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주일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영과 진리로 예배드리게 하옵소서.
오후의 구역모임 위에도 사랑이 넘치는 교제 시간이 되게 하옵소서.
6차 차드 세미나 위에 부어주신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7차 세미나 위에도 차고 넘치는 은혜를 사모하며 기대합니다.
수고하는 주의 종들과 기도로 함께 하는 주의 종들이 다 주인의 잔치에 참예하는 기쁨을 누리게 하옵소서.
생명의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십자가 보혈을 의지합니다.
자격 없는 자, 파레시아의 은혜를 힘입어 나아가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오늘도 진리의 영께서 누리게 하시는 진리로 기쁨이 가득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 사무엘의 말이 온 이스라엘에 전파되니라 이스라엘은 나가서 블레셋 사람들과 싸우려고 에벤에셀 곁에 진 치고 블레셋 사람들은 아벡에 진 쳤더니
2.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에 대하여 전열을 벌이니라 그 둘이 싸우다가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패하여 그들에게 전쟁에서 죽임을 당한 군사가 사천 명 가량이라
3. 백성이 진영으로 돌아오매 이스라엘 장로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우리에게 오늘 블레셋 사람들 앞에 패하게 하셨는고 여호와의 언약궤를 실로에서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 중에 있게 하여 그것으로 우리를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자 하니
4. 이에 백성이 실로에 사람을 보내어 그룹 사이에 계신 만군의 여호와의 언약궤를 거기서 가져왔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의 언약궤와 함께 거기에 있었더라
5. 여호와의 언약궤가 진영에 들어올 때에 온 이스라엘이 큰 소리로 외치매 땅이 울린지라
6. 블레셋 사람이 그 외치는 소리를 듣고 이르되 히브리 진영에서 큰 소리로 외침은 어찌 됨이냐 하다가 여호와의 궤가 진영에 들어온 줄을 깨달은지라
7. 블레셋 사람이 두려워하여 이르되 신이 진영에 이르렀도다 하고 또 이르되 우리에게 화로다 전날에는 이런 일이 없었도다
8. 우리에게 화로다 누가 우리를 이 능한 신들의 손에서 건지리요 그들은 광야에서 여러 가지 재앙으로 애굽인을 친 신들이니라
9. 너희 블레셋 사람들아 강하게 되며 대장부가 되라 너희가 히브리 사람의 종이 되기를 그들이 너희의 종이 되었던 것 같이 되지 말고 대장부 같이 되어 싸우라 하고
10. 블레셋 사람들이 쳤더니 이스라엘이 패하여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였고 살륙이 심히 커서 이스라엘 보병의 엎드러진 자가 삼만 명이었으며
11.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임을 당하였더라
(본문 주해)
1a절 : 사무엘의 말이 온 이스라엘에 전파가 된다.
말씀이 희귀한 시대에 사무엘에게 여호와의 말씀이 나타나서 이제 온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말씀을 듣게 되었다.
1b~2절 : 지중해 연안에 있는 해안가에 위치한 블레셋은 사사기에서도 늘 이스라엘을 괴롭혔음을 볼 수 있다. 이번에도 블레셋이 영토 확장을 위해 이스라엘을 공격한 것으로 보인다.
이 전쟁에 이스라엘이 패배하여 약 사천 명이 죽는다.
3~4절 : 전쟁에서 패배하자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패배의 원인을 생각한다.
그런데 자신들의 죄는 생각지도 않고 오로지 하나님께서 자기들과 늘 함께 하셔서 언제나 적을 물리쳐야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즉 전쟁 패배의 원인을 하나님께 묻는 것이 아니라, 방법론에서 찾는 것이다.
언약궤를 가져가지 않아서 졌다고 생각한 그들은 실로에 사람을 보내어 언약궤를 가져오게 한다. 언약의 뜻은 관심도 없이 단지 언약궤를 부적처럼 이용하려고 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실로에서 언약궤를 메고 오게 하는데 당시 제사장인 홉니와 비느하스가 하나님의 언약궤와 함께 있었던 것이다.
5~9절 : 언약궤가 이스라엘 진영에 당도하자 사기가 충천하여 땅이 울릴 만큼 환호성을 지른다. 블레셋 사람들이 그 소리를 듣고 놀라 알아보니 여호와의 궤가 이스라엘 진영에 들어온 것이다. 이스라엘의 신이 그 진영에 이르렀기에 자신들에게 화가 임하였다고 두려워한다.
블레셋은 이 신에 대한 소문은 이미 들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애굽에서 일어난 재앙이 언약궤와 함께 한 이스라엘 신들(복수 : 그들이 섬긴 신들이 복수이기 때문)의 권능인 것을 알고 떨었다.
그런데 이들은 어차피 지게 되면 이스라엘의 종이 될 것이니 죽기 살기로 싸우자고 전의를 다진다.
10~11절 : 하나님의 언약궤를 가져와서 사기충천했지만 오히려 2차 전쟁 때는 이스라엘은 참패하고 만다.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였다’라는 것은 원대 복귀할 부대가 없었기에 각자 자기 집으로 도망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보병밖에 없는 이스라엘이었기에 ‘삼만 명의 보병이 전사했다’라는 것은 전투에 참여했던 병사들이 거의 다 죽었다는 뜻이다.
이때 하나님의 궤는 빼앗기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도 죽는다.
언약궤가 적들의 손에 넘어간 것은 이스라엘의 신이 졌다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로 인하여 여호와의 이름이 모독을 받는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이 일이 일어나게 하신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엘리 집안을 심판하시며 이스라엘을 심판하시기 위함인 것이다.
하나님은 무조건 이스라엘의 편이 아니다. 자기 이름이 모독을 받을지라도 주술적이거나 미신적인 하나님이 아니라, 언약대로 일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보여주시는 것이다.
(나의 묵상)
하나님께서 홉니와 비느하스를 죽이심으로 심판하신다.
하나님의 언약궤와 함께 나타난 이들은 언약궤 옆에서 폼을 잡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미 무명의 선지자와 사무엘을 통해 엘리 집안에 임할 심판의 말씀을 하셨고, 그 말씀대로 이루신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2:30b)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물과 예물을 갈취하는 등 악행을 일삼아, 하나님을 멸시했던 홉니와 비느하스를 동시에 죽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을 이루신다.
또 하나님의 뜻에는 무관심하면서 언약궤만 있으면 승리할 것으로 생각했던 이스라엘을 심판하신 것이다.
하나님이 떠나신 언약궤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오늘날에도 의미 없는 언약궤를 붙잡고 있는 허황된 믿음을 가진 자가 많다. 바로 복음 없이 교회를 다니며 주일성수와 헌금과 봉사 등으로 스스로 위로를 받거나, 서로서로 위로하는 자들이 그들이다.
나도 그런 텅 빈 언약궤를 붙잡고 30여 년의 종교생활을 해 왔다.
그런데 비록 그렇게 살았지만 그런 중에도 교회를 떠나지 않고, 늘 교회 중심으로 살게 하신 것도 오래 참으시는 주님의 은혜였다.
주님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셔서 복음을 듣게 하셔서 생명을 주실 뿐 아니라, 그 생명을 가지고 주님과 교제하며 살게 하신 것이다.
주님과 교제에서 가장 먼저 받은 은혜는 십자가 아니면 해결이 되지 않는 더러운 죄인인 나를 보게 된 것이다.
그 십자가를 통해 나는 하나님 아버지께로 난 길을 달려갈 수 있게 되었고, 또 자기부인의 그 십자가에 연합됨으로 죄 많은 이 세상을 이기며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창세전 아버지의 뜻을 다 이루신 주님의 영광의 십자가를 알아보게 된 것이다.
오늘 본문은 종교적 열심과 정성을 믿음으로 착각하는 많은 자들을 깨우치시고, 그것을 아는 내게 거듭거듭 들려주시는 복음의 말씀이다.
하나님을 멸시하는 제사장이 언약궤 옆에 당당하게 서 있는 모습이라니!
어쩌면 홉니와 비느하스는 전쟁의 승리를 상상하며 자신들이 받을 스포트라이트를 기대하며 내심 더 큰 탐욕이 들끓었을지도 모르겠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렇다.
하나님의 뜻에는 무관심하면서 ‘언약궤만’을 의지한 무지한 자들이 심판을 받은 것이다.
아들의 생명을 주셔서 영생의 교제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에는 무관심하면서 오로지 이 땅에서의 자기 행복만을 주구장창 기도하다가 심판받게 되는 교인이 아니겠는가?
‘언약궤가 옆에 있었는데 왜 전쟁에서 패배했을까?’ 하는 의문은 ‘그렇게 열심히 교회를 다녔는데 심판이라니!’ 라는 한탄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내 마음에 말씀을 새겨주신 새 언약의 주님을 바라보며 오늘도 십자가를 붙든다.
이것이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언약궤와 함께 하는 것이다.
(묵상 기도)
주님,
자기 유익과 만족을 위해 산 자, 탐심이 가득한 자에게
어떻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까요?
그 더러운 자를 보혈로 덮어주셔서 정결케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제 텅 빈 언약궤가 아닌,
주님의 영광의 십자가를 붙잡습니다.
그 십자가를 통해 아버지께로 달려갈 수 있게 되었으니
날마다 아들의 생명을 누리며 아버지 품속에 거합니다.
이 육체의 생명이 다할 때까지 이 은혜를 누리게 하옵소서.
성령님, 의지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