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향전을 통해 본 조선 사대부들의 추악한 야만성(Les Misérables)
수필가 정임표
《춘향전》을 논할 때 세상 사람들은 흔히 암행어사 이몽룡이 탐관오리 변학도를 처단하기 직전 읊었던 한시, "금준미주는 천인혈이요(金樽美酒 千人血)"라는 구절을 최고의 명문으로 꼽는다. 백성의 피와 땀을 쥐어짜는 위정자를 호통치는 젊은 선비의 기개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선 후기 신분제와 당대 지배층의 윤리적 허구를 가장 신랄하게 찌르는 진정한 최고의 대목은 따로 있다. 바로 어사 출도 후, 이몽룡이 정체를 숨긴 채 옥에 갇힌 춘향을 불러내어 짐짓 또다시 수청을 요구할 때 터져 나온 춘향의 한마디 "내려오는 관장마다 개개이 명관이로구나!” 라고 하는 대목이다.
여기서 '개개이'란 하나하나마다 빠짐없이 몽땅 이라는 뜻을 지닌 말이다. 춘향이 내뱉은 이 한 줄의 야유는 남존여비와 신분제라는 당대의 보편적 질서 뒤에 숨어, 한 인간의 존엄을 짓밟으면서도 그것을 사대부의 당연한 권리로 착각하던 조선 지배층 전체의 추악한 민낯을 단번에 폭로하는 통렬한 고발이자 일침이다. 그래서 필자는 이걸 최고의 명문으로 여긴다.
조선 시대 법제도인 《경국대전》상, 어머니가 천민이나 관기(官妓)이면 그 자식 역시 어머니의 신분을 따라 천민이 되는 '종모법(從母法)'이 적용되었다. 이에 따라 관기의 딸은 태어나자마자 관청의 재산으로 간주되어 기적(妓籍)에 올라가야 했다. 퇴기 월매는 딸 춘향만은 기생의 삶을 살게 하지 않으려고 이방과 호방에게 로비를 하고 아버지가 양반(성참판)이라는 점을 활용해 기적에 올리지 않고 정성껏 길렀다. 그러나 신관 사또 변학도는 "기생 딸은 무조건 관기"라는 법과 관습을 악용해 춘향을 관청의 사유물처럼 빼앗으려 했다.
이때 더 충격적인 것은, 짐짓 춘향의 속 마음을 떠보려는 극중 효과이겠지만, 변학도를 벌하러 온 암행어사 이몽룡조차 옥에서 끌어낸 죄수 춘향에게 다짜고짜 수청부터 들라고 명했다는 점이다. 춘향의 눈에 비친 변학도나, 암행어사나, 지방관으로 부임하는 사대부들은 그저 '기생의 딸을 공짜로 집어먹는 공물쯤으로 아는 위선자들'에 불과했던 것이다.
조선 사회를 지배한 성리학은 여성에게 '삼강오륜'과 '일편단심'의 절개를 절대적 윤리로 강요했다. 양반가 여성에게는 남편이 죽어도 재가를 금지하고 수절을 요구했으며, 재가한 여성의 자식은 출세길조차 막아버릴 만큼 가혹했다. 하지만 정작 자신들은 지방관으로 부임할 때마다 전임 관장이 몸을 섞고 떠난 관기를 아무런 거리낌 없이 다음 관장이 또 수청들게 했다. 한 여인이 전임 사또, 후임 사또, 심지어 상급자와 하급자를 돌며 성적 수발을 들게 만드는 구조는, 사대부들 스스로가 목숨처럼 외치던 '한 여자는 한 남자만 섬겨야 한다'는 성리학적 도덕 기준을 완전히 부정하는 기괴하고도 야만적인 이중잣대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사대부들은 어떻게 자신들이 만든 철격 같은 도덕률과 이 야만적인 현실 사이의 모순을 합리화했을까? 답은 하나였다. 관기를 '인간(여성)'으로 보지 않고, 관청에 속한 '물건이나 소모품'으로 취급한 것이다. 관아에 있는 의자나 술잔, 침구류를 전임 사또가 쓰다 두고 가면 후임 사또가 이어 쓰듯, 관기 역시 고을 관아의 '부속품' 정도로 여겼기에 그들에게는 신분적 결벽증도, 성리학적 도덕도 작동하지 않았다. 이처럼 관기의 수청이란 지배층이 권력으로 아무런 대가 없이 당연하게 누리던 '무상의 성적 지배'였다.
실제로 조선 시대 야사와 기록(실록, 문집 등)을 보면, 지방관으로 내려간 양반들이 기생을 두고 서로 다투거나, 전임 관장과의 관계로 인해 민망한 유행가나 풍문이 돌았던 기록이 수없이 남아 있다. "기문(妓門)에는 족보가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아비와 자식이 같은 기생을 찾거나, 친구 사이에 기생을 주고받는 일이 벌어져도 관기라는 이유로 용인되던 야만성이 존재했다. 선비들 중에서도 양심적인 이들은 이 제도의 무서운 가식을 깨닫고 "어찌 한 여인에게 여러 남자를 섬기게 하면서 도학(道學)을 논하는가"라며 자탄하기도 했다.
춘향의 외침 "내려오는 관장마다 개개이 명관이로구나!"는 바로 이 위선적인 신분 질서의 틈새를 정확히 죄어들어간 문학적 폭탄이다. 춘향은 지조를 지킨 유교적 열녀의 틀에만 갇혀 있는 존재가 아니다. 당대 보편적 가치관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던 지배층의 성적 사유화와 인간 비하, 그리고 거룩한 명분론 뒤에 숨은 추악한 이중성을 민중의 목소리로 통렬하게 비웃은 위대한 고발자였다.
《춘향전》의 이 명대목은 백 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에게 묻고 있다. 과연 그 시대가 말하던 '명관'과 '양반의 윤리'란 얼마나 가증스럽고 야만적인 허구였는가를. 그런 사회적 풍조가 일제 강점기 나라의 국권이 수탈당한 지경에 이르러서도 고쳐지지 않고 탄실을 희롱한 사실 속에서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자기 민족을 노예로 삼고 성적 공유물로 삼아온 지난 오욕의 역사를 극복하고 오늘날의 여권신장을 이뤄낸 게 그냥 얻어진 게 아니다.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조선 사대부 사회가 남긴 배운자들의 야만성을 극복해 내야 한다. 관이 어찌 민보다 존(尊)한가? 공익이라는 이름을 달면 전부 정의인가?
Les Misérables (레 미제라블)
‘더러운 것들’ 아니 ‘더러운 생각과 사상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