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33]도올의 『반야심경』을 읽어보면 어떨까?
사랑하는 작은 아들에게
오랜만에 편지를 쓴다.
늘 그렇듯, 네 색시와 짱짱하게 잘 지내고 있을 것을 믿는다.
편지를 쓰는 까닭은, 6월초 너희를 만나러 호주를 가는
네 장인어른 편으로 책 두 권을 보냈기 때문이다.
이 책들을 왜 선물하는지, 그 이유와 함께 아부지 나름의 북리뷰를 메일로 보낸다.
두 권의 책은 도올 김용옥 선생이 지은 『스무살 반야심경에 미치다』(2019년 통나무 발행, 247쪽 15000원) 와 함석헌 선생님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이다.
# 『반야심경』생각을 하면, 너에게 먼저 미안하다는 말을 해야겠다. 네가 태어나 백일상을 받을 때, 아부지가 하려던 일을 못했기 때문이다. 너도 본 적이 있겠지만, 형의 백일상에는 아부지의 부모, 형제자매, 친지를 비롯하여 친구와 선후배 지인 250명에게서 넉 자씩 친필로 받아 만든 <수제手製 천자문千字文>(사진)을 올렸다. 네 백일상에는 260자로 이뤄진 불교佛敎 핵심경전인 『반야심경』을 260명에게 한 자씩 받아 소책자로 만들 생각이었는데, 어찌어찌 시기를 놓쳐버려, 네 백일상에 올리는 아부지의 선물이 없었구나. 그때 해놓았다면 기념비적인 선물이 되었을 터인데 말이다. 하하.
# 또 하나 생각나는 것은, 논산훈련소 30연대 훈련병 시절, 일요일마다 법당을 갔는데,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그때 군복바지에 미친 놈처럼 반야심경 260자를 적어 외웠던 기억이 뚜렷하다. 불교신자도 아니면서 ‘모태신앙’인 것처럼 행세를 하니 고참들이 놀려먹었다. 그 심오한 뜻은 ‘1’도 모르면서 줄줄줄 외워댔었다. 그때만 해도 암기력은 그 누구보다 뛰어났단다. 오랜 음주생활로 지금은 똥멍청이가 돼버렸지만. 흐흐.
# 97세 된 할아버지는 지금도 반야심경 260자를 하루에도 몇 번씩 원문을 보지 않고 줄줄줄 외우신다. 물론 그 심오한 뜻은 나도 모르지만, 할아버지라고 어찌 아시겠니? 그저 ‘공즉시색空卽是色 색즉시공色卽是空’ 이런 문구가 좋아 외우셨을 거다. 그래서 작년말 국보급 전각예술인 친구의 작품을 150만원에 매입, 선물해 드렸다. 할아버지 방에 걸어둔 반야심경을 너도 지난번 왔을 때 보았지? 그럴 듯하지 않더냐. 이제껏 내가 해드린 선물 중 최고라고 생각한다. 하하.
# 도올 김용옥 선생의 저서는 한두 권 보았는지 모르겠다. 일단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철학자이자 석학碩學이라고 보면 된다. <논어> <노자> <중용> <주역> 등 동양고전을 대중 속으로 한층 끌어내린, 최고의 '지적 엔터테이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속설에 ‘대한민국 지적 구라 3인방’의 으뜸이라고 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학문이라면 무엇이든 무불통지無不通知, 현학衒學의 소유자이다. 그의 박람강기博覽强記는 혀를 내두르게 한다. 하나를 아는데 열 가지를 다 아는 것처럼 풀어먹는 ‘개똥철학자’라는 혹자의 비난도 있지만, 문일지십聞一知十이라고 하나를 들어서 능히 열 개를 안다면 좋은 일이지 나쁜 일은 아닐 것이다.
아무튼 도올이 불교의 핵심경전인 <금강경金剛經>을 명쾌하게 강해講解하더니, 이번엔 <반야심경>에 꽂혔다. 참으로 도저到底하다. 그래서 종교와 관계없이, 어떠한 편견도 갖지 말고 한번 읽어보라는 것이다. <뜻으로 본 한국역사>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편견없이 주우죽 읽으면서 너의 종교관과 역사관을 고양高揚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저자가 20살 때 어느 절의 해우소解憂所(똥간)에서 ‘반야심경’ 260자를 접하고 대오각성大悟覺醒했다는 구라로부터 장문의 너스레(서문序文격)가 시작된다. 한국불교의 흐름과 본질적 성격에 대해 이 책만큼 노골적이고 구체적으로 기술해 놓은 책은 없었던 듯하다. 기본 상식을 갖고 읽으면, 일단 이 책은 재밌다. 아부지는 이번에 또 한번 찬찬히 읽었는데, 첫 번째 읽었을 때의 느낌과 상관없이 여러 번 놀랐다. 그 어려운 한문을 쉽게 해설해 놓아 고개를 연신 끄덕이게 만든다. 우리 5천년 고난과 시련의 역사가 반드시 ‘무슨 뜻’이 있을 거라는, 언젠가 ‘고난의 여왕’이 왕관을 쓰고 말 것이라는 함석헌 선생님의 예지叡智가 그런 쾌저快著를 유산처럼 남겼듯이, 도올은 기독교, 유교 등을 섭렵하고 마침내 불교에도 손을 깊숙이 내밀었다. 네가 무슨 종교를 믿든, 그거야 온전히 너의 자유이지만, 도올의 『나는 예수입니다』도 꼭 읽어봤으면 좋겠다. 아부지의 지론은 일단 어떤 현상이나 사물을 볼 때 편견偏見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식이든 사상이든 스폰지처럼 흡수한 후 생각을 거듭하여 ‘자기의 것’으로 만드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반야심경’에 대한 풀이가 247쪽 중 198쪽부터 시작되는 까닭은, 앞부분의 숱한 장광설들이 '밑반찬'이 되기 때문이다. 이 경전만 바르게 이해한다면, 불교사를 넘어 인류종교사 전체도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게 어디 쉬운 일일까? 네가 한자漢字를 혼자 공부하여 2000여자를 훈음訓音과 독음讀音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로 다행한 일이다(천天의 훈음이 ‘하늘’이고 독음은 ‘천’이다). 너처럼 끈기있는 성격이라면 독파讀破해낼 것으로 믿는다. 너무 전문적인 부분은 읽지 말고, 마구마구 건너뛰어도 좋다. <뜻으로 본 한국역사>도 마찬가지이다. 그냥 ‘당당한 출발’로 시작되는 ‘우리나라 역사의 통사通史’만 읽어도 된다. 그 통사가 대부분 ‘통사痛史’인 게 안타깝고 분통이 터지지만, 함선생님이 말씀했듯이 분명히 ‘무슨 뜻’이 있어서일 것이라고 믿자. 믿는 것은 희망希望이다.
이것은 북리뷰가 아니다. 아부지의 몇 가지 추억과 이 책에 대한 소개말이다. 정작 알짜인 반야심경 260자의 (아부지 식대로의) 주해註解는 다음에 적어보낼 것을 약속한다. 마지막으로 웃긴 말 하나 덧붙인다. 도올이 스무살 때 반야심경을 읽고 ‘오도송悟道頌(도를 깨친 후 그 느낌을 짧은 시로 읊는 것)’을 짓고 산문山門(절)을 미련없이 나왔단다. “나는 좆도 아니다”가 그분의 한글 오도송이라니, 역시 그분다운 오도송이다. 하하. 줄인다. 네 예쁜 색시와 함께 늘 재밌게 지내거라. 너의 말대로 '몹쓸 넘'의 향수병鄕愁病같은 것은 개나 물어가라며 늘 짱짱하게.
2023년 5월 21일
고국 대한민국의 아부지 고향 임실 우거偶居에서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