므비보셋으로 본 은혜 (삼하 9:7-10)
7. 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내가 반드시 네 아버지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네게 은총을 베풀리라 내가 네 할아버지 사울의 모든 밭을 다 네게 도로 주겠고 또 너는 항상 내 상에서 떡을 먹을지니라 하니 8. 그가 절하여 이르되 이 종이 무엇이기에 왕께서 죽은 개 같은 나를 돌아보시나이까 하니라 9. 왕이 사울의 시종 시바를 불러 그에게 이르되 사울과 그의 온 집에 속한 것은 내가 다 네 주인의 아들에게 주었노니 10. 너와 네 아들들과 네 종들은 그를 위하여 땅을 갈고 거두어 네 주인의 아들에게 양식을 대주어 먹게 하라 그러나 네 주인의 아들 므비보셋은 항상 내 상에서 떡을 먹으리라 하니라 시바는 아들이 열다섯 명이요 종이 스무 명이라
이 시간에 “므비보셋으로 본 은혜”라는 제목입니다. 여러분 은혜 풍성하게 누리고 계십니까? 주님은 우리가 생명을 얻되 더 풍성히 얻게 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이 은혜를 우리가 풍성히 누려야겠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은혜를 누리는 비밀을 므비보셋을 통하여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므비보셋이 누굽니까? 므비보셋은 사울의 손자요 요나단의 아들로 몰락한 사울 왕가의 마지막 남은 사람입니다. 므비보셋은 두 다리를 쓰지 못하는 장애자로 요단강 건너편 이스라엘 변방인 로드발에 쓸쓸히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왕이 된 후 로드발에 사람을 보내어 므비보셋을 데려와 은총을 베풀었습니다.
므비보셋을 통해 보여주신 은혜의 진리가 있습니다.
1. 예수 공로로 은혜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7절 “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내가 반드시 네 아버지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네게 은총을 베풀리라 내가 네 할아버지 사울의 모든 밭을 다 네게 도로 주겠고 또 너는 항상 내 상에서 떡을 먹을지니라” 므비보셋은 목숨 바쳐 다윗을 도운 아버지 요나단 때문에 다윗의 은총을 받게 되었습니다.
사울로만 본다면 므비보셋은 다윗을 죽이려던 원수의 손자지만, 요나단으로 본다면 다윗을 사랑하여 살리려고 애쓴 친구의 아들입니다. 아는 대로 다윗과 요나단은 서로 싸워야 할 적인데도 목숨과도 바꿀 수 없는 우정으로 서로 돕기로 언약을 맺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므비보셋을 원수로 보지 않고 사랑하는 친구 요나단의 아들로 보고 그를 선대했습니다.
여기에 복음이 나타납니다. 므비보셋이 바로 우리들입니다. 므비보셋의 이름이 “부끄러움의 추방자”라는 뜻입니다. 율법에 죄를 짓거나, 전염병이 들어도 사회에서 격리됩니다. 더구나 므비보셋은 사울의 비보를 듣고 도망치던 유모의 실수로 두 다리 모두 절뚝발이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우리 인생은 범죄한 아담 안에서 쫓겨난 인생이요, 죄악된 세상에서 몸과 마음이 원하는 대로 산 진노의 자녀요. 의에 대해서도 두 다리 모두 절뚝발이 된 것처럼 행할 능력이 없는 전적부패 무능력한 자가 우리 인간입니다. 그럼에도 다윗이 언약대로 므비보셋을 선대했듯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모두가 예수의 피로 세운 언약 때문입니다.
2. 이 은혜를 진실로 깨달아야 합니다.
8절 “그가 절하여 이르되 이 종이 무엇이기에 왕께서 죽은 개 같은 나를 돌아보시나이까 하니라” 므비보셋이 자기를 돌아본 다윗에게 감사하는 내용입니다. 므비보셋은 한결같이 자신을 종이라고 부르며 엎드립니다. 나아가 죽은 개와 같은 자라고 자기를 낮춥니다. 그리고 낮출 뿐 아니라 감사하고 감격합니다. 그리고 충성을 다하기로 다짐합니다.
육신의 생각으로는 사울의 손자로서 왕이 될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왕처럼 자행자지하고 살았지만 이제 우리는 왕이 아닙니다. 이제는 하나님을 왕 삼고 더 낮아지고 더 낮아져 그를 경배하고 찬양해야 합니다. 은혜를 진실로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은혜를 누리는 비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날마다 예배하지만 아버지의 풍성한 은혜를 누리지 못한다면 그 은혜를 진실로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골1:6에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일은 그것을 믿고 늘 감격하며 예배하는 것입니다. 그 은혜를 진실로 깨닫는다면 우리는 찬양하지 않을 수 없고 겸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믿음을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죽어 마땅한 벌레보다 못한 자를 불러주신 그 은혜를 생각한다면 어떻게 감격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 감격이 은혜 생활입니다.
3. 자기를 부인해야 합니다.
12절 “므비보셋에게 어린 아들 하나가 있으니 이름은 미가더라” 므비보셋이 은혜를 받으려면 그가 사울 왕가의 왕손이기 때문에 다윗을 대적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존재해서는 안 됩니다. 사울 왕가가 멸망했지만 아직도 사울을 지지하는 세력들이 있었습니다. 사울이 40년간 통치했으니 그렇지 않겠습니까?
실제로 그동안 다윗은 사울 왕국을 지지한 11지파의 도전을 7년 반 동안 받았습니다. 그래서 사울 왕가에 똑똑한 사람이 난다는 것은 다윗에게는 위협이었습니다. 그런데 므비보셋의 아들이 미가입니다. “미가”라는 이름은“누가 같은가?” 라는 뜻으로, 하나님과 같이 되려던 마귀와 싸우는 천군장 미가엘의 이름입니다. 미가엘은 "누가 하나님과 같은가?" 라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철저히 교만과 영광과 자행자지하려는 자신과 싸워야 합니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인데 싸워야 할 가장 큰 대상은 자기입니다. 내가 나타나면 하나님께 도전하는 반역입니다. 그래서 마16:24에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하셨습니다.
4. 그런데 므비보셋에게 시험이 닥칩니다.
삼하 16장을 보면 므비보셋의 종 시바가 다윗을 속여 자기 주인을 반역합니다. 압살롬이 난을 일으켰을 때 시바는 나귀에 온갖 좋은 것을 싣고 가서 지친 다윗에게 환심을 사면서 자기 주인 므비보셋이 이제 자기에게 때가 왔다고 왕이 되려고 모반했다고 속입니다. 그때 다윗은 감쪽 같이 속아 넘어가 므비보셋에게 준 재산을 빼앗아 시바에게 돌립니다. 시바가 문제입니다.
그래서 돌아온 다윗은 노하여 므비보셋을 책망합니다. 삼하 19장을 보면 이에 므비보셋은 진실을 밝히며 도리어 왕이 수도를 떠난 날부터 발도 씻지 않고 수염도 깎지 아니하고 옷도 빨지 않고 왕을 따르지 못했음에 애통했다고 말합니다. 그 진심을 본 다윗은 시바의 모함인 걸 깨닫고 시바에게 넘겨준 재산의 절반을 다시 므비보셋에게 주었습니다.
여기서 시바는 바로 우리 육신의 생각입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의 원수가 됩니다. 이 육신이 주님을 따르지 못하게 방해합니다. 이 생각이 하나님의 기업을 누리지 못하게 합니다. 자녀가 되었다고 육체가 변하는 것 아닙니다. 이것이 늘 하나님을 모반하고, 우리 영혼을 진탕에 빠뜨립니다. 몸을 온전히 드리기를 원해도 연약한 육체라서 제대로 따르지도 못합니다.
육체가 문제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시바를 죽이거나 재산을 다 빼앗지 않는 것도 어쩌면 은혜의 예표입니다. 우리 육신대로 대접하셨으면 우리는 살아남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수염도 깎지 않고 그 슬픔을 애도한 므비보셋처럼 늘 기도하고 애통하면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시고 은혜를 누리게 하십니다. 이것이 은혜 생활의 중요한 한 부분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죄인된 우리를 위해 독생자까지도 아끼지 아니하셨는데 무엇을 바라십니까? 우리가 할 일은 그 은혜를 감사하면서 날마다 찬양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한다면 우리 믿음은 아직 온전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과 같이 진정한 감사와 감격과 충성과 기도로 하나님께서 예수 안에서 주신 모든 은혜를 누리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