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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 원산도
면적 10.28km2, 산높이 118m, 해안선 길이 28.5km인 원산도는 보령시 대천항에서 서쪽으로 11km, 안면도 영목항과는 불과 1.8km 지점에 위치하며 533가구, 1074명이 거주한다. 부근에 효자도, 고대도, 안면도 등이 있다. 고려 25대 충렬왕 때 대사성 최해 부자가 이곳에서 귀양살이를 하면서 시를 지어 인물과 풍습을 읊었다는 이곳은, 이후 1914년에는 구릉이 많고 산이 높으며 뫼 산(山)자 모양을 닮았다 하여 원산도라 고쳐 부르게 되었다 한다. 이 섬은 옛날에는 고만도 또는 고란도라고 불리기도 했다. 대천항에서 출발한 배는 안면도 영목항을 닿고 원산도 선촌항과 저두항에 정박한다. 오천항에서 출발한 여객선은 영목을 지나서 원산도 초전항으로 온다.대천시에 소속된 원산도는 태안반도에 있는 안면도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며 살아왔다. 연륙된 안면도는 태안반도에 위치해 있다. 태안해안국립공원에 속하여 아름다운 해수욕장 등의 자연여건을 자랑한다. 원산도와 불과 1.8km 정도로 가까워 안면도 끄트머리인 영목항에서 수시로 객선이 다닌다.
원산도와 대천항
보령에는 섬사람들과 관광객들이 드나드는 두 개의 항구가 있다. 하나는 대천 어항이며 다음은 오천항이다. 대천 어항은 흔히 대천항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여객선을 타고 가면 호도 원산도 삽시도 장고도 등 4개 섬의 유명한 해수욕장들이 몰려 있음을 볼 수 있다. 주말이나 공휴일에는 예매하지 않으면 이 섬에 들어가지 못한다.
대천항의 동생인 오천항은 대천항에서 20분 거리에 위치한다. 여기는 오천카페리호가 하루에 3번씩 월도 소도 추도 허육도 육도 영목항 원산도를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코스이다. 오천항은 그 규모가 대천항과는 많이 떨어지지만 '잠수기 어업 모항'이라는 간판이 붙어있을 만큼 키조개를 많이 잡는 곳으로 여러 대의 어선들이 정박해 있다. 오천항은 안면도 끄트머리인 영목항과 천수만을 앞에 두고 있는데 바람이 아무리 많이 불어도 끄떡없는 천혜의 항구이다.
대천은 수도권과 가깝고 서해안고속도로의 혜택을 많이 받는 지역이다. 대천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곳이 대천해수욕장이다. 대천해수욕장은 가족 단위의 휴식지이며 젊은 연인들에게는 최적의 데이트 코스이다. 길이 3.5km, 폭 100m에 달하는 대형 해수욕장으로 경사가 완만하고 수심이 얕아 해수욕을 즐기기에 아주 좋다. 그래서 사시사철 1천만명에 육박하는 관광객들이 몰려오는 서해안 최고의 휴양지로 자리매김을 하였다. 백사장의 길이가 길어서 시민탑광장, 여인의광장, 분수광장 등 3구역으로 나뉘었기에 한여름에는 각 구역별로 다양한 행사를 실시한다.
대천항은 해상교통의 요지이며 서해의 어업전진기지이다. 대천항은 대천해수욕장과 1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어족 자원이 풍부한 서해상에서 어선들이 밤새도록 잡은 오징어와 꽃게, 도미, 우럭 등 갖가지 고기들을 싣고 와 대천해수욕을 찾는 피서객들과 관광객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대천항 부두 건조대에 널린 오징어와 서대 등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해수욕장을 찾는 사람들이 이곳을 모르고 지나간 경우가 많은데 대천항에 오면 어선들이 고기를 잡아서 바쁘게 들락거리는 삶의 현장을 직접 목격할 수 있어서 좋다.이곳은 정박해 있는 어선과 화물선, 여객선을 볼 수 있고, 대천 여객선터미널에는 인근 섬인 외연도와 녹도, 호도를 향하여 가는 쾌속선 웨스트프론트호가 있다. 그리고 차도선이 삽시도 원산도 고대도 장고도와 안면도의 영목항을 오간다. 대천항에서는 근해를 오가는 여행객과 수협 어판장에서 고기를 경매하는 떠들썩한 현장, 손님들에게 해산물을 팔기 위하여 가게 주인들이 흥정을 벌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원산도 국내최장 해저터널
예전에는 원산도로 가려면 생활권인 보령의 대천항과 오천항, 안면도의 영목항 등에서 배를 타야했다. 하지만 2019년 12월 26일 안면도 영목에서 원산도까지 길이 1720m에 이르는 원산안면대교가 개통되면서 이제는 차량으로도 쉽게 찾아갈 수 있다.
2021년 12월 국내 최장의 보령해저터널이 완공되면 대천항과 원산도, 안면도 영목항을 오가는 소요시간이 90분에서 10분으로 단축된다. 보령해저터널은 총 길이가 6,927m에 달하여 전 세계 해저터널 중 다섯 번째로 길다.
2024년까지는 원산도와 해수욕장으로 유명한 인근 삽시도를 3.9km 케이블카로 연결하는 공사가 추진된다. 마치 블랙홀처럼 수많은 관광객들을 빨아들이는 명소가 될 것이 기대된다. 이에 발맞춰 원산도에서는 해양치유센터와 자연휴양림, 리조트 등을 조성할 계획이다.그동안 상습적인 식수부족으로 인해 고통을 겪어왔던 원산도 주민들에게 상수도가 공급된다. 원산도의 1천여 명의 주민들은 바닷물을 민물로 바꾸어 주는 5개의 해수담수화시설로부터 수돗물을 공급받고 있지만, 여름철 관광객들이 몰리는 때에는 물이 부족하여 제한급수를 받고 있다.
원산안면대교와 해저터널 위치도
앞으로 원산도는 물이 깨끗한 보령댐의 광역상수도를 공급 받아 실로 수백년 만에 물 문제가 해결될 것 같다. 그외에도 전국적으로 아주 유명한 대천해수욕장과 원산도, 태안반도와 안면도가 하나의 관광권으로 개발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안면도~원산도~보령 간 연륙교와 해저터널의 착공으로 서해안고속도는 더욱 더 차량수효가 늘어날 것이며, 제2의 서해안고속도로가 건설되는 호재들이 생겨날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안면도는 개발이 체계적으로 잘 이루어지고 있는 경기도의 옹진군과도 지리적으로 경계를 이루어 해상교통의 연결이 수월하다. 그 중심에 있는 원산도는 그야말로 떠오르는 섬이다.
원산도 둘러보기
원산도에는 저두선착장을 비롯하여 선촌선착장, 초전선착장까지 모두 3개의 선착장이 있다. 초전선착장에는 국가주요시설물인 '지적삼각점'이 있다. 초전은 원산도의 서쪽에 있는 마을로 윗말과 안동네로 나뉜다. 초전마을은 그렇게 큰 마을은 아니다. 선착장 앞에 구릉지가 있어 좌우로 해안길이 나 있다.
오른쪽은 초전마을 가는 길이고 오른쪽은 큰 마을로 들어가는 해안도로다. 마을 뒤로 밭이 있다. 마을입구에 표지석과 함께 버스정류소가 있다. 섬의 유일한 마을버스는 배가 들어오는 시간에 맞춰 운행된다. 마을버스 한 대가 섬을 오가고 하루 대여섯 번 배가 닿는다. 그리고 이어지는 해안도로. 왼쪽으로 펼쳐진 드넓은 해안이다. 이곳에 양식장이 있다. 썰물이 되면 서해의 명물 '갯벌'이 드러난다. 물이 빠지면 드러나는 해변에서 조개를 잡는다. 원산도에서는 '맛조개'를 많이 잡는다.
섬의 모양은 동서쪽으로 길게 뻗어 있다. 배를 타고 섬을 일주하면 모래밭의 흰색 띠가 섬 전체를 휘감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데, 그 하얀 띠의 길이는 70리를 넘는다. 그리고 섬마다 식수가 귀한데 원산도는 다섯 개의 봉우리가 자리하고 있어 지하수가 비교적 풍부한 편이다. 관광객이 몰리지 않으면 식수에는 별 어려움이 없는 곳이다.
초전의 남쪽 오봉산 산꼭대기에는 봉화대가 있다. 고만고만한 다섯 개의 봉우리를 나란히 지니고 있다고 해서 오봉산이라고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이 봉화대는 왜적의 침략이나 긴급한 상황이 닥쳤을 때 오천성의 수군절도사로 연락을 취하던 곳이다. 밑에는 관가(관개)라는 마을이 있다. 옛날 봉수대를 관리하던 관아 건물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홍주관할의 이 관청은 관가 아래가 당산인데 큰당과 작은당이 있다. 지금까지 해마다 여기서 당제를 지낸다고 한다. 관청 건물이 있던 곳이라고 전해지는 자리는 널따란 평지를 유지하고 있으며, 현재도 많은 기와가 출토된다고 한다.
다섯 형제가 어깨동무를 한 것 같은 오봉산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최고봉은 서쪽에 있는 오로봉(118m)으로 이곳에서 서해안의 여러 섬들을 내려다보는 것도 좋다. 오봉산의 반대쪽에 오봉산해수욕장이라 불리는 백사장이 펼쳐져 있다. T자형 섬의 독특한 형태 때문에 작은 섬이지만 백사장은 무려 30km나 된다. 남쪽 해안선을 따라 굽이굽이 꺾어지면 백사장이 나타나니 작은 해수욕장이 계속되는 셈이다. 원산도 내 해수욕장은 오봉산, 원산도, 저두 등 3곳으로 섬 남쪽 해안에 몰려 있다.
오봉산해수욕장은 오봉산 남동쪽 해안에 위치해 있다. 백사장 규모는 폭 150m, 길이 2km 정도다. 수년 전 산더미처럼 쌓여있던 모래가 인천의 유리공장으로 실려 나가면서 해수욕장으로 재탄생했다. 백사장을 따라 소나무 숲이 우거져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또 백사장 주변 갯벌에서 바지락, 맛조개 등을 잡을 수 있다.
진촌을 지나면 사창에 이른다. 원산도 가운데 부분에 있는 마을로 구치와 진촌 사이에 있다. 사창 쪽에서 바라보는 해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오래 남을 만큼 찬란하다. 그리고 이 마을 남쪽으로 해수욕장이 있으니 바로 사창해수욕장이다. 사창해수욕장은 손길이 많이 타지 않아 아직도 태초의 자연 풍경을 간직하고 있는 해수욕장이다.
진촌에서 구치를 지나다 남쪽으로 방향을 돌려 작은 구릉과 작은 다랑논과 밭을 지나면 눈이 부시도록 하얀 백사장과 만난다. 원산도해수욕장이다. 섬에 있는 해수욕장이라고 만만히 볼 수 없는 넓은 백사장이다. 모래가 곱고 해안 경사가 완만하다.
섬의 북쪽은 갯벌이 발달되어 있어 조개와 낙지가 많이 잡히고 있다. 저두선착장 남쪽으로 저두해수욕장이 있다. 진고지에서 북쪽으로 조금만 더 올라가면 바로 선촌이다. 가장 큰 마을이다. 경찰서 원산도 분소가 있고 농협과 함께 우체국도 있다. 이곳에 대천항 가는 여객선을 탈 수 있는 선착장이 있다. 이곳 선착장에는 빨간 등대가 있다. 그리고 마주 보이는 섬이 효자도이다. 그리고 북쪽으로 보이는 섬이 소도이고 그 옆이 바로 안면도 영목항이다.
선촌의 선착장에 서니 보령시의 화력발전소가 보인다. 날씨가 좋다. 운무도 없어 멀리 보령화력발전소가 한눈에 들어온다. 가까운 곳에 있는 섬이지만 한적한 풍경이다. 선착장 끝에서는 온 가족이 낚싯대 하나에 집중하고 있다. 원산도는 조개잡이 외에도 우럭양식, 꽃게잡이, 주꾸미잡이를 한다. 섬에는 번듯한 식당도 별로 없고 좋은 놀이시설도 없다. 마치 70년대에 멈춘 듯 섬은 개발과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런데 선착장 주변에 도시에서나 볼 수 있는 공인중개사사무소가 눈에 들어온다.
산이 높기에 남쪽의 해변은 백사장이 펼쳐져 있고 북동, 북서쪽은 땅을 개간해 논농사와 염전 등으로 사용된다. 앞바다에서 잡은 생선과 염전에서 나는 천일염을 이용하여 만든 까나리 액젓, 조개젓, 굴젓, 멸치젓, 갈치 속젓이 유명하다. 주민의 3분의 2가 어업에 종사하고, 3분의 1은 농업에 종사한다.
원산도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오봉산해수욕장 남쪽에 우리나라를 최초로 방문한 귀츨라프(1803-1851)라는 독일 출신 루터교 선교사의 기념비가 있다. 좀 특이한 장소이기에 지금까지 두 번이나 가서 그 분의 뜻을 새겨보았다. 귀츨라프 선교사 일행은 1832년 7월 17일 장산(장산곶)에 도착한 다음 남하하여 22일 대천의 녹도와 불모도를 거쳐 26일 고대도에 정박하였다. 그들은 홍주목사 이민회을 만나 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조선 국왕에게 정식으로 통상을 청원하는 서한을 보냈다.
조정의 회답을 기다리면서 주민들에게 한문 성경과 전도문서와 서적 및 약품을 나눠주고, 감자를 심어주기도 했다. 주기도문을 한글로 번역하여 가르쳐 주고 그리고 한글 자모를 받아 적은 다음 후에 이를 세계에 알리기도 하였다. 이 시기는 영국의 토마스 목사가 평양을 방문하여 대동강변에서 주민들에게 성경을 나눠주다 순교한 1866년보다 34년 앞선 일이며, 언더우드와 아펜셀러가 인천에 상륙한 1884년보다 52년 앞선 일이었다.
국내에서 출간된 '원산도의 귀츨라프 발자취
그리고 최초의 가톨릭 선교사인 불란서 신부 모방(Pierre Maubant)이 내한한 1836년보다도 4년이나 앞선다. 그런데 귀츨라프 선교사 기념비가 고대도가 아닌 원산도에 있다는 사실에 좀 의아하여 기념비를 찬찬히 둘러보았다. 비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선교사 카알 귀츨라프(M. D) 기념비
(화란선교협의회 소속, 독일신교 선교사)
1803년 피릿즈 / 포다라니에서 출생
1851년 홍콩에서 소천
카알 귀츨라프(의사) 선교사는 1832년 7월 17일 이곳에 도착하여 한문으로 된 전도지와 주기도문 그리고 감자 종자를 이곳 도민에게 전함. 그의 전기에 "보다 훌륭한 여명의 날이 한국에 빨리 오기를 바람"이라고 언급함.
-그가 오셨던 150주년을 기념하여
1982년 7월 17일 이를 세움-
기념비 뒷면에는 영문과 독문으로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었다. 눈여겨 본 것이 기념비에 새겨진 송죽학원이었다. 궁금하여 교회에 물어보니 남장으로 유명한 전 국회의원 김옥선 여자 장로라고 하였다. 이 분은 독실한 기독교인으로서 학교도 세 군데나 세웠으며, 지역사회의 발전을 위해 헌신한 분이었다.
기념비를 아무리 살펴보아도 기념비를 세운 이들의 실명은 보이지 않았다. 기념비는 반드시 세운 사람의 실명이 있는데, 이 정도의 규모를 보면 상당한 경비가 들어갔을 텐데 좀 의심스럽기도 하였다. 비문에 나타난 내용처럼 귀츨라프 선교사가 이곳 원산도 방문한 날이 1832년 7월 17일이 맞는지 학문적으로 고증해야 할 것으로 여겨진다.
필자가 읽어본 "귀츨라프와 고대도-최초로 내한한 선교사와 고대도 전도"라는 리진호씨가 지은 책에는 그런 내용이 없었다. 아마도 귀츨라프가 원산도에 내려 방문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겠지만, 기념비에 기록된 내용처럼 전도지와 주기도문, 감자 종자를 이곳 원산도 주민에게 전한 기록은 없다고 하였다. 원산도에 있는 귀츨라프 기념비의 역사적 고증 문제가 있지만 고대도나 원산도는 바로 이웃 섬이라 전도를 위해 들렀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심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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