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주일의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저희를 지극히, 완전하게 사랑하셨건만
저희는 늘 시부적시부적 사랑합니다.
그런 사랑도 사랑이라고 입에 달고 살았던
이 기가 찬 인생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래 참으시고,
한 사람 한 사람 주님의 보혈을 힘입어 나아올 수 있도록 불러주시니 감사합니다.
보혈이 아니면 앉을 자리, 설 자리, 누울 자리가 없는 저희들이오니
긍휼을 베풀어 주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성령께서 인도하여 주실 때,
오늘도 진리로 기뻐 춤추는 나의 영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2. 당일에 어떤 베냐민 사람이 진영에서 달려나와 자기의 옷을 찢고 자기의 머리에 티끌을 덮어쓰고 실로에 이르니라
13. 그가 이를 때는 엘리가 길 옆 자기의 의자에 앉아 기다리며 그의 마음이 하나님의 궤로 말미암아 떨릴 즈음이라 그 사람이 성읍에 들어오며 알리매 온 성읍이 부르짖는지라
14. 엘리가 그 부르짖는 소리를 듣고 이르되 이 떠드는 소리는 어찌 됨이냐 그 사람이 빨리 가서 엘리에게 말하니
15. 그 때에 엘리의 나이가 구십팔 세라 그의 눈이 어두워서 보지 못하더라
16. 그 사람이 엘리에게 말하되 나는 진중에서 나온 자라 내가 오늘 진중에서 도망하여 왔나이다 엘리가 이르되 내 아들아 일이 어떻게 되었느냐
17. 소식을 전하는 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도망하였고 백성 중에는 큰 살륙이 있었고 당신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도 죽임을 당하였고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나이다
18. 하나님의 궤를 말할 때에 엘리가 자기 의자에서 뒤로 넘어져 문 곁에서 목이 부러져 죽었으니 나이가 많고 비대한 까닭이라 그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 지 사십 년이었더라
19. 그의 며느리인 비느하스의 아내가 임신하여 해산 때가 가까웠더니 하나님의 궤를 빼앗긴 것과 그의 시아버지와 남편이 죽은 소식을 듣고 갑자기 아파서 몸을 구푸려 해산하고
20. 죽어갈 때에 곁에 서 있던 여인들이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아들을 낳았다 하되 그가 대답하지도 아니하며 관념하지도 아니하고
21. 이르기를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 하고 아이 이름을 이가봇이라 하였으니 하나님의 궤가 빼앗겼고 그의 시아버지와 남편이 죽었기 때문이며
22. 또 이르기를 하나님의 궤를 빼앗겼으므로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 하였더라
(본문 주해)
12~18절 : 전쟁에 패배한 날에 전령인 베냐민 사람이 진영에서 달려와서 자기의 옷을 찢고 머리에 티끌을 덮어쓰고 실로에 이른다. 이는 장례를 치르는 자의 복장이다.
그 사람에 엘리에게 전쟁에서 패배한 소식과 두 아들의 죽음과 언약궤를 빼앗겼다는 소식을 전한다.
엘리는 두 아들의 죽음보다 하나님의 궤가 빼앗겼다는 말에 충격을 받았다. 엘리에게 두 아들의 죽음은 이미 예견되었다(2:34). 엘리는 전령이 하나님의 궤에 대해 말할 때 앉아 있던 의자가 뒤로 넘어져 문 곁에서 목이 부러져 죽었다.
19~22절 : 비느하스의 아내가 임신하여 해산할 때가 다 되었다.
그런데 하나님의 궤를 빼앗긴 소식과 시아버지의 죽음과 남편의 죽음의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아 갑자기 해산을 하게 된다.
이때 해산을 돕던 여인들이 아들을 낳았다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한다.
아들을 낳는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여인에게 기쁜 소식이다. 그러나 이 여인은 그 어떤 말에도 대꾸도 하지 않았고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버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믿음의 여인은 하나님의 심판을 온 몸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죽어가면서 그 아들의 이름을 이가봇이라고 한다. ‘하나님의 영광이 없다’는 뜻이다.
(나의 묵상)
제사장 가문이 멸망했다.
엘리가 죽고, 홉니와 비느하스가 죽고, 비느하스의 아내가 죽고, 이가봇이란 슬픈 이름을 가지게 된 갓난아기만 태어난다.
비느하스의 아내는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을 떠났다고 했지만, 사실은 이스라엘이 아니라, 엘리 제사장 가문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것이다.
왜냐 하면 블레셋에게 빼앗긴 하나님의 언약궤는 후에 스스로 돌아오기 때문이다(삼상6장). 그리고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께서 다윗을 세우시고, 다윗에게 언약하신 대로 영원한 위(位)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앉으심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보이신다.
제사장 가문이라도 하나님의 영광이 떠날 수 있고, 또 그렇게 됨으로 멸망하는 가문이 되고 만다.
왜 그렇게 되었는가?
하나님의 언약궤 옆에서 ‘능력의 하나님’께서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실 거란 믿음을 가진 홉니와 비느하스였을 것인데 어이없게도 전쟁에서는 참패하고 그 둘은 죽고 말았다.
‘능력의 하나님’을 생각하였는데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홉니와 비느하스 그리고 이스라엘은 그 ‘능력의 하나님’을 하나님 당신의 뜻을 이루시는 능력의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능력의 하나님으로 생각하였던 것이다.
교회를 다니면서 우리들은 ‘능력의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 은혜의 하나님.....’이라고 늘 하나님을 높인다. 언뜻 들으면 문제가 없다. 아니 문제가 없는 정도가 아니라, 그것을 입에 달고 사니 오히려 믿음이 좋아 보인다.
그러나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시는’ 능력의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 은혜의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 소원과 만족을 기대하면서 능력의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 은혜의 하나님을 부르고 눈물 흘리면서 열광하는 것이다.(어느 목사님께서는 이것을 성령이 아닌, 흥분을 부르는 것이라고 하셨다.)
완전 동상이몽이다.
자기의 꿈과 소망을 이루어주시기를 간구하며 하나님을 부르는 그 마음과 입술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한다. 이것을 모르면 평생을 교회에 다녀도 ‘이가봇’의 상태로 살다가 죽게 될 뿐이다.
하나님의 영광은, 그분의 뜻이 가장 극명하게 나타나는 십자가에서 가장 빛난다.
그러므로 근본 자기중심적이 될 수밖에 없는 인간의 본성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으면 이가봇으로 태어나 이가봇으로 죽을 뿐이다.
창세전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바로 아들의 생명을 우리에게도 주신다는 약속이다. 그리고 그 주신 생명으로 하나님과 교제하기를 원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하나님과의 교제를 위해 날마다 오염된 영혼을 십자가 보혈로 씻음 받아야 하는데, 하나님과의 교제는 뒷전이고, 오로지 이 땅에서 편히 잘 먹고 잘 살기를 바라는 오염된 마음만 자꾸 쌓아가니, 십자가와 상관없는 그 심령으로 무슨 하나님 영광 타령을 할 것인가?
이가봇으로 태어나 이가봇으로 죽을 뿐인 인생이 주님의 보혈을 힘입어 아버지께로 나아가니, 창세전 삼위 하나님의 기쁨을 누리며 진정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는 자가 되는 것이다.
독생자가 내어준 십자가의 길이 아버지께로 가는 길이니, 그 길을 열어주신 주님의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는 것이다.
매일의 말씀을 통해 내 탐심에 브레이크가 걸리지 않으면 나는 번번이 하나님의 뜻보다 내 뜻과 소원을 앞세우는 자라는 사실을 스스로가 너무도 잘 알기에, 주님이 내어주신 그 십자가의 길을 감사하게, 기꺼이 걸어가는 것이다. 다만 이 또한 나의 능력이 아니기에, 탄식하시며 함께 해 주시는 성령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이다.
(묵상 기도)
주님,
이가봇으로 태어나 이가봇으로 죽을 운명의 존재는
자기의 영광을 구하다가 멸망할 인생입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그 길로 달려가는 저를
십자가 보혈로 덮어 구해 주시고
매일의 말씀을 통해 십자가를 붙들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하시니 참 감사합니다.
이가봇의 헛된 영광에 마음 빼앗기지 않고
예수님의 십자가, 그 영광의 자리에 늘 연합되게 하옵소서.
성령님, 의지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