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정의 탄력성
장성숙/ 극동상담심리연구원, 현실역동상담학회
blog.naver.com/changss0312
별생각 없이 그런대로 지내다 전혀 예상치 않은 일을 겪게 되면 ‘아직 멀었구나!’ 하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경제 수준은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 우리의 의식 수준은 그에 미치지 못하는 것 같아서다.
얼마 전에 「나는 현명하게 나이 들고 싶다」라는 책을 발간했는데, 출판사가 대기업인 조선일보 산하여서 그런지 다른 출판사에 비해 광고를 많이 하는 듯했다. 유명 YouTube 채널 및 방송국에 출연하도록 하더니 ‘저자의 오프라인 강연’ 자리도 주선하였다.
사전 신청을 받아 참가시킨다는 강연 장소에는 주로 저자에 대해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다고 했다. 그동안 심심치 않게 특강을 다녔던 나는 그런 자리를 그리 어려워하지는 않는다.
1시간 강의를 하고 30분 정도 질의응답을 하기로 한 날, 새벽녘에 일어났더니 배가 살살 아프기 시작했다. 마침 그날 검사 및 진료 예약이 잡혀있어 대학병원으로 향하는데 점점 배가 더 아팠다. 병원에 도착해 피검사를 마친 뒤 이른 아침이라 인근 약국도 문을 열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나는 응급실로 향했다. 그곳에서 응급처치라도 받으면 오전 10:30분에 하기로 한 경연을 무사히 마칠 수 있으리라 여겼다.
젊은 의사는 일단 사진을 찍게끔 하고 내게 수액과 진통제를 주사하였다. 잠시 후 배의 경련이 멈추면서 편안해졌다. 나는 간호사에게 그 사실을 알리며 곧 진료 예약이 있고, 외부에 피치 못할 사정도 있으므로 나가봐야겠다고 하였다. 하지만 간호사는 결과를 보기 전에는 나갈 수 없는 게 응급실 규정이라며 앞으로 2시간 정도는 더 있어야 한다고 강경한 어조로 말했다. 그렇게 했다가는 강연 시간에 맞춰갈 수 없다는 절박감에 나는 몇 차례 더 사정해보았지만 소용없었다.
몸이 후끈 달았던 나는 담당 의사를 불렀고, 그에게 사정을 말하며 강연을 마치고 돌아와 결과를 듣겠다고 간청했다. 하지만 그는 규정상 곤란하다며 고개를 갸우뚱거리다가 다른 쪽으로 갔다. 나는 그가 뭔가 조처를 마련하기 위해 간 것인 줄로 여기고 그때부터 목이 빠지도록 그를 기다렸다. 그러나 함흥차사처럼 그는 떠난 지 40분이 지나도록 오지 않았다. 나는 다시 그 땍땍거리는 간호사에게 그 의사를 불러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간호사는 환자가 당신만 있는 게 아니라며 쌀쌀맞게 대꾸하며 내 청을 거부했다. 그야말로 말이 통하지 않는 포로수용소에 갇힌 기분을 면하기 어려웠다.
원래 예정된 피검사 결과에 대한 의사 진료는 이미 물 건너갔고, 더 지체하였다가는 강연 시간에 맞춰갈 수 없었던 나는 급기야 소리쳤다. 정 그렇다면 내가 직접 팔에 놓은 주삿바늘을 뽑아버리겠다고 한 것이다. 그때서야 누군가와 와서 결과를 보지 않고 나가려면 각서를 서야 한다고 말했다. 그제야 그런 방법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나는 그런 각서라면 하나가 아니라 10개라도 쓸 용의가 있다며 당장 가져오라고 하였다. 그러는 사이 마침 결과가 나왔다며 별 이상이 없으니 정산 후 나가라고 하였다.
병원을 나서기가 무섭게 나는 자동차 운전에 속도를 내며 강연 장소로 내달렸다. 마침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데 등줄기에 땀이 밸 정도로 긴장을 풀지 못했다. 그렇게 하여 강연 시작 5분 전에야 가까스로 도착하였으니.
강연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오면서 나는 그날이 한없이 길었다고 여겼다. 경연 약속을 지키지 못할까 봐 서둘러 간 곳이 응급실이었는데, 도리어 응급실에 빠져나올 수 없어 2시간 가까이 그 마음고생을 하였으니…. 마침내 빠져나와서는 비가 내리는 초행길을 얼마나 마음 졸이며 운전을 하였는지. 어처구니없기도 하고 지옥이 따로 없다는 생각을 절로 하였다.
생각할수록 기막힌 사람이 그 젊은 의사와 땍땍거리는 간호사였다. 모든 이들이 따라야 하는 규정이라는 게 있어도 개개인의 사정이라는 게 있게 마련이다. 이런 것에 유연성을 발휘하는 게 선진국의 시민의식일 텐데 그들은 도무지 그것을 갖추지 못한 듯하다는 것이다. 즉, 무조건 안 된다고만 할 게 아니라 어려운 부탁을 할 때는 각서를 쓰는 방법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어야 한다고 본다. 그것이 환자의 알 권리이며 또한 환자를 존중하는 의료인의 자세가 아니냐는 것이다.
다른 한편, 응급실에는 술을 마시거나 싸움을 하고 들어오는 막무가내의 사람들도 있는 까닭에 강력한 규정도 필요하리라는 것을 이해하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래도 남의 사정에 좀 더 귀를 기울일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특히 그 젊은 의사의 지지 뭉기는 태도는 무책임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것 같다. 도망치듯 사라진 그 비겁한 자를 나는 얼마나 목을 빼고 기렸던가. 급기야 소리를 지름으로써 각서 쓰는 방법도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 이런 것이야말로 야만의 세계 아닌가. 이러한 태도는 편의주의가 낳은 천편일률적인 경직성이라고 본다.
다시금 좋은 제도라는 게 과연 어떤 것인지 의문을 가져본다. 탄력성, 즉 유연함을 지니지 못한 것은 아무리 좋은 제도라 해도 독재성을 띠게 마련이니 위험하지 않을까 한다. 질서에 대한 존중과 개별성을 존중하는 것은 대립을 넘어 보완관계에 있을 수 있다고 본다.
결국은 균형과 조화의 문제라고 본다. 결코 쉬운 일을 아니겠지만 그것이 추구될 때 비로소 선진화된 의식을 지니는 게 아닐까 하는 것이다.
첫댓글 네. 요즘 젊은이들 가운데 가끔 지지 뭉기는 사람들 있습니다
그런 종류의 패기없고 적당히 얼바무리려는 사람들 인성 교육을
다시 시켜서 사람들 잎에 나와야 겠다고 생각합니다.
장선생님!
2024년 새해에 하시는일 다 뜻대로
이루시고 건강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대한민국 의식수준 높아지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한국에서 많이 경험 했네요...
건강하세요.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