”(로마 8,29)
그러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모상”이 되는 일입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에서 중요한 것은 “와 있는 하느님 나라”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숨겨진 보물”과 “좋은 진주”로 비유됩니다. 오늘 <복음>은 먼저, 그 ‘값진 보물’인 “하느님 나라”가 대체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있는지? 그리고 그 보물을 어떻게 얻을 수 있는지?를 알려주십니다. 먼저, 하늘나라는 대체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있을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하늘나라는 밭에 묻혀있는 보물에 비길 수 있다.”(마태 13,44)
그것은 멀리 하늘 끝에 높이 매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일하고 있는 “밭에 묻혀있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곧 우리의 일터에, 우리의 삶의 터전에 ‘이미 묻혀있다’ 말씀입니다. 우리의 사무실이나 가게에, 우리의 농장이나 공장에, 혹은 거리나 광장에, 이 세상에 그리고 사람 서리에, ‘이미 묻혀있다’는 말씀입니다. 곧 우리의 일상의 삶의 장소 안에 ‘이미 묻혀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그것은 우리가 밭을 충실히 일구고 가꿀 때, 비로소 바로 그 밭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하늘나라는 어떤 장사꾼이 좋은 진주를 찾아다니는 것에 비길 수 있다”(마태 13,45)
그것은 우리의 머릿속, 관념 안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진주를 찾아다니는” 그 행위에 ‘이미 깃들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길을 찾는 그 발길 안에, 진리를 더듬는 손길 그 안에, 혹은 인간을 찾아나서는 우리의 인간관계 그 안에, 어떻게든 바르게 살아보려는 바로 그 행위 안에, ‘이미 깃들어있다’는 말씀입니다. 곧 하느님을 찾아나서는 신앙의 여정, 신앙의 행위 그 안에 ‘이미 깃들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그것을 열심히 찾아다닐 때, 바로 그 행위 안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결국, “하늘나라”는 우리의 ‘일상의 삶’과 하느님을 ‘찾아나서는 행위 안’에 ‘이미 있다’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하늘나라는 바로 너희 가운데 있다.”(루가 17,21)
그렇다면, 우리 가운데 있는 이 “하늘나라”를 어떻게 얻을 수가 있을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그 보물을 찾아낸 사람은 ~있는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마태 13,44)
“그 진주를 발견한 장사꾼은 ~있는 것을 다 팔아 그것을 산다.”(마태 13,46)
결국, “하늘나라”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먼저 “있는 것을 다 파는” 일입니다. 우리가 비록 보물을 찾았고 진주를 발견했다 해도, 그것이 곧바로 우리의 것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신앙생활에서 보물을 깨달아 알아들었다 해도, 그것이 아직은 우리의 것이 아닌 것과 같습니다. 진정 그 보물을 차지하려면, “먼저” 그 보물을 위하여 ‘헌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곧 가진 것을 다 팔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목숨까지도 팔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셨듯이 말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 모든 것을 합한 것보다 그 보물이 더 값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다음으로는 실제로 그것을 “사는” 일이 필요합니다. 사실, 우리가 비록 보물을 발견했고 가진 것을 다 팔았다 해도, 그 보물을 실제로 사들이지 않고는 아직 보물이 우리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결국, “하늘나라”를 얻는 길은 “있는 것을 다 팔아 그것을 사는 것” 입니다.
‘성서 안에서는 사는 방법’을 두 가지로 말해줍니다. 하나는 돈 없이, 곧 값없이 사는 것이요(이사 55,1; 묵시 21,6), 또 하나는 모든 것을 다 투자하여 사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가 이러한 모습을 보여줍니다(필립 3,7-8). 그런데 사실, 모든 것을 다 투자하여 산다는 것 역시 결국은 당신의 겻을 당신께 돌려드리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모든 것, 곧 목숨까지도 애시 당초 당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사실 ‘있는 것을 다 팔아도’ 잃어버린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미” 우리 가운데 있는 이 “하늘나라”를 우리가 가진 것을 다 팔아 사야할 만큼, 진정 가장 값진 보물로 여기고 있는지? 자문해보아야 합니다. 진정 “하늘나라”가 나의 기쁨이요 나의 행복인지, 진정 나에게 있어서 최상의 유일무이한 것인지, 목숨을 주고라도 얻어야하는 그 무엇인지, 사실 우리는 바로 이러한 “하늘나라”의 가치를 인정할 때라야, 진정으로 그것을 원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혹 내가 아직 보물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이제 진정한 마음으로 찾아 나서야 할 일입니다. 혹 보물을 발견하고도 아직 있는 것을 다 팔지 않았다면, 서둘러 다 팔아야할 일입니다. 혹 가진 것을 다 팔고도 아직 보물을 사들이지 않고 있다면, 어서 빨리 보물을 사야할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그물의 비유를 통해 그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하십니다. 또한 이미 얻은 보물인 “하늘나라”를 선포하고 증거 하라 하십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하늘나라는 ~온갖 종류의 고기를 모아들인 그물과 같다.”(마태 13,47)
주님!
하늘나라의 그물에 저를 몰아넣으소서.
당신 말씀의 그물로 덮어씌워 당신 뜻 안에 가두소서.
세상의 바다에 저를 던지시어, 당신의 그물이 되게 하소서.
온갖 고기를 모아들일 뿐, 제 입맛에 맞게 고르지 않게 하소서.
제가 그물일 뿐, 주인이 아니듯 고기의 주인도 아님을 잊지 않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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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30. 연중 제17주일. 반영억 라파엘 신부님.
나의 보물 제1호
세상에서 가장 값진 보물이 무엇일까? 나름대로 여러 가지를 얘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보물에 대해 기대하는 만큼 중하게 지키고 보호하고 간수 하려 애쓰고 있는지는 생각해 볼 일입니다. 여러분의 보물 제1호는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마태6,21). 그리고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내 마음이 향하는 곳을 보면 무엇을 보물로 생각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값진 보물을 발견한 사람이 그것을 손에 넣기 위해서 그보다 못한 것을 처분함은 당연합니다. 일부러 애쓰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다 큰 것을 얻기 위해 그보다 작은 것을 포기하는 것은 희생이라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욕심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이것도 저것도 모두를 소유하고자 합니다. 그러다가 모두를 잃어버리고 맙니다. 큰 것을 위해 보다 작은 것을, 포기할 줄 아는 것은 큰 은총입니다. 천상의 하늘을 희망하면서도 세상을 꼭 붙들고 있을 수는 없는 법입니다.
보물을 발견한 기쁨이 크면 자기가 가진 모든 소유물은 그 보물 앞에서 빛을 잃어버립니다. 억제할 수 없는 기쁨 때문에 아무리 값진 것이라도 하잘 것이 없는 것이 되어버립니다. 그야말로 보물 1호는 양보할 수 없는 첫 자리입니다.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보물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바오로사도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나에게 이롭던 것들을,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두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나의 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의 지고한 가치 때문에, 다른 모든 것을 해로운 것으로 여깁니다.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지만 그것들을 쓰레기로 여깁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그분 안에 있으려는 것입니다”(필리피3,8). 그리고 “사실 나에게는 삶이 곧 그리스도이며 죽는 것이 이득입니다”(나에게는 그리스도가 생의 전부입니다. 그리고 죽는 것도 나에게는 이득이 됩니다)(필리피1,21). 바오로에게 있어서 주님을 얻게 되는 것은 모두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바오로의 진정한 보물이기 때문입니다.
마르코 10장 17절 이하를 보면 ‘부자 청년의 비유’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수께서는 “제가 영원한 생명을 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묻는 어떤 사람에게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재물을 많이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 말씀을 듣고 울상이 되어 슬퍼하며 떠나갔습니다. 결국 그는 영원한 생명을 갈망하면서도 자기의 소유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진정한 보물을 얻지 못했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데 있어 양다리 걸치기, 어중간은 없습니다.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는 없는 것입니다.
애쓰지 않는 사람이 보물을 발견하거나 얻을 수는 없는 법입니다. 보물을 얻으려는 사람은 어떠한 대가라도 치를 수 있는 희생적인 투신이 꼭 필요합니다. 그야말로 ‘봄에 씨를 뿌려야 가을에 거둘 것이 있는 법’입니다. 시편에는 “눈물로 씨 뿌리던 이들 환호하며 거두리라. 뿌릴 씨 들고 울며 가던 이 곡식단 들고 환호하며 돌아오리라”(시편126,5). 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느님 나라’ 라는 보물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보물을 발견한 장소가 “밭”입니다. 농경사회에서 밭은 일상의 문화권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찾는 보물은 결코 멀리 있지 않습니다. 그 나라는 ‘우리 가운데’(루카17,21) 있습니다. “보라, 이제 하느님의 거처는 사람들 가운데 있다. 하느님께서 사람들과 함께 거처하시고 그들은 하느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하느님 친히 그들의 하느님으로서 그들과 함께 계시고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 다시는 죽음이 없고 다시는 슬픔도 울부짖음도 괴로움도 없을 것이다”(묵시21,3). 그러므로 진정한 보물을 아는 사람은 그만한 기쁨으로 자기의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습니다. 보물은 이미 지금 여기서부터 주어졌습니다.
보물이 있는 곳에 우리의 마음이 머물기 마련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주님께 둘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보물입니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 1호입니다. 그리고 주님을 보물로 얻은 사람들은 기뻐해야 합니다. 주님과의 만남을 통하여 구원을 얻는 기쁨은 그 어느 것하고 비교할 수 없는 최상의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값진 것을 발견했으면 지금까지 귀중하게 여겼던 모든 것을 버리고 하늘나라를 위해 투신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이 또한 주님을 비추는 이웃의 보물이 되어주어야 합니다. 내가 가진 진정한 보물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것 못지않게 내가 다른 사람의 보물이 되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주님, 주님 하고 부른다고 다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가기 때문입니다’(마태7,21). 값진 진주는 우리의 주님,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세상에 진주, 보물은 많지만 모든 재산의 가치보다 귀한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고 그분을 향한 우리의 믿음, 신앙은 또한 더없이 값진 보물입니다.
“도박을 좋아하는 사람은 손을 잘라도 도박을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손이 도박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하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손이 크다.’ ‘손버릇이 나쁘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마음이 그렇다는 얘깁니다. 아무리 고운 손이라도 나쁜 짓을 하는 손은 고운 손이 아닙니다. 아무리 거친 손이라도 선한 일을 하면 고운 손이 됩니다. 손의 주인은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죄를 지은 사람이 감옥을 갈 때 손으로 얼굴을 가리지만 죄를 지은 마음은 손으로 가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마음 단속을 잘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천상, 하느님 나라에 두고 살아야 합니다. 하느님께 마음을 두고 기뻐해야 합니다. 그 외아들을 구원자로 보내주셨음을 감사해야 합니다.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는 말합니다. “무엇으로도 마음을 흩뜨리지 말며 무엇 때문에 놀라지도 마라. 모든 것은 지나가나 하느님은 변하지 않는다. 하느님을 차지한 자에게는 부족한 것이 없으니 하느님만으로 충분하다.” 하느님을 얻으면 모든 것을 얻은 것이요, 모든 것을 얻어도 하느님을 차지하지 못하면 아무것도 얻지 못한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언제나 우리의 보물 1호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예수님께서 값진 보물로 첫 자리에 계시길 기도드리며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이웃을 그분의 이름으로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하느님나라의 보물은 결코 멀리 있지 않습니다. 내 삶의 자리에 있고, 이웃 안에 있습니다. 보물을 잘 찾는 한 주간 되시길 바라며 꼭 천상의 행복을 차지하기를 기원합니다. 또한 여러분 자신이 이웃의 소중한 보물이라는 것도 잊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보물을 보물로 볼 수 있는 은총을 간구합니다. 우리가 가야 할 곳, 천상목적지는 정해져 있습니다. 우리는 천상으로 가는 길 위에 서 있습니다. 방황하거나 안주하지 않고 예수님과 함께 순례의 길을 걷기를 소망합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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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30. 연중 제17주일.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후배 신부님과 크루즈 여행을 가면서 같은 이야기를 두 번 들었습니다. 한번은 방 청소를 하는 직원에게서 들었습니다. 직원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아들하고 같이 왔습니까?” 저는 친절하게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제가 머리가 하얗게 변해서 그렇지 아들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두 번째는 같은 한국 사람에게서 들었습니다. 우연히 옆자리에 앉아서 식사를 하는데 이렇게 이야기하였습니다. “어르신! 아들하고 같이 여행 다니시니 부럽습니다. 나도 아들이 20살인데 같이 가자고 하니 안 간다고 합니다.” 저는 이번에도 친절하게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제가 머리가 하얗게 변해서 그렇지 아들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후배가 다음 달이면 한국으로 가는데 좋은 추억을 만들기 위해서 같이 여행 왔다고 하였습니다.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분별력이 없어서야!’ 하긴 후배는 옷을 아주 젊게 입었습니다. 저는 복장도 그렇고, 특히 머리카락 색깔이 그런 오해를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저를 아버지로 봐 준 분들은 어쩌면 저의 내면에 있는 중후함을 본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전에 금도끼와 은도끼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마음 착한 나무꾼이 나무를 하다가 그만 연못에 도끼를 빠트렸습니다. 산신령이 은도끼를 보여 주면서 ‘이것이 너의 도끼인가?’라고 물었습니다. 나무꾼은 ‘아닙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금도끼를 보여 주면서 ‘이것이 너의 도끼인가?’라고 물었습니다. 나무꾼은 ‘아닙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산신령은 쇠도끼를 보여주면서 ‘이것이 너의 도끼인가?’라고 물었습니다. 나무꾼은 ‘예, 그것이 저의 도끼입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산신령은 착한 나무꾼에게 금도끼도, 은도끼도 주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금도끼와 은도끼의 또 다른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착한 나무꾼이 나무를 하다가 역시 도끼가 연못에 빠졌습니다. 산신령은 착한 나무꾼을 알아보고 이제는 나무꾼의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하였습니다. 나무꾼은 생각하였습니다. 세상을 지혜롭게 살려면 ‘머리’가 좋아야 했습니다. 세상을 풍요롭게 살려면 ‘돈’이 있어야 했습니다. 세상을 행복하게 살려면 ‘여자’가 있어야 했습니다. 고민 끝에 나무꾼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머리 돈 여자’ 산신령은 착한 나무꾼에게 ‘머리 돈 여자’를 주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오늘 성서 말씀의 주제는 ‘식별’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솔로몬에게 축복을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솔로몬은 이렇게 청하였습니다. “당신 종에게 듣는 마음을 주시어 당신 백성을 통치하고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어느 누가 이렇게 큰 당신 백성을 통치할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께서는 솔로몬이 지혜를 청하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말대로 해 주겠다. 이제 너에게 지혜롭고 분별하는 마음을 준다. 너 같은 사람은 네 앞에도 없었고, 너 같은 사람은 네 뒤에도 다시 나오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솔로몬을 지혜의 상징으로 생각합니다. 솔로몬은 가짜엄마와 진짜엄마를 가려낼 수 있었습니다. 솔로몬은 산적한 많은 문제를 지혜롭게 해결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똑똑하다는 사람, 지혜롭다는 사람들에게는 하느님나라의 신비를 감추시고 이렇게 작은이들에게 하느님나라의 신비를 보여주셨습니다.” 정말 우리에게 필요한 식별의 은사는 ‘겸손’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첫째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꼴찌가 되어야 한다. 나는 섬김을 받을 자격이 있지만 섬기려고 왔다.” 그리고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밭에 묻혀 있는 보물“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보물‘과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보물‘은 분명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는 진실이라는 보물을 팔아서 성공, 명예, 권력이라는 쓰레기를 사려고 합니다. 우리는 겸손과 희생이라는 보물을 팔아서 교만과 욕망이라는 쓰레기를 사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를 지나가는 것이 더 쉽다고 하셨습니다. 창고에 쓰레기를 가득채운 부자는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어렵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을 팔아서 사야할 보물은 진실과 정의입니다. 우리가 가진 것을 팔아서 사야할 보물은 우정과 사랑입니다. 우리가 가진 것을 팔아서 사야할 보물은 십자가입니다. 내 기억의 창고에, 내 삶의 창고에 겸손, 진실, 정의, 우정, 사랑, 십자가가 있다면 우리는 모두 하느님나라에 초대 될 수 있습니다. 여름입니다. 농부가 땀 흘려 밭을 가꾸듯이, 우리들도 가진 것을 팔아 보물을 찾으러 가면 좋겠습니다.
“하늘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이나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과 같습니다. 보물과 진주를 발견한 사람처럼 기뻐하며 가진 것을 다 팔아 그것을 살 수 있는, 지혜롭고 분별력 있는 마음을 주님께 청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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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30. 연중 제17주일.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보물찾기 인생 여정
-참보물이자 참지혜이신 그리스도 예수님-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노라."(시편23,1)
착한 목자 주님은 우리의 참 보물임을 고백하는 시편 성구입니다. 부자들의 천국이 여기 수도원입니다. 수도원이야말로 살아 있는 보물 창고입니다. 수도형제들 하나하나가 저에게는 살아 있는 참보물입니다. 마음의 눈만, 지혜의 눈만 열리면 곳곳에서 발견되는 살아 있는 주님의 선물들이자 보물들입니다. 보물을 찾을 때 누구나 부자로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말그대로 살 줄 몰라 불행이요 살 줄 알면 행복임을 깨닫습니다. 눈이 닫혀 있어 무지의 어리석음에 보물을 곁에 놔두고 불행하게 사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누구나 찾을 수 있는 보물입니다. 보물 찾아 어리석게 밖으로 찾아나갈 것은 없습니다. 바로 지혜의 눈만 열리면 내 삶의 꽃자리 바로 여기 공동체가, 우리 각자의 마음밭이 보물이 숨겨져 있는 보물밭입니다. 누가 저에게 무슨 맛으로, 무슨 기쁨으로 살아가느냐 묻는 다면 저는 단연코 하루하루 날마다 보물찾는 기쁨으로 살아간다 말하겠습니다.
날마다 한밤중 일어나 보물찾는 설레는 기쁨으로 쓰는 강론입니다. 저에게는 하루하루가 새 하늘, 새 땅, 새 날의 선물이자 참보물입니다. ‘보물찾기’하면 생각나는 것이 초등학교 시절 봄, 가을 소풍때 소풍이 끝날 무렵 실시되었던 보물찾기 시간입니다. 예전 시골은 정말 살아있었습니다. 시골에서 50년대 초등학교 시절중 가장 설렜던 시간은 청백팀 경기로 이뤄진 가을 운동회와 봄, 가을 두 차례의 소풍이었습니다. 전날부터 밤잠을 설칠만큼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린 소풍이요 운동회날이었습니다.
소풍의 절정은 소풍이 끝날 무렵 보물찾기 놀이였습니다. 보물을 찾을때의 설레는 마음, 보물을 찾았을 때의 기쁨을, 또 때로 보물을 찾지 못했을 때 보물을 찾은 동무들의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쓸쓸해 하던 기억도 선명합니다. 보물이래야 숨겨진 종이 쪽지에 쓰여진 보잘 것 없는 상품들인데 그때는 정말 보물들처럼 여겨졌습니다.
보물찾기 놀이! 참 기막히게도 보물찾기 인생을 상징합니다. 보물찾기 인생인데 평생 보물을 찾지 못한, 가짜 보물만 찾다 끝난 인생이라면 그 인생 참 쓸쓸하고 한없이 허무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어제 저는 우리 수도형제들이 참보물임을 새롭게 깨달았습니다. 아니 눈만 열리면 이웃 형제 하나하나가 대체 불가능한 주님의 유일무이한 선물이자 보물이요 신의 한 수 임을 깨닫습니다. 어제 수도공동체에서의 감격스러웠던 체험을 잊지 못합니다. 수도형제들이 마르꼬 수사의 ‘무용담武勇談(?)’을 듣느라 온통 귀를 기울였습니다. 무려 8시간 동안 물이 나오지 않으니 공동체에 비상이었습니다.
제가 피정지도 하느라 온종일 형이상학形而上學의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던 시간에 마르꼬 수사와 인부 3명은 포크레인, 조정시스카이 붕대차를 동원하여 8시간 동안 형이하학形而下學 땅속의 일에 몰두했던 것입니다. 알고보니 20년전 심은, 이제 거목이 된 대왕참나무의 잔뿌리가 수도관 이음매의 빈틈으로 스며들어 커다란 뿌리로 자라나 수도관을 막았던 것입니다. 그 큰나무를 베어내고 뿌리를 살펴보다 발견했다 합니다. 수도관을 막고 자라난 뿌리는 길고 굵기가 큰 구렁이를 보는 듯 징그럽기까지 했습니다.
형이상학과 형이하학이 상호보완되는 공동생활의 귀한 진리를 깨달은 복된 지혜의 체험이었습니다. 수도원 경내에 관상수(觀賞樹)와 더불어 유실수(有實樹)도 있어야 하듯 공동체 역시 형이상학의 관상가와 더불어 필히 형이하학의 활동가도 있어야 합니다. 새삼 마르꼬 수사를 비롯해 함께 일에 참여했던 경륜과 지혜를 겸비했던 일꾼들이 정말 참보물처럼 느껴졌습니다. 마르코 수사에게 전한 감사와 위로, 격려의 메시지입니다.
“사람으로 하면 8시간 동안의 대외과 수술후 암을 제거한 쾌거快擧나 마찬가지로 정말 큰 수술 성공적으로 마치노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마르코 수사님!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수도원이 아무리 전통이 좋고, 환경이 좋아도 주님의 참보물이자 참선물인 수도자들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고 문닫아야 합니다. 아무리 거금을 주고도 스카웃 할 수 없는 주님의 참선물이자 참보물인 수도자들입니다. 그러니 참보물 수도자들이 모인 수도원은 부자들의 천국입니다. 참보물이자 참지혜이신 그리스도 예수님과 하나되어 살기에 참보물, 참지혜가 되어 살아가는 수도자들입니다.
참으로 하느님의 지혜이신 주님을 닮아갈수록 참지혜의 보물이 되어 살아갈 수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과 일치되어 사셨던 바오로 사도야말로 우리 교회의 참보물이자 참지혜입니다.
“그렇지만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힘이시며 하느님의 지혜이십니다. 하느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더 지혜롭고 하느님의 약함이 사람보다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
정말 참행복의 참부자는, 참자유인은 그리스도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는 이들입니다. 참 보물이자 참 지혜이신 주님과 함께 하기에 저절로 세상 것들로부터의 이탈이요 초연한 자유입니다. 이런 참보물인 주님을 발견했기에 세상 탐욕들로부터의 해방입니다. 바오로의 다음 고백에서 우리는 지혜의 절정을 발견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압니다. 하느님께서는 미리 뽑으신 이들을 당신의 아드님과 같은 모상이 되도록 하셨습니다.”
모두 주님을 닮은 참 보물로, 참 지혜로 불림 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저절로 샘솟는 찬미와 감사의 고백입니다. 바로 이런 깨달음에서 터져나온 고백입니다.
“주님, 당신의 저의 모두이옵니다.
저의 목자, 저의 사랑, 저의 생명, 저의 보물, 저의 희망, 저의 기쁨, 저의 행복이옵니다.
당신을 놔두고 어디로 무엇을 찾아가겠나이까
하루하루 살아 있음이 감사요 감동이요 감탄이옵니다.
날마다 당신과 함께 새롭게 시작하는 아름다운 하루이옵니다.”
지금까지 내용들을 참고하면 오늘 말씀의 이해도 확연해 집니다. 제1독서 열왕기 상권에 나오는 솔로몬의 일화도, 복음의 하늘 나라 세 비유의 이해도 확연해 집니다. 겸손히 하느님의 지혜를 청한 하느님의 종 솔로몬은 참 지혜로웠습니다. 솔로몬의 청에 한없이 흡족해 하시는 주님은 지혜를 선물하십니다.
보물이라고 다 보물이 아닙니다. 세상에 무지의 탐욕에 눈먼 이들은 얼마나 많이 가짜 보물을 참 보물로 착각하여 내적 공허의 껍데기 삶을 살아가고 있는 지요! 솔로몬의 선택이 얼마나 기막힌 선택이었는지 주님은 지체없이 응답하십니다.
“네가 그것을 청하였으니, 곧 자신을 위해 장수를 청하지도 않고, 자신을 위해 부를 청하지도 않고, 네 원수들의 목숨을 청하지도 않고, 그 대신 이처럼 옳은 것을 가려내는 분별력을 청하였으니, 자, 이제 네 말대로 해 주겠다. 이제 너에게 지혜롭고 분별하는 마음을 준다.”
참 보물인 참 지혜는 그대로 하느님의 참 좋은 선물임을 깨닫습니다. 무엇보다 최고의 참 보물, 참 지혜의 선물은 그리스도 예수님입니다. 오늘 복음의 하늘 나라의 두 비유, 보물비유와 진주장사꾼 비유중 보물이, 진주가 상징하는 바 그리스도 예수님입니다. 그대로 참 보물이자 참 진주인 주님을 만나 모든 것을 버리고 수도원에 온 우리들을 상징하는 비유처럼 들립니다.
“하늘 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 그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그것을 숨겨 두고서는 기뻐하며 돌아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하늘 나라는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과 같다. 그는 값진 진주를 발견하자, 가서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하여 그것을 샀다.”
참으로 믿는 이들에게 참 보물은, 참 진주는 그리스도 예수님입니다. 이 보물을 발견한 기쁨에 모두를 버리고 주님을 따라 나선 사도들이요 제자들이요 끊임없이 이어지는 성인성녀들이요 우리들입니다. 참 보물이신 주님을 발견하여 모셨을 때 비로소 무지와 허무로부터의 해방이요 텅빈충만의 기쁨에 행복입니다. 결국 인간의 근원적 배고픔과 목마름은 참 보물을 찾는 갈망임을 깨닫습니다.
이어지는 그물의 비유도 참으로 심오합니다. 아무도 하느님의 그물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그물을 걷어 올리는 날이 바로 죽음입니다. 그러니 하느님 그물망안에 있는 인생임을 깨닫는 다면 죽음을 날마다 눈앞에 환히 두고 하루하루 처음처럼 마지막처럼 지혜롭고 착하게 살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 모두를 향해 물으십니다.
“너희는 이것들을 깨달았느냐?”
참보물, 참지혜가 그리스도 예수님, 바로 당신임을 깨달았느냐는 말씀처럼 들립니다. 그러므로 하늘 나라의 제자가 된 이들은 참으로 분별력의 지혜를 지닌 매사 자유자재, 능수능란한 자들임을 확언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늘 나라의 제자가 된 모든 율법학자는 자기 곳간에서 새것도 꺼내고 옛것도 꺼내는 집주인과 같다.”
보물찾기 인생, 한 두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 날마다 새롭게 찾아 발견해야할 참보물 주님이십니다. 그러니 우리 인생은 참보물찾기의 여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참보물인 주님을 모시는 이 거룩한 미사시간, 주님은 우리 모두 참보물 주님을 모시고 하늘 나라의 제자가 되어 자유자재한 자유인이 되어 참 지혜롭고 참 행복한 삶을 살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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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30. 연중 제17주일. 민동규 다니엘 신부님.
찬미 예수님
요즘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돈? 명예? 그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것이 건강입니다. 건강해야지만 돈도 벌고 명예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보물은 바로 건강이고 장수입니다. 이것이 오늘을 사는 세상 사람들이 찾아다니는 보물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이야기는 인간적인 눈에서 볼 때에 나타나는 이해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보물은 영적입니다.
건강 중요합니다. 제일 중요합니다. 그런데 육체의 건강뿐만 아니라 영혼의 건강, 즉 영적인 건강도 중요합니다. 어쩌면 제일 중요할 것입니다.
우리는 건강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노력합니다. 아주 좋은 모습입니다. 그런데 나의 영혼의 건강을 위해 나는 무엇을 하는지요? 무슨 운동을 하고 무슨 좋은 것을 드시는지요?
영적인 건강은 이렇게 찾을 수 있습니다.
양심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이것은 꼭 어떻게 하면 몸을 건강하게 할 수 있는가? 라는 물음에 의사의 대답을 듣는 것과 같습니다. 양심은 우리의 영혼 건강에 좋은 것을 우리에게 항상 들려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눔은 영적인 건강을 유지해 줍니다. 자신의 것을 나누는 행위는 그 행위 자체로 우리의 영혼을 살찌우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영성체와 성경입니다. 우리 영혼의 양분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오고 또 그분 안에서 치유될 수 있기에 예수님이신 성체와 성경은 우리 영혼에 없어서는 안 될 음식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보물을 찾으십니까? 최고의 보물은 하늘나라이고 그 보물을 얻는 방법은 건강해야 합니다. 그 밭은 바로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밭을 사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라는 밭에 우리가 있을 때 그 안의 보물을 발견하고 기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평생 한 번만 만날 수 있는 친구
이 친구는 평생 한 번만 만날 수 있습니다.
이 친구는 자기보다 저를 위해
모든 것을 내어줍니다.
이 친구는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합니다.
그리고
이 친구는 내일이 되면 인사도 없이
떠나버립니다.
이 친구의 이름은
오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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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30. 연중 제17주일.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중화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로 알려진 비수민 작가가 한 대학교에서 강연했습니다. 감동적인 강연을 마치고 질의응답 시간에 한 학생이 손을 번쩍 들어 물었습니다.
“선생님, 삶의 의미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그러자 비수민 작가는 별 표정 없이 담담하게 대답했습니다.
“산다는 건 원래 아무 의미 없어요.”
작가의 대답에 학생들은 웅성대기 시작했습니다. 강의 내용 자체가 삶의 의미에 대한 것이었기 때문이었지요. 작가는 곧바로 말했습니다.
“하지만 내 인생에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 그 삶의 의미는 완전히 달라지죠.”
공감이 가는 대답입니다. 삶의 의미는 내 인생에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의미 자체를 찾지 못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죽음의 수용소라 불린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도 의미를 부여했던 사람만 살았다는 사실처럼, 우리 역시 계속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만이 이 세상을 살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이 세상에 아무 의미 없이 보내셨을까요? 아니었습니다. 너무나 큰 의미가 바로 나에게 있습니다.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하느님 나라를 완성하는 데 힘을 쏟는 것, 그리고 주님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이 주어지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보여주신 모범을 따라 사랑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 사랑의 삶이 어떻게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주님의 뜻이 담겨 있지 않기에 의미 없어 보일 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통해 하늘 나라에 대해 가르치십니다. 비유를 쓰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살아 있는 사람 중에는 그 누구도 가보지 못했던 나라이기에, 우리가 모든 노력을 기울여서 가야 할 나라임을 가르쳐주시기 위해 잘 알아들을 수 있는 비유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밭에 숨겨진 보물을 발견한 사람과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의 비유에서, 남들이 알지 못하는 보물과 진주를 발견한 이들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팔아 그것을 삽니다. 바로 하늘 나라가 밭에 숨겨진 보물이고, 상인이 찾는 좋은 진주라는 것이지요. 그 의미를 발견한 사람만이 하늘 나라를 차지하기 위한 모든 힘과 정성을 다할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물의 비유 말씀도 해주십니다. 바다에 던져진 그물에는 온갖 종류의 고기가 걸리는데, 그물을 끌어 올린 뒤에는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나눌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바로 그때가 세상 종말 때라는 것입니다.
의미를 찾아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특히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의미를 찾아야 지금을 더 주님의 뜻에 맞게 충실히 살 수 있게 됩니다. 세상 종말에 주님으로부터 선택받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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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자신이 받은 것으로 인해 존경받지 않는다. 존경은 자신이 베푼 것에 대한 보답이다(캘빈 쿨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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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30. 연중 제17주일. 키엣 대주교님.
고귀한 가치를 선택하는 지혜
‘지혜롭고 명철한 왕’ 솔로몬의 가장 큰 지혜는 주님께 돈과 명예, 불로장생을 청한 것이 아니라 언제나 지혜를 청했다는 것입니다.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면 솔로몬과 같이 주님께 지혜를 청해보십시오.
하늘나라를 선택하는 지혜, 하늘 나라를 찾기 위해 언제나 깨어있어야 함을 아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언제나 깨어, 찾아나서는 사람만이 보물를 얻을 수 있습니다. 무엇을 찾는다는 것은 힘들고 고단한 일이지만 찾아나서는 노력과 믿음만이 하늘나라로 가는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
우리의 삶은 모든 물고기가 한 그물 안에 뒤섞여 있는 그물과 같습니다. 고귀한 금이 잡철에 섞여 찾을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뒤섞여있는 것에서 가치있는 것, 가장 고귀하고 아름다운 것을 가려내는 것과 같습니다.
커다란 암석 깊이 숨겨있는 옥석을 가려내고 깊은 땅속에 숨겨진 보물을 가려내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비록 하늘나라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해도 그 고귀한 가치를 알아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더 고귀한 것을 위해 과감하게 버릴 줄 아는 지혜
고귀한 가치를 가려내기 위해서는 좋은 것을 고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쁜 것을 버릴 줄도 알아야 합니다.
하늘나라의 가치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고귀한 진주와 보물창고를 얻기 위해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과감하게 버렸습니다. 새로운 땅에 머물기 위해 오래도록 살아온 집을 팔고 다시는 돌아가지 않는 과감한 결단을 내렸습니다. 가장 고귀한 하나의 진주를 가지기 위해 모든 것을 던져 버린 것입니다.
이렇게 과감하게 던져 버리는 것이 바로 주님에 대한 믿음과 사랑, 하늘나라에 대한 열정, 갈망의 태도입니다. 이러한 태도야말로 하늘나라를 찾아 떠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모습입니다.
스스로 버릴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나의 것을 버림으로써 고귀하고 가치있는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아직은 보이지 않는 미래이지만 그 미래의 영원한 행복을 위해 현재 내가 소유한 것을 과감하게 버리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스스로 버리지 않고는 하늘나라를 가질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작고 가치없는 것들을 버림으로써 삶의 여유와 기쁨을 얻을 수 있습니다. 진실로 고귀하고 가치있는 것을 찾기 위해 나를 얽어매고 있는 과거를 버리십시오.
가치있는 것을 찾기 위해 안주하지 말고 언제나 깨어있어야하며, 가치를 분별하고 버릴 줄 알아야 합니다.
주님, 저희가 행복의 원천이신 주님을 믿고 사랑하고 주님을 선택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아멘.
함께 묵상해 봅시다.
1. 하늘나라는 진정 가치 있는 곳입니까? 그 가치에 대해 생각해보십시오.
2. 하늘나라를 위해 내가 가진 것을 팔아버린 적이 있습니까? 아직 팔지 못했다면 어떠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까?
3. 지혜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진실로 하늘나라를 얻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는지 돌아보십시오.
말씀의 나눔
1. 솔로몬처럼 지혜를 청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건 주님의 응답을 실천하는 태도입니다. 지금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면 주님께 간절히 청해보십시오. 그리고 주님께서 가르쳐주시는 그 방향 그대로를 실천해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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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30. 연중 제17주일.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사람이 하늘나라가 되다>
기꺼이 길을 걷고픈 사람이
오직 길을 걸음으로써
길이 되다
기꺼이 믿고픈 사람이
오직 믿음으로써
믿음이 되다
기꺼이 희망하고픈 사람이
오직 희망함으로써
희망이 되다
기꺼이 사랑하고픈 사람이
오직 사랑함으로써
사랑이 되다
기꺼이 참되고픈 사람이
오직 참됨으로써
참이 되다
기꺼이 착하고픈 사람이
오직 착함으로써
착함이 되다
기꺼이 아름답고픈 사람이
오직 아름다움으로써
아름다움이 되다
기꺼이 함께하고픈 사람이
오직 함께함으로써
함께가 되다
기꺼이 나누고픈 사람이
오직 나눔으로써
나눔이 되다
기꺼이 섬기고픈 사람이
오직 섬김으로써
섬김이 되다
기꺼이 살리고픈 사람이
오직 살림으로써
살림이 되다
기꺼이 하늘나라를 찾고픈 사람이
오직 하늘나라를 찾아 나섬으로써
하늘나라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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