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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마경훈목사의 설교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마경훈목사
예수님을 구주로 믿음으로 인하여 얻게 되는 유익/ 마태복음 1:21
(설교자: 마경훈목사, 비전교회)
제가 두 주간 27명의 기도팀을 이끌고 남미 선교를 다녀오는 길에
공항 라운지에서 이 설교를 준비했기 때문에 많이 엉성합니다.
이해하고 봐주시기 바랍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ryZB9KLNbIc
하나님께서 참 잘해주시고 여러분이 기도해주셔서 남미 선교 잘 다녀왔습니다. 우리는 가는 곳마다 기도를 심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기도에 응답하셔서 남미에 은혜 내려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또 저희들은 4개국 연합청소년 집회를 잘 섬겼습니다. 오전에는 최목사님이 두 번에 걸쳐서 영적전쟁에 관한 설교를 했고, 저는 다섯 번에 걸쳐서 몇 주 전에 저희 교회에서 5주 동안 시리즈로 설교 했던 ‘기도의 방법’을 설교 했습니다. 제가 그 설교를 준비하면서 그 내용을 책으로 내야겠다는 감동이 왔었는데, 이번에 참석한 선교사님들이 그 내용을 스페인어로 번역해서 책을 만들면 현지 목회자들과 성도들을 교육하는데 도움이 되겠다고 하셔서 책을 내야 한다는 확신을 더 갖게 되었습니다. 혹시 책을 발간한다면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기도의 방법’이라는 제목으로 지난번에 낸 ‘누구나 쉽게 들을 수 있는 하나님의 음성’과 시리즈로 내면 좋겠습니다.
기도팀이 두 주간 동안 남미선교를 다녀왔기 때문에 사실 제 마음에 오늘 설교는 좀 특별한 설교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설교 준비에 들어가면서 주님이 주시는 마음은 특별한 설교가 아니라 가장 원론적인 내용, 신앙의 가장 근본이 되는 내용을 전해야 한다는 감동을 주셨습니다. 건물로 말하자면 인테리어보다 기초공사를 말하는 것입니다. 건물의 인테리어를 아무리 화려하고 아름답게 했다 하더라도 기초가 부실하면 그 건물은 쉽게 무너집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본이 튼튼해야 건강한 신앙생활이 가능합니다. 예를 들어서 예수님을 자신의 그리스도로 믿는 것은 신앙의 기본 중에 기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복음이 없이는 아무리 많은 종교 활동을 해도 그 사람은 하나님께 인정받지 못하고 그에게는 영생이 없습니다. 그래서 기본이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 설교는 “예수님을 구주로 믿음으로 인하여 얻게 되는 유익”을 다루겠습니다. 기독교신앙을 갖는다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믿음으로 얻게 되는 유익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구주로 믿음으로 얻게 되는 유익은 너무나 광범위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그 중에서 네 가지만 다루겠습니다. 혹시 주님이 허락하시다면 다음 주에 몇 가지를 더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1. 죄 사함입니다.
의사들이 환자를 검진하고 심각한 병을 발견하면 두 가지 스타일로 전달한답니다. 의사 선생님들 가운데 환자가 받을 충격을 생각해서 환자에게는 병명을 절대 말하지 않고 가족들에게만 조용하게 말을 해주는 스타일이 있습니다. 또 하나는 의사 선생님이 환자를 불러 놓고 직접 이야기를 합니다. “당신을 진단한 결과, 암 증세가 있습니다. 수술을 하면 성공하여 살 가능성이 30% 밖에 없어요. 그러니 마음으로 준비하십시오.” 이 말을 들은 환자는 처음에는 절망하며 고통합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면서 정신을 차립니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하나? 나의 남은 삶을 어떻게 보내야 하나?’하고 고민하다가 결국은 마음을 굳게 하고 마지막 남은 생을 잘 정리합니다. 어떻게 보면 후자의 의사들은 매몰차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실 그들이 더 현실적입니다. 환자가 자신의 상태를 앎으로 인하여 어려움을 당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마지막 남은 삶을 잘 정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질병에 걸렸든지, 문제를 만났을 때, 무조건 ‘쉬 쉬’한다고 능사는 아닙니다. 그냥 덮어놓는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에게 가장 큰 문제는 죄인데, 죄를 그냥 ‘쉬, 쉬’하며 덮어둔다고 능사는 아닙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의 강단에서 이 ‘죄’에 대한 말씀과 회개하라는 말씀이 사라지고 있다고 합니다. 설교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하나님의 대리자인데, 하나님이 원하시는 설교보다는 인간의 비위를 맞추는 설교가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설교자는 교인들이 싫어하고, 교인들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다고 죄와 회개를 말하지 않습니다. 로버트 슐러 목사님은 교회부흥을 위한 설교로 절대 부정적인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적극적인 사고방식’을 주장한 노만 필 빈센트 박사 같은 분도 마찬가지입니다. 될 수 있는 대로 ‘죄, 심판, 징계’에 대한 설교보다는, 오로지 ‘희망, 확신, 가능성’을 이야기하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비성경적인 말입니다. 설교자는 사람들의 구미에 맞는 말씀만을 증거 해서는 안 됩니다. 설교자는 사람의 귀만 간지럽히는 얄팍한 짓을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이라면 비록 그것이 우리 귀에 거슬리고, 우리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할지라도, 강단에서 힘 있게 선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우리에게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죄는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 안 됩니다. 죄를 해결하지 못하면 영생도 없고, 천국도 없습니다. 죄를 해결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영원한 절망만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죄를 해결한 사람은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한 것이기 때문에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고 영원한 소망이 있는 사람입니다.
어느 목사님의 사모님이 어깨가 아픈데 무시하고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어깨 통증이 점점 심해져서 팔을 쓸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 즈음에 성경유적지탐방을 떠나야 하는데 오른팔을 쓸 수가 없으니 큰일이었습니다. 응급조치라도 받으려고 동네 병원에 갔습니다. 의사선생님이 어깨 부분에 주사를 몇 대 놓아 주었는데, 사나흘 쯤 지나니까. 통증이 없어지고, 팔을 움직이는 데 전혀 지장이 없었습니다. 덕분에 성경유적지탐방을 잘 하고 돌아왔습니다. 한 달쯤 지나니까 다시 어깨가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그 병원을 다시 찾아갔더니, 주사를 또 놓는 겁니다. 그리고는 매 주 한 번씩 주사를 20회나 맞아야 한답니다. 아무래도 미심쩍어 전문가에게 알아보니, 동네 병원에서 주로 사용하는 주사는 스테로이드가 포함된 주사인데, 그 주사를 맞으면 즉각적으로 통증은 사라질 수 있지만, 부작용이 커서 자주 맞으면 큰일 난다면서 제대로 된 검사를 해서 원인을 알아내고 치료를 해야 한다는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그 사모님은 삼성병원 정형외과에 가서 MRI를 찍어 정밀검사를 했습니다. 그 결과 오른쪽 어깨 인대가 상당 부분 끊어져 있고 염증이 심하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의사선생님은 사모님의 상태는 주사로 치료될 수 없고 그런 주사를 자꾸 맞으면 뼈와 인대와 근육이 녹아버리고, 근본적인 치료는 수술밖에는 길이 없다고 알려주었습니다.
동네 병원이라고 다 이상한 것은 아닙니다. 동네 병원 의사들 중에도 실력 있는 의사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사모님이 처음 찾아간 병원의 선생님의 문제는 근본을 해결하지 않고 겉으로 나타난 증상만 제거한 것입니다. 만약에 그 처방대로만 했다면 그 사모님은 주사를 맞을 때는 반짝하고 통증이 사라졌겠지만 결국은 팔을 못 쓰게 될 수도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많은 문제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사람들이 가진 수많은 문제들은 증상일 뿐입니다. 증상을 없앴다고 문제가 해결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근원이 해결 되어야 합니다. 사람이 가진 문제의 근원은 결국 죄입니다.
여기 독성이 강한 열매를 맺는 나무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 독성이 강한 열매를 싫어해서 열매가 열리기만 하면 따버린다고 가정합시다. 그런데 사실 열매를 딴다고 문제가 해결 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또 다른 독성열매가 계속해서 열리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독성열매를 보지 않으려면 나무를 없애야 합니다. 여기서 독성열매를 따서 없애는 것은 증상을 없애는 것입니다. 나무를 없애야 근원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죄는 수만 가지 독성이 가득한 열매를 맺습니다. 죄가 맺는 독성열매를 없애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죄를 처리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있는 죄를 제거해주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해주십니다. 요일 1:7입니다.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해결해주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본문 이야기입니다. 마리아의 임신으로 당황한 요셉이 그 일을 조용히 처리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천사가 요셉의 꿈에 나타나서 초림의 예수님의 탄생에 관한 예언을 주었습니다. 마리아는 바람을 피워서 아이를 가진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잉태된 것임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본문에서는 초림의 주님의 이름을 알려주었습니다. 본문을 보겠습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그리스도는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는데 이름은 예수입니다. 예수라는 이름의 뜻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실 분’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해주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신 분입니다.
죄 사함은 자기가 죄인인 것을 인정하며 시작 되는 것입니다. BC.4세기경 당시 죄를 지으면 노예가 되어 배에서 노동을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말이 노동이지 노예와 다름없는 생활이었습니다. 하루는 알렉산더 대왕이 그 노예선을 시찰하였습니다. 대왕이 지나가자, 이때가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한 죄수들은 저마다 자기는 아무 죄가 없는데, 애매하게 끌려와서 이토록 억울하게 노동을 하고 있다고 하소연했습니다. 그런데 한 죄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대왕은 그 죄수에게 물었습니다 “어찌하여 그대는 아무 말도 없느냐?” 그러자 그 노예는 “대왕 폐하, 저는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입니다. 저는 이곳에 와서 이 고생을 마땅히 해야 할 죄인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대왕은 “너 같은 죄인이 어찌하여 이 의인들 속에 끼어서 의인들을 더럽히겠느냐. 선장! 이 죄인을 어서 석방시켜 집으로 돌려보내도록 하시오”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가 죄인인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 죄 용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1학년 5월 5일에 교회에 처음 나갔습니다. 그 이후 제가 은혜를 받을 때가지 교회에 나가기는 했으나 저는 제가 죄인인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2학년 6월에 가서야 믿음이 생겼고 제가 죄인인 것을 인정하며 하나님의 자비를 구했습니다. 저는 1년 1개월간은 교회는 다녔으나 죄사함을 받지 못했습니다. 저는 그 기간 동안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던 제가 하나님의 은혜로 제가 얼마나 큰 죄인인 것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께 죄를 자백하여 죄사함을 받았습니다. 죄사함은 죄를 자백하므로 받는 것입니다. 요일 1:9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하나님은 우리가 자기가 죄인인 것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죄를 자백하면 우리의 죄를 사해주시고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해주십니다.
우리는 어떤 죄도 불꽃같은 눈을 가지신 하나님께 숨길 수 없습니다. 어떤 아이가 사과를 먹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가 물었습니다. “얘야, 어디서 그 사과를 얻었니”, “과일 가게에서요.”, “아저씨가 주시던?”, “아니, 안 주셨어요, 아무도 보지 않기 때문에 갖고 왔어요”, “뭐? 아무도 보지 않는다고? 하늘에서 하나님이 보고 계셔.” 아이가 말했습니다. “괜찮아요, 가게에는 지붕이 있으니까 하나님도 못 보셨어요.”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없습니다.
인간에게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죄의 문제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해주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셨고,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의 피로 죄사함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의 공로를 믿고 자기의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주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구주로 믿음으로 죄사함의 유익을 얻게 됩니다.
2. 관계 회복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해서 화목을 이루셨습니다. 주님이 이루신 화목을 세 방면을 말씀드리겠습니다.
①하나님과 관계 회복입니다. 히 10:19,20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주님은 십자가의 희생으로 우리들에게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게 하셨습니다. 이 말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놓으셨다는 의미로 하나님과의 막혔던 관계를 회복 시켜주셨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휘장 가운데로 새로운 살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성소의 휘장이 찢어진 것처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우리가 화목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좋은 관계는 믿음으로 회복됩니다. 그런데 믿음이란 진리의 지식을 앎으로 오는 것입니다. 미국의 전설적인 전도자 디엘 무디는 백만 명을 주께 인도한 전도자였습니다. 그분은 능력을 얻기 위해 남들이 하고 있는 온갖 방법을 다 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가 원하는 믿음이 오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그는 성경 롬 10:17에서 부딪혔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그는 이 구절에서 사람이 믿음을 얻는 비결을 깨달았습니다. 그날 이후로 그는 믿음을 얻기 위한 모든 노력을 중단하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공부했습니다. 그는 진리의 지식을 통해서 믿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성경을 통해서 얻어진 믿음이 무디를 만들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 되는 것입니다.
②자신과의 관계 회복입니다. 감리교에서 비교적 비중 있는 큰 교회의 목사님께서 목회를 하면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탈진이 되어 불면증과 우울증 때문에 고생을 하다가 미칠 것 같아 정신과 병원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그 병원에서 교인을 만났습니다. 그 교인은 담임목사님이 정신과 치료 받는 것을 알고는 그 다음 주부터 교회를 나오지 않았습니다. 목사님은 항상 밝고 명랑하고 건강하고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목사님이 정신과 치료를 받는다는 사실을 알고는 그것이 용납이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저는 우울증의 가장 큰 원인을 자신과의 관계에 문제가 생긴 것으로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울증이 치료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믿음 안에서 자신을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러게 될 때 우울증으로부터 회복 됩니다.
사 43:4입니다.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네 대신 사람들을 내어 주며 백성들이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이 말씀은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선포이며 동시에 믿는 우리를 향한 선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보배롭고 존귀하게보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독생자를 보내셨고,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으면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또 자신과의 관계도 회복되는 것입니다.
③타인과의 관계가 회복 됩니다.
사람의 사회적 성공과 출세에 가장 중요하게 영향을 끼치는 요소는 무엇이겠습니까?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보스톤 대학의 연구에 의하면 대인관계 능력이라고 합니다. 보스톤 대학에서 400명을 7세 때부터 40년 동안 추적 조사하였습니다. 조사 결과 성공과 출세에 가장 중요하게 영향을 끼친 요소로는 다른 사람과 잘 어울리는 능력이었답니다. 우리는 공부만 잘하면 세상에서 성공하고 출세할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하버드대학교의 위건(A.E.Wiggan) 박사는 직장, 가정, 사회생활 등 각 분야에서 실패한 사람들을 조사해 보니까 전문지식이 모자라 실패한 사람들은 불과 15%밖에 안 되었답니다. 나머지 85%의 사람들은 모두 인간관계를 잘못했기 때문에 실패했다고 합니다. 공부도 중요하지만 대인관계 지수가 인생을 성공적으로 사는 데는 더 중요한 것입니다.
직장에서 효과적으로 자신이 맡은 업무를 수행하고 직업적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세 가지 기술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세 가지 기술이란 기능적 기술, 개념적 기술 그리고 인간관계기술이라는 합니다. 기능적 기술이란 자기가 맡은 전문분야의 업무를 말합니다. 개념적 기술이란 거시적으로 조직 전체의 목표달성과 생산성 향상을 꾀할 수 있는 기술을 말합니다. 인간관계 기술이란 문자 그대로 일보다는 직장의 다른 동료, 상사, 부하들과 원만한 인간관계를 할 수 있는 기술을 말합니다. 그런데 인간관계 기술이 직업적 성공을 거두는데 85% 정도이고, 기술적인 지식은 15% 정도라고 밝혀지고 있답니다. 인간관계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의 대인관계의 회복은 십자가 정신으로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에는 사랑이 있고, 이해가 있고, 용납이 있습니다. 엡 2:16입니다.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여기서 이 둘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말합니다. 유대인들에게 이방인과 하나 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십자가로 유대인과 이방인이 한 몸이 되는 관계회복이 일어납니다.
3. 새 사람 됨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변화가 일어납니다. 예수님을 믿고 변화된 사람은 너무나 많습니다. 저도 그 중에 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두 가지 차원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하나는 존재론적인 변화입니다. 이 변화는 예수님을 믿는 순간 일어납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여러분의 구주이십니까? 예수님이 여러분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을 믿습니까? 아멘이라면 여러분은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고후 5:17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예수님은 믿으면 죽었던 영혼이 살아나고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됩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구주로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며 성령의 전이 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믿는 순간 바로 존재 자체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또 하나의 변화는 점진적인 변화입니다. 예수님을 믿은 이후로 점점 예수님을 닮아가게 됩니다. 이것을 성화라고 합니다. 이 과정에는 시간과 훈련이 필요합니다. 어떤 사람은 “참 이상하네? 예수님을 영접하면 새로운 피조물인데 왜 나에게는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거지?”라고 말하기도합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시간과 훈련의 문제입니다. 훈련에는 반드시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무슨 훈련을 해야 할까요? 예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을 자신의 주인으로 모시지만 생활 속에서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주님의 명령이 있으면 순종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나의 시간은 주님의 뜻대로 사용해야 합니다. 나의 재능도, 나의 재물도, 나의 몸도 주님의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완전하게 정복하기를 원하십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동안 내가 살아온 삶의 방식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간이 필요하고, 훈련이 필요하고, 고난도 따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새사람이 됩니다.
4. 천국 입성입니다.
요 14:2,3입니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3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예수님을 믿으면 많은 은혜를 받는데 저는 그 중에서 천국에 가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천국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요즘 제가 좋아하게 된 대중가수가 있습니다. 악동뮤지션의 이찬혁군입니다. 저는 이찬혁군과 동생 이수현양이 10년 전에 부른 ‘다리 다리꼬지’라는 노래를 듣고는 참 순수한 아이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부모님이 몽골 선교사였다고 들었기에 두 아이들에 대하여 긍정적인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이찬혁군의 ‘장례희망’이라는 노래를 듣고는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대표적인 두 가지 생각은 이렇습니다. 하나는 이찬혁군은 천재라는 생각이었고, 또 하나는 평신도들의 사명을 아주 잘 보여준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이찬혁군의 ‘장례희망’은 천국의 소망을 담은 노래인데요. 가사를 먼저 보겠습니다.
먼저 장례식 모습을 노래합니다. - 아는 얼굴 다 모였네 여기에/ 한 공간에 다 있는 게 신기해/ 모르는 사람이 계속 우는데/ 누군지 기억이 안 나 미안해
자신이 상상했던 장례식을 노래합니다. - 종종 상상했던 내 장례식엔/ 축하와 환호성 또 박수갈채가/ 있는 파티가 됐으면 했네/ 왜냐면 난 천국에 있기 때문에
단편적이지만 천국이 어떤 모습인지 노래합니다. - 오자마자 내 몸집에 서너 배/ 커다란 사자와 친구를 먹었네(사실 이 부분은 천년 왕국에서 이루어질 일입니다)/ 땅 위에 단어들로는 표현 못 해/ 사진을 못 보내는 게 아쉽네
찬혁군의 천국에 대한 확신입니다. - 모두 여기서/ 다시 볼 거라는/ 확신이 있네/ 내 맘을 다 전하지 못한 게 아쉽네
천국의 기쁨을 노래합니다. - 할렐루야/ 꿈의 왕국에 입성한 아들을 위해/ 할렐루야/ 함께 일어나 춤을 추고 뛰며 찬양해
할렐루야/ 꿈의 왕국에 입성한 아들을 위해/ 할렐루야/ 큰 목소리로 기뻐 손뼉 치며 외치세
2절은 설명 없이 가사만 봅니다.
나와 그닥 뭐가 없던 여자의/ 슬픔이 좀 과하게 보이길래/ 놀랐네 돌이켜보니 그러게/ 우리도 미묘한 신호가 있긴 했네/ 머리를 쾅 한 대 맞은 듯하네/ 이제 머리는 없지만 알기 쉽게/ 모든 걸 알지 못했기 때문에/ 뭣 같고 즐거웠어 삶이란 게/ 한쪽엔 내가 생전 좋아했던/ 음식들이 놓였네 마치 뷔페/ 꾸준히 당부해 두길 잘했네/ 좋은 기억으로 남겨주길 바라/ 모두 여기서/ 다시 볼 거라는 확신이 있네/ 내 맘을 다 전하지 못한 게 아쉽네/ 할렐루야/ 꿈의 왕국에 입성한 아들을 위해/ 할렐루야/ 함께 일어나 춤을 추고 뛰며 찬양해/ 할렐루야/ 꿈의 왕국에 입성한 아들을 위해/ 할렐루야/ 큰 목소리로 기뻐 손뼉 치며 외치세
‘장례희망’ 영상을 보겠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309H46T7R4M
제가 일부러 이 노래에 대한 댓글을 읽어봤습니다. 몇 가지만 소개 하겠습니다. 먼저 고정 댓글을 보니 그 노래를 만든 이유를 적어놓았습니다. “찬혁님은 이 곡을 노래하기 전 관객들에게 뛰며 즐기기 어려운 노래이겠지만, 노래에 맞춰 함께 뛰놀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본인의 장례식장에서도 마찬가지로요. 누군가에게는 ‘죽음’이란 영원한 이별이기에 슬프고 두렵게 느껴질 수 있지만, 찬혁님은 죽음 이후에는 천국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그 곳에서 다시 만날 거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본인의 장례식장이 파티가 되었으면 좋겠다’라는 ‘장례’희망을 노래하는 거 같아요. 관에 적힌 [ERORR]라는 글자는 이 곡이 수록된 앨범명으로, ‘내가 당장 문을 열고 나갔는데 죽음을 맞이한다면 어떨까? 후회는 없을까? 내가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고 노래했던 사랑과 자유는 정말 최대 가치가 맞을까?’ 하는 생각에서 출발했으며, 지금까지 만들어온 자신의 음악과 생각들에 ‘오류’들이 있었던 거 같다는 의미로 정하게 됐다고 해요.” 저는 이 노래가 이찬혁 군의 천국 확신에서 출발했다고 봅니다. 천국에 대한 성경적인 확신이 있었기에 이런 노래를 만들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천국을 전제하고 자신의 삶을 돌아볼 때 많은 오류가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댓글입니다. “기독교 색을 띄지만 종교를 뽐내고 싶다기보단 죽음과 그 죽음 뒤에 있는 사람들과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것 같아서 무교도 듣기 좋습니다.” 기독교를 모르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죽음과 천국을 거부감 없이 생각하게 만드는 노래네요. 자연스러운 전도라고 할까요!
“죽음은 천국으로 가는 또 다른 문이네요!!! 축제의 새로운 장이 열리는 ❤❤❤❤❤” 이분은 신자인지 불신자인지 모르겠지만 이 노래를 듣고는 죽음과 내세를 연결시켜서 생각하게 된 것 같습니다. 기독교적인 입장에서 보면 아주 긍정적인 반응이 맞는 것 같네요.
“우와 진짜 멋진 곡이예요. 천국에 계신 엄마 아빠. 꼭 보러 갈거예요~~ 곡 감사합니다^^” 대중가요를 통해서 부모님을 먼저 보낸 아픔을 가진 사람을 위로하고 있으니 이 또한 큰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저렇게 복음을 전하지? 놀랍다” 이 부분은 기독교인의 입장에서 놀라움을 표현했네요. 대중가요가 전도의 도구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요.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이찬혁군은 자신의 은사와 달란트를 가지고 복음을 전하는 기독교인의 보편적인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고 지지를 해주고 있습니다.
이 노래를 다시 한 번 듣고 설교를 마치겠습니다. 제 설명을 듣고 다시 들으면 더 가슴에 와 닿을 것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309H46T7R4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